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454)
EP.455)언제나 벌꿀 빛깔 # 4
외전 – 일상은 언제나 벌꿀 빛깔 # 4
「외부인. 황제 진시노이는 살아있습니까?」
「아직도 님프 혐오적인 강제 징용법이 바깥세상에서 시행되고 있습니까?」
까만 머리의 님프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황제?
님프 혐오적인 강제 징용법? 그 낯선 단어에 나는 무언가 번뜩 떠올라서 스텔라에게 받은 자료 문서를 펼쳐보았다.
팔락, 팔락.
거기에는 앙그마르 왕국이 세워지기 이전, 혹은 앙그마르 왕국이 아직 도시국가로 불릴 만큼 작았던 시기에 이 대륙을 아우르고 있던 고대 왕국이나 제국에 대해 적혀 있었다.
그 중에서도 내가 볼 것은 이것이다.
「고대 요정 제국」
앙그마르의 모나크 시티 일대에는 님프들이 모여 세운 제국이 있다는 모양이다. 대륙 최초의 황제로 불리던 지배자도 이 고대 요정 제국의 출신이라나.
“그러나 불법과 우상숭배를 계속해오던 요정 제국은 광염교의 순교자들과 성전사들에 의해 와해되었다. 그렇게 적혀 있네.”
내가 책을 읽자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던 타르타르가 몸을 부르르 떤다.
“그렇지만 진시노이라니…! 고대 님프 황제의 이름인 것이다…! 분명, 이 까만 머리의 님프는 고대 제국의 생존자인 것이다…!”
주황색 완장의 임프 타르타르는 어째선지 굉장히 흥분했다. 내가 의아함을 느낄 순간도 없이 타르타르가 자신이 흥분한 이유를 입으로 밝힌다.
“어쩌면 님프들이 커다랗던 시절의 진귀한 고대유물 같은 것들이 근처에 있는 것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키 크는 버섯도 있을지 모르는 것이다…!”
오.
과연.
하지만 가능한 일인가? 천 년 전 제국의 생존자라니. 님프들이 엄청나게 오래 사는 장수종이라는 건 들어본 적 있지만. 내가 만나봤던 님프들의 나이는 많아봐야 백 살 정도.
아무리 님프라도 천 년을 사는 건 힘들지 않나?
그래서 퍽 얼떨떨했다.
“━━─.”
파바바바밧.
그때 까만 머리의 님프가 무어라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 다음에 휙 뛰어갔다. 단순히 달려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거리가 순식간에 멀어져서 붙잡을 순간도 없었다.
마르마르가 말한다.
“따라오라는 것 같은데? 얼른 쫓아가 보자!”
“그래.”
쫓아가도 되는 건가? 수상쩍기 짝이 없었지만 우리에게 별 다른 수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또 저 까만 머리 님프를 스텔라에게 소개해주면 정말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에 나 역시 님프가 사라진 곳으로 허겁지겁 뛰었다.
파바바바밧.
하지만 님프는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뛰어서 동굴의 어딘가로 아주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나마 녀석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는 건 꿀 주먹의 펀치노이 정도였는데.
“칫, 놓쳐버리고 만 것입니닷…! 생각보다 굉장한 경공술인 것입니닷…! 굉장한 경공 실력을 보면…. 유지노이를 이길 수 있는 무술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입니닷…!”
펀치노이 역시 까만 머리의 님프를 미처 다 쫓아가지 못하고 그만 놓쳐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쪽뿐만이 아니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우리는 기묘한 수정 동굴에 갇혀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여기가 어디지.”
무작정 쫓느라 갈림길을 잔뜩 지나쳐왔기 때문에 이곳이 동굴의 어느 부근인지. 어디로 가야 앞으로 나가는 길이고 돌아가는 길인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이 동굴, 바깥에서 봤을 때는 이렇게 커 보이지 않았는데 말이야. 마치 미로처럼 구불구불해서 꼭 누군가 의도적으로 배치해둔 미궁 속을 걷는 기분이다.
“나 모르모르는 이제 다리가 아픈 것이야…!”
무작정 뒤따라 걸었던 여파 때문인지 임프들이 하나 둘 지쳐서 쓰러지는 상황. 우리는 일단 근처 바위나 넓적한 돌덩이 위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점심시간이 되었으니 점심도 먹는 게 좋겠지. 그래서 오늘 미르나 아가씨가 아침에 싸주었던 도시락을 허리춤의 배낭에서 꺼내려던 순간이었다.
“아앗…!?”
어떤 님프인지 임프인지 모를 녀석이 기묘한 소리를 냈다.
“아앗-!”
“아아앗-!?”
동시에 여기저기서 놀라는 소리가 터진다. 그리고 그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니? 미르나 아가씨가 싸준 내 도시락이….”
