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mporarily Closed for Work Reasons RAW novel - Chapter (284)
“유, 유일신 님? 정녕 유일신 님이시옵니까?”
“응, 나야.”
“으아앙! 유일신 니이임!”
앤티가 옥좌를 박차며 유일신을 향해 달려갔다.
왕관을 쓴 눈처럼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백발의 앤티가 유일신에게 달려가는 그 모습은, 마치 아름다운 새하얀 나비가 살랑살랑 날개를 파닥이며 꽃을 향해 날아가는 것 같았다.
유일신도 빙그레 웃으며 양손을 활짝 펴고 그녀를 맞으려 했다.
“유일신 님!”
“앤티야!”
그렇게 앤티와 유일신이 감격적인 해후를 하려던 순간.
콰르르 콰콰쾅!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도 치는 것 같은 끔직한 광음이 울려 퍼지더니 대전의 천장이 박살 났다.
슈우욱! 쿠쿠쿵!
동시에 유일신과 앤티의 사이로 뭔가가 엄청난 속도로 낙하하더니 대전에 엄청난 구덩이를 만들었다.
스으윽.
갑작스레 그곳에 난입한 괴인이 몸을 일으킨다.
비록 몸에는 볼품없는 누더기를 걸치고 있었지만, 전신에서 뿜고 있는 기운이 실로 심상치 않았다.
“허어억! 저, 저분은!”
그를 알아본 십검들과 대신들이 겁에 질린 얼굴로 일제히 고개를 조아렸다.
“태, 태상황제(太上皇帝)를 뵙습니다!”
“위대한 제국의 전신! 태상황제! 만세! 만세! 만만세!”
신 황제인 앤티와는 다르다.
압도적인 두려움과 동시에 한없는 경외가 뒤섞인 기운이 대전을 가득 메웠다.
“황제 폐하, 돌아오셨습니까?”
아라크네가 감격한 얼굴로 황제의 어깨에 용포를 걸쳐 주었다.
“황제라 부르지 마라, 나는 더 이상 황제가 아니니.”
“권좌에서 물러나셨다지만, 소첩에게는 유일무이한 황제시옵니다. 이렇게 무사하신 모습으로 돌아오시다니, 신의 제전에서는 승리하신 거시겠지요?”
황제가 입가에 묻은 검은 피를 닦아내며 말했다.
“그래. 지금 막 강식과 기만의 야수를 잡아먹고 오는 길이다.”
“역시 소첩의 주인다우신 위업입니다.”
“흥, 그 까짓것쯤이야. 하는 김에 심연 늪의 지배자도 처리하려 했건만, 선수를 뺏긴 것 같군.”
용포를 걸친 황제가 특유의 오만한 눈으로 유일신을 응시했다.
“내 땅에서 낯익은 신력이 느껴진다 했더니만 진짜 네놈이었다니. 어떻게 이리 빨리 돌아온 것이지?”
황제가 유일신의 전신을 꿰뚫듯 응시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군. 빨리 돌아온 게 아니었어. 족히 3천 년은 되는 시간의 흔적이 육신에 배어 있구나. 네놈, 시공을 초월하였나?”
유일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뭐 내가 의도한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좋다. 네가 돌아왔다는 건 짐의 숙원을 이뤄 줄 만큼 힘을 키웠다는 것이겠지?”
“어느 정도는.”
황제가 어깨를 들썩이더니 유쾌하게 웃었다.
“호오, 네놈치고는 제법 자신감이 넘치는구나.”
그런데 기분 탓일까?
그런 황제의 몸에서 살기가 흘러나왔다. 그 기척을 느꼈는지 아라크네가 공손히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폐, 폐하의 승전과 유일신 님의 귀환을 환영하는 연회를 준비하겠나이다. 별궁으로 드소서.”
“연회라……. 그것도 좋지.”
후드로 가려진 황제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깃들었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고오오오!
황제의 전신에 핏빛 같은 신력이 치솟았다.
“내게 네 힘을 증명해 보아라! 유일신!”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스피드로 황제의 신형이 사라졌다.
쾅!
그리고 다음 순간, 황제의 다리에 정통으로 맞은 유일신이 천장이 뚫린 대전의 구멍을 통과하며 로켓처럼 하늘로 날아갔다.
“꺄아악! 유일신 니이임!”
놀란 앤티가 비명을 질렀지만, 순식간에 구름이 걸린 하늘까지 날아가 버린 유일신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하늘에 있는 것은 유일신만이 아니었다.
마치 섬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고래 위에서 휘둥그레 커진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있었다.
“저, 저게 뭐냐구리?”
“날개도 없는데 하늘을 난다멍!”
바로 강식과 기만의 야수에게 먹이로 사육되던 데구리와 수인 친구들.
