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59)
EP.60)태오 # 9
060 – 실버루키 태오 # 9
느닷없이 등장한 남자는 아주 새빨간 셔츠에 팔각 모자를 착용하고 있었다.
가슴팍에는 생도들의 석차를 뜻하는 브로치가 달려 있다.
은빛 321등이다. 굵은 팔에는 이제 보니 노란 완장 같은 것이 착용되어 있었는데 거기에는 ‘규율’이라고 두 글자가 붉고 진하게 그려져 있었다.
“나는 실버즈의 군기 담당, 콘데다. 내가 이렇게 찾아왔는지는 알고 있겠지, 태오 가스펠? 낮은 석차인 너를 위해 나 콘데가 친히 왔으니 영광으로 알라고, 흐흐.”
“어서 저 마르마르를 놔주는 겁니닷…! 그렇게 강하게 잡아당겨지면 꼬리가 뽑혀나간단 말입니닷…!”
마르마르는 가느다랗고 긴 꼬리를 우악스러운 손아귀에 붙잡혀 버둥거렸다.
나는 꼬리가 없어서 모르겠지만, 신체부위를 잡아당겨지는 것은 꽤 고통이 큰 지 마르마르는 무척 아파하고 있었다.
“멋진 꼬리는 앙그마르 님의 선물…! 그것이 뽑혀나가면 임프는 별 볼일 없는 님프와 전혀 다를 바가 없어지는 것입니닷…!”
“이 새끼, 시끄럽네. 자꾸 꼬리가 뭘 어쨌다는 거야?”
다만 남자는 그런 마르마르의 반항 따위야 신경 쓰지도 않았다. 남자의 눈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오직 나뿐이다.
“어이, 태오 가스펠. 내 이야기 못 들었어? 감히 실버즈 개강총회에 불참하고 여기서 뭘 하고 있냐고 물었다.”
빨간 셔츠의 남자의 주변으로 두 명 정도 되는 남자들이 나의 좌우를 포위했다. 도망치지 못하게 만들려는 속셈 같다.
그걸 알아차린 마르마르가 소리쳤다.
“동지, 어서 도망치는 겁니닷…! 여기는 저 마르마르가 맡고 있을 테니 동지는 살아서 꼭 대망을 이루는 것입니닷…!”
“도망칠 생각하지 마, 태오 가스펠. 네가 도망치면 네 친구인 이 임프는 우리들의 인턴으로 쓸 거야.”
인턴이라니.
그 묘하게 낯익은 키워드에 내가 물었다.
“인턴이라고?”
“그래. 노예를 부를 때 사용하는 교양 있는 단어지. 네가 도망치면 이 녀석은 그땐 우리 실버즈 사무실의 인턴이 되는 거야!”
“히에엑…! 인턴, 싫은 것입니닷…!”
마르마르가 고양이에게 꼬리를 붙잡힌 쥐처럼 더욱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마르마르는 본디 화형을 당할 뻔 했던 녀석.
그러다 노예로 굴러 떨어졌기 때문에 어떤 일을 시킬지 모르는 실버즈의 인턴이 되는 게 정말 두려운 것 같았다.
실버즈의 팔각모자 콘데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음흉한 협박을 계속해서 덧붙였다.
“우리들의 인턴은 가혹하기로 소문이 났지. 시급은 1만 코인 밖에 안 되니까.”
“이, 일 만 코인입니까…?”
그 끔찍한 금액에 마르마르가 공포에 떨자 팔각모는 사람 괴롭히기를 좋아하는 못된 선배처럼 으르릉거렸다.
“그래! 아크의 교직원 최저임금에 겨우 딱 맞춘 금액이지! 하지만 끔찍한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 인턴들은 하루 한 번 밖에 티타임을 갖지 못하거든!”
“티, 티타임도 있다는 말입니까…?”
“그래! 아주 끔찍하지? 더욱 무시무시한 건 연차가 한 달에 한번밖에 없다는 거다. 전부 최저규정만 지키는 가장 험난한 일. 그게 바로 인턴이다.”
“연차가 한 달에 한 번이라니…!”
마르마르는 저 끔찍하고 열악한 환경에 정말 겁을 집어 먹은 것처럼 말을 잃었다.
