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453)
EP.454)언제나 벌꿀 빛깔 # 3
외전 – 일상은 언제나 벌꿀 빛깔 # 3
엘가는 아침부터 툴툴거렸다.
“오늘 신혼여행지 다시 짜기로 했잖아. 그 무슨, 오리너구리인지 뭔지 하는 마물이 있는 동물원이 어디 있는지 알려준다며.”
결혼식이 끝난 뒤 몇 주. 우리는 처리할 것이 많았기 때문에 신혼여행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영애들도 각각 맡은 일이 있어서 너무 바쁘고 나 역시 교단이나 궁정을 오가면서 처리할 게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교단과의 이야기는 아직 시작조차 못했다고 봐도 무방해서 나도 꽤 많은 업무에 시달리며 살았다.
여기저기서 광염교 사제들의 신성력이 줄어들기 시작하는 일에 대해, 교단의 고위 사제들은 내게 이야기나 해명을 듣고 싶어 했었지.
일상이 돌아오면 편안하고 안락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사람의 일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다.
그래서 재미있는 점도 많이 있지만 말이야.
그래도. 영애들과의 신혼여행 날이 계속 뒤로 밀리고 있다는 건 내게 있어서도 영애들에게 있어서도 꽤 아쉬운 일인 것이 사실.
엘가가 계속해서 말했다.
“또 오늘 오후는 나랑 같이 레오노이 봐주기로 했으면서. 아이가 성장하는 데에 아빠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줄 알아? 몰라? 엉?”
내가 숲이나 산으로 떠나는 것이 몹시 맘에 들지 않았던 건지 엘가는 계속해서 투덜거렸다. 레오노이 이름을 여기서 쓴다니. 마음이 거미에 물린 것처럼 뜨끔하잖아.
━히오옹…!
진짜 물린 거였네.
나는 마음 속 바엘을 다독이며 말했다.
“오늘 하루 금방 다녀올 거에요. 늦어도 저녁 먹기 전에는 돌아올 테니까 걱정마세요.”
“퍽이나. 매일 그 말 해놓고 며칠 자다오고 말이야.”
궁시렁. 궁시렁.
엘가는 평소 시원했던 성격이 어디로 갔는지 요즘은 이렇게 깍쟁이처럼 툴툴거렸다. 결혼을 하면 변하는 건가. 문득 그런 이야기가 떠오른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결혼을 할 때.
남자는 여자가 변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여자는 점점 변해가고. 여자는 남자가 변할 것이라 믿고 결혼하지만 남자는 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
엘가도 마찬가지인걸까?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결혼을 했음에도 영애들을 대하는 내 방식은 딱히 변한 게 없었으니까. 그래도, 나름의 지혜는 생겼다. 이를테면 이런 것.
“그럼, 이번에 돌아오면 그때는 고양이 꼭 같이 봐요.”
“뭣…!?”
머리칼을 쭈뼛 곤두세우는 엘가. 그녀는 곧 주변을 슥슥 둘러보며 다른 영애들의 눈치를 살피더니 작지만 분명하게 항의하듯 말했다.
“…야, 그걸 모두가 다 있는 앞에서 말하면 어떻게 해…!”
“…뭔?”
고양이 보는 게 뭐 문제 있는 건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엘가는 곧 으흠-하고 헛기침을 하더니 내 등을 손바닥으로 팡-쳤다.
“몰라. 잘 갔다 오든지 말든지!”
휙 고개를 돌리나 싶더니, 이윽고 품에 안고 있던 레오노이를 내게 내민다.
“레오노이, 아빠한테 잘 다녀오시라고 인사해야지.”
“갸르르.”
“레오노이, 다녀올게.”
나는 아이의 손에 내 손가락을 건네 보았다. 그러자 작은 단풍 같은 손이 내 손가락을 꼭 쥔다.
꼬오옥.
생각보다 강한 악력은 생명력 넘치는 리오네스 가문의 피가 흐르기 때문에 그런 걸까? 괜히 마음이 벅차오른다.
“다녀올게.”
길을 떠났다가 돌아올 곳이 있어서 좋다. 내 가족들. 정겨운 나의 집. 나는 그렇게 영애들의 배웅을 받으며 길을 나섰다.
