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414)
EP.415)혼인잔치 # 2
415 – 왕국의 혼인잔치 # 2
이 세상의 문화는 내가 살았던 창문 너머의 세상과 닮은 부분이 잔뜩 있었다.
이를테면 결혼식에 있어서 신부들이 자신의 아버지의 손을 잡고 붉은 융단을 걸어, 마침내 신랑의 손에 넘겨 쥐어진다는 점이 그랬다.
아버지에 의지하며 살아가던 여성이 이제는 신랑과 함께 나아가며 새로운 가정을 만들어내는 걸 나타내는 걸까?
그 유례나 의미는 잘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그 광경이 제법 사람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고 웃거나, 또는 눈물 짓게 만들기 효과적이라는 거지.
━신부들의 행진이야.
━길을 비켜주자.
스르르, 사람들이 비켜서자 드러나는 붉은 융단들.
이 앙그마르의 결혼식에서는 신부들이 신랑에게 오기 전, 하객들이 머무르고 있는 연회장의 한 바퀴를 빙 돌아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그랬다.
그럼, 손님들은 새로운 신부의 앞날에 안녕과 축복을 빌어주거나 한다고.
“오늘의 신부들이 입장하는 것이다…! 모두 밝은 마음으로 축복해주는 것이다…!”
완장을 찬 임프 타르타르가 손에 꽃이 가득 담긴 바구니를 들고 나서서 붉은 융단 길에 촤르르, 촤르르 꽃잎을 뿌렸다. 그 꽃잎을 사뿐히 밟으며 걷는 여성들의 모습은….
━천사들 같아.
━바가지 긁는 마누라가 다섯이나 있다면 좀 끔찍할 것 같았는데. 이렇게 보니까 신랑이 부러워지는구먼.
━예쁘다.
다들 감탄하기 바빴다.
하얀 드레스를 입고 한손에는 꽃을 쥔 채 또 한 손에는 각각 다른 신부들과 팔짱을 껴 사뿐사뿐 걷는 그 모습은 신화 속 등장하는 미의 여신들 같기도 했다.
다만 신경 쓰이는 점이 딱 하나 있다면….
재상 라인하르트 폰 리오네스.
그는 다섯 명이나 되는 영애들과 각각 팔짱을 끼거나 혹은 양쪽 어깨 위에 앉혀놓고 있거나 했다. 좌우에 팔짱을 낀 여성은 각각 아이라 여왕과 미르나 폰 드레이코.
그리고 어깨에 앉은 여성은 나르미 폰 드레이코와 스텔라. 마지막으로 엘가는 미르나와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 모습이 꼭 기행을 보이는 서커스단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누구도 그 모습을 비웃거나 하지는 않았다.
━저기, 라인하르트 공 맞지? 저 사람,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야?
━쉬잇, 리오네스 영애 말고는 신부들의 아버지들이 계시지 않잖아. 그래서, 라인하르트 공이 그 역할을 한 번에 대신하기로 했대.
이 기묘한 모습은 아버지가 없는 영애들을 위해 라인하르트가 자신의 어깨나 팔을 빌려준 것이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기묘한 행진이 계속되다가, 마침내 단상 위에 선 내 옆으로 다가왔다.
이제 라인하르트는 하나 둘 내게 신부들을 인도해주겠지. 가장 먼저 라인하르트의 왼팔에 팔짱을 끼고 있던 아이라의 손을 붙잡은 라인하르트 공.
“내 친척 아이라 폰 타란테라.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네게는 신경 써주지 못한 게 많아. 언젠가 네 가족들을 뵐 면목이 없구나.”
슥.
그리고는 아이라의 손을 붙잡아 내게 건넸다.
“아이라, 너는 솔직히 좋은 여왕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 하지만 누구보다 사랑 받는 아내나, 어머니는 될 수 있을 거다.”
“알겠어요.”
아이라가 가볍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 가벼운 대답에 나도 라인하르트도 깜짝 놀랐다. 그 여왕 아이라가 다른 이에게 존대를 사용하는 건 처음 봤으니까.
그 하얀 장갑이 마침내 왼손의 엄지를 붙잡는다. 곧 라인하르트는 미르나의 손을 붙잡았다.
“알레이스터의 딸, 미르나. 알레이스터와 나는 제법 오랜 시간 친구로 지냈었지. 그랬기에, 그 녀석이라면 무슨 말을 했을지 알 것 같군.”
“…….”
하얀 신부 화장을 한 미르나의 표정은 어딘가 살짝 우울해보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일까. 그때 라인하르트가 말했다.
