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455)
EP.456)언제나 벌꿀 빛깔 # 5
외전 – 일상은 언제나 벌꿀 빛깔 # 5
마을의 이름은 머시럽 마을이라고 했다.
고대 요정 제국의 횡포를 못이긴 님프들이 산과 숲으로 도망쳐서 만든 마을이라고. 그래서 외부인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 결계가 잔뜩 쳐져 있었다나?
“손님이 오는 건 오랜만이라, 입에 맞을지 모르겠네요.”
결계로 인해 외부 세상과 단절되어 은둔된 마을이 되었다는 모양이다.
요정 제국이 몰락하고 그 위에 앙그마르 왕국이 세워지고, 또 그 왕조가 타란테라 왕조로 변하는 것도 모를 만큼.
은둔자들의 마을은 장벽 너머의 팔렌 마을을 겪어봤기 때문에 이런 폐쇄적 마을이 있다는 것에서는 그리 놀라울 것이 없었다.
만약 한 가지 놀라운 점을 굳이 꼽으라면 이 마을이 대략 천 여 년 정도를 어떻게 평화롭게 유지해오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것 정도?
이 마을의 촌장이라고 불리는 길고 늘씬한 여자, 루미 여사가 말했다.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금하는 결계지만. 요즘 들어 결계 상태가 이상하네요. 한 일 년 전부터 자꾸만 외부인들이 숲에서 동굴로 들어오고….”
일 년 전이면 내가 광염의 신과 한참 열심히 드잡이질을 하고 있을 때와 비슷하겠구나. 그때 세상에 퍼진 크나큰 파란이 세상에 영향을 끼친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이겠지.
촌장의 집에서 버섯 수프를 후릅후릅 마시고 있던 마르마르가 말했다.
“신기한 마을이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다니…!”
마르마르는 이런 신비스러운 마을을 마치 해적들이 숨겨둔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좋아했다. 다른 일행들도 마찬가지. 이 세상에는 아직 이렇게나 궁금한 게 많고 재미난 것들이 많았다.
타르타르가 묻는다.
“머시럽은 무슨 뜻인 것인지 묻고 싶은 것이다…! 분명 고대인들의 비밀스럽고 이교도적인 주문이 합쳐진 단어인 것이 분명한 것이다…!”
“아, 그것은.”
촌장 루미 여사가 말하기로, 이 마을에는 버섯과 물엿이 잔뜩 나오기 때문에 머쉬룸과 시럽의 이름을 합쳐 머시럽이라고 한다.
버섯은 이미 도로 여기저기에 심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쉽게 납득했지만. 이 마을의 특산품이 물엿이라는 꽤 생소한 이야기다.
루미 여사가 설명을 덧붙인다.
“당신들은 집집마다 기둥이나 지붕이 반짝반짝 비취색으로 빛나는 걸 보셨나요?”
그녀의 물음에 내 머리에는 햇살이 비춰져 아름답게 빛나고 있던 마을의 집들이 떠올랐다. 무척 예쁘고 멋진 광경이었지. 동화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그 모습을 떠올릴 때 촌장이 말을 덧붙였다.
“물엿으로 만든 건물들이거든요. 그냥 물엿은 아니고, 특수한 방법으로 가공하고 굳힌 물엿이라 그 가치는 보석과 다를 바가 없죠.”
그 말에 마르마르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진다.
“물엿으로 만든 집이라니! 멋지다! 이 기둥이 전부 설탕이라는 거잖아! 사탕으로 만든 집이네!”
마르마르는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에 보이는 대들보를 혓바닥으로 슥슥 핥는다. 내가 미처 말릴 순간도 없었다.
“달다!”
그에 다른 임프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너도나도 기둥이나 벽을 핥기 시작한다.
“가르르르, 가르르르!”
“이 주홍빛 완장 타르타르의 고급스러운 입맛에도 딱 맞는 맛인 것이다…! 이쪽 기둥은 은근히 사과맛도 나는 것이다…!”
“고대의 사탕을 핥았더니 저 펀치노이의 몸에 내공이 증가하는 것 같은 것입니닷…!”
참새가 방앗간을 피해가지 못하고 꿀벌이 꿀물을 참지 못하는 것처럼. 임프와 님프들은 이 사탕집 핥기를 도무지 멈출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보며 테이블에 앉아있던 촌장이나 까만 머리 님프들이 푸흐흐 웃는다. 자신들의 집을 핥아먹고 있는데 위기감은 보이질 않았다.
