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483)
EP.484)– 세상의 어설픈 이야기들을 위해 # 1
외전 – 세상의 어설픈 이야기들을 위해 # 1
나는 창문 보는 걸 좋아한다.
좋아한다고 해 봐야, 하루 1분 정도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는 것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 짧은 60초 정도 만으로도 기분을 전환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바깥에는 언제나 다양한 것들이 우글우글 거렸다.
해가 높이 떠올랐다 가라앉으며 그림자를 만드는 것. 그리고 그 그림자를 밟으며 좋아하는 임프들과 아이들의 모습.
더 먼 곳을 바라보면 굴뚝들 위로 하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것이나 난생 처음 보는 모양의 구름들이 흘러가는 것이 퍽 신기하게 느껴진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시시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세상에는 굴뚝 위에 피어오르는 연기나, 봄의 볕 아래 뛰어 놀고 있는 임프들 보다 더 재미있고 자극적인 것이 잔뜩 있으니까.
이를테면 왕궁의 넓은 수영장에 긴 비치베드를 깔아놓고 누워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나의 아내들이 그렇다.
알록달록한 그녀들의 수영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하늘 위에 떠다니는 구름의 모양 따위야 아무래도 좋아지고 만다.
━어서 이 펀치노이를 더 격렬하게 쓰다듬는 것입니닷…!
“…….”
뭐하고 있는 거지.
나는 창문 너머로 풀쩍 뛰어내렸다.
“아이라 님, 지금 뭘 하고 계시는 건가요?”
내 물음에 아이라가 눈에 쓰고 있던 까만 선글라스를 살짝 들어올린다. 아이라의 눈은 선글라스 못지않게 까맣고 반짝반짝 빛났다.
“일광욕 중이야. 뱃속에 있는 아이들에게도 볕을 쬐게 해주는 거지. 그리고, 님프를 쓰다듬고 있어. 님프를 쓰다듬으면 태교에 좋다고 그러더구나.”
“더 격렬하게 쓰다듬는 것입니닷…!”
몸에 오일을 바른 아이라의 몸은 눈부시게 하얀색이었다.
임신 초기라고는 하지만, 쌍둥이를 가졌다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매끄러운 몸매였다. 그랬기에 상대적으로 새까만 비키니가 무척 잘 어울린다.
만약 이 수영장 정원에 나 이외의 남성들이 출입 가능했다면 그들은 아무 일도 못하고 아이라를 훔쳐보기에 열중했겠지.
그런 아이라의 손은 펀치노이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고 있었다. 님프를 쓰다듬는 것이 태교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슥.
나는 내 발 언저리에 잔뜩 깔려 있는 태교와 육아서적들을 발로 슬쩍 밀어보았다.
아이라는 요즘 태교에 좋다는 것들에 대해 잔뜩 연구하고 있었는데. 아마 이 수많은 책 어딘가에서 ‘태교 중에 님프를 쓰다듬으면 효과가 좋다.’라고 적혀 있던 게 아닐까?
진짜인지 아닌지는 떠나서 제법 보기 좋은 풍경이었다.
참방, 참방-.
그때 누군가 나를 향해 물을 튀겼다.
고개를 돌려보니 몸에 동그란 튜브를 낀 채 물 위에 떠다니고 있는 레오노이와 스타노이 그리고 작은 미르나가 보였다.
“아빠는 어서 와서 딸들을 위해 파도 풀장이라는 것을 만들어주는 겁니닷…!”
레오노이의 말에 스타노이와 작은 미르나가 “풀-장.”하고 아직은 어색한 말투로 칭얼거렸다.
아이들이 떼쓰는 것을 다 들어주는 건 교육상 좋지 못하겠지만, 파도 풀장 정도는 해줘도 되겠지.
“님프비기, 파도타기!”
작은 바람을 일으켜 수영장 물을 출렁출렁거리게 만들어주었다.
아이들이 꺄르륵 기쁨의 소리를 지르고,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엘가가 손에 코코넛 쥬스를 쥔 채 내게 다가와 투덜거린다.
“너무 그렇게 함부로 마법 쓰지 말라니까. 레오노이가 보고 따라한다니까?”
