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34
당문전생 (34)
늦었다
퍽!
으드득.
너무도 고통스러웠는지 당찬일이 부서져라, 어금니를 물었다.
“훌륭해. 어느 조직인지는 모르지만 이 나이에 이런 통증을 감내하다니.”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표정을 짓던 오십사몽이 다시 손을 들어 올렸다.
뻐억!
“큽!”
몸을 부르르 떨던 당찬일이 고개를 푹 숙였다.
“벌써 실신한 건가?”
실망스럽다는 투로 고개를 저은 오십사몽이 당찬일에게 다가섰다.
“이제 시작인데 말이야.”
“그러게.”
천천히 고개를 들며 당찬일이 히죽히죽 웃었다.
“시작이 반이라던데, 이 정도라면 나머지 반도 영 시원치 않겠는걸?”
이죽거리는 당찬일을 매섭게 노려보던 오십사몽이 턱을 문질렀다.
‘정말로 대단해. 대관절 어느 조직이기에 이런 놈을 키웠지?’
속내를 감춘 오십사몽이 손을 놀리려는 순간 문이 열렸다.
“그냥 포를 뜨면 술술 불 거라니까요.”
창고로 들어선 이는 삼십 대 중반의 사내였는데, 놀랍게도 당찬일과 구면이었다.
그는 당찬일을 알아보지 못했겠지만.
‘시전에서 노리개를 팔던 사람이 아닌가?’
당찬일만의 특이한 능력인 한 번 대한 이는 잊지 않고, 그가 어떤 형태로 변한다 해도 알아차리는 능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
시전에서 노리개를 팔던 이는 너무나 평범한 용모라서 이곳 토박이가 아닌 이상 기억하기 어려웠다.
뒤이어 등장하는 사람들.
“아직도 자백을 받지 못했나요?”
“저한테 맡겨 주시면 일각도 지나지 않아 술술 불게 만들겠습니다.”
이들 모두 이 마을에서 행상이나 구걸, 또는 잡일을 하던 인물들이었다.
특징이라면 특징은 모두가 지독히 평범해서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
‘그렇군.’
이들은 오십사몽과 더불어 마을에 잠입한 백일야의 조직원들이었다.
백일야의 조직원들은 이년 전에 오십사몽을 따라서 마을에 들어온 후, 골목길의 빈촌에 자리를 잡았다.
한마디로 골목길의 빈촌 자체가 백일야의 사천 분타가 되었다는 얘기다.
변설자들의 시신을 처리했던 기이한 현상의 정체.
오십사몽을 밀어붙이던 당찬일을 옭아맸던 수많은 손의 정체.
‘이곳 자체가 백일야의 일부였다?’
살짝 놀랐지만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당찬일이 모습을 드러낸 이들을 곁눈질했다.
분이며 잡다한 화장품을 파는 평범한 아낙.
점심 무렵이면 객잔 주변을 오가며 손을 벌리던 거지.
마을의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나서서 인심을 얻은 건실한 청년.
해 질 무렵부터 흑점을 돌아다니면서 큰손들에게 안마와 차를 대접해서 서너 푼의 돈을 챙기던 도박중독자.
이렇듯 흔하디흔한 마을의 구성원이 백일야의 조직원들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마을 자체를 잠식하다니.’
어찌 보면 획기적인 백일야의 일 처리 방식에 당찬일이 조금은 놀랐다.
“오십사몽은 뒤로 빠지시오.”
“이제부터는 우리가 저놈을 상대해 주지.”
뿌드득.
평범한 일상 속에 철저히 자신을 감추었던 백일야의 청부업자들이 손가락 마디를 꺾으며 꽁꽁 숨겼던 흉폭한 성정을 드러냈다.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거지 역할을 하던 중년인이 당찬일의 앞에 우뚝 섰다.
“우리 백일야에 관한 정보를 어디서, 누구에게서 들었느냐?”
당연히 당찬일은 답하지 않았다.
뻑!
당찬일의 뺨을 후려친 거지가 그의 입을 타고 흐르는 한 줄기 피를 무심히 지켜봤다.
“고집은 더욱 많은 피를 부르지. 그래, 어디까지 버틸 수 있나 보자.”
벌겋게 달군 쇠몽둥이를 흔들던 거지 중년인이 당찬일의 가슴에 그것을 가져갔다.
치이익.
“읍.”
생살이 지져진다는 건 참으로 고통스럽다.
당찬일도 통증을 이기지 못하고 미약한 신음을 토했다.
