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3
당문전생 (23)
모자라진 않을 거다
“헙!”
하태평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어쩔 줄 몰라 하자 슬그머니 기어 나온 그의 망나니 친구들이 폭소를 터트렸다.
“푸하하핫!”
“하 점주가 꼬마한테 한 방 세게 먹었구먼!”
이들도 하태평처럼 부모 잘 만나서 호의호식하다 가게 물려받은 인물들인데 초록이 동색이란 말이 꼭 어울리는 개차반들이었다.
‘이 개자식을!’
부드득, 이를 갈며 화를 눌러 참은 하태평이 마지막 비단을 들자 당찬일이 고개를 저었다.
“아안 최고라면서 설마 이게 최상은 아니겠지?”
다시금 왁자지껄, 낄낄거리는 망나니 친구들.
“꼬마 손님의 배포 보소?”
“오늘 하 점주가 제대로 임자 만났구먼.”
우드득!
정말로 이가 부러질 만큼 이빨을 갈아붙인 하태평이 직접 일어섰다.
“오냐. 우리 가게의 진정한 특상품을 보여 주마. 대신 물건을 본 값은 톡톡히 치러야 할 것이야.”
열쇠를 챙겨서 창고로 향하며 하태평이 오광에게 일렀다.
“당장 애들 불러.”
창고로 향하는 하태평의 얼굴에 스산한 살기가 어렸다.
“감히 아안 땅에서 하태평이의 손목을 잡은 대가가 무엇인지 알려 주마.”
하태평이 가져온 비단은 한눈에도 지금까지 물건들과 비교를 거부했다.
“어떠냐!”
자신만만하던 하태평의 표정은 당찬일의 응대에 그대로 굳어져야만 했다.
“좀 낫군.”
비단의 감촉을 손끝으로 확인하던 당찬일이 고개를 들었다.
“그나마.”
이런 싸가지 없는 새끼.
……라고 하는 표정으로 당찬일을 응시하던 하태평이 손뼉을 딱 쳤다.
“자, 실컷 구경했으면 이제 꺼져.”
손등을 안에서 밖으로 내치며 하태평이 몸을 반쯤 옆으로 틀었다.
“내가 물건을 다 산다고 했을 텐데?”
“턱도 없는 소리. 이게 전부 얼마라고 생각하느냐?”
킬킬거리던 하태평이 고개를 갸웃거리다 문으로 향하는 당찬일을 불러 세웠다.
“이대로 가려고?”
이대로 가지 않으면?
뭐 어쩌라는 건가?
당찬일이 의혹의 시선을 보내는 순간 하태평의 뒤에서 열 명이 남는 장정들이 몰려나왔다.
“비단 구경한 값을 내셔야지.”
흉물스러운 미소를 짓던 하태평이 장정들에게 명령했다.
“잡아!”
우르르.
쏜살처럼 달려 나온 장정들이 무쇠 같은 팔뚝으로 당찬일을 붙잡았다.
장한들은 흑지주파(黑蜘蛛派)의 날건달들로서, 흑지주파라고 하면 이 동네에서 제법 알아주는 깡패조직이었다.
아미파의 승려들만 아니라면 누구와 붙어도 자신이 있다는 흑지주파.
그들을 동원했으니 하태평의 어깨가 으쓱해진 건 어쩌면 당연한 노릇.
“히히히.”
당찬일이 완벽하게 제압당했다고 판단한 하태평이 무릎을 굽혀 그와 눈을 마주했다.
“왜? 아까처럼 싸가지 없이 눈 처떠 보지그래?”
당찬일의 볼을 손바닥으로 툭툭 두드린 하태평이 그의 품을 거칠게 뒤졌다.
“어디 보자, 오?”
한참을 뒤적거리던 하태평이 당찬일의 허리 깊숙한 곳에서 화려하게 수놓인 금박 전낭을 찾고는 그것을 높이 치켜올렸다.
“이것 봐! 때깔 한번 죽여주는데!”
그가 의기양양하게 외치자 친구라는 작자들이 환호로 응답해 주었다.
“적어도 은자 한 냥은 들었을지 몰라!”
“은자 한 냥이면 우리 모두 코가 비뚤어지게 먹을 돈인데?”
생각하는 꼬락서니하고는.
초록이 동색이라는 말을 여실히 실천하는 친구들의 응원을 받은 하태평이 아무렇지도 않게 전낭을 열었다.
“자, 무엇이 나올까요? 오오, 은자가 한 냥에 두 냥에 석 삼에 너구리…….”
툭툭 떨어지는 은자를 보며 환호작약하던 하태평이 돌돌 말린 종이를 발견하고 그것을 펼쳤다.
“이거 뭐야?”