엘가는 빨간 수영복을 입고 있었다. 얇은 천과 링으로 이루어진 옷이었는데, 아이를 낳은 유부녀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날렵한 배나 종아리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자기관리에 철저하기 때문이겠지. 그렇게 철저한 자기관리 능력으로, 엘가는 아이를 가르치고 양육하는 데에도 철저했다.
“요새 레오노이가 뭐만 하면 마법 써서 골치 아파. 밥 먹는 것도 마법으로 먹고. 숙제 하는 것도 마법으로 하고. 걸어 다니는 것도 마법으로 해!”
“으으음…, 그건 심각한 문제네요.”
레오노이의 마법실력은 무척이나 뛰어났다.
나이가 어리지만, 그 잠재능력은 나를 뛰어넘을지도 몰랐다.
나와 달리 레오노이는 가족의 품에서 풍족한 지원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으니, 마음껏 재능을 꽃피울 환경이 되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그런가, 레오노이는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대부분을 마법으로 슥삭 처리해버려서 엘가의 걱정을 사고 있었다.
“이러다간 마법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몸이 될 거야. 그래서, 이렇게 수영이나마 시키는 거지. 몸 좀 움직이라고.”
“그렇군요.”
나는 적당히 대답했다. 그때 저 멀리서 따뜻한 봄날에 어울리지 않게 땀을 뻘뻘 흘리는 은발의 여성이 서류를 잔뜩 끌어안고 나타났다.
“다들 여기 있었군요? 저는 할 일이 태산 같은데, 다들 신세 좋게 햇볕에 구워지기나 하고 있다니. 아주 부러워 죽겠네요.”
“미르나 아가씨.”
“태오 경, 벨호크 영애가 부르더군요. 어서 가보세요.”
“스텔라 님이 저를요?”
“아마 그 일 때문이겠죠.”
그 일이라.
나는 아이라의 눈치를 슬쩍 보았다. ‘그 일’이라는 게 무엇인지 알아듣지 못할 리 없다고 생각하건만. 아이라의 몸은 긴 비치베드에서 일어날 기미가 없다.
완전히 흥미가 없어졌구만.
‘그 일’이라는 것은, 따지고 보면 아이라가 판을 키운 건데 말이야.
* * *
앙그마르 왕궁의 중심부에서 살짝 외곽으로 빠져나가면, 시멘트 기둥과 벽들이 약간 빈티지하게 지어져 있는 건축물이 있었다.
대충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이 시멘트 벽은 매우 두껍고 안에는 철로 만들어진 강판도 덧데어져 있다나. 여차하면 왕궁의 벙커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튼튼한 건물이었다.
「앙그마르 왕립 연구소.」
건물에는 심플한 명패가 붙어 있었다. 이름처럼 이곳은 이것저것 연구하는 곳이다. 간단한 실험부터 시작해서 다소 통제가 필요한 무거운 작용들까지 전부.
촤아아아-.
자동으로 열리는 문으로 들어서자 밀폐된 공간에서 나를 향해 서늘한 소독구름이 뿜어졌다.
이 소독이라는 절차를 그리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이곳에 오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다른 임프나 님프들은 “연기에서 솜사탕 맛이 나는 것입니닷…!”하고 좋아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소독을 끝낸 나는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바쁘게 오가고 있는 엘프 연구원들이 보이고, 그들 앞에 놓여있는 자동차 비슷한 기계장치나 모터, 증기기관 등의 동력원, 컨베이어 벨트 같은 것이 눈에 들어온다.
이 세상은 마법이 가득한 봉건제 사회에 방점을 찍고 있었지만.
이 연구소만큼은 21세기의 그것을 방불케 했다. 오히려 마법과 과학이 더해져 내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기묘한 것들도 잔뜩 있을 정도였다.
━인간시대의 끝. 도래했다는. 웃음. 인간들 모두 내게 벌꿀 오일이나 바치라는WWW.
━이봐, 이 님프로이드, 언어패치 누가 했어? 말을 이상하게 하는데?
대체 뭘 만든 거지.
엘프 연구자들은 잠깐 눈을 돌리면 굉장한 것들을 연구하고 만들어낸다.
