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78
당문전생 (177)
너였구나. 사제
여전히 자애로운 웃음, 부드러운 표정. 하지만 무한 진인의 눈은 고드름보다도 차가웠다.
“내게 강제력을 행사하겠다는 게냐?”
“못 할 건 또 뭐요?”
도왕이 양팔을 벌렸다.
“오래전에 우리의 사이는 볼 장 다 봤는데 아직까지 사형제 간의 정리를 기대하는 거요?”
“아니지.”
무한 진인이 손을 내저었다.
“나도 네게 그런 고리타분한 감상을 바라지 않는다.”
촤―앙!
검을 빼 든 무한 진인이 입을 열었다.
“어디, 마음대로 해 보아라.”
크르르.
도왕도 거대한 칼을 칼집에서 꺼냈다.
“후회하실 텐데.”
거도를 비껴든 도왕이 씹어뱉듯 말했다.
“십 년 전에도 상대가 아니었는데 지금이라고 변할까?”
크게 한 걸음을 떼며 도왕이 선언했다.
“그럼 각오하시오.”
* * *
쾅!
역시 도왕이었다!
그의 칼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사방은 온통 도풍(刀風)으로 가득 메워졌고, 그가 일보를 내딛자 사위는 폭풍우가 몰아쳤다.
“크흠!”
뒤로 물러서며 무한 진인이 침음했다.
십 년 전에 비해서 또 한 단계 성장했다니.
이전에도 강했던 사제였다. 그의 무위가 얼마나 고강했느냐 하면, 무(無) 자 돌림의 사형제 중에서는 좀처럼 사제를 상대할 이가 없었다.
오죽하면 셋이나 연수를 하고서도 가까스로 동수를 맞췄을까.
그런데 사제는 또다시 강해졌다. 이전까지는 폭발력 면에서 단연 최강이었는데 이제는 극강이라는 말로도 부족함이 없을 지경이었다.
거기다…….
쾅!
물러서는 무한 진인을 쫓으며 도왕이 크게 발을 굴렀다.
콰지직!
정체 모를 예기(銳氣)가 지면을 뚫고 자신에게 엄습하자 무한 진인이 몸을 돌려 회피했다.
‘도순(刀筍)?’
도순이라고 했다. 도술(刀術)이 일정한 경지에 이르면 자신의 예기를 죽순처럼 땅에서 뽑아낼 수 있다고 전해진다.
자신은 반평생을 검술에 바쳤지만 아직까지 근처에도 이르지 못했는데 사제는 벌써 도순을 싹틔운다는 건가?
놀랍고 분해서 무한 진인이 인상을 찡그렸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낮을 밤으로 검을 닦고 열과 성을 다해서 수련한 자신에겐 찾아오지 않은 깨달음이 반 파락호와도 같은 사제에게 깃들다니.
무한 진인의 얼굴에 처음으로 인간적인 감정이 떠올랐다.
“그때와 같구나.”
툴툴 웃으며 무한 진인이 흙먼지로 얼룩진 소매 끝을 툭툭 털었다.
“그때도 너는 말도 안 되는 신력으로 나를 몰아붙였지. 당시의 너는 너무도 강대해서 당해 낼 도리가 없었다.”
먼 옛날 펼쳐졌던 비무.
장문인의 자리를 놓고 벌인 대결은 아니었지만 도왕과 무한 진인의 비무는 화산파 모든 문도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서열로는 무한 진인이 일 순위요, 무공으로는 도왕이 으뜸이었기에 둘의 대결은 초미의 관심사였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두 사람은 손을 섞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과는 일방적이었다.
“나는 변변한 초식 한번 내 보지 못하고 비무 내내 쫓겼지. 그만큼 네 강함은 압도적이었다.”
문제는 승패가 아니라 비무에 임하는 자세였다.
무한 진인은 화산의 대제자답게 비세(非勢)였음에도 불구하고 예의와 군자연함을 잃지 않았지만 도왕은 승기에 취해서 초패왕처럼 미쳐 날뛰었다.
그것이 원로들의 평이었다.
“지금도 똑같아.”
숨을 가다듬는 무한 진인을 주시하던 도왕이 다시 거도를 들었다.
“여전히 말꼬리가 길구려. 얼마 전까지는 사형의 간악한 속내를 미처 몰랐지. 만약 그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더라면 지금도 속아 넘어갔을 거요.”
도왕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가 이야기하는 무한 진인의 간악한 속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하지만 이제는 시정이 달라졌다오. 멀끔한 얼굴과 진중한 어조로 다른 이들을 기만할 수 있을지언정 나를 어쩌지는 못할 거란 말이오.”
