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mporarily Closed for Work Reasons RAW novel - Chapter (206)
그것이야말로 악몽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끼는 자괴감이 절망이 나를 집어삼켰다.
나는 신도 아니다. 멍청하고 얼빠진 본체 놈 이하의 버러지다.
-생각보단······ 시시하군······ 지구의 신······.
그때 박살난 내 파편 위에서 날 비웃던 조커 가면의 음성이 떠올랐다.
까드드득!
그놈을 생각하자 부서질 듯이 이가 갈렸다.
“감히 내가 시시하다고?”
순간, 들끓는 분노가 자괴감을 집어삼켰다.
비겁하게 날 기습한 그놈은 분명 상급 신과도 맞먹을 신력을 가진 놈이었다.
하지만, 만약 정면으로 정정당당하게 승부했다면 절대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악신 타이틀 ‘잔혹한 학살자(A)’ 가 활성화합니다.
고오오오!
짙은 살기를 머금은 칠흑 같은 신력이
조커 가면은 대체 누구일까?
내게 신의 제전을 건 벌레 황제 놈? 아니면 원한을 가진 ‘강식과 기만의 야수’나 ‘심연 늪의 지배자’ 인가?
아니.
그놈이 누구라든 아무래도 상관없다.
네놈의 정체가 무엇이든.
“죽인다. 반드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놈은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것이다.
나는 본체 놈의 육신을 일으켰다. 원래 내 몸이기도 한 이상 어색한 점은 없었다.
드르륵!
나는 서랍 속에 보관해 둔 목함을 꺼냈다.
우우웅!
목함 안에는 중식도에서 이제는 마치 쿠쿠리 단검처럼 폭이 넓은 칼날을 가진 검으로 진화한 묵빛의 검이 있었다.
“천마, 네가 날 도와줘야겠다.”
나는 오랜만에 천마를 허리에 찼다.
그동안 나약한 인간들을 상대하느라 너무 오만했다.
하지만, 더 이상 내 사전에 방심은 없다.
띠링! 띠링!
그때 다시 갓메이커의 알람이 울렸다.
대체 뭘 하고 있기에 이렇게 쉴 새 없이 알람이 울리나 싶어 화면을 흘깃 바라보았는데.
-이것은 단순한 영화가 아니라, 신화로 남을 작품이다!
-용사 일호와 그의 수호신! 1인 2역을 완벽히 소화한 유일신의 화려한 액션과 감동의 연기! 전 우주가 극찬!
-대우주 제국의 여황 에스메랄다님의 실화를 담은, 전 우주의 심금을 울린 스페이스 러브 스토리! 벌써부터 차기작에 대한 문의가 폭주!
-유일신, 그는 영화의 신인가!
“와아아아! 유일신 님, 너무 멋져요!”
“밀크웨이 빛깔 유일신!”
평론가들의 극찬과 별을 가득 뒤덮은 수억에 이르는 외계인들의 박수와 함성이 우레처럼 울려 퍼졌다.
저벅저벅.
턱시도를 차려 입은 본체 놈이 허공에 놓인 광학 계단을 밟으며 화려한 우주 전함의 단상으로 올랐다.
슈욱! 슈우욱!
-용사여, 어서 에스메랄다를 구하거라! 나 유일신이 너희를 수호하리라!
-조금만 기다리시오! 공주! 유일신 님께서 나와 함께하시는 한, 나 용사 일호는 불패다! 근유우우우욱!
하늘에서는 파괴신의 괴수들과 맞서 싸우는 녀석과 일호의 액션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포토샵을 백만 배 쏟아부은 것처럼 미화되고 멋지게 각색된 것이 도무지 현실성이 없는 쓰레기 영상이었다.
단상 위에 오른 본체 놈이 전함 아래 가득 모여 있는 외계인들을 향해 말했다.
-시사회장을 빛내 주기 위해 전 우주에서 와 주신 사랑하는 관객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처음으로 영화를 찍는 거라 너무 힘들었습니만, 드디어 완성되다니 감개무량하네요. 흑흑! 이 영광을 저를 이끌어 주신 우리 감독님과 제 가족, 사랑스러운 조카 성연이에게 바칩니다!
마치 칸 영화제에서 수상하기라도 한듯 눈물까지 글썽이며 연설을 하고 있는 본체 놈을 보고 있자니 한심해서 나도 모르게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대체 넌 뭘 하고 있는 거냐······.”
나지만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 놈이다.
“뭐 그래, 넌 거기서 놀고 있어라.”
네가 돌아오기 전에 내가 당한 이 수모를 갚아 주지.
정체 모를 그 조커 가면 놈을 찢어 죽이고 내가 세 명의 신들 중에 최강이라는 것을 증명하겠다.
덜컹! 쾅!
그렇게 결심하며 갓메이커를 품에 갈무리하고 있을 때.
“자까님! 계십니까!”