내가 들어봐도 꽤 끔찍한 조건이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크으….”
내가 도망치면 마르마르가 그런 끔찍하고 원치 않는 인턴생활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니 나는 영 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원래라면 나의 생존을 위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을 텐데.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로 마르마르와 내가 정이 들어버린 탓이리라. 이래서 나는 누군가에게 가능하면 정을 붙이지 않으려 했건만.
그러나 마르마르는 겁에 질려있음에도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오히려 용감히 소리쳤다.
“어서 도망치는 것입니닷…! 저 마르마르는 그 인턴이라는 게 정말 되고 싶은 것입니닷…! 그러니 저 마르마르를 걱정하지 말고 얼른 도망치는 것입니닷…!”
마르마르는 내가 도망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게끔 나를 배려해주고 있었다. 자신에게 커다란 위기가 닥쳐있는데도 오히려 내 생각을 해준다니.
마르마르가 저렇게 눈물겨운 동지애를 가진 녀석인 줄 처음 알았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녀석을 버릴 수 없어졌다.
모처럼 이 세상에 생겨난 ‘내 편’이라는 기분이 들었으니까.
“어서 도망치는 겁니닷…!”
그런 마르마르를 보고 흐흐흐 웃는 팔각모의 남자.
“눈물겨운 동료애로구만. 하지만 이미 늦었다. 우리들이 네게 예절을 교육시켜 줄 테니까. 너 같은 놈들한테는 예로부터 이게 선생님이고 교수지.”
스윽.
나를 포위한 남자 둘이 허리춤에서 몽둥이를 꺼냈다.
그건 매우 굵고 단단해서 저런 것으로 맞으면 나는 여러모로 엉망진창이 될 게 분명했다.
어쩌지.
도망칠까?
“동지…! 어서 도망치는 것입니닷…!”
“도망치기만 해 봐, 태오 가스펠. 그리고 저 녀석이 무슨 요설을 내뱉기 전에 일단 입부터 막도록 해. 에프사이드 놈처럼 멍청하게 당하기 전에.”
나의 눈앞으로 문제들이 점점 다가오는 가운데에. 나는 방금 님프들의 축제에서 획득했던 마법에 대해 떠올릴 수 있었다.
「파이몬 : 고위 물리 파괴 주문. 술자의 위계가 높아질수록 위력과 마나 소모량이 강해진다.」
그것은 이 상황을 멋지게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비장의 한 수였다.
능력도 모르고 방식도 모르지만 고위 물리 파괴 주문이라는 글자가 나의 신경을 쓰이게 만든다.
그래, 어차피 능력에 대한 실험이 필요하다고 생각은 했었어. 사람에게 첫 실험을 하게 되는 게 좀 그렇지만 지금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손바닥을 콘데에게 보이도록 쫙 뻗었다.
“지금이라도 마르마르를 내려놓고 도망가라. 마지막 경고다. 이젠 나도 어떻게 될지 몰라.”
나의 위협은 진심 반 허세 반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 별 문제 일으키지 않고 도망가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살짝은 더 컸다.
그러나 그들은 웃었다.
“태오 가스펠. 네가 전투적으로 쓸모없다는 건 이미 다 아는 사실이야. 그렇게 허세부려봤자 너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없다는 거, 다 안다고.”
이렇게 된 이상 선택지가 없다.
나는 힘차게 소리친다.
─파이몬!
즈즈즛.
파아앙-!
순간 나의 몸에서 강렬한 기운 같은 것이 손바닥을 통해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내 몸에 감돌고 있었던 기력과 에너지가 송두리째 뽑혀서 대포처럼 발사되는 기분이라고 해도 좋다.
실제로도 그랬으니까.
내 손바닥에서 사출된 것은 일종의 공기포였다.
사람 머리통 정도 되는 크기의 공기포가 상상도 못할 느낌으로 발사되었던 탓에 나의 몸은 그 반작용으로 뒤로 강하게 밀려 넘어지고 말았다.
“으으윽.”
그리하여 내가 엉덩방아를 찧고 인상을 찌푸렸던 잠깐의 찰나.
