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0
당문전생 (10)
답글 놀이
“엥?”
“이게 다야?”
방이 붙었다는 소식을 접한 마을 주민들이 헐레벌떡 뛰어왔지만 내용을 읽고 실망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며칠을 기다렸는데 뭐야, 이거?”
“방 붙이는 사람이 바뀌지 않고서야 내용이 뭐 이래?”
구시렁거리던 주민들이 방에 관해서 설왕설래를 늘어놨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던 또 한 사람의 놀라운 한마디는…….
“내용은 개뿔. 뭐가 적혀 있어야 내용이든 나발이든 말하지.”
커다란 종이는 백지 상태였다.
단 하나의 점도 찍혀 있지 않아서 그야말로 순백이랄 수 있는 백지!
머엉.
백지를 바라보는 마을 주민들의 표정은 허탈함, 어처구니없음, 기타 실망이란 감정을 의미하는 여러 가지의 것으로 얼룩져 있었다.
구름처럼 몰렸던 마을 주민들이 뭐라 뭐라 구시렁거리다 곧 뿔뿔이 흩어졌다.
며칠 동안은 백지 상태 그대로였다.
언제까지라도 비어 있을 것만 같았던 백지.
그러던 어느 날 놀랍게도 백지에 글 하나가 적혔다.
[맛대가리 없는 죽엽청 팔면서 술값은 더럽게 비싸네!]술집이 어딘지, 맛이 어떻게 없는지에 관해서는 전혀 명기되어 있지 않은, 말 그대로 밑도 끝도 없는 글.
그래서인지 몰라도 반응은 썰렁했는데 바로 뒤에 의미심장한 답글 하나가 달렸다.
정통 ‘뜬구름 잡기’식으로 툭 던진 답글.
무척이나 성의가 없어 보이는 답글이었지만 그 뒤로 폭발적인 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나도 알 것 같아!] [이런 제길, 사람들의 입맛은 모두 같다는 거야?] [솔직히 나도 맛대가리 없었지만 꾸역꾸역 참고 넘어갔는데 결국 말이 나왔군!]이렇게 설왕설래가 오가고 결국 ‘맛대가리 없는 죽엽청을 팔면서 술값은 더럽게 비싼’ 술집이 어딘지 대강이나마 유추 가능한 답글이 적혔다.
[혹시 내가 예상한 시전 중앙의 그 객잔이란 말인가!] [아님. 내가 보기엔 냄새나는 술하고 덜 튀긴 오리 파는 그곳 같음.]상황이 더욱 흥미진진하게 전개된 것은 누군가 예상한 ‘그 객잔’으로 지목된 곳에서 남긴 것으로 보이는 답글이 달리면서부터였다.
[나도 정말 맛없는 술을 파는 객잔에 대해서 아는데 시전 중앙의 객잔은 아니고 근처에서 덜 튀긴 오리 파는 허름한 집 같음.]누가 봐도 시전 중앙의 객잔 관계자가 어딘가를, 더 정확하게 말해서 ‘냄새나는 술하고 덜 튀긴 오리 파는 그곳’을 저격한 답글.
당연히 다음 날 또 다른 답글이 달렸다.
[덜 튀긴 오리를 파는 집은 모르겠고, 자리가 좋다고 술도 맛있지는 않더라.]점입가경!
이제 사람들은 시전중앙객잔파와 덜튀긴오리파는집파로 나뉘어서 열띤 토론을 벌였다.
나중에는 시전중앙객잔파가 덜 튀긴 오리 파는 곳으로 지목된 술집을 가 보겠노라고 선언했고, 반대로 오리집파 역시 시전 중앙으로 가 보자는 글이 달렸다.
답글 광풍!
처음에는 눈처럼 하얀 백지였는데 이제는 빈 곳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 뒤부터 백지만 붙으면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글을 써 댔다.
내용은 각양각색이었는데 남편의 정신 나간 술버릇에서부터 첩실로 속을 썩는다는 이야기, 논에 물 대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그렇다 보니 백지에 글을 적고 답글을 다는 건 일종의 놀이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 * *
“오늘도 오셨네요, 소공자님?”
“아하하하. 그냥 심심해서.”
당문의 가솔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대식당을 찾은 당찬일을 맞이한 건 윤 파파였다.
말이 좋아 파파지, 윤 파파는 이제 겨우 나이 오십을 갓 넘은 아줌마였다.