나 혼자 무안하게 식탁에 앉아있을 뿐. 멋쩍어진 기분으로 뒤통수를 긁으며 말한다.
“저, 죄송합니다. 일행들이 단 것을 좋아해서요.”
“알아요. 저희 마을의 주민도 대부분이 님프들이니까요.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니까 옛날 생각이 나고 좋네요. 저희도 집을 막 만들었을 때는, 하루 종일 핥기만 했죠.”
다들 재잘재잘 떠들며 웃는다. 이 머시럽 마을이 평화롭고 행복한 곳이라는 건 나 역시 잘 알 수 있었다.
하룻밤 묵고 가게 되는 것은 정말 예상치도 못했고 계획에도 없는 일이었으나 재미있는 곳이라는 건 확실했다.
엘가나 아이라, 미르나르미 쌍둥이를 데려오면 다들 왕국에 이런 곳이 존재했다니-! 라며 놀랄 게 분명할 거다. 특히 스텔라는 입을 크게 벌리고 “논문감이야!”라고 시끄럽게 굴겠지.
평화롭고 즐거운 마을.
그럼에도.
내게는 약간 신경 쓰이는 점이 있었다. 키 크는 버섯에 대해 언급했을 때 촌장 루미 여사는 강의 하류를 이야기하는 듯하더니 입을 다물고 설명하기를 그만두었다.
다른 까만 머리 님프들도 겁에 질린 것처럼 오들오들 떨었지.
지금까지 추리와 추측을 잔뜩 해온 내 감은 이 강의 하류에 무언가 마을 주민들을 겁에 질리게 만드는 ‘무서운 것’이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눈치 챌 수 있었다.
혼자 생각에 잠기지 말고 물어보자. 다들 사탕집에 빠져서 본래의 목적인 ‘키 크는 버섯’을 잊어버린 듯하지만. 누군가는 설탕의 유혹에 지지 않고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하는 법.
으흠-.
헛기침을 한 후 입을 연다.
“저기, 아까 전에 그 고대의 맥스 버섯이라는 것에 대해서….”
“━━─.”
내가 말을 하려고 할 때 누군가가 촌장집의 식탁이 차려진 방 안으로 넓은 쟁반을 들고 나타났다. 그 하늘하늘한 비단옷과 까만 머리칼을 보며 무언가 떠오를 것 같다.
촌장이 쟁반을 받아들며 말했다.
“고맙구나, 시프노이. 다들, 사탕 핥기도 좋지만 차도 한잔씩 마셔보도록 해요. 과실을 넣은 차라서 달고 맛있을 거에요.”
촌장의 말에 열심히 사탕벽을 핥던 마르마르와 임프들이 하나 둘 고개를 벽에서 떼어낸다. 곧 그들의 눈은 왕방울만 하게 커졌다.
“아앗-! 너는!”
“못된 도시락 도둑이 여기 있었던 것입니닷…! 이 펀치노이의 꿀 주먹은 도둑을 응징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닷…! 이 펀치노이의 꿀 주먹이, 조금 울어도 괜찮겠습니까…!?”
반응이 격렬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까 전 우리의 도시락을 훔쳐갔던 것으로 추측되는 님프가 촌장의 집에서 나타난 것이었으니까!
나도 화났다!
미르나가 열심히 싸준 도시락!
“제 시종 시프노이가 무슨 잘못이라도…?”
촌장 루미 여사는 우리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은 걸 눈치 챈 모양이었다. 루미 여사의 뒤로 숨어 오들오들 떠는 시프노이. 나는 그녀들을 향해 자초지종을 잘 설명했다.
조잘조잘.
이야기를 들은 루미 여사가 “흐응, 그렇군요.”라고 고개를 끄덕이던 때였다.
슥.
손을 들어 올린 촌장의 손이 매섭게 날아 시프노이의 뺨을 때린다.
짝-!
“시프노이, 동굴 쪽으로는 가지도 말라고 말했잖니? 아니, 아니다. 너는 일단 방에 들어가 있어. 크게 혼날 줄 알아.”
“━─.”
“조용히 해! 얼른 들어가!”
“아니, 으흠….”
그 갑작스러운 상황에 흥분했던 우리들 모두 크게 당황했다. 아직 범인인지 아닌지 확실히 밝혀지지도 않은 때에…. 다만 촌장 루미 여사는 단호하다.
