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mporarily Closed for Work Reasons RAW novel - Chapter (238)
그래도 일단 본 것은 그냥 넘어갈 순 없지.
나는 일단 사고를 당한 사람들을 치유하고, 범람하고 있는 자연재해를 짓뭉개고, 전쟁을 벌이고 있는 자들에게는 좀 힘을 강하게 써서 그들에게 경고를 내려 주었다.
“유일신 가라사대, 지구를 지켜라.”
츠츠츠츠!
그리고 거기에 더해 지구를 감싸고 있는 결계를 다시 강화시켰다.
-‘한없이 베푸는 풍요’가 이제 당신도 어엿한 신이 되었다며 뿌듯해합니다.
“헤헤, 그런가요?”
풍요 누님의 칭찬에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데 풍요 누님, 혹시 파괴신 놈이 지구에 올 기미는 없죠?”
-‘한없이 베푸는 풍요’가 본래대로라면 천검에게 조각난 파괴신의 분신이 강림하는 건 지구 시간으로 앞으로 3개월 후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조각난 파괴신의 분신은 상급 신을 초월한 당신의 결계를 뚫을 수 없으니 안심하라고 합니다.
최상급 신인 풍요 누님의 보증을 들으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띠링! 띠링!
그때 내 갓메이커가 울리며 내가 다스리고 있는 대우주제국 지부에서 메시지가 왔다.
-유일신 님! 대체 3부 ‘투신전’은 언제 촬영할 수 있는 겁니까!
바로 나와 1, 2부를 찍은 대우주제국의 감독 필라 머시기였다.
이 녀석, 아직도 포기 못 했나?
“야, 그건 천 년 후랬잖아.”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린단 말입니까! 저를 포함해서 관객들이 우주의 먼지가 되어 있겠습니다! 우주풍이 불 때 함선을 진격해야 한다는 말도 모르십니까! 지금 당장 투신에게 도전을!
툭!
개소리를 해 대는 필라 머시기 감독을 무시하며 나는 갓메이커를 껐다.
투신에게 도전하려면 최소 최상급 신은 되어야지만, 그것은 더 이상 갓메이커의 영역이 아닌지 ‘최상급 신 승급 퀘스트’는 뜨지도 않았다.
투신이 말했듯이 내가 최상급 신이 되려면, 어쩌면 10만 년 정도는 수련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문득 시간이 눈에 들어왔다.
“앗! 언제 시간이 이렇게 됐지? 큰일 났다! 스킬 공유, 최봉식 ‘공간의 지배자’!”
나는 황급히 약속 장소를 향해 이동했다.
슈우욱!
내가 이동한 곳은 바로 서울 강남에 위치한 래커 문고라는 건물이었다.
옥상에서 안절부절못하며 시계를 바라보던 담당이 갑자기 코앞에 나타난 날 보며 기겁했다.
“우아악! 깜짝이야! 애 떨어지는 줄 알았네!”
나는 의심 가득한 눈으로 담당 놈의 배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똥배가 심상치 않더라니. 누구 애예요?”
“지금 시답잖은 농담할 때입니까! 어이구, 꼴은 또 왜 이래요! 누가 이런 자리에 추리닝을 입고 옵니까! 집에 정장 같은 것도 없어요?”
“미리가 사 준 게 한 벌 있긴 한데 정장을 입으면 몸에 두드러기가 나는 것 같아서요. 그리고 어차피 땜빵이라면서요? 사람도 별로 안 오겠구먼.”
“그래서 안 하시겠다?”
“어허, 땜방 전문 작가 유일신이라 불러 주십쇼.”
“하아, 내가 진짜 자까님 때문에 늙습니다! 늙어! 이거라도 걸치세요!”
담당 놈이 푹 한숨을 내쉬며 분홍 추리닝 차림의 내 몸에 자신이 입고 있던 재킷을 걸쳐 주었다.
“달려요! 달려!”
그러고는 서둘러 내 팔을 낚아채고는 미리 준비해 둔 테이블로 데려가 못을 박듯 나를 앉혔다.
테이블 뒤 벽에는 ‘10살에 데뷔했던 천재 유일신 작가 신작 《갓겜하는 작가님》 출간 기념 사인회!’란 많이 낯 뜨겁고 급조한 듯한 작은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첫 사인회라고 해서 긴장하지 마시고요! 평소대로 편한 마음으로 하세요!”
“넹.”
뭐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사실 오늘이 내 종이책 출간일이다.
원래는 이곳에서 사인회를 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작가는 따로 있었는데, 갑자기 집에 급한 일이 있다고 해서 땜빵으로 내가 오게 된 것이다.
담당 놈 말처럼 첫 사인회였지만, 사실 별 긴장은 하지 않았다.
휘이잉!
인기 없는 삼류 작가인 내 땜빵 사인회에 올 독자님들은 거의 없으니까 말이다.
