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24
당문전생 (123)
저 길과 하나가 되세요
“《만초요람》과 탈혼령까지. 당문낭군에게 너무 많은 걸 공개한 것이 아닌가?”
당진이 지부로 돌아가자 바람처럼 나타난 적무연이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감출 수 있는 게 있고, 숨긴다고 숨길 수 없는 게 있거든. 당거정 삼조의 유품은 후자였고.”
만약 당거정의 유품을 은폐하려 들었다면 당호민에게도 비밀로 붙였을 것이다.
“그래도…….”
“그러라며.”
당찬일이 심유한 표정을 지었다.
“나만의 세계에서 속히 발을 빼고 당문 속으로 스며들라며?”
당찬일이 되묻자 적무연이 오른쪽 눈을 찡그렸다.
“완전히 몸을 담그라면서?”
성도부 다관에서 당찬일에게 했던 충고가 당사자에 의해서 되돌아오자 적무연이 딴청을 부렸다.
“당문의 특찰부는 무시할 수 없는 집단이다. 이곳이 지부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지만 그들의 능력을 감안한다면 안심할 수는 없다.”
어라, 이제는 말머리를 돌릴 줄도 아네?
당찬일이 얄궂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적무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
“왜 그러지?”
“별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당찬일이 답하자 그를 멀거니 응시하던 적무연이 고개를 돌렸다.
“실없군.”
낯빛을 바꾼 적무연이 품에서 종이를 꺼냈다.
“네가 부탁했던 청부 말인데…….”
종이에서 눈을 뗀 적무연이 잘라 말했다.
“결론적으로 현재 마교가 어떤 형편인지 알 방법이 없었다.”
예상했다.
“마교는 무림맹 때문에 몰락한 게 아니야. 자멸한 거지.”
무림맹주 백리무극은 강대하던 마교를 무너트리면서 명성을 얻었다.
그렇다면 백리무극의 신화는 날조된 것일까?
“그건 속단이다.”
적무연이 손을 내저었다.
“백리무극은 마교의 숨통을 끊었다. 그건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사실이야.”
그런데?
“문제는 백리무극이 마교를 공격했을 때의 상황이다.”
적무연이 고개를 돌렸다.
“백리무극이 가일수하지 않았어도 마교가 알아서 무너질 상황이었느냐, 아니면 악재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느냐.”
적무연이 양손을 들었다.
“이것에 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거든.”
먼 곳으로 시선을 던졌던 적무연이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하지만 마교는 완전히 숨어 버려서 그들의 동태를 알 길이 없다.”
“아니.”
당찬일이 적무연의 말을 잘랐다.
“마교가 아무리 음지로 파고들었더라도 그들이 어찌 지내는지 알 만한 사람들이 적어도 여덟 명은 있어.”
“여덟 명이라고?”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적무연이 곧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당찬일을 바라보았다.
“설마 무림팔…….”
“잘 아네.”
빙그레 웃은 당찬일이 손을 내밀었다.
“유평월이 맡겼던 물건. 이제는 돌려줘.”
당찬일이 빚쟁이보다 당당하게 나오자 그를 빤히 응시하던 적무연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너란 녀석은…….”
“음?”
“아니다.”
고개를 저은 적무연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확인해라.”
적무연에게서 물건을 받아 든 당찬일이 그것을 살짝 열었다.
반짝!
물건이 달빛을 머금고 빛을 발하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당찬일이 적무연을 치하했다.
“지금까지 보관하느라 수고했어.”
“내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보다 정말로 유평월 대장의 직전을 이은 게냐?”
본인인데 직전을 이을 이유가 있나?
* * *
서안부 흥류문(興流門).
이곳은 서안의 외곽과 중심부의 경계로서 각 성의 성문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흥류문 밖에는 자잘한 홍루와 청루가 밀집해 있기에 사람들은 흥류문을 풍류문(風流門)이라고도 불렀다.
당연하게도 해가 떨어지고 흥류문을 배회하는 사람은 대부분 성인 남성이었다.
말 그대로 밤의 풍류를 즐기기 위해서.
“끼약!”
“가가(哥哥)! 놀다 가요!”
“오늘 밤은 월향이가 화끈하게 책임질게요!”
청루가 오밀조밀 모여 있는 흥류문의 뒷골목엔 오늘도 사내를 잡으려는 여인들의 외침이 쟁쟁했다.
“일곱 푼은 너무 센데? 그냥 닷 푼으로 합시다.”
