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466)
EP.467)공주 레오노이 # 3
외전 – 밀림의 공주 레오노이 # 3
내가 어렸을 때는 대단해 보이는 선생님들이 잔뜩 계셨다. 보육원 선생님, 초등학교 선생님, 중고등학교 선생님, 대학교 교수님들 등등.
궁금한 게 있으면 잔뜩 물어보곤 했었지. 그들은 내가 궁금해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척척 답해주었다.
하지만 나이를 어느 정도 먹고 나니 나보다 나이 많은 연장자들 중에서, 내가 가르침을 청할 만한 멘토라고 부를 사람이 딱히 없었던 것 같다.
세상은 온통 물음표 투성이.
궁금한 게 있어도 누군가 물어볼 만한 사람이 없다.
누군가에게 물어보면 쉽게 해결 될 텐데-생각되는 일들도 전부 다 나 혼자서 해야만 했지. 그런 의미에서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연장자가 주변에 있다는 것은 꽤 축복받은 일이었다.
그들이 나이를 먹어가며 느낀 지혜와 연륜 등에 조언을 구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라인하르트는 내게 충분히 훌륭한 멘토가 되었다.
먼저 딸을 가진 아버지가 된 남자로서. 또 멋지게 늙은 남자로서. 언젠가 나도 나이가 들면 이런 남자로 늙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긴 저녁 식탁에 앉은 라인하르트가 고기를 썰며 말했다.
“레오노이가 빛을 뿜어 냈다라.”
그는 내 설명에 무언가 아는 바가 있다는 것처럼 눈을 빛냈다. 하지만 그 눈빛은 이내 서서히 사그라지더니 평정을 되찾는다.
“더 자세히 설명해 보게.”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제가 레오노이와 놀아주다가 분유를 먹여주었는데요. 한참 다 먹은 후에 갑자기 반딧불처럼─.”
나는 아까 전에 있었던 일들을 다 설명해주었다. 이야기를 전부 들은 라인하르트는 “흐음.”하고 약간 무거운 침음을 내쉬더니 은근한 목소리로 내게 묻는다.
“마법적인 작용은 아니었나? 어린 요정족속 특유의 진화적 현상이라거나 말이야. 님프들은 진화를 한다지. 진화를 할 때 빛을 낸다던데?”
님프들은 진화를 한다. 나도 그 과정을 경험해봤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아는 바가 있었다.
하지만 레오노이의 몸에서 뿜어지던 빛은 마법적인 상황이나 님프적 진화의 빛과는 또 다른 무언가였다.
도리도리.
내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자 라인하르트는 스륵 눈을 감았다.
한참 그가 고민에 잠겨 있는 듯한 표정을 지을 때 식탁 주변을 뚜방뚜방 걸어 다니고 있던 레오노이가 외할아버지인 라인하르트의 무릎을 붙잡아 옷깃을 잡아당긴다.
라인하르트는 그런 레오노이를 붙잡아 안아 들은 후에 결론을 내린 것처럼 말했다.
“사실 어린 엘가를 키울 때도 그런 적이 있었지. 하지만 어떤 일인지 나도 알아내진 못했어. 리오네스 피에 흐르는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네. 유전된 것이겠지.”
레오노이는 엄마를 많이 닮았다. 그래서 그런가 엘가가 겪었던 일들도 비슷하게 유전되어 닮은 모양이다. 엘가도 어린 시절에 기묘한 빛을 뿜어냈었나?
“그것에 대해서는 내 아내가 적은 기록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네. 식사가 끝난 후에 한 번 찾아보도록 하지.”
그렇게 나는 식사를 대강 끝낸 후 라인하르트의 안내를 받아 어느 방문 앞에 섰다. 그 문을 열자 오랫동안 갇혀 있었던 듯한 묵은 공기가 화악 얼굴에 와닿는다.
“여기는….”
“내 아내의 방이었네.”
근처에 놓인 촛불을 켜는 라인하르트. 그의 표정에는 어딘가 그리움이 묻어나왔다. 그가 곧 책이 잔뜩 꽂혀 있는 책장들을 손으로 훑는다.
“이건가.”
그러다가 책 한 권을 뽑아내게 건네주었다.
“이게 육아일지니 한 번 읽어보게. 아마 자네가 원하는 답이 있을 걸세.”
그 말을 끝으로 라인하르트는 옆에 보이는 소파에 앉았다. 어딘가 몹시 지치고 피곤해 보이는 듯하지만, 동시에 있어야 할 자리에 놓인 것처럼 익숙해 보이기도 했다.
