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482)
EP.483)가장 행복한 # 완(?)
외전 –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 완(?)
참 좋은 날씨였다.
햇볕은 반짝이고. 따뜻한 바람이 불어 꽃들이 살랑살랑 흔들리고. 작은 임프와 님프들이 넓은 정원을 뛰어다니며 기글기글 장난스럽게 웃어대는 날씨.
누군가의 생일을 축하하기엔 더 없이 좋은 날이었다.
또, 누군가가 앞으로 태어날 것이라는 걸 알아차리기에도 가장 알맞은 날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소문이 난 여왕 아이라는 마치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화환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것이 꼭 무언가 대단히 경사스러운 일을 축하받는 사람 같았다.
“입덧이라니. 내가 아이를 가졌다는…?”
아이라의 물음에 내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태오를 막 가졌을 때가 딱 그랬어. 상큼한 과일 외에는 별로 입에 대고 싶지 않았지. 감각이 엄청 예민해져서 다 느글느글거렸거든. 꽃 냄새를 맡으면 울렁거렸고.”
내 어머니가 나를 뱃속에 품고 있을 때 느꼈던 증상과 아이라가 지금 겪고 있는 증상이 서로 아주 비슷했다. 그 말을 들은 우리는 다소 흥분에 휩싸여 들뜰 수밖에 없었다.
엘가가 말했다.
“뭐야, 그런 거였어? 야, 아이라. 너 최근에 검사했던 적이 언제야? 엘프 연구소에서 준 테스트기 있잖아.”
“요즘은….”
아이라는 아직 확실하지 않아 얼떨떨하다는 느낌으로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다 같이 결혼한 뒤로 원래는 매일 같이 임신 테스트를 해봤던 아이라였다.
그러나 요즘은 그러지 않고 있는 듯했다.
그 이유야 나도 잘 안다. 테스트기에 매일 같이 뜨는 실패의 경험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 너무 실망스럽고 가슴이 아파서 견딜 수 없게 된 것이겠지.
─실패할 바에야, 도전 하지 않는 게 나아.
몇 년이나 혼자 애를 태우다 보면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되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라는 어느 순간부터 테스트 해보는 걸 그만 두었다. 그걸 내가 왜 이렇게 잘 알고 있냐면, 이러니저러니 해도 내가 그녀의 남편이기 때문에 다 지켜보고 있어서다.
패배라고는 겪어본 적 없이, 언제나 원하는 대로 세상에 사랑받고 살았던 아이라이기에 요 몇 년의 실패가 쓰디써서 삼키고 맛보고 싶지 않았던 거야.
그때 미르나가 말했다.
“저한테 테스트기 하나가 남아 있는데. 지금 사용해볼래요? 어쩌면 이번에야 말로 진짜 성공한 걸지도 모르잖아요!”
스텔라가 한 마디 거든다.
“내가 엘프 연구실에서 가져온 키트 있는데. 그걸로 조금 더 정밀하게 검사 해보자. 임신 몇 주차인지, 또 상태는 양호한지 알 수 있어.”
와락 손을 드는 나르미.
“나도 같이 가볼래! 오늘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다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이잖아! 역시 세상은 재미있어!”
아이라를 제외한 모든 아내들이 마치 자신이 아이를 가진 것처럼 신나 했다. 원래 이런저런 문제로 서로 견제하는 아가씨들이지만, 또 한 편으로는 서로를 은근히 챙겨주기도 하니까.
아이라가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하는 걸 안 뒤로는 자신들이 아이를 갖기 전에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어떤 생활 패턴으로 살아왔는지 등등 도움 되는 정보들을 잔뜩 알려주기도 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하렘의 여자들이 된 지 몇 년.
그녀들 역시 이 기묘한 가족의 울타리 안에 어느 정도는 친자매처럼, 때로는 친자매보다도 더욱 끈끈한 유대감을 쌓았다는 말이겠지.
그러나.
기대감에 차 있는 영애들과 다르게 아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소극적인 분위기를 마치 방어막처럼 둘렀다.
“…그럴 리 없어. 이번에도 또, 헛된 희망이었다면….”
아이라의 마음도 이해는 했다.
기대감이라는 것은 마치 푹신푹신한 깃털이 잔뜩 달린 날개처럼 사람의 마음을 높은 천장 끝까지 띄우는 것이니까.
만약 기대와 어긋나는 일이 벌어졌을 때, 그 높이 떠올랐던 몸은 이제 끝없는 낙담의 손길에 이끌려 바닥에 떨어지고 말 터. 그럼 마음이 많이 아플 게 확실했다.
그러니 아이라는 자신에게 기대감을 불어넣는 영애들을 향해 방어적이고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것을 잘 아는 우리들이었기 때문에 더는 아이라를 향해 이런저런 강요를 하지 못하고 아쉬운 느낌으로 입맛만 다셨다.
휙.
“잠깐 시간이 필요해.”
아이라는 그 말을 끝으로 잠깐 자리를 비웠다.
* * *
아이라는 꽤 오랫동안 자리를 비웠다. 자리에 남은 내 어머니나 아내들은, 각자 자신이 아이를 가졌을 때의 이야기를 하거나 그것에 대해 경청했다.
