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465)
EP.466)공주 레오노이 # 2
외전 – 밀림의 공주 레오노이 # 2
“그럼 잘 다녀오세요.”
나는 마차를 타고 떠나는 영애들을 배웅하기 위해 앙그마르 궁정 앞에 섰다. 근처의 유명한 휴양지로 떠나는 마차들의 행렬은 제법 길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짐을 마차 뒤쪽에 옮긴 엘가가 나를 향해 말했다.
“타르타르 데려가니까, 혹시 무슨 일 있으면 타르타르 쪽으로 연락해. 임프 꼬리로 연락할 수 있다며.”
“나 타르타르는 주황색 완장 임무를 열심히 수행한 기념으로 온천여행이라는 것을 해보는 것이다…! 매우 기대되는 것이다…!”
영애들도 타르타르도 몹시 기분이 좋아 보인다. 쉬러가는 데 기분 나쁠 사람이 있는 게 이상하지. 나는 그녀들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가벼운 느낌으로 손을 붕붕 흔들었다.
“더 한 일들도 잘 해쳐 나왔는데. 아가씨들 없이 혼자 지낸다고 별 일이야 있겠나요. 저랑 레오노이 걱정은 말고 푹 쉬다 오세요.”
내 입으로 말하긴 좀 오만한 것 같지만 나는 업무 등의 처리에 있어서 꽤 일을 잘 하는 편이었다. 삐걱거리는 왕국을 열심히 지탱했을 정도면 말 다했지.
그러나 엘가는 도무지 걱정이 놓이질 않는다는 것처럼 표정을 풀지 못한다.
“너희만 두고 가려니까 영 불안한데.”
그에 아이라가 흐응-코웃음을 쳤다.
“그렇게 걱정되면 엘가, 너는 여기 남지 그래. 그런 어중간한 마음으로는 제대로 쉬지도 못할 거야.”
“누가 어중간하데? 그냥 뭐, 그렇다는 거지. 그래, 난 그럼 진짜 간다. 레오노이, 엄마한테 인사해 줘야지.”
엘가는 내 주변을 아장아장 걸어 다니고 있는 레오노이를 향해 말을 걸었다. 하지만 레오노이는 근처에 팔랑거리는 나비를 쫓는 데에 정신이 없다.
나도 한 마디 했다.
“레오노이, 엄마한테 손 흔들어줘야지.”
“─앙마.”
그러자 엘가가 매우 깜짝 놀랐다.
“레오노이가 지금 나보고 엄마라고 하지 않았어!?”
그에 아이라가 후후-웃는다.
“나는 악마라고 들렸는데.”
와락 인상을 찌푸리는 엘가.
“레오노이가 나보고 악마라 할 리 없잖아. 아무튼, 그럼 이제 간다. 무슨 일 생기면 바로바로 연락 하고.”
기이익, 탁.
엘가는 마차에 올라타 문을 닫았다. 곧 마부들의 채찍소리와 함께 말들이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정돈된 가도를 따라 마차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한참 보고 있다가 어딘가 서늘한 바람에 몸을 바르르 떤 나는 레오노이를 안아들고 궁정 안으로 들어갔다.
궁정 안에는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영애들을 멀리 보냈기 때문인지 약간 텅 빈 듯한 느낌이었다. 동시에 한껏 신경쓸 것이 적어져서 자유로운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면 영애들이 이렇게 나를 두고 궁정을 비운 것은 결혼하고 처음이 아닐까? 아내들이 처갓집에 가서 혼자 남은 남편들은 이런 기분을 느끼나?
모르겠다. 그거랑은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하고.
“갸르르.”
“그래, 그래.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나는 따뜻한 궁정 안으로 들어갔다. 레오노이가 칭얼거리는 것을 보니 어느덧 점심을 먹을 때가 온 모양이다.
나는 엘가가 알려주었던 대로 딸랑이가 가득한 레오노이의 방에 들어가서, 그 선반 위에 놓여 있는 분유가루와 물을 찾았다. 그런데 어디에 있는 지 잘 보이지 않는다.