그가 작게 말했다.
“혹시 다음 할로윈 때는 만날 수 있을지.”
그러다가 곧 스스로 “아니, 실언이었네.”라고 말을 줄였다. 나는 그리움과 추억에 잠겨있는 듯한 남자를 방에 두고 천천히 복도로 나섰다.
* * *
「15개월 21일. 엘가는 잘 자라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크고. 젖을 땠어도 가리는 것 없이 잘 먹는다. 어제는 알려주지 않았음에도 혼자 물구나무를 섰다.」
팔락.
「16개월 13일. 엘가는 저택의 넓은 복도를 곧잘 뛰어다닌다. 아장아장 기어 다니는 것이 얼마 전 같은데. 이러다가 금방 자라나 시집을 가는 것 아니냐 말했더니 라인하르트가 웃었다.」
팔락.
「17개월 3일. 엘가가 정원에서 참새를 잡아왔다. 어떻게 잡았는지 모르겠다. 혹시 그 장면을 볼 수 있을까 싶어서 관찰해봤지만. 내가 보고 있으면 딴 짓을 한다.」
“재밌네.”
나는 리오네스 가문의 조용하고 드넓은 가문 도서관에 앉아서 페이지를 넘겼다.
매 페이지마다 정성들여 쓴 것이 표 나는 글자들이 빽빽이 적혀 있어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라인하르트의 아내, 그러니까 엘가의 어머니는 매일매일 이런 일기를 썼다.
만나본 적은 없지만 어쩐지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았다.
정이 많고 제법 유머감각이 넘치는 사람이었구나. 그녀가 살아있었을 당시 이 별장 저택은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고 했는데. 어째서 그런 건지 조금 이해가 된다.
그렇게 한참 페이지를 넘기던 나는 마침내 내가 궁금해 하던 항목을 찾을 수 있었다.
「엘가의 몸이 빛나기 시작했다. 모두에게 보여주었지만 증상에 대한 진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들이 없다. 걱정된다. 무언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팔락.
「엘가가 빛을 뿜어내는 증상에 대해 조사하던 도중, 나는 리오네스 가문의 오랜 문헌에서 그 비슷한 이야기를 찾을 수 있었다.」
팔락.
「라인하르트는 반대했지만. 나는 엘가를 데리고 ─를 찾았다. 문헌에 나오는 자료들을 조사하고 검토해본 결과 위치를 대강 추측할 수 있었다.」
“글자가 소실 됐다?”
글을 읽고 있던 도중 의도적으로 지워진 건지 아니면 처음부터 적혀 있지 않은 건지 모를 부분이 있었다. 누구를 찾아갔다는 건 알겠는데. 그게 누군지 모르겠다.
“바엘, 혹시 이 부분 복원해 줄 수 있어?”
━히오옹…!
바엘은 책 위에 올라서서 앞다리를 열심히 움직였다.
━히오옹….
“복원이 안 돼? 이상하네.”
바엘이 복원하지 못하는 글자들이 있을 줄이야. 무언가 강력한 주술이 얽혀 있다는 것은 알겠다. 팔락. 뒷장을 넘겨보자 뒷장은 전부 백지들이었다.
“여기가 끝이네. 그래도 충분히 힌트는 얻었어.”
어린 시절의 엘가가 지금의 레오노이처럼 몸이 번쩍번쩍 했었다는 점. 또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무언가를 찾았다는 점까지 알면 다 알아낸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라인하르트에게서 빌린 육아일기를 지니고는 레오노이와 함께 바깥으로 나섰다.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는 누구와 이야기를 나눠야 할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교수가 좋겠지.
하지만 스텔라는 모두와 함께 온천 여행을 갔으니까 내가 잘 아는 교수 중 가장 여유로운 사람이라 함은….
“이 늦은 시간에 저 발란 드 사브르나크를 친히 찾아주시다니. 무척 황송한 영광입니다. 오실 줄은 몰라서 정리가 하나도 안 됐는데….”
블랙 앙그마르 컴퍼니의 높은 건물 어딘가. 상층에 위치한 영업과장 발란은 나를 자신의 사무실 안으로 들이며 근처에 보이는 잡동사니나 먼지 등을 발로 슥슥 문질렀다.
요새 너무 퍼져있는 것 아닌가 싶지만, 발란이 아무것도 안 하는 지금이야 말로 세상이 평화롭다는 뜻이겠지 싶어서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갸르르.”