“나오는 아가씨를 보고 말씀하시구랴. 막상 만나면 열 푼도 마다하지 않을걸?”
한구석에는 화대(花代)를 흥정하는 사내들과 포주들의 눈치 싸움이 나름 치열했다.
끈끈하고 농밀한 심야의 장터.
여인네들과 포주들 그리고 사내들을 일별한 당찬일이 청루가 밀접한 길을 따라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어맛, 꼬마 공자님?”
당찬일을 발견한 창기(娼妓) 하나가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놀다 가요, 꼬마 공자님!”
하지만 당찬일은 아무런 대꾸 없이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이봐요, 꼬마 공자님! 나 좀 보라니까.”
창기가 열심히 손을 흔들었지만 당찬일이 자신을 외면하자 곧 그에게 다가왔다.
스윽.
창기가 당찬일을 휘어 감으면서 교태를 부렸다.
“아잉, 놀다 가라니까.”
천천히 고개를 돌린 당찬일이 입을 떼려는데 창기가 선제적으로 말했다.
“화대가 없다고요? 돈이 문젠가? 정이 문제지!”
그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당찬일이 팔을 풀려고 했지만 창기는 더욱 농밀하게 안겨 들었다.
“아직 이런 거 할 나이가 아니라고요? 사랑하는 데 나이가 어디 있수?”
싸구려 분 냄새를 풀썩이며 창기가 열을 올리자 당찬일이 그녀를 살짝 밀었다.
“당신으로는 안 돼.”
“어마? 이제 보니 선수였구나?”
창기가 박수를 치며 간드러지게 웃음을 터트렸다.
“꼬마 공자님이 지금껏 얼마나 대단한 운우지락을 즐겼는지 몰라도 이년 앞에서는 조족지혈일걸요?”
팍!
창기가 치마를 걷어서 희멀건 두 다리를 드러냈다.
“서안부 남정네들 중에서 이년의 가랑이 맛을 한 번도 못 본 놈은 있지만 한 번만 본 인간은 없다니까?”
자신만만하게 웃는 창기의 다리를 물끄러미 응시하던 당찬일이 씨익 웃었다.
그의 웃음은 충분히 기묘했기에 당찬일이 자신에게 넘어왔다고 판단한 창기가 더욱더 몸을 밀착시켰다.
“이제 가요.”
“글쎄, 당신으로는 안 된다니까.”
또다시 당찬일이 자신을 가볍게 밀어내자 창기가 양팔을 벌렸다.
“풍류문에서 나만 한 년은 없다니까요? 대체 어떤 년을 찾는데요?”
그녀를 뻔히 응시하던 당찬일이 입술을 살짝 달싹였다.
“용파(埇婆).”
당찬일의 입에서 용파란 말이 튀어나오자마자 창기가 재빨리 주변을 돌아보았다.
놀라움, 반가움, 의혹, 기대…….
창기의 얼굴에 떠오른 감정은 무척이나 복합적이어서 한 가지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언제 그랬냐는 듯 창기가 다시 생글거리며 당찬일의 가슴을 콩콩 두드렸다.
“아잉, 이제 보니 향기가 넉넉한 꽃을 좋아하는 공자님이었구나. 그런 취향인지 몰랐네!”
까르르, 교소를 터트리며 당찬일을 이끈 창기가 골목으로 들어섰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골목으로 들어서자마자 창기가 접대성 웃음을 얼굴에서 말끔히 지웠다.
슥.
창기가 손을 내밀자 당찬일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그녀의 손바닥에 내려놓았다.
금비녀.
당찬일이 창기에게 건넨 건 고풍스러운 금비녀였다.
아홉 마리의 봉황 문양이 새겨진 비녀.
얼핏 봐도 고급스러운 비녀를 받아 든 창기가 골목 안쪽으로 몸을 감추었다.
잠시 후…….
다시 나타난 창기가 당찬일을 얼싸안으며 갖은 교태를 떨었다.
“포기해요. 그런 늙은 꽃 따윌랑 잊고 오늘은 이년과 운우지정을 나누자고요.”
당찬일을 잡아끈 창기가 골목 안쪽으로 들어섰다.
“저 길과 하나가 되세요.”
일변(一變)!
골목으로 들어서자마자 지금까지 천박하고 퇴폐적인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길의 끝을 가리키며 창기가 사막보다 건조한 어조로 말했다.
저 길과 하나가 되라…….
창기의 이야기는 비록 단순했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실로 간단치 않아서 당찬일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싱긋.