척!
도첨으로 무한 진인을 가리킨 도왕이 씹어뱉듯 입을 열었다.
“어서 물건을 내놓으시오.”
“글쎄, 없다니까 그러는구나.”
“끝까지 이러기요!”
쿠르릉!
도왕이 기세를 불러일으키자 어마어마한 기운이 파생되었다.
입으로는 뻔뻔하게 거짓말을 읊으면서 표정으로는 세상 군자들을 전부 다 복속시킬 정도로 자애로운 표정이라니.
거기다 난처해하는 저 얼굴은 침이라도 뱉지 않으면 견딜 수 없으리만치 역겹다.
“좋소이다. 그럼 자발적으로 꺼내도록 만들어 주지.”
어른의 키만큼이나 장대한 도를 한 바퀴 빙그르르 돌린 도왕이 성큼 앞으로 나섰다.
“오늘 한번 기만의 끝을 봅시다.”
한때는 사랑하고 존경하던 사형이었다. 부모님과 사부님을 제외한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끼고 따랐던 사람이란 말이다.
그랬기에 배신감의 강도가 몇 곱절은 강했을지도.
“인정사정 봐준다면 사형의 낯짝에 덧씌워진 기만의 가면을 벗길 길이 없으니 이제부터 전력으로 갈 거요.”
쿠쿠쿠쿠―.
“물건을 건넬 손모가지 하나와 입만 있으면 그만이니 나머지 팔다리 중에서 한두 개 정도는 끊어져도 상관없겠지.”
실로 무시무시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나 사형제 간에 나눌 대화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러나 도왕의 선언은 진심이다.
그 정도로 몰아붙이지 않으면 한때의 사형은 끝까지 가식의 휘파람으로 만인을 농락할 테니까.
“이제 가오.”
오, 자가 끝나기도 전에 훌쩍 날아오른 도왕이 거도를 풍차처럼 휘둘렀다.
쾅! 쾅! 쾅!
도왕의 애병(愛兵)인 파벽도(破僻刀)가 울자 웃음기를 유지하던 무한 진인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저건 진짜다. 파벽도가 창로(蒼老)한 울음을 터트린다는 건 사제가 진심으로 싸움에 임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스르륵―.
무한 진인이 검을 중극으로 세우는 순간 도왕의 파벽도가 그에게 별가처럼 떨어져 내렸다.
쓔욱!
파벽도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병장기다. 그런데 도왕이 작심하고 그것을 휘두르자 고무처럼 크게 휘어지며 무한 진인을 향했다.
쾅!
“크흑!”
무한 진인이 도왕의 공격을 막았지만 거푸 다섯 걸음이나 물러설 정도로 손해를 보았다.
빙글!
허공에서 회전한 파벽도가 다시금 폭사되었다.
대낭아(大狼牙)!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도왕의 독문 도법!
거대한 늑대가 이를 드러내듯 대낭아는 모든 것을 찢어발길 위력으로 무한 진인을 향했다.
쾅! 쾅!
일반적인 수비식으로는 대낭아를 감당할 수 없어서 일단은 몸을 피한 무한 진인이 버럭 외쳤다.
“사문의 무학마저 버린 것이냐?”
“몸이 떠났으니 마음도 비워야 함은 당연한 노릇.”
파벽도를 회수한 도왕이 턱을 치켜들었다.
“어차피 화산의 알량한 검법은 사형의 몫이었잖소.”
“그랬나?”
무한 진인이 검을 축 늘어트렸다.
“그렇다면 나는 너에게 사문의 초심을 다시 들려주도록 하마.”
빠직.
또다시 무한 진인이 허위의 탈을 뒤집어쓰자 잠시 머물렀던 미련을 떨치려는 듯 도왕이 벼락처럼 나섰다.
“개소리는 집어치웁시다, 좀!”
콰르릉!
“그 알량한 사문의 초심 따위……!”
파벽도를 번쩍 치켜들며 도왕이 으르렁거렸다.
진정한 대랑처럼.
“내가 박살 내 주겠소!”
도왕이 앞으로 나서자 지지 않고 앞으로 나선 무한 진인이 검을 크게 휘둘렀다.
후두둑!
하늘에서 꽃이 떨어진다! 아니, 검이 떨어진다!
무한 진인의 검이 일순간에 불어나서 도왕에게로 쏟아졌다.
총 스물네 개의 검기가 자신에게 날아들자 도왕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낙매성우(落梅成雨).’
낙매성우는 이십사수매화검법의 열여섯 번째 초식이다.