“레, 레오노이 왕녀님. 오랜만입니다. 제 머, 머리칼을 잡아당기는 습관은 여전하시네요.”
레오노이는 발란을 잘 따랐다. 엄마인 엘가와 가슴 크기가 비슷한 사람이라 그런가. 아니면 뭐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말했다.
“발란 교수, 혹시 리오네스 가문의 고문헌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까? 각지를 돌아다니며 주술과 방언들을 연구했었다고 했었죠?”
“리오네스 가문의? 이, 있기는 있습니다만.”
역시 발란을 찾아오길 잘했다. 나는 발란에게 레오노이의 번쩍번쩍 현상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빛이라….”
“직접 보여주는 게 빠르겠죠.”
나는 챙겨왔던 분유를 레오노이에게 먹였다. 그러자 레오노이의 몸이 다시금 번쩍번쩍 빛을 뿜어낸다.
그 모습을 보며 발란이 감탄했다.
“마법과는 또 다른 기묘한 빛이로군요. 과연, 리오네스의 피를 타고 흐르는 무언가가 이런 빛을 보이는 것이겠죠. 잠시─.”
뒤적뒤적.
발란 교수는 자신의 난잡한 사무실을 마구 뒤적였다.
그러다 매우 오랫동안 꺼내지 않았던 듯한 책을 한 권 꺼내 펼친다. 그것을 팔락팔락 넘기던 그녀는 마침내 어느 부분에 이르러 손을 멈추었다.
“여기. 여기 있군요. 사자왕 보르자의 이야기. 버린 줄 알았는데. 아직 있었군요. 정리정돈 하지 않는 제 습관이 도움이 된 거죠.”
“사자왕 보르자라면, 서부도시 보르자를 세운 사람 말이죠?”
“맞습니다. 리, 리오네스 가문의 시초자이기도 하죠. 여기 보시면, 사자왕 보르자는, 누구보다 빛나는 이마를 가진 자라고 전승되고 있습니다. 이것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닐지.”
“빛나는 이마라….”
“그의 이마는, 그의 아버지였던 태양의 사자에게서 무, 물려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태양의 사자?”
“태양처럼 빛나는 갈기를 지닌 사자였다고 그러더군요. 그를 본 사람들에게 솔라-레오라는 이름으로 부, 불렸다고 합니다.”
“솔라레오라….”
“드레이코 가문의 시초가 용의 후손임을 주장하듯. 리오네스 가문의 시초는 자신들의 위대한 사자의 후손임을 증명하는. 그런 전승인 거죠.”
그렇구만. 쑥과 마늘을 먹고 인간이 된 곰의 민족도 있다. 사자의 후예 정도야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 발란은 “물론 그냥 지어낸 이야기일 뿐일 확률이 높습니다.”라고 말했다만.
나는 거대한 버섯이나 거대한 학, 오래 산 지네 등을 만났던 바가 있기 때문에 아주 허구의 이야기인 것도 아니리라 생각했다. 태양처럼 빛나는 사자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아.
“만약 그 태양의 사자가 진짜 존재한다면, 있을 만한 곳이 어디일 것 같습니까?”
“그것은…, 아무래도 보르자 근처가 아닐지…. 저 발란이 조사할 때 서부 밀림 인근에서 빛나는 사자를 목격했다는 정보가 있었습니다.”
서부 밀림인가?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출발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너무 다급하게 일을 진행하는 게 아니냐 누군가 물을 수 있겠으나, 내 마음이 그랬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레오노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 어머니나 아버지도 어린 시절의 나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을까?
부모님이 보고 싶어지는 밤이었다.
그리하여 다음 날.
나는 날이 밝자마자 레오노이를 안고 서부로 향하는 길에 올랐다. 길에 올랐다고 해봐야 마법진을 이용해 워프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창할 것도 없다.
일만 잘 풀린다면 오늘 갔다가, 오늘 돌아올 수 있겠지.
레오노이도 모처럼 먼 여행을 떠난다고 생각해 기분이 좋은 건지 내게 안겨서 잘 웃었다.
“히히.”
커다란 사자를 만나러 갈 것이라는 걸 예상하고 있는 걸지도. 리오네스 가문 사람들은 기묘하리만치 사자나 고양잇과의 동물들을 좋아하니까.
“아빠한테서 떨어지면 안 돼. 그럼 워프 한다.”
가능하면 일찍 돌아와야지.
그런 마음으로 나는 서부 중심도시이자 모든 리오네스들의 고향인 보르자를 향해 워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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