물처럼 흐리지만 심연처럼 깊은 웃음을 지으며 창기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그럼.”
인사 한 점 남겨 두고 창기가 총총히 사라지자 당찬일이 고개를 들었다.
‘역시 용파라는 건가.’
당찬일이 계속해서 언급하는 용파.
그는 과연 누구인가?
하늘가를 손으로 어루만지듯 훑어보던 당찬일이 눈동자를 돌려 창기가 가리킨 방향을 응시했다.
누가 보더라도 막다른 길.
골목 끝은 심연마저 집어삼킬 정도로 어두워서 조금의 달빛이나 별빛도 머물지 못했다.
‘참으로 외로운 곳이로군.’
골목도, 그곳에서 잠시라도 쉬지 못하는 달빛도, 별빛도.
그리고…….
완전히 막힌 곳으로 당찬일이 발을 들이자 골목의 끝은 거짓말처럼 그를 흡수해 버렸다.
아니, 당찬일이 막다른 길과 완벽하게 동화되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휘이잉.
당찬일을 빨아들인 막다른 길은 무성한 바람 한 줄기를 트림처럼 내뱉고 딴청을 부렸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오랜만이로군.’
어깨를 접어야 장정 한 사람이 가까스로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좁은 길을 걸으며 당찬일이 주변을 살폈다.
얼핏 봐서는 막힌 곳이었지만 놀랍게도 골목의 끝은 또 다른 길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길을 예전, 아주 오래전에 당찬일은 걸었다.
물론 그때는 당찬일이란 이름을 사용하지도 않았고, 당찬일의 신체를 가지지도 않았었다.
그때의 그는…….
“이녁을 찾은 분이 공자님이신가요?”
등 뒤에서 얼음장처럼 차갑지만 그만큼이나 친숙한 음성이 들려와서 당찬일이 살포시 눈을 감았다.
여전하시구려.
생각을 미뤄 두고 당찬일이 입을 열었다.
“그래요.”
당찬일이 담담한 응대를 하며 돌아서자 그의 눈으로 어떤 초상이 들어왔다.
화려한 금빛 비녀로 머리를 쪽 진 자그마한 노파.
그녀는 너무도 작아서 아직 다 자라지 않은 당찬일의 허리춤에 이를 정도였다.
미야옹―.
어디서 들려온 소리일까? 이곳은 당찬일과 아주 작은 노파밖에 없는데.
‘너도 잘 있었니?’
답은 노파의 품이었다.
노파의 품엔 암흑마저 빨아들일 정도로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안겨 있었다.
검은 고양이가 목청껏 외치자 당찬일의 입꼬리가 미미하게 흔들렸다.
‘그간 용파를 지키느라 수고했다.’
당찬일의 눈빛을 받은 검은 고양이가 꼬리를 수직으로 세워서 끝을 오른쪽으로 살짝 구부렸다.
검은 고양이의 꼬리 모양을 본 작은 노파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 녀석이 오늘따라 왜 이래?”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노파가 투덜거렸다.
“낯선 이를 보고서도 하악질은커녕 반기는 눈치가 아닌가?”
작은 노파가 검은 고양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다소 언짢은 기색을 드러냈다.
“최소한 미움은 받지 않나 보군요.”
당찬일이 이물 없는 미소를 짓자 작은 노파의 얼음장과도 같은 얼굴이 더욱 굳어졌다.
지나치게 여유롭다.
아무리 저 꼬마 공자가 비천대의 누군가에게 이곳에 관한 정보를 얻었다손 치더라도 너무나 평온하다.
언젠가 이곳을 겪었던 사람처럼.
이 골목은 작은 노파의 공간이다. 이곳에서만큼은 천하의 백리무극이라도 노파를 어쩌지 못한다.
그런데 노파의 세계를 아무렇지도 않게 활보하는 소년이 나타났다.
잠시 당찬일을 주시하던 작은 노파가 검은 고양이의 목을 긁었다.
“이녁을 찾아오신 이유가 무엇이요?”
노파가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당찬일이 눈동자만 돌려서 자신의 좌우를 살폈다.
어둠 속에서 자신을 노리는 십여 개의 칼날.
칼날들은 일이 틀어지면 언제라도 자신을 도륙 낼 기세로 번뜩였다.
물론 암중에서.
“내가 누구인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테니 곧바로 물을게요.”
당찬일이 노파를 직시했다.
“마교의 꿍꿍이속을 알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