…없다!
아침에 내 배낭에 분명 잘 집어 넣어둔 것까지 몇 번이고 확인했던 도시락이!
혹시나 싶어서 가방의 모든 주머니를 다 열어봤지만 없다!
“히에엑…!”
이 몹시도 님프혐오적인 상황에 나는 입에서 파괴광선이 뿜어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문제는 나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임프와 님프들도 자신이 싸웠던 도시락이 없어진 걸 알고 여기저기서 바들바들 떨기 시작하는 상황.
“이 모르모르의 샌드위치를 누가 도시락 통째로 가져간 것이야…!”
“이 몸 타르타르의 것도 아주 사라진 것이다…!”
“저 펀치노이의 별사탕도 모두 사라지고 만 것입니닷…! 이 몹시도 님프혐오적인 식량찬탈 행위에 대해 저 펀치노이는 분노를 금치 못하는 것입니닷…!”
“가르르르, 가르르르르…!”
“아앗-! 가르가르도 아주 화난 것이다…! 가르가르가 이렇게 끔찍한 욕설을 내뱉는 것은 나 타르타르도 처음 보는 것이다…!”
임프들이 여기저기서 아우성치는 소리에 동굴 안이 왕왕 울려서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럴 만도 했다. 맛있게 먹으려고 했던 점심이 없어진 것이니까!
소풍과 나들이의 꽃은 누가 뭐라 해도 챙겨온 점심을 먹는 시간. 각자 반찬도 하나씩 교환하고 과일도 나눠먹으면서 즐거운 이야기꽃을 피우는 시간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 권리를 빼앗긴 것이니 화를 내는 것이 당연했다!
━히오옹…!
그때 바엘이 내 마음 속에서 바스락거리는 게 느껴졌다. 그래, 진정해보자. 단순히 화를 낸다고 일은 해결되지 않아.
“으음.”
동시다발적인 도시락 실종이라니. 이 기묘한 상황에 대해 당장 추측해 내릴 수 있는 답은 하나다. 범인인 확률이 높은 것은 수상쩍은 외부인.
내가 그런 결론을 내릴 때 펀치노이가 주먹을 높게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까만 머리 님프가 우리 먹을 것을 훔쳐간 게 분명한 것입니닷…! 아주 못된 도둑 새끼입니닷…! 얼른 쫓아가서 마구 때려주는 것입니닷…!”
고오오오-.
일행들의 분노가 동굴을 울린다.
* * *
까만 머리 님프를 찾기 위해 열심히 걸었지만 역시 동굴은 미궁 같았다. 마물이나 산적만 튀어나왔으면 던전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으리라.
덕분에 한 시간이나 길을 잃게 된 나는 까만 머리 님프를 찾기보다 일단 이 동굴부터 빠져나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쉽진 않다.
한참 골치를 썩던 내 눈에.
동굴 바닥에 떨어진 무언가가 반짝인다.
그것은 한 뭉치의 뭉실뭉실한….
“털…?”
그것은 솜털이었다. 하얀 솜털. 크기가 제법 크다. 토끼털이나 그런 건 줄 알았는데. 이 질감과 부드러움은 오리털이나 거위의 그것과 비슷해 보인다.
아니, 오리나 거위의 것이라기엔 너무 크고 양이 많은데 말이야.
살랑, 살랑.
그때 손에 쥔 솜털들이 흔들렸다.
“……!”
나는 거기서 무언가를 깨달았다.
슥.
곧바로 검지에 침을 묻힌 후 허공에 대고 펴본다.
─님프비기 길 찾기!
살랑, 살랑.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이 내 검지를 간질인다. 바람이 불어온다는 것은 어딘가에 외부로 통하는 통로가 있다는 것이나 마찬가지!
“모두 이쪽으로 갑시다!”
나는 분노한 님프와 임프 무리를 이끌고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무작정 갔다.
그리고 마침내 밝게 빛이 뿜어지고 있는 입구 혹은 출구 비슷한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곳으로 빠져나오자, 생각보다 눈부신 햇살이 내 눈에 내리쬐어 잔뜩 인상을 찌푸리게 됐다.
“윽.”
강렬한 햇살이었다. 감은 눈꺼풀을 뚫고 들어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하지만 점점 빛에 익숙해졌을 때 나는 입을 크게 벌리고 감탄하게 됐다.
“와.”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언덕의 아래로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마을이었다. 햇살 아래 작은 강이 통과하고 있는 마을.
집집마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걸 보니 꽤 정겹다. 다만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집들이 번쩍번쩍했다는 것이다.
에메랄드빛으로 빛나는 지붕들이라니.
옥? 비취? 그 비슷한 무언가의 광석으로 건물을 만든 것 같은데 정확한 건 가까이 가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팔락.