황제가 강식과 기만의 야수를 토벌할 때, 구해서 데려온 모양이다.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유일신이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안녕, 오랜만이야. 데구리들아.”
“날 상대하면서 어딜 한눈을 팔고 있느냐!”
화려하고 아름다운 나바의 날개를 펼친 황제가 어느새 유일신의 머리 위를 날고 있었다.
그가 양손을 유일신에게 겨누며 신의 권능을 해방했다.
“받아라! ‘학살하는 신의 불꽃’!”
콰아아아아아!
황제가 전력으로 뿜는 화염에 새파랗던 하늘이 한순간 시뻘겋게 불타기 시작했다.
태양조차 한순간 그 빛을 잃을 정도로 막강한 신력!
상급 악신인 강식과 기만의 야수를 홀로 토벌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닐 정도로 지금의 황제는 강했다.
어쩌면 헌터워에서 싸웠던, 전성기의 황제와 비교해도 크게 밀리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네, 네놈…….”
황제가 그답지 않게 식은땀을 흘리며 유일신을 바라보았다.
츠츠츠!
왼손에 쥐고 있는 눈부신 황금 광채를 뿜는 펜, 신기 삼라만상이 황제가 쏟는 화염의 권능을 지운다.
그리고 다른 오른손의 검지는 어느새 황제의 이마에 닿아 있었다.
황제는 직감했다.
그가 이 검지를 까닥이는 순간, 자신은 벌레처럼 짓뭉개져 죽을 것이라고.
유일신이 속삭이듯 말했다.
“황제 친구야, 이제 그만하자.”
공포와 동시에 희열에 사로잡힌 황제는 생각했다.
이자야말로 신중신(神中神).
신의 정점이라고.
움파움파의 신?
연회가 열렸다.
참여자는 황제와 그의 측근인 십검, 그리고 나와 일부 가야미족들이었다.
“여봐라! 술! 술을 더 가져와라! 하하핫!”
“태상폐하, 너무 과음하셨습니다.”
“오늘 같은 날 마시지 않으면 언제 마신단 말이냐!”
황제가 자신을 만류하는 아라크네를 무시하며 술잔을 높이 치켜들었다.
“내 비원을 이뤄 줄 우리의 신중신! 내 친우 유일신을 위해 모두 건배하라!”
“건배이옵니다! 유일신 님 시바시바!”
황제와 가야미족들이 흔쾌히 외치며 일제히 술잔을 들이켰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며 크게 놀랬다.
의외의 다크호스가 바로 옆에 있었던 것이다.
탕!
호탕하게 술잔을 단숨에 비운 앤티가 입가에 묻은 거품을 소매로 슥슥 닦고 있었다.
“애, 앤티야. 너 의외로 술이 세구나.”
“헤헤헤, 소녀 이래 봬도 어릴 때부터 아버님의 술 창고를 기웃거리며 맛을 많이 보았사옵니다! 성녀가 되기 위해서는 신주(神酒)를 제조하는데도 능숙해야 하니까요!”
“아, 그러니…….”
우리 앤티는 불량 성녀였단 말인가!
그런데 앤티가 술을 마셔도 되는 나이던가?
내 눈에는 많이 어려 보이긴 하지만, 어엿한 제국의 황제인 데다 이 세계 기준에서는 성인이니 괘, 괜찮겠지?
사실 더 의외인 것은 일호였다.
일호는 술을 마시는 척하긴 했지만, 잔에 담긴 액체가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제법 인간미 있는 모습에 흥겨워진 나는 일호의 어깨에 척 손을 얹으며 웃었다.
“일호야, 넌 술 못하는구나?”
“그게 아니오라…….”
일호가 불끈불끈한 근육을 파르르 떨었다.
“느껴지옵니다. 제 근육이 본능적으로 술을 거부하고 있는 것을! 원리는 모르겠사오나 술을 마시면 분명 근손실이 일어날 거란 불길한 예감이 드옵니다!”
아, 그래. 일호 너는 뼛속까지 헬창이었지.
그때 앤티가 우리 사이에 불쑥 끼어들었다.
“헤헤, 유일신 님! 일호 님! 우리 같이 건배해요!”
“저, 저는 괜찮습니다! 황제 폐하!”
일호가 사양하자 발그레 뺨이 붉어진 앤티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어머, 설마 저랑 술을 못 마시겠다는 거예요?”
음. 앤티야, 너 취했구나?
“아, 아닙니다! 황제 폐하! 그런 것이 아니옵고 제가 술은 좀…….”
근손실의 위기에 쩔쩔매는 일호를 향해 앤티가 눈물을 글썽였다.
“너무너무 실망이어요. 일호 님. 가야미족의 대전사인 일호 님께서 이깟 술도 못 드시다니……. 그리고 이런 사석에서까지 황제라고 부르면서 저와 거리를 두시는 거여요? 너무 섭섭하여요!”
쿠쿠쿵!