고함과 함께 현관문을 박차며 안으로 뛰어 들어오는 중년 남성이 있었다.
“역시 집에 있었군! 이 망할 자까 놈아! 전화도 안 받고 잠수를 타다니! 대체 원고는 언제 줄 거냐!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누군가 했더니 담당 놈이었다.
놈이 흥분한 코뿔소처럼 내게 달려들며 멱살을 쥐려 했다.
나는 혀를 차며 놈을 노려보았다.
“지금은 너와 놀아 줄 시간이 없다.”
“유, 유일신 작가님······?”
고오오!
숨이 막힐 것처럼 농밀한 어둠의 신력을 뿜고 있는 내 모습에 담당 놈이 식은땀을 흘리며 우뚝 멈췄다.
나는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일단 연재는.”
“여, 연재는요?”
“일신상의 이유로 잠시 휴재한다고 해!”
나는 조커 가면을 떠올리며 부득 이를 갈았다. 넌 죽인다. 반드시.
“스킬 공유 최봉식, ‘공간의 지배자.’”
슈욱!
“허어억! 귀, 귀신이다!”
기겁하며 주저앉는 담당 놈을 남겨 두고 내 신형이 사라졌다.
내가 공간 이동한 곳은 바로 헌터 협회였다.
바로 아프리카까지 공간 이동할 수도 있었지만, 약 1만 킬로나 떨어진 그곳까지 한 번에 공간 이동하는 것은 신력의 소모가 컸기 때문이다.
상급 신격인 조커 가면 놈을 죽이기 위해서라도 힘을 아낄 필요가 있다. 그래서 헌터 협회에 설치되어 있는 포털을 통해 아프리카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슈우욱!
협회의 트레이닝 룸에서 TV를 보고 있던 허저가 갑자기 나타난 날 보더니 휘둥그레 커진 눈으로 달려왔다.
“앗, 일신 샘? 왜 여기 계세요? 헌터워 본선은 어쩌시고요!”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냐.”
“중요하지 않다니요! 이대로 가면 탈락한다고요! 벌써 3연패예요!”
“뭐? 그럴 리가?”
내가 없더라도 한국 팀에는 쓸 만한 헌터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었다.
특히 성미나는 S급이지만, SS급에 준하는 실력자기도 하고 말이다.
“정말이에요, 샘! 화면 좀 보세요!”
허저가 가리키는 TV에서는 헌터워 본선 경기가 생중계 되고 있었다.
-하하하! 형편없군! 이 따위 실력으로 헌터 강국이라 자부하다니 우습구나! 코리아!
짐승처럼 포효하는 황금 갑주의 거인 아레스와 적발의 남자가 피투성이가 된 채, 들것에 실려 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바로 화염술사 백유현이었다.
‘저 백유현이 졌다고?’
나도 한 번 상대해 본 적이 있는 백유현은 S급 중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실력자다. 하지만 그런 백유현을 상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레스의 몸에는 티끌만 한 상처도 보이지 않았다.
아레스가 콜로세움에 있는 백만 관객들을 향해 마치 고대의 검투사처럼 도끼와 원형 방패를 들며 외쳤다.
-모두 보아라! 나 아레스 레후가 최강의 헌터다!
-와아아! 아레스 레후!
-전신의 재림! 아레스 레후!
그의 이름을 부르는 관객의 외침이 폭발할 듯 울려 퍼졌다.
마치 신께 바치는 신앙 같은 함성이.
“호오.”
내 입가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어렸다.
* * *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콜로세움.
[헌터워 64강전 제2조 1경기경기 룰 – 5인 출전 승자 승 방식
그리스 vs 대한민국
현재 스코어 3 : 0
그리스 대표 헌터 : 아레스 레후 (3연승 중) ]
“파죽의 3연승! 3회전 경기도 역시 그리스 팀의 승리입니다! 과연 전신 헤라클레스의 재림이라 불리는 아레스! 그 실력은 그야말로 압도적!”
“와아아아! 그리스의 영웅 아레스!”
흥분한 사회자와 관객의 함성에 호응하듯 눈부신 황금 갑주를 뽐내며 아레스가 힘차게 외쳤다.
“내가 최강이다!”
오만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지만, 혼자서 벌써 한국의 헌터를 셋이나 물리친 그는 그럴 자격이 있었다.
“며, 면목 없군······.”
피투성이로 들것에 실려 온 백유현이 침중한 표정의 갈중혁에게 말했다.
“굉장한 마갑이다. 내 능력이 전혀 통하지 않아······. 쿨럭쿨럭!”
“괜찮다. 치료에나 전념해라.”
투기장 밖의 벤치에 앉아있던 봉식이가 불안한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레스, 저 그리스의 거인 놈은 생각보다도 더 괴물이었다.
벌써 혼자서 한국 헌터를 세 명이나 패퇴시킨 것이다.
‘제길! 설마 베테랑인 백유현까지 지다니!’