“선반에 있다고 들었는데. 바엘, 분유랑 물이랑 분유병 좀 찾아 봐.”
나는 손바닥을 펼쳐 그림자 거미 바엘을 불렀다. 오랜만에 바깥 공기를 맡은 바엘은 기분이 좋았는지 앞다리를 좌우로 번갈아 들어 올리며 춤추듯 했다.
━히오옹.
팟.
내 손바닥에서 뛰어오른 바엘이 근처 벽을 기어오르더니 이윽고 선반 하나를 열었다. 그러자 그 안에는 내 눈에도 제법 익숙한 분유의 분말이 담긴 상자가 있다.
“잘했네. 그럼 바엘, 내가 분유 타는 동안 레오노이랑 좀 놀아줘.”
━히오옹…!
바엘은 레오노이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그러자 배가 고파 칭얼거리고 있던 레오노이도 바엘을 뒤쫓아 방 안 이곳저곳을 활발히 걸어다녔다.
이제 남은 것은 내가 분유를 잘 타는 것이다.
“어디 보자, 분유 타는 데 가장 좋은 온도는….”
엘가가 적어준 노트를 펼쳐 확인한다.
미생물을 없애는 데 좋은 70도 이상, 분유 내용물의 단백질 변형이 오질 않는 80도 이하. 즉 70도는 넘되 80도에는 다다르지 않는 선에서 타는 게 좋을까?
분유를 잘 탄 후에는 먹기 좋게 30도 정도로 식혀줘야겠지.
“미세조정.”
스륵.
나는 손에 붙잡힌 물병을 마법으로 직접 끓였다. 보통 엘가나 다른 영애들이 레오노이 식사를 담당했기 때문에 내가 혼자 해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문득 내가 아이 먹일 분유를 타고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신기했다. 내가 아빠가 되었다니. 아빠가 되는 것은 처음이기 때문에 몹시도 낯설고 어색하다.
21세기에 다녔던 학교나 대학에서도 또 아크에서도 아빠가 되는 법은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지. 생각해보면 사람으로서 매우 중요한 일인 것 같은데.
어째서 이런 교육은 의무적으로 알려 주지 않는 건지 모르겠다. 아버지가 된 사람들은 다들 나처럼 어색하고 낯선 감정들을 느꼈을까? 물어볼 사람이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말이야.
“자, 레오노이. 맘마 먹자.”
나는 바엘과 놀고 있는 레오노이를 불렀다. 분유가 들어있는 젖병을 내밀자 레오노이는 익숙한 손길로 젖병을 작은 두 손에 붙잡고는 꿀꺽꿀꺽 삼키는데-.
“브에에에-.”
“아니, 왜 뱉어.”
좀 마시는 듯하더니 전부 바닥에 뱉어버렸다…! 맛이 이상한가? 그럴 리 없다. 나의 분유타기 실력은 왕국 제일이라 자부할 수 있다.
“그럼 대체 왜지?”
아니, 레오노이와 피가 이어진 나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 녀석은 그것을 원하고 있다. 그 황금빛으로 번쩍이며 입 안에 화사한 봄을 선사해주는 그 액체.
꿀을.
그렇다. 꿀이다.
팔락, 팔락.
엘가의 쪽지를 보자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가끔 밥 먹기 싫어서 투정 부릴 때 있는데. 원래는 안 되는 거지만 꿀 한 방울을 분유에 섞어서 먹이면 잘 먹어.」
아니, 이제 갓 돌을 지난 나이부터 꿀을 섭취하려고 한다니? 몹시도 님프적인 일이었지만 동시에 비정상적인 일이었다.
한 살짜리 애가 꿀을 먹어서 될 리 없다. 어려서부터 그 강렬한 액체에 중독되고 만다면 돌이킬 수 없게 되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르르-.”
고오오오-.
그 때, 레오노이가 나를 향해 기묘한 기백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이 녀석, 지금 나보고 자신에게 꿀을 먹이라 강요하는 거냐?”