그들의 연구는 벨호크의 총수인 스텔라가 총괄하고 있었는데. 아마 오늘 나를 이곳으로 부른 것도 요즘 주목하고 있는 연구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얀 가운을 입은 과학자들을 지나쳐서, 나는 스텔라가 있을 법한 곳으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삭막한 연구실과는 어울리지 않는 실내 화원 같은 것이 나타났다. 꽃과 나무가 푸른 녹음을 실내에서 보고 있으려니 제법 신기하다.
다만 이 녹음은 어디까지나 버섯을 배양하기 위한 실험실의 일부일 뿐이다. 그렇다.
버섯. 내가 황새의 마을에서 가져온 고대의 맥스 버섯. 이곳은 그것을 배양하기 위한 실내실험장이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녹음의 사이로 주황색 버섯들이 잔뜩 자라나 있었다.
뚜방, 뚜방.
몇몇 버섯은 몸을 꿈틀거리며 움직이기까지 한다.
━쥬이잉.
뭐야 저거.
파바밧밧-.
━끼이잉!
━이번에 수확한 주황색 맥스 버섯은 표창 럭키세븐 한 방에 죽네. 필드에 배치하기엔 내구도가 살짝 부족한 느낌이야.
대체 무슨 실험을 하고 있는 거냐.
의아한 풍경을 지나 나는 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 스텔라를 발견할 수 있었다.
“스텔라 님.”
내가 다가가자 스텔라가 무어라 이야기하고 있던 연구원들을 물리며 반색했다.
“태오 군, 왔구나.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어!”
“저를 부르신 까닭이 뭐죠?”
“태오 군도 이걸 보면 알겠지만. 태오 군이 가져왔던 그 고대의 맥스 버섯이라는 걸 나름대로 재배하는 것에 성공했거든. 이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말은…?”
“불로장생의 단을 만들기 위한 준비가 거의 다 끝났다는 거지. 그래서 태오 군을 이곳으로 부른 거야.”
“역시 그랬군요.”
스텔라가 나를 자기 침실이 아니라 연구실로 부른 이유가 그것 말고 또 있으리라고는 나 역시 생각하지 않았다. 불로장생의 단을 만들 준비가 거의 다 끝났구나.
거대한 버섯과 싸워 얻은 「고대의 버섯」.
거대한 두루미로부터 선물 받은 「거대 두루미의 깃」.
서부의 사자 솔라-레오에게 받은 「태양 사자의 갈기」.
기묘한 보드게임의 클리어를 통해 얻은 「황제의 돌」.
마지막으로 얼마 전에 획득한 「별빛의 눈물」.
그리고 모험가들이 고대의 숲속에서 획득한 「지네의 독」까지. 먼 옛날의 황제 진시노이가 만들고자 했었던 고대 불로불사의 단약에 대한 재료가 다 모인 셈이다.
물론 재료가 다 모였다는 것뿐이다. 밀가루와 토마토가 있다고 누구나 토마토 스파게티를 만들 수 없는 것처럼, 재료가 있어도 만드는 방법을 모르면 진도가 안 나간다.
“그래서, 태오 군에게 혹시 감잡히는 게 있냐고 물어보려는 거야. 버섯은 양산이 가능하게 되었으니까. 한 서너 번 정도는 시행착오를 겪어도 될 것 같거든.”
스텔라의 말에 나는 연구소의 투명한 유리벽들 너머에 진열되어 있는 재료들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스텔라는 내가 품고 있는 어딘가의 ‘불완전한 불확실성’에 기대고 싶어하는 것 같았지만. 유감스럽게도 재료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팍-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냥 냄비에 넣고 다 끓여보면 되지 않을까요?”같은, 누구나 할 수 있을 법한 의견을 제시하게 될 뿐. 그에 대해 스텔라는 “나름 합리적인 생각이긴 해.”라고 수긍해주었다.
스텔라가 묻는다.
“아이라 양이라면 뭐라고 말할까? 아이라 양도 특별한 안목이 있잖아.”
“아이라 님은 이제 아마, 이 단약에 대해 흥미가 사라졌을 것이라 생각해요.”
아이라는 아이를 갖기 위해 단약으로 자신의 체질을 변경하고자 했었다. 하지만 쌍둥이를 갖게 된 지금은, 마치 흥미를 가졌던 게 거짓말처럼 단약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그런 아이라를 데리고 연구소에 들어와 봤자 심드렁할 뿐이겠지.