강렬하게 날아간 공기포가 바닥에 깔려있는 잔디밭을 갈아엎으며 정면의 콘데에게 격돌하는 게 보였다.
“구우우욱-!”
그는 꼴사나운 소리와 함께 뒤로 밀려 바닥에 고꾸라졌다. 동시에 그의 손에 붙잡혀 있었던 마르마르가 탈출해 나의 뒤로 숨는다.
“동지…!”
“일단 내 뒤에 숨어 있어!”
나의 눈은 아직 남아있는 두 명의 남자들을 노려봤다.
그들은 자신들의 리더였던 콘데가 쓰러진 것에 깜짝 놀란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당황해했다.
“뭐야, 저 녀석 마법을 쓸 줄 알잖아? 방금 그 위력은 대체 뭐였어? 뭐냐?”
“몰라! 대체 무슨 마법이지!?”
“으, 콘데가 쓰러졌어! 야, 정신 차려 봐!”
“그으으으, 흐으….”
쿨럭, 하고 피를 뿜어내는 팔각모의 콘데. 그러나 하얗게 까뒤집혀진 눈을 보면 당분간 정신을 차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새로 얻은 주문 파이몬의 위력이 상당했던 것이겠지. 그것을 정통으로 복부에 맞았으니 일어난다고 해도 몸은 정상이 아닐 게 분명했다.
위력이 강하다. 과연 고위 파괴 주문.
그걸 나 자신도 통감하고 있었다.
욱신, 욱신-.
마법을 사출했던 내 손바닥이 쑤시고 욱신거려서 눈물이 찔끔 나올 것만 같았다. 손바닥뼈에 금이 가고 부러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지만 여기서 그런 내색을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나는 부어오르는 손을 뒤로 감추고 반대 손바닥을 녀석들에게 내밀었다.
“방금 마법, 아직 더 쏠 수 있어. 지금이라도 얌전히 브로치랑 가진 돈 다 내놓고 가. 그럼 봐줄 테니까.”
새삼스럽게 내가 지닌 연기자 9레벨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 수가 있었다. 아픔을 참고 이런 허세를 부릴 수 있게 된다니.
“어, 어쩌지.”
“몰라. 이런 얘기는 못 들었잖아! 저 녀석이 마법을 쓸 수 있다는 말은 못 들었다고!”
이 세상에 있어서 마법사는 여러모로 위험한 존재다.
애초에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도 소수의 엘리트들 뿐.
그렇기에 마법사를 적으로 돌릴 때에는 그만큼 장비를 갖추거나 철저한 계획을 세우거나 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남은 둘은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크게 망설이는 게 보였다. 나는 그런 녀석들에게 재촉하듯 으르릉거렸다.
“빨리!”
“그리고 저 마르마르를 그 인턴이라는 것으로 고용하는 것입니닷…!”
* * *
“동지! 전부 회수한 것입니닷…!”
마르마르가 남자들에게서 빼앗은 전리품을 내게 내밀었다.
“좋아. 321등의 은색 브로치. 25만 코인. 식권 일곱 장.”
내가 만족스러운 전리품에 미소를 짓자니 남자들이 울상을 지었다.
“시, 식권은 돌려주시면 안 됩니까…? 그게 없으면 굶어야 하는데….”
“남의 것을 빼앗을 때는. 자기 것을 빼앗길 각오도 했어야지. 대신 목숨만은 살려 줄 테니까, 얼른 저 놈 데리고 꺼져.”
“꺼지는 겁니닷…!”
나와 마르마르의 으르릉거림에 남자들은 흠칫 놀라 도주를 선택했다.
“야, 가, 같이 가!”
“흐으으, 시발! 무거워 죽겠네!”
기절한 콘데를 데리고 힘차게 도망치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무척 통쾌한 기분이 든다. 그런 그들을 향해 마르마르가 으르릉거렸다.
“계약서에 도장 찍은 것입니닷…!”
그렇게 저 멀리 그들의 모습이 아주 보이지 않게 되고 나서야 나는 슬슬 풀려가는 다리 힘에 바닥에 주저앉게 됐다.
“으.”