그러나 그뿐, 당찬일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이는 고문을 가하는 쪽도 마찬가지.
살이 타는 고약한 냄새가 창고 가득 들어찼지만 백일야의 구성원들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훈련이 잘 되었다는 걸 자랑하고 싶다는 건데.”
거지 사내가 쇠몽둥이를 다시 당찬일의 가슴에 대려는 순간, 이를 지켜보던 누군가 나섰다.
“잠시만.”
거지를 제지한 이는 집집마다 방문해서 마을 여인들에게 분을 팔던 떠돌이 아낙이었다.
“어엿한 꼬마 공자님께 거친 방식을 사용하면 쓰나.”
아낙이 곡옥 형태의 노리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당찬일에게로 다가왔다.
“잘 봐요.”
규칙적으로 흔들리는 곡옥을 당찬일에게 내민 아낙이 주문을 외듯 속삭였다.
“더 이상 고통받을 필요 없어요. 모든 걸 놓고 편안해지는 거예요.”
아낙의 귀띔을 들은 당찬일의 고개가 천천히 숙여졌다.
“점점 편안해지네요, 점점 더…….”
최면이 먹혔다고 판단한 여인이 당찬일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공자님은 어디서 왔나요?”
모진 매질 뒤에 찾아든 따사로운 손길이 고마웠을까?
고개를 숙였던 당찬일이 머리를 천천히 들면서 화답했다.
“치워.”
“풉!”
당찬일이 잘라 말하자 도박중독자와 건실한 청년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 새끼!”
모멸감에 얼룩져 얼굴이 새빨개진 아낙이 벌떡 일어섰다.
“죽어 봐라, 어린 새끼야!”
짜아악!
아낙이 채찍을 휘두르자 당찬일의 가슴에 한 가닥 혈선이 아로새겨졌다.
“죽어! 죽어!”
짜악! 짜아악!
미친 사람처럼 아낙이 채찍을 휘둘렀고, 당찬일의 상의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넝마로 변했다.
그렇지만 당찬일의 입에선 비명은커녕 희미한 신음 소리 하나 터져 나오지 않았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었는데도.
“계속 개긴단 말이지?”
어깨를 들썩이며 숨을 몰아쉬던 아낙이 채찍을 던졌다.
“끝장을 내 주마.”
그녀가 품에서 시퍼런 칼을 꺼내자 도박중독자 역할을 했던 사내가 아낙의 손목을 잡았다.
“진정해라. 우린 녀석에게서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놔.”
아낙이 독기를 뚝뚝 흘렸다.
“이번 건에서 내 역할이 얼마나 컸는지 알면 막지 마.”
둘이 팽팽하게 대치하자 방관하던 건실한 청년 역의 사내가 중재에 나섰다.
“우리가 언제부터 누구의 비중을 따져 가면서 일을 했나? 칠십이몽의 말대로 아직 놈의 숨통을 끊을 계제가 아니니 칠십오몽은 참아.”
아낙, 칠십오몽이 건실한 청년을 홱 돌아보았다.
“칠십칠! 여태까지는 비중을 따지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이번 건만은 다르다는 걸 몰라?!”
“허.”
“공헌도로나 노력 면으로 따져도 너희 전부는 나와 비교조차 할 수 없어!”
번뜩!
당찬일의 눈이 빛났지만 백일야의 일원들은 신경전을 벌이느라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너희들이 한가로이 취객이나 조종할 때, 나는 이 동네 여편네들을 상대했다고! 그게 얼마나 고역이었는지 알기나 하는 거야!”
아낙, 칠십오몽이 짜증을 부리자 당찬일이 남몰래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어떻게’가 설명되는 순간이다.
기루에서 변설자 몇몇이 입을 놀린다고 해서 마을의 민심이 통째로 이반되진 않는다.
관현 주민들의 지능이 다른 마을 사람들보다 현저하게 낮다면 모를까.
하여 당찬일은 보다 근본적인 무엇이 이 동네의 여론을 움직였을 거라 판단했다.
‘그렇지만 이유가 베갯머리송사일지는 생각해 보지 못했다.’
베갯머리송사란 잠자리에서 아내가 남편에게 바라는 바를 속살거리며 청하는 것을 일컫는다.
황실에서도 어여쁨을 받는 후궁들이 천자의 인사나 정책을 조종하는 경우가 다반사일 정도로 베갯머리송사는 남정네들에게 치명적인 수단이다.