즉, 할머니라고 불리기엔 억울한 나이다.
그렇지만 윤 파파는 뛰어난 음식 솜씨와 남다른 지도력으로 하독처의 주방을 꽉 잡았다.
그녀의 통솔력이 얼마나 대단하냐 하면 본인보다 열 살 위의 숙수들도 벌벌 길 정도였다.
하지만 윤 파파는 당찬일에겐 어느 누구보다 다정했다.
“떡 좀 남은 게 있나 해서.”
사실 주방을 기웃거리며 음식 달라는 요구를 한다는 건 전생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전생의 자신이었더라면 차라리 굶고 말았을 터.
아니면 시전에 나가서 원하는 음식을 돈 주고 사 먹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당찬일은 이전의 자신을 잊은 것처럼 다소 뻔뻔하게 대식당의 주방을 들락거렸다.
단지 떡이 좋아서? 정말로 떡을 얻기 위해서?
“아, 떡이요? 잠시만 앉아 기다리세요!”
윤 파파가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답하자 당찬일이 일부러 식당의 구석에 앉았다.
‘어디 보자, 이제 곧 오시(午時: 오전 11시~오후 1시)니까 사람들이 식당으로 몰려들겠군.’
당찬일의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대식당의 문이 열렸다.
“아이고, 피곤해!”
“삭신이 노곤하다!”
“그보다 등가죽이 뱃가죽에 붙을 판이야!”
몰려드는 당문의 가솔들.
이들은 다양한 복색처럼 당문에서 맡은 일도 제각기였다.
독물을 키우는 사람, 약초를 캐는 사람, 암기를 만드는 사람, 자재를 들이는 사람, 물품을 관리하는 사람.
한마디로 당문의 모든 일을 하는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모였다고 봐도 옳다.
무슨 일을 하든 결국 다 먹고살자는 거니까.
끼니는 소중한 것이다.
왁자지껄, 떠들면서 들어선 수십 명의 사람들은 당찬일을 의식하지 못했다.
그들은 서둘러 빈자리를 찾을 뿐이었다.
“아, 씨, 이번에 들어온 목재가 영 아니야!”
“그럼 어쩔 건데? 반품하려고?”
“몰라. 자금부에서 일단 검사해 보고 판단한다는데 도저히 못 쓸 정도라면 그래야지.”
연신 투덜거리는 이들은 아마도 자재부 소속이리라.
“내가 어제 골골거리던 녀석 둘을 살렸다니까!”
“정말? 그럼 이제부터 너, 화타 소리 듣겠다?”
“그럼, 그럼. 내가 바로 독물계의 화타가 아니겠어?”
신이 나서 떠드는 사람들은 독물부에서 일하는 인물들일 테고.
저마다 기쁜 일, 힘든 일에 관해서 토로하던 이들이 음식이 나오자마자 만사를 제치고 수저를 들었다.
와구와구!
시장했는지 당문의 가솔들이 음식을 밀어 넣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당찬일이 누구도 모르게 작은 종이를 꺼내 암호를 기입했다.
[모월 모일. 목재 다수 입고. 건물 증축이나 개보수가 없으므로 다른 용도로 사용 예정.독물 관리에 바짝 공을 들이고 있음. 이는 크게 두 가지 이유로 나눌 수 있다.]
단순히 떡을 얻기 위해서라면 당문의 대식당이 아니라 자신의 부친이 우두머리인 하독처 주방을 찾는 편이 훨씬 용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찬일이 굳이 대식당을 찾은 이유는 당문이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려는 목적 때문이었다.
음식 먹는 것처럼 즐거운 순간은 없다.
또한 사람은 기분이 좋을 때 경계심이 풀어진다.
당찬일은 사람들의 이러한 심리를 노려서 점심마다 당문 대식당을 찾았던 거다.
[독물을 신경 쓰는 이유로는 첫째가 교미…….]여기까지 암호로 기입하던 당찬일이 누군가의 눈길을 느꼈다.
‘뭐지?’
당찬일이 고개를 들지 않고 눈동자만 굴려서 주변을 살폈다.
음식을 입에 욱여넣느라 정신없는 사람들. 간혹 요리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대화를 해서 보기 안 좋았지만 지금은 예절을 논할 때가 아니다.
어쨌든 그들은 자신을 주목하지 않으니까.