설마 저놈과 싸울 일은 없을 것이라고 여겼지만, 상황이 영 좋지 않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유일신의 갑작스러운 실종이 계기가 되었는데.
성미나 자매를 포함해서 신유, 데스나이트 하데스, 심지어 보결인 검귀까지 그를 찾겠다고 경기를 결장했던 것이다.
덕분에 한국 헌터 팀의 주력이 사라졌다.
‘대체 그놈이 뭐라고 경기를 결장한단 말인가! 그 죽여도 죽지 않을 놈이 뭐가 걱정된다고!’
봉식이가 불안하게 탁탁탁 다리를 떨었다.
1회전에 출전한 건, 릴리라는 예명으로 알려진 세계적인 모델 고명희였다.
명희는 서큐버스의 피를 이은 매혹안으로 아레스에게 매혹을 걸려고 했지만, 저 짜증나는 황금 갑옷에는 그에 대한 방비도 되었는지 그녀의 능력이 통하지 않았다.
당연히 패배했다.
2회전은 박권이라는 이름의 나름 헌터계에서 10년째 명성을 날리고 있는 S급 무투 계열의 헌터였지만, 아레스의 공격에 3분도 버티지 못했다.
그리고 3회전.
믿고 믿었던 백유현이 출전했지만, 지금 저렇게 피투성이 꼴이 되어 실려 가고 있었다.
“자, 그럼 갈중혁 감독! 그리스 헌터 아레스에 맞설 네 번째 출전할 한국 헌터 선수를 선발해 주십시오!”
사회자의 재촉에 갈중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할 수 없군.”
봉식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능도 통하지 않는 마갑으로 무장한 저 괴물 거인 놈을 상대할 자는 그가 생각해도 이제 감독이자 선수인 강화계 헌터 갈중혁밖에 없었다.
그라면 저 괴물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스티브 최, 부탁한다.”
“헉, 내, 내가요?”
갑작스러운 그의 호명에 봉식이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갈중혁이 최봉식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너만 믿겠다. 부디 한국 헌터의 자존심을 보여다오.”
“아, 아니! 잠깐만요!”
동시에 전광판에 네 번째 한국 대표 헌터 ‘스티브 최’의 이름이 떠올랐다.
그걸 본 아레스가 굶주린 짐승이 먹이를 본 것처럼 환호했다.
“크하하! 드디어 네가 나오는 것인가! 스티브 최! 너무 오래 기다렸다!”
동시에 세계 각국의 카메라들이 일제히 봉식이에게 향했다.
화려한 금발에 배우처럼 잘생긴 남자의 모습에 관객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앗! 저 사람이 혹시? 한국 최강 헌터라는 스티브 최?”
“어허! 겨우 한국 최강 수준이 아니야! 소문으로는 저 헌터가 어제 아프리카의 몬스터들을 쓸어버린 아마겟돈의 주인공이라던데!”
“꺄아악! 아프리카의 구원자!”
“스티브 최! 스티브 최!”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관객의 폭발적인 함성에 스티브 최는 차마 기권하겠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유일신! 이 망할 놈아! 내가 싸울 일은 없다며!’
봉식이가 울며 겨자 먹기로 아레스가 기다리고 있는 투기장에 올라섰다.
그러자 아레스가 집채만 한 도끼를 봉식이에게 겨누며 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
“크르르! 죽여주마, 스티브 최!”
사회자가 선언했다.
“그럼 본선 64강전 제2조 4번째 경기, 그리스 대표 헌터 헤라클레스의 재림이라 불리는 아레스 대 한국 대표 헌터 아프리카의 구원자! 공간의 지배자 스티브 최의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러자 오직 그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거대한 도끼를 든 아레스가 봉식이를 향해 사납게 돌진했다.
“크르르! 죽여 주마, 스티브 최!”
쾅! 쾅쾅쾅!
경기장을 박살 낼 기세로 돌진하는 황금 갑주의 거인은 인간이 아니라 거대한 전차를 연상케 했다.
50m가량 떨어져 있던 둘 사이의 거리가 1초 만에 사라졌다.
봉식이가 덜덜 떨며 순식간에 자신을 뒤덮은 그림자의 주인을 올려다보았다.
번뜩!
황금 투구 사이로 드러난 아레스의 눈동자가 시뻘겋게 빛나며 동시에 그가 치켜든 도끼가 벼락처럼 봉식이의 머리를 쪼갤 듯 낙하했다.
“히이익!”
콰콰콰쾅!
마치 작은 운석이 떨어진 것처럼 경기장 바닥에 거대한 구덩이가 파였다.
하지만, 그곳에 봉식이는 없었다.
“하아하아!”
관객들을 보호하기 위해 경기장 끝에 설치된 눈에 보이지 않는 방벽, 그 끄트머리로 공간 이동한 봉식이가 가쁜 숨을 헐떡였다.
‘저 미친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