나는 지도를 펼쳐보며 마을로 다가갔다. 이렇게 넓은 마을이 우리가 찾은 고대숲 근처에 있었나? 무엇보다, 지도를 보면 우리가 찾았던 숲 근처에는 본디 강이 없었다.
여긴 어디지.
마치 별세계(別世界) 같다.
“━━──.”
“━─?”
우리들이 마을로 다가서자, 거리를 뛰놀고 있던 아이들이나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로 단박에 쏠린다. 우리가 외부인인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겠지.
그들과 우리의 차이는 간단했다. 그들은 모두 까만 머리에 비단이나 세마포 같은 천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었으니까.
우리들의 기묘한 복장과 머리색이 이곳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너무 눈에 띄었던 모양이다. 혹시 갑자기 병사들이 들이닥쳐서 우리를 포위하거나 하진 않겠지?
내가 잔뜩 긴장한 것과 다르게 임프나 님프들은 몹시도 흥분한 듯했다.
“까만 머리 님프들이 바글바글한 것입니닷…! 어쩌면 이들 중 누군가가, 강한 무공 비급을 지니고 있을 게 분명한 것입니닷…!”
“이 타르타르의 도시락을 훔쳐간 못된 님프도 분명 여기에 있을 게 확실한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허둥지둥할 때였다. 우리 주변에 삼삼오오 몰려들었던 사람들 사이로 누군가가 나타난다.
그녀는 까맣고 하얀 비단옷을 입은 사람으로, 짧게 자른 단발머리가 붉은 여자였다. 팔다리가 몹시도 늘씬하고 눈코입의 선도 몹시 단아해서 상당한 미인이다.
그녀가 말했다.
“동굴을 통해 외지인이 오는 건 오랜만이로군요. 황제가 보낸 칙사들인가요?”
말이 통하는 건가? 이 괴상한 언어들이 들려오고 있던 곳에서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꽤 고무적인 일이다.
우리 일행의 리더인 나 역시 앞으로 나섰다.
“저희는 황제가 아니라 여왕의 국민들인데요.”
“여왕?”
“앙그마르의 여왕이요.”
“앙그마르?”
앙그마르와 여왕을 모른다는 것처럼 고개를 갸웃거리는 여자.
“황제의 칙사가 아니라면 아무래도 좋아요. 일단 마을에 머물 곳을 마련해 드릴 테니 쉬도록 하시죠. 당신들이 살던 곳으로 돌아가는 길은 내일쯤에 열릴 테니까.”
“잠깐, 돌아가는 길이 내일 열린다구요?”
나는 눈앞이 핑핑 도는 것 같았다. 오늘 안에 돌아간다고 엘가와 이야기 해두었는데 말이다.
오늘도 연락 없이 외박했다간 영애들에게 쥐어뜯길 거다. 특히 목요일은 나르미의 차례였는데. 이래서야 나르미는 오늘 독수공방을 해야한다.
안 돼. 나르미가 화내면 정말 무섭단 말이야.
“오늘 안에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까?”
“없어요.”
여자는 단호했다.
“지금 문을 열면 버섯을 노리는 병사들이 결계를 뚫고 들이닥치겠죠. 그럼 저희가 겨우 만든 평화는 물거품이 되는 거에요.”
뭐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단어 하나는 귀에 확 들어온다.
“버섯요?”
내 물음에 여자는 손을 들어 근처의 모판 같은 것들을 가리켰다. 이제 보니 주변 여기저기 널려 있는 상자 안에는 정말 다양하고 알록달록한 버섯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에 가장 신나하는 건 마르마르다.
“버섯 진짜 많다! 구워 먹거나 스튜해서 먹으면 맛있을 것 같은데!”
마르마르의 이야기에 구우우-울리는 내 배. 밥 먹을 시간이 지났음에도 도시락을 잃어버려서 굶었기 때문에 먹는 얘기를 하니까 배가 고프다.
나는 군침을 삼키며 여자에게 물었다.
“혹시, 님프들이 키 크는 버섯도 있습니까?”
“…키 크는 버섯이라면, 고대의 맥스 버섯을 말하는 건가요?”
그것을 끝으로 여자는 입을 다물었다.
주변 사람들이 곧 우리들이 이해할 수 없는 단어로 술렁이기 시작한다.
“━─고대의 맥스─.”
“─고다이 맥스━.”
그들의 표정은 무언가 겁에 질린 것처럼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곧 후-하고 한숨을 내쉬는 여자.
그녀가 말했다.
“있어요. 하지만, 구할 수 없을 거에요. 맥스 버섯이 자라는 모판은 이 작은 요정의 강 하류 쪽에 있는데. 그곳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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