정신이 몽롱하고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격렬한 두통이 일었는데 코피가 탁 터지자 그런 기분은 좀 나아졌다.
지독한 마나 오링 증상.
그러나 문제는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스륵.
나는 내 오른손을 봤다.
내 오른손은 왼손의 두 배 이상으로 부어올라서 매우 끔찍해보였다. 분명 뼈가 작살난 게 확실하다.
“으으-.”
긴장이 풀린 그때서야 아픔이 나의 몸을 뒤흔들었기 때문에 나는 통증에 눈물이 찔끔 나올 것만 같았다.
마법 ‘파이몬’에 이런 부작용이 있었을 줄이야.
그래도 새로 습득한 주문이 아니었다면 손이 부러지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겠지. 이 정도면 괴한 셋을 상대로 선방한 거다.
그렇다.
정말 선방한 것이다.
“내가 이겼다!”
나는 멀쩡한 왼 손을 높이 들어 올리고 이 승리에 순수하게 기뻐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암살과 폭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했었던 경험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지만 나도 이제는 남들에게 쏠 수 있는 벌침이 생겼다.
이 차이는 크다.
그래서 기쁨과 통쾌함이 통증을 이겨내서 다시금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그런 나를 향해 마르마르가 말을 걸어온다.
“동지! 이 마르마르를 버리고 도망치라니까. 어째서 도망치지 않았던 겁니까?”
“그야, 우리는 동료잖아. 그보다 왜 굳이 인턴으로 들어간 거야? 그래서야 열심히 싸운 이유가 없는데.”
“그건…. 그건 중요한 게 아닙니닷…! 그보다 손이 크게 망가져버린 것입니닷…!”
“어쩔 수 없지.”
“그렇게나 반동이 큰 파괴마법이라니…. 이래서야 완드나 스태프 같은 도구가 필요한 것입니닷…!”
“도구?”
“훌륭한 도구는 마법의 반동을 대신하여 받아주는 것입니닷…!”
마르마르는 좌우로 붕붕 흔들리고 있는 꼬리를 손으로 붙잡았다.
“가만히 있는 겁니닷…!”
붕붕, 붕붕.
“얌전히, 얌전히 있는 것입니닷…!”
마르마르는 갑자기 자신의 꼬리와 실랑이를 벌이기 시작했다. 자기 꼬리랑 싸움을 펼친다니 그 기이한 상황에 넋이 나갈 뻔 했던 것도 잠시.
“얌전히 뽑히는 것입니닷…!”
마르마르는 윽-하고 힘을 주더니 꼬리를 뿅 뽑아내는 게 아닌가?
그 끔찍한 장면에 나는 경악해서 비명을 지를 뻔했다.
“꼬리를 왜 뽑아!”
“임프에게 있어서 꼬리는 목숨과도 같은 것…. 하지만 동지에게는 큰 빚을 졌으니 이것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닷…!”
슥.
마르마르가 자신의 주황색 꼬리를 내게 내밀어왔다.
자기 꼬리를 뽑아서 내밀어 온다니, 왠지 좀 기분이 이상하고 기괴했지만 마르마르의 눈이 워낙 진지해서 나는 그것을 받아 쥐게 됐다.
스륵.
그런데 흐물흐물하게 축 늘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임프의 꼬리는 생각보다 꼿꼿하고 딱딱했다.
막대기 같은 기분.
임프의 꼬리는 훌륭한 완드 재료가 된다고 그랬었지. 과연 이게 있으면 내 마법도 반작용과 반동을 최대한 줄일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꼬리를 뽑다니. 괜찮은 거야?”
“꼬리야, 열심히 우유를 마시다 보면 다시 자라는 것입니닷…. 정 안 되면 꼬리를 자르고 도망쳐야 할 때도 있는 법입니닷….”
“그렇구만.”
임프에 대한 지식이 늘었다. 임프는 도마뱀처럼 꼬리를 자르고 도망칠 때가 있구나.
“후.”
아무튼 나는 승리했다.
눈앞으로 연기자와 마법사에 대한 경험치가 오르는 게 보인다.
아쉽게도 레벨은 오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한 꺼풀 크게 벗고 진화한 기분을 느낄 수가 있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