“태오를 가졌을 때는, 꽃 냄새도 잘 맡지 못했어. 그런데 신기하게 꿀은 잘 먹을 수 있었지. 마치 뱃속에서 ‘내게 꿀을 먹여라!’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니까.”
내 어머니는 나를 가졌을 때를 떠올리는 건지 “무척 힘들었어. 애가 뱃속에서부터 텔레파시를 사용하고 말이야.”라고 툴툴거렸다.
내가 정말 뱃속에 있던 아기 때부터 내 어머니에게 텔레파시를 사용해 꿀을 섭취하도록 강요했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때 생각하면 참 정신없었지.”
어머니 트리시의 눈동자는 마치 후련하면서도 동시에 그리움에 가득 차 먼 꽃밭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내 어머니가 내 등을 팡-쳤다.
“그래도 처음엔 혼란스러운 것도 당연해. 그러니까, 태오야. 그렇게 서 있지 말고 가 봐. 여기 있는 사람들은 괜찮으니까.”
그 말에 힘을 얻은 나는 걸음을 옮겨서, 꽃밭 사이에 앉아 있는 아이라를 향해 다가갔다. 아이라의 어깨나 팔에는 나비들이 앉아 있어서 마치 악세서리 같았다.
내가 다가가자 나비들이 팔랑팔랑 하늘로 날아 가버리고, 아이라만이 꽃밭에 덩그러니 놓였다.
“아직도 확인하는 게 두려우세요?”
내가 묻자 아이라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두려울 게 없어. 하지만, 그냥 그래. 여기서 만약, 어떠한 결과를 맞게 되더라도. 지난날의 나와는 무언가 달라져버릴 것만 같아서.”
아이라는 횡설수설했다. 자신의 마음이 아직 다 정돈되지 않은 것이겠지.
충분히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언제나 입버릇처럼 “나는 여왕이야.”라고 자부심 넘치게 말하는 아이라였지만, 사실 그 속은 작고 여린 동화 속 공주님처럼 무구할 때가 많다는 것.
그래서 나는 아이라를 향해 말했다.
“결과가 어떻든. 저도, 다른 가족들도 아이라 님을 대하는 것에는 변함없을 거에요. 물론,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라 님이라면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요.”
옛날부터 나는 막 되먹은 여왕을 다루는 법에는 나름의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은근히 도발하듯 말하자 아이라는 용기를 찾은 것처럼 팍 인상을 썼다.
“그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지.”
그러나 자신만만하게 말한 것과 다르게 아이라의 엉덩이는 화원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슥. 나는 아이라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럼 어서 가죠.”
“…….”
내 손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던 여왕이 마침내 천천히 손을 뻗을 때, 나는 기다려주지 않고 그 손을 확 붙잡았다.
스윽.
내가 손을 잡아당기자 아이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내가 생각지도 못할 만큼 강한 힘으로 잡아당겨서, 제법 놀란 듯한 표정이었다.
내가 말했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으면, 더 나아지는 법도 있는 거죠. 제 완력처럼.”
“…흐응, 그렇구나.”
아이라는 마침내 가벼운 느낌으로 픽 웃었다.
그런 아이라의 발걸음을 뛰놀고 있던 임프들이 졸졸 따라붙고. 모두가 기대를 모으고 있을 때 아이라는 요정들의 과학력이 만든 확인 키트라는 것을 사용했다.
“결과는 언제 나오는 거냐? 어떻데? 뭐라고 하는데?”
“리오네스 양, 정밀한 키트가 그렇게 금방 결과가 나올 리 없잖아요. 조금 더 기다려 봐요. 차분한 마음으로.”
“그러는 미르나 너도 품위 없게 다리 떨고 있잖아. 좀 진정해 보지 그래.”
“이, 이건….”
미르나와 엘가가 안절부절 못하고 있을 때였다. 아이라와 함께 저 멀리 사라졌던 스텔라와 나르미가 먼저 자리에 나타난다.
그녀들이 무어라 말하기 전에, 레오노이가 먼저 시끄럽게 소리쳤다.
“이 몸 레오노이에게 또 동생이 생긴 것이야…! 작은 미르나랑, 스타노이도 언니가 되는 거야…!”
레오노이는 마치 수태를 알리는 작은 천사처럼 조잘거렸다. 그 기쁜 소식에 가슴 졸이고 있던 사람들도 비로소 안도한 것처럼 긴장을 풀고 참았던 숨을 내쉬며 웃는다.
“뭐, 저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어요. 별이 떨어지는 꿈이라면, 분명 태몽일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아무튼, 가족이 한 명 더 늘어나겠군요.”
“언니, 그게-.”
나르미가 미르나를 향해 무어라 쑥덕거렸다. 내 요정 귀에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쑥덕쑥덕. 다만 내가 구태여 엿들을 것도 없이 미르나가 깜짝 놀란 것처럼 머리를 곤두세웠다.
“싸, 쌍둥이…!?”