종이의 형식은 전표였는데 가액이 기입되어 있지 않아서 하태평이 몸을 돌렸다.
“이거 봐! 영락없이 가짜 돈일세! 이런 걸로 소꿉놀이하는 걸로 봐서, 똥 무게를 한껏 잡았지만 결국 어린애는 어린애였구먼!”
하태평이 당찬일을 조롱하자 친구란 작자들이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그렇지만 개중 한 사람은 안목이란 것이 있었다.
“이봐, 하 점주!”
“크헤헤헤, 응?”
“그거…… 그 전표…….”
“이거? 가짜 돈?”
“그거 암만 봐도…….”
말꼬리를 길게 끌던 안목만 있는 친구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백지 전표 같은데.”
쿠쿵!
백지 전표라니!
백지 전표는 소유자가 전표에 가액을 적으면 그만큼의 값어치를 지니는 환상의 화폐가 아니겠는가!
이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도깨비방망이!
그것이 바로 백지 전표다!
“설……마?”
저런 꼬맹이가 무슨 백지 전표를 들고 다니겠느냐며 입술을 실룩거리는 하태평에게 안목만 좋은 친구가 다가와서 꼼꼼히 설명했다.
“여기 문양은 천하전장 고유의 징표이고, 이곳은 가짜와 구분하기 위한 천하전장만의…….”
안목만 좋은 친구의 이야기가 끝나자 눈이 완전히 돌아간 하태평이 친구란 놈들을 불러 모았다.
“우리 이거 먹을까?”
“무슨 수로?”
“저놈…… 처리해 버리지, 뭐.”
하태평이 수도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자 친구란 작자들이 펄펄 뛰었다.
“아, 안 돼! 백지 전표를 들고 다니는 애라면 신분이 보통은 넘을 거야!”
“맞아! 잘못 건드렸다간 치도곤을 면치 못할 거라고!”
친구들의 말이 일리가 있었기에 잠시 고심하던 하태평이 이죽이죽 웃었다.
“그럼 삥을 뜯자.”
“어떻게?”
안목만 좋은 친구가 의문을 표시하자 하태평이 엄지를 거꾸로 구부려 자신을 가리켰다.
“내가 누구야?”
“자네? 하태평, 하 점주지.”
“그거거든.”
안목만 좋은 친구를 가리키며 하태평이 어깨를 쭉 폈다.
“다른 지방은 몰라도 아안 땅에서 하태평이가 못 할 일이 어디 있겠어?”
순간 친구들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정말이다.
아안 땅에서 하태평이 못 할 일이라곤 없었다.
지금까지는.
“어이, 꼬마.”
당찬일에게 다가선 하태평이 백지 전표를 그의 얼굴에 들이밀었다.
“이거, 네 거냐?”
“그래.”
“아니지.”
하태평이 백지 전표로 당찬일의 뺨을 툭툭 쳤다.
“이제부터 내 거야.”
“그건 강도질인데.”
당찬일이 무심한 시선으로 하태평을 직시했지만 그는 거리낄 것이 없다는 듯 낄낄거렸다.
“난 그래도 돼.”
뭐가 그리 좋은 걸까?
신이 난 하태평이 당찬일의 면전에 자신의 얼굴을 딱 붙였다.
“여긴 아안 땅이거든.”
전표로 당찬일의 좌우 뺨을 번갈아 치면서 하태평이 이죽거렸다.
“네가 아무리 잘나가는 벼슬아치의 자식이라 봐야 현령 대인의 자제분은 아니란 말이야. 고매하신 사천성주님과 연관은 더더욱 없고.”
하태평의 부친은 관리들과 친분이 두터워서 현령들 다수, 그리고 사천성주와도 식사를 가질 정도였다.
자연히 하태평은 현령들의 자제 그리고 사천성주의 가족 관계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네가 무림세가의 자제라면? 그마저도 상관이 없지.”
상호명이 적힌 깃발을 가리키며 하태평이 자신만만하게 중얼거렸다.
“우리 점포는 아미파와 관계가 깊거든. 아무리 물정 모르는 어린 녀석이라도 아미파 정도는 알 거다.”
“아미파.”
그렇다.
가게의 상호명이 적인 깃발에는 아미파의 상징적인 문양이 선명하게 수놓여 있었다.
이는 아미파를 대리해서 영업한다는 뜻이라 사천의 어떤 무림문파도 태평포목 인근에서 말썽을 부리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알았지? 그러니 이만 꺼져라.”
백지 전표로 당찬일의 머리를 내리친 하태평이 장정들에게 턱짓을 해서 당찬일을 끌어내라는 명을 내렸다.
“구경 값으로 이 정도면 약소하다고 생각해라.”