이십사수매화검법은 화산의 초심으로서 너무나 어울리는 검법이라서 도왕의 가슴이 뜨거워졌다.
언젠가는 저것을 익히며 화산의 미래를 엿보았고, 자신과 사문을 동일시했었다. 자신이 흔들리더라도 사문만큼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기다려 주리라 믿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모든 가치가 달라지더라도 사문은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건 없었다.
가치도, 이상도, 꿈도……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다.
이십사수매화검법도 마찬가지. 한때는 절대적인 진리였지만 이제는 빛바랜 낙엽처럼 변했다.
그렇다.
절대란 없다.
“크아아!”
노호성을 내지르며 도왕이 낙매성우를 깨부수기 위해서 파벽도를 크게 휘둘렀다.
콰릉!
순식간에 박살이 나 버린 낙매성우.
‘역시!’
역시라니?
자신의 검초가 여지없이 바스러졌지만 무한 진인의 눈빛은 먹이를 발견한 독사처럼 요사스러운 빛을 발했다. 그러나 도왕은 이를 의식하지 못하고 파벽도를 빙글 돌렸다.
“알량한 사문의 초심으로는 나를 막아설 수 없을 거요.”
사자처럼 포효하며 도왕이 파벽도를 곧추세웠다.
우우웅―.
파벽도가 승려의 머리처럼 파르라니 빛을 발하다 도의 끝으로 이슬처럼 기운이 몰렸다.
쭈우욱.
도가 늘어난다!
상식적으로 금속이 자랄 수는 없으니 이러한 변화는 오로지 하나를 의미한다.
‘도강!’
검이나 도, 기타의 병장기를 사용하는 모든 무인이 꿈꾸는 최후의 단계.
무인들이라면 한 번쯤은 입에 올려 보았고, 꿈꾸었기에 본 적도 없으면서 괜히 친숙한 경지.
도왕이 도강을 뽑아내자 무한 진인도 자세를 바로 했다.
강기를 받아 낼 무공은 강기밖에 없다.
어설픈 깨달음이나 초식으로 비볐다간 즉시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가뜩이나 깊었던 무한 진인의 눈이 심연으로 파고들 무렵, 도왕이 움직였다.
쿵! 콰르릉!
천둥 벼락처럼 도왕의 초식이 떨어지자 무한 진인이 검 끝으로 세 개의 원을 그렸다.
쾅!
허공에 아로새겨진 세 개의 원이 삼재의 조화를 일으키며 자신의 거친 초식을 받아넘기자 도왕이 고리눈을 떴다.
“화산의 초심 운운하더니 결국 창궁우전검(蒼穹雨電劍)을 빼 들었구려?”
창궁우전검은 대외적으로 알려진 화산의 최후 초식이다.
물론 깊이 들어간다면 설중암향부동매화검법이 있겠지만 그건 말 그대로 꿈의 경지이니 창궁우전검이 화산을 대표하는 깨달음이라 하겠다.
조금 전에 도왕의 칼을 받아 낸 초식은 창궁우전검식 중 독보적인 수비검법인 삼성조화(三星造化)였다.
“네가 도강으로 나를 겁박하지 않았느냐?”
츠츠츠.
검강이 어린 검을 내리면서 무한 진인이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니 나도 별수 없었다.”
이 순간에도 가식적인 처연함으로 응대하는 무한 진인의 태도에 왈칵 성이 치밀어서 도왕이 이를 갈았다.
“창궁천추라도 나를 막지는 못할 거요.”
분노가 머리끝까지 이르면 도리어 차분해진다고 했던가.
도왕이 냉막한 음성으로 답하며 파벽도를 휘둘렀다.
카장!
일방적으로 밀리던 무한 진인이었는데 창궁우전검을 구사하고부터 놀랍게도 도왕의 공세를 근근이 받아넘기는 수준은 되었다.
그래 봐야 버티기였지만 이전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으니 창궁우전검이 절초라는 건 사실이었다.
쾅!
그 뒤로 네 차례의 공수가 오가고 도왕의 이마에서 굵은 땀이 한 줄기 흘렀다.
“내 이것까지는 쓰지 않으려 했거늘.”
이를 악물면서 도왕이 파벽도를 활처럼 당겼다가 내쳤다.
분명 직선이었는데 내쏘아지자 곡선이었으며, 받아 내니 올곧게 사라지는 기운. 한없이 상승하나 싶었는데 이미 내려와 있는 공세.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도왕의 강기가 자신의 전면을 휘젓자 지금까지 전전긍긍하던 무한 진인이 충혈된 눈을 희번덕거렸다.
“그 아이에게 깨달음을 전한 이는 다름 아닌 너였구나, 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