“너무 잘 참는 딸이 있다고 했었어. 기특하지만, 동시에 딱딱한 규율에 얽매이는 것 같아 미안하다고도 했다. 조금 더 자신을 위해 살아도 좋겠다고, 그렇게 말하더군.”
“제 아버지가…?”
“이제 조금 더 자신을 위해 살아도 돼. 눈치 볼 것도 없이, 제약을 벗어나서. 또 조금 더 당당해도 좋아, 그 알레이스터가 가장 믿는 장녀니까.”
슥.
미르나는 내 왼손의 검지를 붙잡았다. 그 굳게 다물고 있는 입술을 바라봤을 때, 나는 미르나가 눈물을 참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르미.”
슥.
라인하르트는 어깨에 앉아 있던 나르미를 내려주었다.
“너는 아빠보단 엄마를 더 닮았구나. 나루, 그녀의 이름은 나루였지. 밤새 빛나는 보름달 같은 여자였어. 비록, 긴 어둠에 잠겨 있었지만 너는 이제 어딜 가든 사랑 받을 거다.”
“나도 알아요!”
“알레이스터는 네 얘기도 잔뜩 했지. 그래서 그런지, 너는 내 막내딸 같구나. 그래, 딱 막내딸 같은 기분이야.”
슥슥.
라인하르트에게 머리를 쓰다듬어진 나르미. 나르미는 “아저씨, 머리 헝클어져!”라고 툴툴거렸지만 기분은 꽤 좋아 보였다. 나르미는 내 중지를 잡으며 말했다.
“내가 가장 긴 손가락이네…!”
그에 검지를 잡고 있던 미르나가 “나르미, 손가락에는 아무 의미 없이 제비뽑기로 정한 거 잊지 마.”라고 정정해준다.
이제 라인하르트는 자신의 어깨에 앉은 스텔라를 내려놓았다.
“…….”
“…….”
라인하르트도 스텔라도 서로 말이 없다. 먼저 입술을 연 것은 스텔라 쪽이었다.
“선배, 나한테도 뭐라 말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 내가 어떻게 네 아버지 역할인가 싶어서 말이야. 애초에 따지고 보면 네가 오히려 내 어머니보다 나이를….”
“쓰읍-.”
“그래 뭐, 아크의 선배로서 말하자면 그 말괄량이 스텔라가 언젠가 이렇게 면사포 머리에 올릴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말이야. 하물며 연하의 왕자님이라.”
“어째선지 욕설 같은데, 나 스텔라도 아직 살아있다는 말이지?”
“그래, 아직 팔팔하다. 다들 이 모습을 봐야 했을 텐데. 진짜 웃겼을 걸. 알레이스터도, 이사야도 꼭 이 모습을 봐야만 했어.”
“이미 보고 있을 거야. 내 오빠도, 우리 엄마 아빠도.”
“그래, 아무튼, 뭐, 드디어 결혼하는구나, 스텔라. 내가 죽기 전에는 봐서 다행이야.”
라인하르트의 농담에 스텔라는 “뭐래, 백년은 더 살 것 같구만.”이라고 퉁명스레 말하며 내 약지를 붙잡았다. 이제 남은 것은 엘가 한 명 뿐.
엘가는 라인하르트의 하나 뿐인 친 딸이기 때문인지, 방금까지 달변으로 술술 말하고 있던 라인하르트가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망할, 연습한다고 열심히 외웠는데 다 까먹었다. 엘가, 너를 위해 준비했던 말이 잔뜩 있었는데 모르겠다.”
“너무하네, 나는 친 딸인데.”
슥.
라인하르트와 손을 잡은 엘가. 그녀의 표정이 서서히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마침내 굵은 눈물을 주룩주룩 떨어트리기 시작했다.
“흑, 흐윽…. 정말 너무 하네.”
라인하르트가 말했다.
“울지 마라, 에르가네스. 내 딸이지만 너는 너무 버릇없이 자랐다. 앞으로 새로운 가족들과 남편과 함께 생활하다보면, 눈물 흘릴 일 잔뜩 있을 걸. 그러니 지금은 아껴라.”
“그러니까, 그게 결혼하는 데 무슨 막말이냐고….”
엘가는 더욱 서럽게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엘가는 좀처럼 아버지의 손을 놓지 못했다. 그 모습에 사람들이 하나 둘, 눈시울을 붉힌다.
━타르타르야, 네가 왜 우는 것이야…?