“시프노이가 한 짓이 맞아요.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 동굴을 넘어 마을로 오는 외부 손님들이 벌써 여럿 있었거든요. 어떻게 사과를 드려야 할지….”
갑자기 분위기 뭐야. 우리가 괜히 잘못한 기분이잖아. 키 크는 버섯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또 이렇게 흐지부지 되는 건가?
* * *
“멸망을 부르는 님프 파괴광선인 것이다…!”
“아앗, 타르타르의 푸른 눈의 요정용이 마르마르의 붉은 눈의 임프용을 격파한 것입니닷…! 이 펀치노이는 승부의 행방을 이제 예측할 수도 없는 것입니닷…!”
“모르모르는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카드게임이 있는 줄 처음 안 것이야…! 숨바꼭질만큼 재미있는 것이야…!”
저녁을 먹은 이후 늦은 밤. 임프들은 마을 사람들이 자신들을 위해 마련해준 방에서 카드 게임을 하거나 이런저런 놀이를 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나도 그들 틈에 끼어서 재미있게 놀았으나. 계속 단내 나는 설탕 집에 있으니 바깥의 신선한 공기를 쐬고 싶어진다.
기이익.
문을 열고나오니 무언가 묘한 소리가 들렸다. 걸음을 천천히 옮기자 부뚜막 비슷한 곳에 쭈그려 앉아 울고 있는 님프가 보인다.
시프노이라고 했던가.
“━━──.”
촌장에게 잔뜩 꿀밤을 맞은 건지 머리를 부여잡고 울고 있는 모습을 보니 조금 불쌍하다. 그러게 왜 도시락은 훔치고 그래.
“도시락, 왜 훔쳤어요?”
나는 종이를 건네며 물었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글자는 읽을 수 있었으니까. 내 말에 시프노이는 펜으로 사각사각 종이에 글자를 적었다.
「바깥세상.」
“바깥세상?”
바깥세상 음식을 먹어보고 싶었던 건가? 내가 그리 묻자 님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뒤 제법 심각한 얼굴로 종이에 글자를 적는다.
「바깥세상 사람들. 불러온 것이외닷…! 머시럽 마을 사람들. 모두 도움이 필요한 것이로소이닷…!」
“…….”
무슨 말투가 이래. 옛날 할아버지들 같네.
내 눈의 번역기능이 잘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여러 의문을 애써 무시한 채 다시금 묻는다.
마을 사람들을 도와주길 바라고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외부인들의 물건을 훔쳤다? 외부인들이 자신을 쫓아 마을로 들어올 것이라는 바람으로?
그에 시프노이는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머시럽 마을. 먹을 것이 점점 부족해지는 것이올시닷…! 강의 하류에, 못된 괴물이 도사리고 있어서 요즘 다들 힘든 것이외닷…!」
강의 하류에 도사린 못된 괴물…!
그 말에 나는 무언가 번뜩이는 것 같았다.
“강의 하류라면 키 크는 버섯이 자라고 있다는?”
사각사각.
「고대의 맥스 버섯.」
“그러니까, 거기에 괴물이 있다는 겁니까? 괴물이 마을 사람들을 못살게 굴고 있고?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는 말이죠?”
끄덕, 끄덕.
이제 조금 알 것 같았다. 이 마을에서는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가 있었구나.
외부인들인 우리에게 구태여 말하지 않은 까닭은 일을 더 키우고 싶지 않기 때문인지 아니면 외부인인 우리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선지 모르겠다만.
키 크는 버섯을 구하기 위해 왔던 여정.
나는 흔쾌히 마을 사람들을 도와주기로 마음먹었다.
하류의 괴물인지 뭔지를 쓰러트리면 마을 사람들도 더 이상 괴물에게 시달리지 않아도 될 거고. 하류에서 자라나고 있다는 맥스 버섯을 구해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나는 호기롭게 말했다. 그러나 시프노이는 고개를 젓는다.
「괴물 엄청 강한 것이외닷…! 님프들 여럿이 마구 당한 것이올시닷…! 작은 님프는 이길 수 없는 것이외닷…!」
작은 님프는 이길 수 없는 상대라. 그만큼 무시무시한 괴물이 있다는 소리인가. 그래도 나는 제법 강했다.