그렇다면 자신에게 시선을 던지는 자는 대체 누구일까?
‘저기다!’
자신의 반대편 구석에 앉아서 건성으로 젓가락을 놀리는 사내를 발견한 당찬일이 눈동자를 왼쪽 위로 모았다.
‘누구더라, 저 얼굴?’
잠시 생각하던 당찬일이 십 대 후반 소년의 정체를 기억 속에서 끄집어냈다.
‘방용규.’
방용규는 당문의 방계 혈족 중에서 가장 대접을 받는 방씨 일족의 후손이었다.
‘그래, 내가 저 녀석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 십사 년 전이었지.’
방용규에 관한 정보를 반추하던 당찬일이 곧 비릿하게 웃었다.
자신이 전생에서 숨을 거두기 일 년 전, 방용규는 겨우 네 살이었다.
그때 자신은 스물넷이었고.
하지만 이렇게 전생하고 보니 자신은 열셋, 네 살이었던 코찔찔이 방용규는 열여덟이다.
사실 자신의 나이는 서른여덟인데.
‘많이 컸네, 저놈.’
네 살 때의 얼굴로 열여덟 청소년이 되어 버린 사람을 알아본다?
일반적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어린아이의 얼굴은 변하기 마련이고, 특히나 유아 때의 윤곽은 청소년기로 접어들면서 변신이란 말이 어울리게 바뀐다.
그러나 당찬일은 네 살 때 한 번 본 것만으로 열여덟 살이 된 방용규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점이라든가 기타 신체적인 특정이 아니라 오로지 용모만으로.
이는 전생의 해결사 시절부터 지녔던 당찬일 고유의 능력이었다.
사람을 한 번 보면 그가 어떤 형태로 변하든 대번에 알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당찬일의 특수한 재주였다.
그래서 당찬일이 이서악과 만나서 어디서 봤더라, 하며 고심했던 거다.
자신은 한 번 본 이를 절대로 잊지도 않고, 그가 어떤 식으로 얼굴이 변하더라도 알아보는 재주가 있었지만 이서악만큼은 예외였으니까.
그렇다면 당찬일은 전생에 이서악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을까?
물론 이 순간 당찬일에게 이서악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어린아이에서 청소년으로 훌쩍 자란 방용규가 대견하다는 심정과, 반대로 자신은 작아졌다는 괴리감 사이에서 잠시 혼란스러웠다.
‘이것 참 묘하구나.’
씁쓸하게 고소 짓던 당찬일이 윤 파파가 다가서는 걸 느끼고 종이를 얼른 갈무리했다.
“아이고, 소공자님. 하필 점심때라 저놈의 인간들이 밀려와서 늦었지 뭐예요?”
작은 꾸러미를 내밀며 윤 파파가 미안해하자 당찬일이 서둘러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에요! 내가 때를 잘못 택해서!”
주방 사람들이 끼니때마다 얼마나 힘든지 안다.
하지만 정보를 얻으려면 점심 무렵이 최고라서 주방 식구들에게 늘 송구스러웠는데 도리어 사과라니.
“정말 괜찮아요! 내일 또 올게요!”
* * *
십삼 년 사이에 당문은 많이 변했다.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예전 전각이야 그대로였지만 새로 생긴 건물이 하도 많아서 당찬일은 어디가 어딘지 가끔 헤매야만 했다.
이건 기억력으로 어찌할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독약처라, 독약처.”
당문은 일원 이당 육부 구처로 이루어진 거대 조직이다.
그중 독약처는 당찬일의 부친이 수장인 하독처와 더불어 독물부 산하의 삼처 가운데 하나다.
또한 독물부는 당인의 누이동생이자 당찬일의 고모인 당숙정이 관할하는 조직이다.
“많이 컸네, 당숙정. 많이 컸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전각을 돌던 당찬일이 주춤 발길을 멈췄다.
전각의 모서리에는 누군가가 자신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방용규?’
우연인지 몰라도 방용규가 자신을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버티고 있어서 당찬일이 그를 일별했다.
‘그냥 어쩌다 같은 길이었겠지.’
방용규를 슬쩍 일별한 당찬일이 그를 스쳐 지나가려 했다.
“저…….”
우뚝.
걸음을 멈춘 당찬일이 고개를 돌렸다.
“혹시 네가 얼마 전에 깨어난 당인 처주님의 아들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