━그러는 푸르푸르 너도 울고 있는 것이다…!
━몰라, 눈물이 막 나오는 것이야…!
감수성이 예민한 임프.
━그아앗, 이 펀치노이의 눈에서, 뜨거운 것이 뿜어지는 것입니닷…! 이, 이 막을 수 없는 물결은 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리고 호들갑 떨기 좋아하는 님프들이 마구 눈물을 터뜨리기 시작하자 예식장은 어느덧 눈물의 바다가 되었다.
그 눈물은 매우 강한 전염성을 지니고 있어서, 꾹 입술을 깨물고 있었던 미르나도 다른 영애들도 하나 둘 울음을 터뜨렸다.
신부들의 화장이 번지고, 더러는 이 상황을 보며 재미있는 해프닝처럼 웃기도 한다. 이를 테면, 라인하르트는 멋쩍은 듯이 자신의 턱수염을 슥슥 만지며 어색하게 웃었다.
“나 원, 어째서 결혼식 때에는 이렇게 우는 사람들이 있는 지. 내 딸은 다를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야. 아무튼, 이렇게 부족한 딸이야. 잘 부탁하네.”
슥.
마침내 엘가가 내 왼손의 새끼손가락을 붙잡는다. 그때 라인하르트가 말했다.
“그리고, 태오 군. 자네는, 오히려 사위보다 내 아들 같은 느낌이야. 그런 의미에서 한 마디만 해도 괜찮겠나?”
라인하르트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든지 하세요.”
“잘 자라줘서 고맙네. 만약 나라면 자네를 무척 자랑스러워했을 걸세.”
그것을 끝으로 라인하르트는 “역시 이런 일에 나는 안 맞아.”라고 말한 뒤 가볍게 물러섰다. 이제 나와 영애들만 단상 위에 남은 시간.
내가 말했다.
“우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 될 거에요. 앞으로는 웃게만 해줄 테니까.”
* * *
앙그마르의 결혼식은 며칠에 걸쳐서 진행된다.
대강 큰 행사가 끝나고 자리에 참석해준 손님들을 향해 선물을 나누어주는 시간부터, 신부와 신랑이 함께하는 공동 케이크 썰기 등….
할 게 굉장히 많다.
또 손님들 모두 일일이 찾아가 인사를 해야 하기도 했다. 그것이 새로운 신랑 신부로서의 기본적인 자세라고.
“여기는 오를레앙의 아슬란. 내 친척이고, 또 저기는 몰담의 레오, 쟤도 내 사촌이고, 저기도 내 사촌이고 저기도 내 사촌….”
엘가는 테이블 가득 찬 친척들을 가리키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흰 장감으로 슥 닦아냈다.
대가문 리오네스는 유난히 사촌이 많았기 때문에 하나하나 다 찾아가 인사를 나누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제 사촌들 다 끝났다. 이제 오촌들 인사하러 가면 돼.”
엘가의 말에 결국 견디지 못하고 푹, 퍼지는 나르미.
“결혼식 대체 언제 끝나. 벌써 며칠 째 사람들한테 인사만 하고 있잖아. 비가 안 와서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이런 단점이 또 있네….”
모두들 내색하진 않았지만 나르미와 같은 마음인 듯했다. 다들 결혼에 들 떠오르거나 싱숭생숭했던 마음 대신 이제 좀 ‘쉬고 싶다’라는 마음뿐인 듯하다.
결혼식이 이렇게 고된 노동이었을 줄이야. 앞으로 이런 일을 며칠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조금 아찔해졌다.
다들 내색하고 있진 않지만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임프들도 피로가 최대로 올랐어.
그렇게 우리는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선물을 나눠주고 하다가, 모두가 약속했던 것처럼 모퉁이 뒤쪽에 모였다.
엘가가 말했다.
“앞으로 이틀은 더 해야 하지? 들어보니 이제 출발한 내 사촌들도 있다더라. 내일이나 내일 모레도 오늘처럼 일 해야 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내쉬는 미르나.
“정말, 지쳐요. 리오네스 가문의 사람들은 왜 이렇게나 많은 건지….”
나 역시 몇 시간 전부터 갖고 있던 생각을 말하기로 했다.
“그럼, 이건 어떨까요.”
스륵.
내 《다람쥐 저장고》에서 꺼내지는 카펫. 그것을 바라보자 영애들의 눈빛에 여러 당혹감과 기대감이 일렁이는 게 보였다.
“신혼여행의 출발을 며칠 앞당기는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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