‘저들의 수법은 알았다. 이제 남은 건 하나.’
왜?
백일야는 이번 건을 의뢰받은 제삼자일 뿐,
청부자는 무엇 때문에 관현 사람들이 청성을 등지도록 사주했던 걸까?
대체 뭘 얻기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백일야의 구성원 가운데 최소 열 명 이상을 이 년이라는 기나긴 시간 동안 징발하는 대규모 계획을 수립했던 것일까?
동원 기간과 인원수만으로도 천문학적인 청부 비용을 지불했음이 틀림없을 텐데.
“그만.”
당찬일과 겨루었던 화복 사내, 오십사몽이 옥신각신하는 조직원들을 중재했다.
“자칫 잘못하다간 일이 틀어질 수도 있는 위기다. 이런 비상시기에 우리끼리 자중지란을 일으킨다면 청부는 물 건너갈 것이다.”
아낙과 건실한 청년을 번갈아 보던 오십사몽이 무미건조하게 중얼거렸다.
“이런 개고생을 하고도 땡전 한 푼 못 챙길 거라는 소리다.”
이 년이란 시간이 물거품으로 날아갈 수 있다는 오십사몽의 말에 아낙과 건실한 청년 그리고 도박중독자 역할을 하던 이들이 몸을 굳혔다.
“논공행상은 백로(白露)께서 처리하실 것이야.”
백로.
드디어 언급된 백일야의 수뇌급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별호.
이십사절기 가운데 가을의 마무리를 담당하는 백로가 이들의 수뇌부 가운데 하나인가보다.
“알겠소.”
건실한 청년이 한발 물러서자 도박중독자 역할을 하던 이도 수긍의 빛을 띠었다.
하지만 아낙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들은 이번 청부를 쉽게 접지 못할걸요?”
아낙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턱을 들었다.
“청성을 구파에서 몰아내는 것으로 무림맹 내에서 그들의 입지를…… 헉!”
자신의 분석을 내놓던 아낙이 돌면 당황하고, 오십사몽의 얼굴에 낭패의 기색이 떠올랐다.
“칠십오몽…….”
오십사몽이 나지막이 으르렁거리자 아낙이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아, 아니, 이건 그저 일상적인…… 추론에 불과……!”
변명을 늘어놓는 아낙을 외면하며 오십사몽이 무심하게 손을 내쳤다.
서걱!
툭.
입을 벌린 상태 그대로 몸통과 분리된 아낙의 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데굴데굴.
바닥을 굴러다니던 아낙의 수급이 당찬일의 발치에 이르러서 멈춘 건 단지 우연일까?
청부자에 관해서는 아무리 사소한 정보라도 언급하지 않는다.
이건 청부업계의 불문율이다.
“철수한다.”
“예?”
“그저 말실수인데, 그것 하나로 우리 전체가 철수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소이까?”
건실한 청년과 도박중독자 역할을 담당했던 사내가 미약하게 반항하자 오십사몽이 몸을 돌렸다.
“말은 마음의 거울이라고 했다. 이 멍청이가 독자적으로 행동했으니 무슨 이야기를 어찌 싸지르고 다녔을지 알 수가 없지 않은가.”
두 사람을 직시하며 오십사몽이 단도에 맺힌 피를 닦아 냈다.
그 순간이었다.
“돈보다 조직이라.”
지금껏 침묵으로 일관하던 당찬일이 중얼거리자 모두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조직의 실체가 드러났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서면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당찬일이 백일야의 수칙을 읊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백일야답군.”
침착하면서도 냉정한, 그래서 지금의 상황을 한걸음 떨어져서 보는 자의 말투.
지금까지 모진 고문을 받던 소년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어조로 당찬일이 현재의 상황을 논하자 오십사몽과 나머지 백일야가 서로에게 눈길을 던졌다.
“하지만…….”
입술을 타고 흐르는 혓바닥으로 핥은 당찬일이 선언처럼 중얼거렸다.
“늦었다.”
쾅!
밖에서 무언가 박살 나는 굉음이 들리자 백일야 구성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뭐지?”
“무슨 일이야?”
콰앙! 쾅!
“으아악!”
“커헉!”
더욱 거세지는 폭음과 비명 소리!
자신들의 비밀 소굴에 커다란 변고가 발생했음이 틀림없다!
“에잇!”
거지와 도박중독자 그리고 건실한 청년이 앞다투어 뛰어나가자 오십사몽이 당찬일의 멱살을 잡았다.
“무슨 수작을 부린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