“…그르르….”
겨우 한 살이 되었음에도 이 정도의 강렬한 의지라니. 내 딸이지만 강력한 공주로 자라날 싹이 벌써부터 보이고 있다.
저 귀여운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누구든 원하는 것을 그 입에다 떠먹여주기 마련이겠지! 실제로 나의 손은 어느덧 선반 위에 놓인 꿀통을 향해 뻗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손은 이내 꽉 쥐어져 바닥으로 향한다.
“하지만, 거절한다, 레오노이. 네 아빠인 나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때 ‘No’라고 말할 수 있는 남자다.”
“갸르르.”
“그보다 레오노이, 같은 무게의 금화와 같은 값어치의 로열 프리미엄 분유를 바닥에 뱉어내다니. 네가 먹는 이것, 전부다 ‘세금’으로 만들어진다는 것. 알고 있는 거니?”
파직, 파지지직.
나와 레오노이 사이에서 묘한 불꽃과 번개가 튀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것은 오직 바엘 뿐이다.
━히오옹….
바엘이 나를 말리려는 건지 내 발목에 자신의 앞다리를 두드려댄다. 하지만 나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레오노이는 객관적으로 봐도 귀엽다. 하지만, 이 녀석은 자기가 귀여운 줄 알아. 그걸 무기로 삼아 사람들을 자기 마음대로 다루려 하겠지.”
압도적인 미모. 그것은 일종의 카리스마다. 아이라를 옆에서 봤던 나는 아름다운 미모가 정치인의 번듯한 말 한 마디보다 얼마나 더 강력한 것인지 잘 알았다.
미모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천부적 재능이다. 외모지상주의적인 사고라 누군가 비판한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그게 팩트니까!
그렇기에 나는 오히려 위험하다 알리는 것이다. 압도적인 미모를 이용한다는 것은 동시에 제왕적인 권력 횡포라고 봐도 된다는 것을.
그렇게 자신의 권력을 마음껏 휘두르며 자라난 이후의 레오노이는 어떻게 될까. 열일곱의 레오노이.
━나는 앙그마르의 제1 왕녀 레오노이인 것이다…!
금발에 푸른 눈을 지닌, 분명 어딜 내놔도 시선을 끌 만큼 예쁜 공주가 되어 있겠지만 성격은 안하무인일 게 분명하다!
━내 생일에는 금을 벌꿀처럼 녹여서 내 모습을 꼭 닮은 황금상을 주조해 앙그마르 전역에 세우는 것이야…!
위와 같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악당영애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엘가의 딸이니까 이건 백 퍼센트다!
하물며 내게는 레오노이 뿐만 아니라 미르노이나 이런저런 공주들이 잔뜩 태어나게 될 터.
그런 공주들을 전부 오냐오냐 기른다면, 그렇게 아기 때부터 무소불위의 힘을 기른 공주들이 언젠가 자신들만의 세력을 키우거나 유산분배에 눈을 뜨게 된다면?
“시작되고 마는 거다. 앙그마르 왕좌의 게임이. 공주들의 전쟁이…! 나는 그걸 막아야만 해…!”
━히오옹….
바엘도 내가 예견하고 있는 미래가 상상되는 지 앞다리를 움츠리고는 바들바들 떨었다. 공주들의 전쟁이 벌어지면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걸 분명 깨달은 것이리라.
“고로 레오노이, 네게 꿀은 줄 수 없다.”
“…칫.”
“바엘, 레오노이가 방금 혀 차지 않았어?”
“갸르르.”
레오노이는 내 뜻을 굽힐 수 없다는 걸 알아차린 건지 남은 분유를 꿀떡꿀떡 잘 마셨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건강한 모양이다.
“잘 마시네, 레오노이.”
레오노이의 등을 슥슥 쓰다듬어주고 있던 바로 그때였다.
“이으으.”
우우웅, 우우웅-.
레오노이가 무언가를 앓는 소리를 내더니 몸이 마치 반딧불이 빛을 내는 것처럼 웅웅 빛을 뿜어냈다.