“그럼.”
“아, 잠깐만!”
길을 나서려고 할 때 스텔라가 나를 향해 다급히 손을 흔들며 다가온다.
“태오 군, 오늘 가는 숲 쪽에 유적이 드러났다는데. 혹시 가능하면 몇 년대의 유적인지 좀 조사해봐 줘! 참고자료들 챙겨 줄 테니까!”
“유적요?”
내가 묻자 스텔라가 말했다.
“고대 요정 제국의 유적 말이야. 무슨 소문도 있던데. 숲에서, 낯선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발견했다는 괴담 같은 거였나….”
그때 나르미가 끼어든다.
“태오야, 올 때 내 기념품도 사와!”
그런 나르미의 옆구리를 쿡 찌르는 미르나.
“나르미, 태오 경은 놀러가는 게 아니잖아.”
다들 와글와글하니 좋네. 자리에 없는 것은 국정을 돌보느라 바쁜 여왕님 정도인가?
세상에서 가장 바쁜 아내를 둔 것도 나름의 고충은 있구나-농담 반 진담 반의 생각을 속으로 삼키며 나는 오랜만에 모험 길에 올랐다.
* * *
이 세상의 마법은 쇠퇴해가기 시작했다.
내가 광염의 신을 물리쳤기 때문이다. 사실 아주 물리친 건 아니고,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상처를 입혀놓았다고 표현하는 것이 좋겠지.
내 아버지 이사야가 그 신좌(神座)에 앉아 세상을 굽어보고는 있지만. 그 수명은 길어봐야 백 년 정도라고 한다.
“백 년.”
365일 곱하기 100.
인간들이 마법과 이별을 하기 위해 준비하는 고별의 기간.
그렇게 생각하면 길어 보이지만. 내 아버지와 내가 함께 보낼 시간이 100년 밖에 안 된다고 생각하면 무척 짧아 보인다.
부모님께서 천 년 만 년 건강히 살아계시길 바라는 것은 아들로서 당연한 마음인 걸까? 아들이 되어본 건 처음이었기 때문에 꽤 혼란스럽다.
아니, 이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지.
내가 갑자기 마법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마법이 쇠퇴해가는 시대에서야 비로소 환상과 기적이 벌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광염의 신과 그 교단에 억눌려져 있던 기적들. 태곳적 신비를 가진 유적과 몽환적인 비밀 숲의 낙원 같은 것들이 세상 여기저기 드러났다고.
마법이 저물어가는 세상이 비로소 판타지 해진다니. 아이러니하구만.
그때였다.
“아앗-! 여기, 기묘한 돌멩이가 있는 것이다…! 나 주홍빛 완장의 임프 타르타르가 보건데, 이것은 분명 고대 요정 제국의 룬 문자가 분명한 것이다…!”
앞서 걷고 있던 임프 타르타르가 돌멩이를 주워들고 와락 소리친다. 곧 여기저기서 수풀을 뒤지고 있던 다른 일행들도 하나 둘 무언가를 주워들고 소리쳤다.
“저 꿀 주먹의 펀치노이가 키 크는 버섯을 발견한 것이 분명한 것입니닷…! 이 버섯의 영롱한 자태를 보는 것입니닷…!”
“펀치노이야, 이 도랑물의 님프 머시노이가 보기에 그것은 키 크는 버섯이 아니라 송로버섯인 것이야…! 송로버섯은 검은 다이아몬드라고 불릴 정도로 귀한….”
“아앗-! 키 크는 버섯이 아니라면, 이런 님프 혐오적으로 맛없는 버섯 따위, 필요 없는 것입니닷…!”
휙.
손에 쥔 송로 버섯을 바닥에 팽개치는 펀치노이. 그것을 마르마르가 주워서 자루에 얼른 담는다.
“히히, 송로버섯!”
슥슥.
마르마르는 님프들이 주변에 마구 버리기 시작하는 버섯들을 계속해서 담았다.
“이건, 송이버섯. 이건, 느타리. 이건 팽이버섯 또 이건…. 이러다가 버섯부자 되겠다!”
붕붕붕.