아이라가 쌍둥이를 가졌다니…! 그 사실에 우리 모두 깜짝 놀랐다. 특히 쌍둥이로 자라난 미르나랑 나르미의 경우에는 제법 감회가 깊은 듯했다.
“설마 한 번에 둘을 가졌을 줄이야. 아이라 여왕도 참, 뭐라고 해야 할까. 욕심쟁이로군요.”
“어떤 애들일지 궁금하다! 나랑 언니 같으려나? 응?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는 않으려나? 얼른 태어났으면 좋겠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생명의 탄생을 기뻐해준다. 가족이 늘어나는 것이 좋은 걸까.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마음 속 어딘가 따뜻한 봄바람이 부는 것처럼 푸근해졌다.
당사자인 아이라는 살짝 얼이 빠진 얼굴이었다. 마치 꿈속을 걷는 사람 같기도 하고, 아직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 같기도 했다.
그런 아이라의 등을 엘가가 쓰다듬으며 “너, 근데 이제부터 고생시작일 걸.”하고 농담 반으로 짓궂게 말했을 때였다.
또르륵.
아이라의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굴러 떨어졌다. 매끈한 피부를 타고 흐르는 눈물은 마치 별빛처럼 반짝반짝 거린다.
엘가는 무척 당황했다.
“야, 왜, 왜 울어? 임신하고 나면, 힘들기는 하지만, 그렇게 겁먹고 울 정도는 아냐. 뭣 하면 나도 있고 스텔라나 쌍둥이도 있으니까─.”
자신이 겁을 줘서 아이라가 그만 울음을 터뜨린 것이라 생각한 것이겠지. 그러나 나는 그런게 아님을 잘 알았다.
사람은 너무 기쁠 때도 눈물을 흘린다. 마음에서 벅차오르는 감정이 온몸에 꽉 찰 정도로 부풀어 오르면, 눈이라는 마음의 창을 통해 마구 흘러넘친다.
그렇게 흘러나오는 눈물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별처럼 빛나는 것이었다. 그래, 지금껏 아이라가 찾고 있었던 별들은 처음부터 줄곧 아이라의 마음속에 있었던 거야.
그 어떠한 금은보화도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태어날 때부터 세상에 사랑받아 모든 걸 쥐고 태어난 공주. 그것이 아이라였으니까.
바닥에 유리구슬처럼 데구르르 구르고 있는 아이라의 눈물은 내가 잘 주워서, 투명한 유리관 안에 넣었다.
지금까지 눈물을 찾아다니고 있던 아이라는 정작 자신의 눈물이 그 어떠한 사람보다 밝게 빛나고 있다는 걸 눈치 채지도 못할 정도로 울었다.
항상 자신만만해하던 아이라가 이렇게 눈물을 흘릴 날이 올 줄이야. 쌍둥이 아가씨들이나 엘가는 “뭐, 그런 걸 갖고 울어.”라고 빨갛게 물든 코끝을 휙 돌려버렸고.
스텔라는 “봄이라 그런가, 괜히 나도 눈물이 날 것 같네. 나이 먹어서 그런 건 아니고….”라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찔끔 닦는다.
레오노이나 마르마르 혹은 모르모르 같은 감수성 예민한 임프와 요정들 같은 경우에는 펑펑 울어대고 있었다.
“저 펀치노이의 눈에서, 또 눈물이 나는 것입니닷…!”
“나도 이렇게 기쁘고 감동적인 생일은 처음이야…! 자매들아, 모두 세상에 태어난 자들과, 태어날 이들을 위해 기쁨의 춤을 추는 거야!”
마르마르의 말에 임프와 님프들이 손을 잡고 우리 주변을 빙빙 돌기 시작했다. 그들이 무어라 조잘거리는 노랫소리가 꽃잎들을 살랑살랑 흔들고, 따스한 바람을 불어온다.
내 삶은 대부분 겨울 같았지만.
정말 이제는 생명이 충만한 봄이었다. 이렇게 따뜻한 봄날에는 꽃이 피어나고, 새로운 가족들이 태어나고 그러겠지.
자그마한 아이들이 노을 지는 언덕의 그림자를 따라 마구 뛰어다니는 봄. 그렇게 해가 저물면 어딘가에서 나타난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부를 테지.
예전에는 그 모습을 그저 부러운 듯이 바라볼 뿐이었지만.
이제는 나도 손을 잡고 돌아갈 가족이 있고 집이 있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을 느끼자, 내 안에 웅크려 있던 어린 시절 속의 내가 어쩐지…, 무척이나 만족한 기분이 들은 것만 같아서 나도 코끝이 찡해졌다.
외전 –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 완(完)…
…
…
…
아니, 이번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는 건 조금 더 보류해 두자.
아직 나의 일상에는 남아있는 행복한 이야기들이 더 있으니까.
때로는 이렇게 끝맺음 없이.
여유를 남겨두는 것도 좋을 것만 같다. 미처 닫지 못해 살짝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와 머리를 쓸어주는 것처럼.
조금의 틈새만은 남겨두는 거야.
언젠가, 언제고 어디서든 다시 돌아와 그 문을 열어볼 수 있도록.
조금만
완성되지 못한 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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