이렇듯 본래라면 아무리 땜빵이라고 해도 내가 이곳에 올 수는 없을 테지만, 거기에는 업계의 비밀스러운 사정이 있었으니.
“어? 이번에 책 나온다고 미리가 그러던데, 너 작가였어?”
“헐, 어떻게 내가 무슨 일 하는지도 모를 수 있어요! 미나 누나 그렇게 안 봤는데 실망했어요!”
내가 섭섭한 표정을 짓자 미나 누나가 당황한 얼굴로 입술을 삐죽이더니 내 출판사를 물었다.
그리고 다음 날, 통 크게 내 책을 만 부나 선주문했다.
요즘 시장에 만 부를 찍으면 베스트셀러 작가다.
그렇다. 나는 더 이상 삼류 망생 자까가 아니라 베스트셀러 작가 유일신인 것이다!
휘이잉!
뭐, 여전히 내 사인 부스는 텅 비어 있지만 말이다.
‘아, 날씨 좋네.’
유리 천장에서 쏟아지는 청명한 가을 햇살이 내가 앉은 사인 부스에 따사롭게 내려앉았다.
나도 모르게 내 눈이 스르륵 감겼다.
띠링!
-‘눈먼 신의 눈’의 고유 권능이 발동합니다.
눈을 감았지만 나는 본다.
쾅! 콰콰쾅!
지금도 쉬지 않고 혹독한 트레이닝을 하고 있는 내 분신 이신과 근육질 몸매를 뽐내는 우리 일호.
“껄껄껄! 대단하십니다! 또 다른 유일신 님이시여! 드디어 저를 초월하셨군요!”
“흥, 내 목표는 투신이다! 망할 늙은이! 내게 시간을 준 것을 반드시 후회하게 해 주겠다!”
오늘도 유명한 카페에서 디저트 투어를 하고 있는 내 귀여운 조카 성연이와 삼신이.
“우와아! 삼신 삼촌, 이거 엄청 마시써! 이것도 먹어 봐~ 앙~.”
“파……괴!”
그리고 성연이가 삼신이에게 다쿠아즈를 먹여 주는 것을 행복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잔 르망.
“아이 참! 언니! 빨리 와! 이러다 선생님 사인회에 늦겠어!”
“잠깐만! 거의 다 입었어!”
마치 어디 경조사라도 가는 듯 정장을 낑낑거리며 입고 있는 미나 누나와 새로 나온 내 책을 품에 안은 채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미리.
그들 외에도 천마의 가르침을 받으며 수행을 하고 있는 검귀와 신유, 미인들에게 둘러싸여 헤벌쭉 웃고 있는 봉식이, 엘프와 함께 펭귄 마스코트와 사진을 찍으며 미소 짓는 알로힘…….
나는 본다.
내가 사랑하는 세계와 내가 사랑하는 신도들.
그리고 지구의 모든 사람들.
아, 좋은 하루다.
마치 삼류 판타지 소설의 엔딩 직전처럼.
이대로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다.’로 마무리를 해도 좋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하루였다.
“안녕하세요, 유일신 작가님.”
오싹!
갑자기 들려온 여인의 목소리에 등줄기가 차가워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황급히 눈을 떴다.
“또 뵙네요.”
본래는 순백이었을, 그러나 지금은 피로 얼룩진 붉은 원피스를 입은 만삭의 여인이 내 앞에 서 있었다.
배드엔딩&
임산부를 보면 성연이를 임신했던 누나 생각이 나서 보통은 배려와 더불어 지켜 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내 앞에 여자에게서는 그런 감정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무서웠다.
마치 정체불명의 괴물이 인간의 껍질을 뒤집어쓰고 사람인 척하는 것 같은 이질적인 공포.
영차, 헛숨을 내쉬며 여자가 사인 부스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내 눈이 피 묻은 원피스를 입은 그녀를 보았다.
띠링!
-‘눈먼 신의 눈’의 고유 권능이 발동합니다.
[—]암컷 인간이다. 사용한 지 29년 되었다.
특이 사항 : 남편을 죽였다.
전의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특이 사항을 본 순간 숨이 막혔다.
남편을 죽여?
여자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갓메이커를 만든 건 사실 저예요.”
“네……?”
그리고 이어진 너무나 갑작스러운 고백.
“제법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답니다. 신생(神生)의 인과율을 조작하는 게 쉽지 않았거든요. 뭐 황제는 미완품으로 얻은 의외의 성과였지만.”
여자가 피 묻은 손으로 구불거리는 자신의 머리칼을 만지작거렸다. 그것에도 역시 검게 말라비틀어진 핏물의 흔적이 생생히 남아 있었다.
“갓메이커를 완성한 후, 지구에서 가장 신이 될 자질이 높은 자에게 돌아가게 인과율을 짜 두었죠. 설마 작가님 같은 사람이 선택받을지는 상상도 못 했지만요.”
여자가 새파랗게 질린 내 얼굴을 보더니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제법 재미있었어요, 적어도 ‘그동안은’.”