“이게 뭐지?”
어린 마법사와 분유의 상관관계에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마법적인 반응인가 싶었다만. 마력이 폭주하는 기미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질 않았다.
혹시 엘가의 쪽지에 이런 상황에 대해 적혀 있는 바가 있나? 펄럭펄럭 페이지를 넘겨봤지만 몸이 빛나는 경우에 대해서는 적혀 있는 게 없었다.
“딸들은 원래 이런 건가?”
스르르.
빛은 금방 사그라졌지만 아무래도 나는 신경 쓰이고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엘가에게 연락해볼까 하다가, 그녀가 마음 편히 놀지 못하고 돌아올까 싶어 멈추게 된다.
“엘가는 편히 쉬게 해주자.”
누군가에게 물어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마침 한 사람이 떠오르긴 한다.
* * *
“저에게도 조카가 있다니. 아직까지 믿겨지지가 않네요! 매형, 제가 레오노이를 안아 봐도 될까요?”
“그럼요.”
엘가의 남동생 리차드는 레오노이를 안아들었다. 리차드도 아직 열 살 근처의 어린 소년이었기 때문에 아이가 아이를 안은 것 같아 우스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꼭 동생을 돌보는 오빠 같아서 보기 좋은 모습이기도 했다. 나도 보육원에 살았을 당시에는 아이들 많이 안아봤었는데.
리차드가 말했다.
“제 누이 에르가네스는 제가 어린 시절, 이렇게 저를 안아주곤 했었죠. 지금도 그때 생각이 나요. 레오노이도 나중에 제가 안아준 것을 기억 할까요?”
“그럴 겁니다.”
리차드는 괄괄한 리오네스 사람답지 않게 차분하고 똘똘한 아이였다. 라인하르트의 뒤를 이어 리오네스 가문의 가주가 되기에 더할 나위 없겠지. 또 좋은 삼촌도 될 것 같다.
내가 물었다.
“그래서 라인하르트 님은 어디 계십니까?”
“아버지라면 사냥을 나가셨으니, 해가 저물기 전에는 돌아오실 거에요.”
모나크 시티에 위치한 라인하르트 별장.
나는 그곳으로 레오노이를 데리고 찾아갔다. 라인하르트에게 손녀 얼굴도 보여줄 겸, 또 딸을 가진 아버지로서 이런저런 조언을 들을 수 있을 테니까.
그리하여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 갈 즈음 라인하르트가 자신의 별장 저택으로 수행원들과 함께 돌아오는 것을 맞이해주었다.
“장인어른.”
“이게 누구야. 귀한 손님이 왔었군.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일찍 돌아오는 건데. 레오노이도 함께 있구나. 아르르, 가르르.”
라인하르트가 기묘한 느낌으로 얼굴을 움직이자 내게 안겨 있던 레오노이가 웃음을 빵 터뜨린다.
주변 사람들이 이 모습을 보며 “재상님이 저런 얼굴을 할 줄이야.”라고 수군거리기는 했다만, 라인하르트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그럼 안으로 들어가지.”
우리는 함께 저녁 식사 장으로 향했다.
함께 복도를 걷고 있는 와중 라인하르트가 물어온다.
“그래서, 다들 궁전을 비워 한창 바쁠 텐데. 이곳까진 어쩐 일로 온 건가?”
“그냥, 아이를 기르는 법에 대해서 누군가 알려줄 수 있었으면 해서요. 딸을 키운 사람들 중 제가 가르침을 배울 만한 분이라면 라인하르트 님이 제격이죠.”
“영광이군, 그래. 딸을 키우는 법이라. 그러고 보면 나의 딸 에르가네스도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내가 업어 키우다시피 했지. 그걸 적어둔 일기장이 근처에 있을 텐데.”
“혹시 몸이 빛나는 경우에 대해서도 적혀 있습니까?”
“몸이 빛난다?”
라인하르트가 눈빛을 빛냈다. 잠깐 스쳐지나간 기색이었지만 무언가 알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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