그러자 일호가 표정이 마치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변했다.
“그럴 리가 있겠사옵니까! 자, 보시옵소서! 앤티 님! 이깟 술쯤! 근유우욱!”
일호가 근육이 불끈거리는 팔로 근처에 있던 술 단지를 한손으로 집어 들더니 호탕하게 입에 쏟아붓기 시작했다.
벌컥벌컥!
오, 쾌남이다.
사랑을 위해서는 근손실을 감내하는 멋진 사나이 일호였던 것이다. 단숨에 술 단지를 비운 일호가 새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싱긋 웃었다.
“자, 보셨사옵니까! 앤티 님!”
“꺄아, 너무 멋져요! 일호 님! 한 단지 더 하세요!”
“하하하! 이쯤이야!”
고삐가 풀렸는지 일호가 마구 술 단지를 흡입하기 시작했다.
사실 일호가 앤티를 짝사랑하고 있다는 건 전생부터 알고 있었다.
이 생에서 둘의 사랑의 향방이 어찌 될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녀석이 단단히 잡혀 살 것이란 사실이었다.
연회가 깊어 갔다.
그리고 사망자(?)들이 속출했다.
술을 단지째 들이붓던 일호는 일찌감치 실신해서 뻗어 있었고, 앤티 또한 사과 같은 얼굴로 그의 옆에서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으으으, 내 소중한 근육이……. 안 돼…….”
“헤헤, 유일신 님. 이렇게 다시 뵙게 돼서 소녀는 너무 기쁘옵니다…….”
악몽을 꾸는 듯 공포에 질린 일호와 방실방실 웃는 앤티가 술주정하는 모습은 귀엽긴 했다.
“유일신 님, 그럼 저는 이 두 분을 처소에 모시겠습니다.”
“응, 부탁해. 이호야.”
몇 안 되는 생존자 중 하나인 이호가 앤티와 일호를 짊어진 채 연회장을 나갔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신의 탑 99층에 남은 이번 생의 영겁의 구도자, 이호는 어떻게 되었을까?
또 그곳에 남겨진 풍요 누님과 악몽님은 무사하실까?
그러자,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바로 답이 들려왔다.
띠링!
-‘2대 영겁의 구도자’가 유일신 님께서 배려해 주신 덕분에 자신은 무사하다고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한없이 베푸는 풍요’와 ‘소리 없이 기어 오는 악몽’도 조금씩이지만 신력을 회복하고 있는 중이니 머지않아 볼 수 있을 거라고 합니다.
‘다행이네.’
한결 마음이 놓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고주망태가 된 채 주안상에 엎드려 있는 황제의 옆 자리에 앉았다.
녀석의 뒤에는 빈 술독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황제 친구야, 너무 과음하는 거 아니니?”
황제가 슬쩍 고개를 들더니 초점 없는 눈으로 날 보았다.
“크크, 오늘 같은 날 마시지 않으면 언제 마시겠느냐 그런데 네놈은 제법 마신 것 같다만, 멀쩡하구나?”
“응. 언제부터인가 아무리 마셔도 안 취하더라고. 신의 탑에서 얻은 만독불침의 권능 때문인가?”
“쯧쯧, 술맛도 모르게 되다니. 최상급 신위를 얻는다는 게 꼭 좋은 일만은 아니로군.”
“황제 친구야.”
“날 황제라 부르지 마라, 나는 더 이상 황제가 아니니.”
그래. 내가 궁금한 게 바로 그거다.
“왜 우리 앤티한테 황좌를 양위한 거야?”
나는 이 철혈 제국이 황제에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안다.
그 시작은 어머니와 자신의 원수인 벌레들을 증오하는 마음이었겠지만, 사실 이 제국이야말로 유배 같은 황제의 500년 삶 속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기에 그것을 무너뜨린 전생의 나를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별 의도가 있던 것은 아니다. 네가 신의 탑을 오를 동안 나 또한 신력을 키워야겠다 결심했으니, 황좌는 거추장스러웠을 뿐이지. 후계자로 굳이 그 소녀를 택한 것은…….”
술에 취한 황제의 음성이 살짝 흔들렸다.
“적어도 나보다는 좋은 황제가 되리라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내가 신이고 황제가 내 신도기 때문일까?
나는 인간과 곤충이 뒤섞인 흉측한 황제의 얼굴에서, 그가 그동안 학살했던 약소 부족들에 대한 죄책감을 읽었다.
나는 술잔을 황제에게 내밀었다.
“넌 나쁘지 않은 황제였어. 적어도 네 제국에서는 말이야.”
“흥, 되도 않는 소리 하지 마라.”
황제가 투덜거리면서도 내가 내민 술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쳤다.
챙.
바로 그 순간.
그게 마치 신호라도 되었던 양, 공간을 가르며 무엇인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것은 거대한 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