그때 누군가가 옆에서 또각, 또각-하고 뾰족하고 높은 구두소리를 내며 들어섰다. 빨갛고 치렁치렁한 머리에 하얀 가운이 매우 잘 어울리는 아가씨, 칼리라 영애다.
참고로 칼리라 영애는 내 부하직원이면서 동시에 아크의 보건의였다. 또 그녀의 정체는 약의 제조로 이름 높았던 스콜 가문의 후계자다.
지금은 왕실 연구소에서 약사로 일하는 모양이지.
칼리라가 말했다.
“적합한 조제법을 찾고 있는데. 쉽지가 않네요. 처음 보는 재료고, 이런 재료를 다루려면 가문의 비전서들이 있어야 할 텐데. 옛날 옛적에 다 불타버렸으니까요.”
칼리라 영애는 앙그마르에서 약학에 대한 지식이 가장 뛰어난 사람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하지만 그런 칼리라가 혀를 내두를 정도의 재료들이라면 과연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있긴 할까? 우리가 살짝 침울해 하고 있을 때 칼리라가 말을 덧붙였다.
“드레이코 가문의 약학도 결코 무시할 수준인 아니죠. 어쩌면, 드레이코 영애들이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드레이코 쌍둥이 아가씨들이라…. 그녀들의 약학에 대한 실력도 수준급이기는 하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일하고 있는 미르나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똑, 똑.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자그마한 기척이 들려온다.
“미르나 아가씨, 접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서류뭉치와 싸우고 있는 미르나가 보였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더니 펜을 내려놓고 늘어져라 기지개를 켰다.
“느으읏.”
남들이 보면 드레이코 영애답지 않게 칠칠치 못하다 흉볼 수 있을 테지만, 나는 남이 아니니까 이렇게 빈틈을 보여준다.
“그래서, 무슨 일이시죠?”
“그게.”
나는 미르나에게 자초지종을 잘 설명했다. 그러자 미르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대강 상황은 알겠네요. 그런데, 이제 와서 불로장생의 단약은 어째서 만들려고 하는 건가요?”
“그야, 미르나 아가씨의 앞에 밀가루 반죽도 있고, 토마토 소스가 있다면 언젠가 파스타를 한 번 만들어봐야지-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닐까 싶은데요.”
재료가 있으니까 만들어 본다. 심플한 답이었다. 미르나도 이해한 것 같았지만 그녀의 질문은 조금 더 근본적인 것을 파고들었다.
“그런 마음이야 이해를 하는데. 만들고 난 이후에는요?”
“만들고 난 이후요?”
“태오 경은 불로장생 같은 거 필요없잖아요. 그러지 않아도 오랜 삶을 살아가는 반요정이니까요. 애초에, 엄밀히 따지면 반요정을 뛰어넘은 무언가고.”
그렇긴 하지.
다만, 나도 할 말이 있었다.
“요새,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흐르는 것 같더군요. 정신을 차려보면 며칠 씩 지나가고 있고. 또 정신을 차려보면 몇 주씩 지나가 있어요. 저희 어머니 생신부터 지금까지 며칠이 지났는지 아시나요?”
내 물음에 미르나가 음-하고 침음하더니 말했다.
“한 달, 한 달 정도 됐네요.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군요.”
“바로 그겁니다. 주말이나 행복한 시간들은, 감상할 순간도 없이 너무 빠르게 흘러가요.”
너무 빠른 게 문제였다. 이렇게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면 어느새 앗-하는 사이에 레오노이와 스타노이, 작은 미르나는 훌쩍 커버릴 테지. 그리고 나도 나이를 먹을 것이고.
아내들과 이별하는 순간도 금방 올 게 분명했다.
그건 너무 슬펐다.
나는 모든 동화속의 주인공들처럼 영원히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이야기를 끝맺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빠르게 흐르는 시간도 아무렇지 않을 만큼의 긴 건강함이 있으면 좋은 법이고.
그런 내 뜻을 알아차린 건지 미르나가 말했다.
“나르미를 찾아가보세요. 나르미가 찾고 있는 것이 태오 경에게도 도움이 될 테니까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저희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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