‘그동안’이라는 말에 내포한 여러 가지 의미가 눈동자에 닿을 정도로 겨누어진 비수처럼 두렵게 느껴졌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입을 열었다.
“다, 당신은 대체 누구……죠?”
“어머, 이미 알고 계시지 않았어요?”
여인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호호 웃었다.
“저에게는 여러 가지 이름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지구인들이 제게 붙여 준 이름이 제일 마음에 든답니다.”
스스슥!
나를 바라보는 여인의 눈동자가 함몰되며 사라지더니 그 대신 끝이 보이지 않는 구덩이 같은, 텅 빈 어둠이 자리했다.
그 구멍이 나를 삼킬 듯 응시했다.
“저는 파괴신의 첫 번째 사도. 헤어 나올 수 없는 절망이자 지옥의 밑바닥, ‘나락’. 그것이 지구에서의 제 이름.”
띠링!
순간 그녀의 감정창이 변화했다.
[나락Abyss]지구에서 사용한 지 29년 되었다. 사악 무비한 파괴신의 진체를 담은 분신이다.
특이 사항 : 용화(龍化)가 가능하다.
툭, 툭툭.
식은땀이 비처럼 흘러내렸다.
‘이것이 나락?’
내심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하자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의외로 별다른 힘은 느껴지지 않아.’
이 알 수 없는 불길함을 떠나서 눈앞의 여자에게서는 신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만약 내 눈으로 감정하지 않았다면, 이 여자가 바로 인류의 절망이라 불리던 나락이라고는 도무지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신력을 감지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이란 걸까?
거기에 저 특이 사항에 있는 말이 걸렸다.
‘용화…….’
만약 여기에서 저 여자가 과거 지구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던 그 크기만도 수백 미터가 넘는 괴물, 나락용으로 변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이신, 삼신을 데리고 빨리 이리 와!’
나는 내 분신들에게 돌아오라는 사념을 보낸 후, 그 전까지는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야겠다는 생각에 조심스레 나락에게 말을 걸었다.
“이곳엔…… 무슨 일이죠?”
나락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입을 가리며 새침하게 웃었다.
“호호, 당연히 작가님을 보러 온 거죠. 전에 말씀드렸죠?”
잔뜩 긴장하고 있는데 그녀가 불쑥 책 한 권을 내게 내밀었다.
이번에 나온 내 신간이었다.
“자, 약속대로 사인해 주세요.”
‘제길! 대체 무슨 생각이야?’
머릿속은 복잡했지만, 당황한 기색을 최대한 감추려 애쓰며 펜을 들었다.
“물론 해 드려야죠.”
나락이 무슨 생각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은 내 분신들이 돌아오는 걸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긴장해서인지 펜을 든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저기, 아주머니. 잠깐만요.”
그때 뭔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꼈는지 담당이 나락에게 다가왔다.
나도 모르게 외쳤다.
“오, 오지 말아요! 담당님!”
스으윽.
어둠만이 자리한 나락의 텅 빈 눈동자가 담당에게로 향했다.
“어머, 시끄러운 벌레가 있네.”
퍼어엉!
바람이 가득 찬 풍선이 바늘에 찔리며 터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내가 말릴 틈도 없었다.
한때 사람이었던, 산산 조각난 육편과 핏물이 주위로 폭우처럼 쏟아졌다.
그중 한 방울이 내 뺨에 튀었다.
시야가 빙글빙글 돌았다.
숨이 막혔다. 이명이 고막을 찢을 듯 때렸다.
도무지 방금 눈앞에서 일어난 일이 현실이라고 믿을 수 없었다.
“꺄아아아악!”
적막을 깬 것은 누군가의 끔찍한 비명이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아비규환 그 자체.
“어머, 왜 이리 시끄러운 벌레들이 많은 걸까?”
나락이 텅 빈 시선을 주위로 슥 훑었다.
펑! 퍼펑! 퍼어엉!
그리고 순식간에 적막이 찾아왔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곳에 있던 1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산산조각 부서져 죽었다.
“이제야 좀 조용해졌네요. 그런데 작가님?”
사람을 죽인 게 아니라 마치 유리에 묻은 먼지를 닦아 낸 것처럼 만족한 얼굴을 한 나락이 날 보며 배시시 웃었다.
“혹시 지금 절 죽이려고 하신 거예요?”
내가 휘두른 수도가 나락의 목 끝에서 1cm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석상처럼 멈춰 있었다.
‘제길! 움직여! 움직이라고!’
부들부들! 이를 악물며 힘을 썼지만, 뱀 앞에 마주친 개구리처럼 아무리 애를 써도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아까도 말씀드렸죠, 갓메이커를 만든 건 저라고. 갓메이커로 힘을 얻은 당신은 저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어요.”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나락의 손이 내 뺨을 어루만졌다.
“저한테 강하게 분노하고 계시네요. 겨우 벌레 몇 마리 치운 건데 참 이해하기 힘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