붕붕 꼬리를 흔드는 마르마르의 옆으로는 큰 자루를 멘 임프들이 버섯이나 약초를 정신없이 캐고 있다. 임프들은 오늘 같은 날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구나.
그런데.
이게 맞나?
내가 말했다.
“마르마르, 우리는 그냥 버섯 찾으러 온 게 아니라. 키 크는 버섯 찾으러 온 거잖아. 이렇게 다른 버섯들만 캐고 있으면 시간 훌쩍 지나갈걸.”
벌써 점심시간이 다고오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 키 크는 버섯이 발견된다는 유적 근처도 가지 못했다. 이대로 있다간 다른 버섯만 잔뜩 챙기고 말 터.
내가 초조하게 말하자 마르마르도 번뜩 정신을 차렸다.
“그랬지! 옛날, 오두막이나 숲에서 노숙하던 시절이 생각나서 그만, 히히.”
천진하게 웃는 마르마르. 마르마르는 오래전에 살던 수도원이 해체되었던 때에 숲이나 들 같은 곳에서 노숙을 잔뜩 했었다고 그랬었지.
높은 건물 회사의 사장이 되어도 그때 노숙했던 기억은 아직 생생하게 남아있는 모양이다. 마르마르가 말했다.
“아니, 그런데. 여기 버섯 정말 잔뜩 있다! 이렇게 버섯 많은 숲은 처음 봤어!”
“그건 그래.”
마르마르의 말대로였다.
모나크 시티로부터 남쪽에 위치한 이 고대 숲은 정말 엄청 큰 자이언트 세쿼이아 나무가 잔뜩 심어진 숲이었다.
봄날의 정오가 다 되어감에도 높은 나무들 때문인지 어딘가 어둑어둑하다. 그래도 음산하다기보다는 신비로운 느낌이 들었다.
이따금씩 나뭇잎들 사이로 햇살이 바닥을 비출 때면 꼭 깊은 바다 속으로 햇볕이 스며들어오는 것처럼 꽃과 버섯들, 그리고 조약돌들이 알록달록한 빛깔로 빛나서 예뻤다.
아내들과 함께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나중에 같이 와야지.
아무튼.
이렇게 버섯이 잔뜩 있는 숲이니까 그 소문의 ‘키 크는 버섯’이라는 게 정말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듯했다.
더 깊숙한 계곡 쪽으로 향하다보면 아이를 갖게 해준다는 영험하고 신비로운 학이 있을 것도 같다. 학을 만나서, 작은 요정 공주님들을 잔뜩 만들 비법을 알려 달라 해야지.
히히.
그런 느낌으로 숲을 걸을 때였다. 버섯을 잔뜩 캐고 있던 임프 한 명이 소리친다.
“모두 여기를 보는 것이야…!”
임프가 가리키는 곳에는 자그마한 석상이 있었다. 돌로 만든 석상인데 흙과 먼지가 잔뜩 묻어 있지만 생김새가 동글동글하다. 큰 엄지손가락 형태에 사람 얼굴을 새기면 이럴까?
문득 생각난 게 있던 나는 스텔라가 챙겨주었던 고서를 열어보았다.
대략 천 년 전 이 숲에는 눈부시게 발전했던 고대 요정 제국이 있었다고 했지. 불로불사를 연구하던 진시의 황제라는 녀석이 이 일대를 다스리고 있었다나.
이건 아마도 그 유적의 흔적이 아닐까? 앙그마르의 국보 유물이자 고대 님프가 그려진 ‘님프도’ 또한 이 근방에서 발견되었다고 들었다.
스텔라가 이런 이야기에는 또 환장을 하는데. 같이 왔었으면 좋았겠지만 스텔라 또한 벨호크 가문의 업무가 바빠 오지 못한 게 아쉽다.
스텔라가 좋아할 것이라 생각한 나는 혹시 이 근처에서 이와 비슷한 흔적을 더 찾아볼 수 있을까 싶어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버섯을 캐고 있던 임프들 모두 여기저기서 이와 비슷한 석상을 발견했다고 보고를 해온다. 그것뿐만 아니었다. 우리는 높고 험준한 벼랑과 그 틈에 난 동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수정이 알록달록한 동굴.