마법이 저물어가는 시대. 비록 많은 힘을 문의 너머에 두고 혜성처럼 이 땅에 떨어지고 말았지만 아직 내게는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또 펀치노이가 있으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그럼, 이렇게 하는 겁니다.”
숙덕숙덕.
나는 시프노이에게 내 계획을 잘 알렸다.
그리하여 다음날. 마을 사람들이 외부인인 우리를 배웅하기 위해 광장에 잔뜩 몰려들었다. 이곳에 머문 것은 하룻밤 밖에 되지 않았지만 다들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촌장이 말했다.
“이건 영지버섯, 이건 갓버섯. 이건 주홍버섯 이건, 특별 물엿. 설탕. 사탕수수. 아무튼. 많이 챙겨드렸어요. 대신, 저희 마을에 대해서는 바깥사람들에게 비밀로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동굴에는 결계가 있어서 길을 잃기 쉬울 테니 안내를 붙여드리죠. 어디보자….”
마을 촌장 루미 여사가 찬찬한 눈으로 주민들을 살피고 있을 때였다. 어딘가 쭈뼛쭈뼛하는 느낌으로 시프노이가 튀어나온다.
“━━─.”
“사죄의 의미로, 시프노이 네가 마을 바깥으로 안내 해드리고 싶다고?”
끄덕 끄덕.
“흐응….”
어딘가 탐탁지 않아하는 촌장 루미 여사의 모습에 내가 재빨리 나섰다.
“괜찮네요. 그럼 시프노이의 안내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추억만 남기고 가고 싶으니, 화해하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그래주시면 저희야 좋죠.”
촌장의 허락에 우리는 시프노이의 안내를 받아 마을 바깥으로 나섰다. 한참 걷고 있을 때 마르마르가 의아함을 느낀 것처럼 묻는다.
“동지, 여기는 동굴로 가는 길이 아닌 것 같은데? 우리 지금 반대로 걷고 있는 거 아냐?”
“이 타르타르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닷…!”
임프들의 술렁임에 대해 내가 말했다.
“우리는 강 하류로 갈 거야. 거기서 괴물을 쓰러트리고 키 크는 버섯을 구해서 돌아가는 거지. 다들 괜찮지?”
“키 크는 버섯! 그래! 우리 버섯 찾으러 왔었지!”
마르마르가 두 팔을 와락 들고 소리쳤다. 곧 다른 임프와 님프들도 우리들이 온 목적을 드디어 깨달을 수 있게 된 모양이었다.
“얼른 가자!”
의욕을 앞세운 일행들과 함께 시프노이의 뒤를 따라 강의 하류로 향했다. 하류로 향할수록 점점 더 알록달록한 버섯들이 강가에 잔뜩 나 있어서 기묘했다.
냄새도 점점 알싸하고 탁해진다.
“콜록, 콜록.”
몇몇은 기침을 하며 손수건으로 입을 가렸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포자들이 잔뜩 있어서 숨쉬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이겠지. 그렇게 도착한 하류는 발 디딜 틈 없는 버섯밭이었다.
━크르릉…!
그때 내 안의 종이거미 바엘이 날카롭게 신경을 기울이는 것이 느껴진다. 바엘이 경계할 정도면 범상치 않은 무언가가 이 강의 하류에 존재하고 있다는 말일 터.
시프노이가 나를 바라본다.
마치 준비가 되어있냐고 묻는 듯한 모습에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무언가 중얼중얼 읊는 시프노이.
“━━──.”
무언가 주문이 한참 이어질 때였다.
보글보글.
강물에 거대한 기포 같은 것이 떠올라 부글거리는가 싶더니, 마침내 풍덩-거대한 물보라와 함께 생각지도 못할 정도로 커다란 무언가가 강의 바깥으로 튀어나온다.
그것은 괴물이었다.
건물 몇 채의 크기는 되어 보일 법 할 정도로 거대한 괴물. 이 거대한 크기와 버금가는 것은 일찍이 드레이코 가문의 본당에서 보았던 용의 유골 정도뿐이다.
디링-.
그때 오랜만에 나의 눈앞으로 글자들이 떠올랐다.
『태고의 괴수가 당신의 앞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황제 – 머시칸』
━쥬이이이이잉.
하늘을 가릴 정도로 거대한 괴수가 울부짖는다.
그 모습을 보며 마르마르가 말했다.
“진짜 엄청나게 큰 버섯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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