장정들에게 끌려 나가는 당찬일을 보며 하태평이 낄낄거리는 순간!
빙글!
양쪽 어깨를 틀어 장정들에게서 손목을 빼낸 당찬일이 몸을 숙였다.
“어어?”
일순간에 당찬일을 놓친 장정들이 허둥거렸다.
납작하게 몸을 굽혔던 당찬일이 좌우 장정들의 무릎 관절 부분을 안쪽으로 밀었다.
툭!
“어이쿠!”
강제로 무릎이 꺾인 장정들이 그대로 주저앉자 오른쪽 사내의 어깨를 밟으며 날아오른 당찬일이 왼쪽 사내의 머리를 손으로 짚었다.
빙그르르.
솟구치던 탄력을 이용해서 당찬일이 몸을 회전시키자 그의 발은 자연스레 풍차의 날개가 되었다.
퍼버벅!
“쿠엑!”
“커흑!”
아무리 소년이라도 회전력을 이용해서 발을 내지르면 장정들을 잠재우기에 충분하다.
통상적으로 발은 손보다 세 배 이상 강한 힘을 발휘하니까.
일반인도 그럴 진데 당찬일의 발이라면?
그의 발에 얻어맞은 장정들이 고목나무처럼 쓰러지자 화들짝 놀란 하태평이 길길이 날뛰었다.
“저 새끼 잡아, 저 새끼!”
하태평이 손가락질하자 뒤에서 대기하던 장정들이 우르르 뛰쳐나갔다.
쾅!
이를 기다렸다는 듯 당찬일이 발을 구르자 나무 바닥이 쫙 갈라지며 장정들의 전면으로 쭉 나아갔다.
파바바박!
나무 바닥의 균열과 함께 비산되는 나무토막들이 하나하나 암기가 되어 달려들던 장정들을 노렸다.
“컥!”
“헉!”
나무 비침을 전신에 맞고 고슴도치 신세가 된 장정들이 데굴데굴 굴렀다.
“으으으!”
“아이고!”
단 세 수!
세 수만에 열 명이 넘는 장정들을 굴복시킨 당찬일이 돌아서며 턱을 들자 망나니 친구들이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으아아악!”
“우, 우리는 아무런 말도 안 했어요!”
나이 서른에 가까운 장한들이 열세 살 먹은 소년에게 하소연하는 광경은 썩 보기 안 좋았다.
하지만 망나니 친구들은 하태평을 곁눈질하며 자신들의 안위를 돌보기에 바빴다.
그만큼 당찬일이 보여 준 단 세 수는 충격적이었다.
“어어어.”
당찬일이 망나니 친구들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고 꿀 먹은 벙어리처럼 괴상한 음성을 내지르는 하태평에게로 다가섰다.
“이거.”
당찬일이 하태평의 손에 들린 전표를 검지와 중지를 이용해서 낚아챘다.
“으악!”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던가?
당찬일의 손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하태평이 벌러덩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런 그를 한심하다는 듯 내려다보던 당찬일이 백지 전표를 휙 내던졌다.
살랑살랑.
나자빠진 하태평의 배에 떨어진 백지 전표에 눈도 주지 않고 당찬일이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약속대로 가져라.”
“으으으…….”
겁에 질린 하태평을 외면하며 몸을 돌린 당찬일이 피식 웃었다.
“물론 공짜는 아니야.”
바닥에 나뒹구는 최고급 비단을 집어든 당찬일이 그것들을 갈기갈기 찢기 시작했다.
쫙! 쫙! 쫙!
기세 좋게 비단들을 찢어발긴 당찬일이 마지막 천 쪼가리를 하태평의 발치에 던졌다.
“넝마값으로 모자라진 않을 거다.”
삽시간에 난장판이 되어 버린 가게를 나서는 당찬일을 가리키며 하태평이 고래고래 악을 썼다.
“이 새끼야! 넌 사람 잘못 건드렸어! 우리 집이 어느 문파에 옷감을 대는 줄 알아!”
어딘데?
“천하제일가다, 천하제일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하태평이 절규했다.
“대당문이란 말이야! 넌 이제 숨을 곳이 없단 말이다!”
우뚝!
발길을 멈춘 당찬일이 조용히 반문했다.
“당문?”
“그래, 당문! 우리 아버지는 당문의 내당주님이신 당문패왕, 당암 대협과 막역하다고! 넌 이제 죽은 목숨인 줄 알아, 이 어린놈의 새끼야!”
하태평이 피처럼 침을 튀겨 가며 고함을 지르자 주렴을 걷던 당찬일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당암이라.”
쫙!
주렴을 소리 나게 걷은 당찬일이 가게를 나섰다.
“그것 재미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