요정을 유혹하는 듯한 그 빛에 누군가가 걸음을 움직인다.
“이 펀치노이를…, 동굴 너머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닷…! 스승님과도 같은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입니닷…!”
펀치노이가 동굴 안으로 앞장서서 들어갔다. 곧 다른 임프들도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큰 동굴 안으로 들어선다.
음습하고 어두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동굴 안은 빛나는 크리스탈이 잔뜩 있어서 마치 꾸며놓은 박물관처럼 예뻤다.
“이 예쁜 수정들은, 타르타르의 팔찌로 만들어 쓰면 좋을 것 같은 것이다…!”
“가르르, 가르르르르르-!”
“아앗-! 가르가르가 수정을 먹으려고 하는 것이야…!”
보석처럼 알록달록한 수정들을 보며 임프들과 님프들은 모두 조잘조잘 떠들기 바빴다. 다들 기분이 좋아보였기 때문에 나도 기분이 좋다.
몇 개 챙겨가서, 아내들 챙겨줘야지. 보석이나 목걸이, 귀걸이로 가공하면 딱 좋을 것 같이 생긴 수정들이야.
모두 자루를 펼쳐서 예쁜 수정을 하나 둘, 담을 때였다. 갑자기 모든 수정들이 우우우웅-하고 기묘한 느낌으로 진동하며 더욱 빛을 내기 시작했다.
“뭐지?”
그 아름답고도 웅장한 광경에 우리 모두 말을 잃고 행동을 멈췄다. 그러자 누군가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마르마르, 왜?”
“그게 아니라, 우리 일행에 이상한 님프 하나가 끼어 있다는데!?”
“이상한 님프? 펀치노이?”
“아니, 우리. 출발할 때는 열 명이었는데. 지금은 열 한 명이라고 그래서. 누가, 도중에 우리 대열에 합류한 거 같은데….”
마르마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의아함을 느낄 때였다.
곧 나는 마르마르의 말처럼 우리의 대열에 멋대로 합류한 것으로 추측되는 님프를 만날 수가 있었다.
녀석은 특이하게도 까만 단발 머리칼의 님프였다. 복장도 수수한 삼베로 만든 한복 계열의 의류 같아서 신기하다.
“뭐지.”
낯선 님프다. 다른 임프와 님프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까만 머리의 님프 녀석이 나를 발견하더니 입을 열었다.
“━━─.”
무슨 언어지? 처음 듣는 언어였다. 녀석은 계속 한 동안 무어라 중얼중얼 거렸는데. 그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있는 님프와 임프가 아무도 없었다.
“이 까만 님프, 어디서 합류한 건지 아는 사람 없는 것이야…?”
“버섯 캘 때까지만 해도 없었던 것입니닷…!”
“동굴에서 만난 님프인 모양인 것이다…! 멋대로 우리 대열에 합류한 님프인 것이다…!”
“━━──.”
“이몸 타르타르는 녀석이 뭐라는 지 도통 모르겠는 것이다…!”
모두가 의아함을 느낄 때 꿀 주먹의 펀치노이 정도만이 “으으응, 어디선가….”라고 살짝 무언가 짚이는 것처럼 말할 뿐.
“음.”
무언가 떠오른 나는 종이와 펜을 이 괴상한 까만 님프에게 건넸다. 내게는 신기한 눈동자 《십리안》이 있다.
듣는 언어라면 몰라도 보는 언어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이 까만 머리의 님프가 펜과 종이를 마치 처음 보는 물건처럼 고개를 갸웃거렸다는 것이다.
“……?”
갸웃, 갸웃.
“글씨요.”
내가 종이와 펜으로 무언가를 슥슥 적는 시늉을 하자 그때서야 까만 머리의 님프는 펜과 종이를 쥐고는 무언가를 적었다.
슥슥슥.
그것을 전부 본 나는, 어딘가 머리칼이 쭈뼛 곤두서는 것 같았다.
그 종이 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외부인. 바깥 세상에 황제 진시노이는 아직 살아 있습니까?」
「아직도 님프 혐오적인 강제 징용법이 바깥세상에서 시행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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