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mporarily Closed for Work Reasons RAW novel - Chapter (285)
핏빛처럼 붉고 음산한 기운을 머금은 대검이 천천히 아래로 움직였다.
쩌적, 쩌저적!
그러자 마치 게이트가 열린 것처럼 공간이 갈라지더니, 그 틈에서 시뻘겋게 빛나는 흉흉한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드디어 탈출에 성공했구나!
나타난 것은 바로 ‘살육과 광기의 전쟁’, 바로 투신이었다.
놈과 내 눈이 마주쳤다.
“어라? 생각보다 빨리 나왔네.”
아무리 내가 ‘거짓된 천지창조’로 만든 가상의 세계의 시간 흐름이 현실과 다르긴 하지만, 투신이 그곳에서 빠져나오는 건 한참 뒤에나 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저 양반, 더 세진 거 같은데?’
전보다 신력이 분명 늘었다.
투신의 외침이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유일신! 이 찢어 죽일 놈! 신성한 신의 제전에 그런 사이한 술수를 부리다니! 용서 못 해! 절대 용서 못 한다!
투신이 공간의 틈을 비집고 앤트리니아로 강림을 시도했다.
쿠르릉! 쿠쿠쿵!
투신의 강림에 연회장, 아니 제국의 왕성이 산산이 조각날 기세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하늘로 치켜들었다.
개미 크기만 한 지금의 내게 투신은 산 같은 거인과도 같았다.
“크으으…… 헉헉!”
신들의 정점이라 불리는 최상급 신인 투신이 뿜는 압도적인 신력에 황제가 파리해진 얼굴로 가슴을 움켜쥐며 신음을 흘렸다.
“괜찮아?”
나는 황제의 어깨에 손을 얹고, 그의 몸에 신력을 불어 넣었다.
그러자 파리하던 황제의 얼굴에 혈색이 돌았다.
“저, 저자는 대체 어떻게 할 테냐? 투신에게서 느껴지는 신력은 지금의 너 이상이다! 저자가 강림한다면 그 여파만으로도 앤트리니아가 멸망할 것이다!”
“괜찮아.”
나는 반쯤 강림한 투신을 보며 태연하게 말했다.
“투신하고 싸우고 싶어서 근질근질하던 놈이 있거든. 녀석한테 맡기면 돼. 그 녀석이 나보다 훨씬 세거든.”
“뭐, 뭐라고? 대체 어떤 신이 저 투신과…….”
이미 공간을 가르고 반쯤 강림한 투신이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거검을 내리쳤다.
-죽어라! 유일신!
세계를 쪼갤 기세로 나와 황제를 향해 쏟아지는 투신의 검.
까가가강!
하지만, 그것은 칠흑 같은 기운을 뿜는 쌍검에 가로막혔다.
-네, 네놈은!
투신이 자신을 가로막은 신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등에 돋아난 화려한 검은 날개와 왕관 같이 웅장하게 솟은 두 개의 뿔, 마치 마신과도 같은 모습을 한 이신이 앤트리니아에 강림했다.
나와 분신은 분리되었지만 동시에 하나다.
우리는 모든 감각을 공유한다.
당연히 투신이 이곳에 강림하는 것도 이신을 비롯한 다른 분신들에게도 전해졌다.
그중에서 투신과의 결전을 벼르고 있던 이신이 이곳에 온 것이고.
히죽.
투신을 바라보는 이신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어렸다.
“사실 나는 너를 ‘거짓된 천지창조’로 봉인하자는 저놈의 생각이 달갑지 않았다. 오늘에야말로 결판을 내자.”
내 분신이긴 하지만, 참 언제 봐도 자신감이 넘치는 이신이다.
그래도 혹시 몰라 물었다.
“야, 정말 내가 안 도와줘도 돼?”
“흥, 네놈은 방해나 하지 말고 거기서 구경이나 해라! 이런 늙은이쯤은 나 혼자도 충분해!”
-이놈이! 어딜 감히 분신 따위가 나서느냐?
“분신 따위라고?”
이신의 눈썹이 사납게 올라갔다.
“똑똑히 봐라, 늙은아. 내가 진정한 신들의 정점이자 최강의 신이다!”
덥석!
독수리처럼 투신의 목을 손으로 낚아챈 이신이 엄청난 기세로 하늘로 비상했다.
슈우우욱!
순식간에 대기권을 뚫고 우주로 사라진 둘.
쾅! 콰콰쾅!
퍼엉! 퍼퍼펑!
곧이어, 단 일검에 별을 부술 정도로 압도적인 신력을 가진 두 신의 대결이 펼쳐졌다.
하지만, 지상에서 보기에는 그저 화려한 불꽃놀이처럼 보일 뿐이다.
술안주로 딱이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빠져나온 거지?’
특수한 조건을 만족하지 못하면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는 세계였는데 말이다.
문득 호기심이 들어 투신이 나온 공간의 틈으로 불쑥 머리를 집어넣어 보았다.
술렁술렁!
마치 은빛 물결을 연상케 할 정도로, 그 안에는 내가 ‘거짓된 천지창조’의 권능으로 만든 피조물들이 득실거렸다.
마치 물고기와 도롱뇽을 섞은 듯한 외모에 반짝이는 은빛 비늘을 가진 움파족들 말이다.
역시 귀엽고 깜찍한 게, 참 잘 만든 종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움파움파!”
투신의 것으로 보이는 거대한 석상 앞에서 열심히 절을 하던 움파들이 서로 편을 나누기 시작하더니.
“움파움파!”
“움파아아!”
갑자기 맹렬한 기세로 저희들끼리 싸우는 게 아닌가?
투닥투닥.
무기도 없이 짧디짧은 사지로 싸우는 게 전부라 피와 살점이 튀는 살벌한 전투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아니, 사실 그냥 귀여워 보이는데?
전투에서 승리한(?) 움파족이 자신이 제압한 움파의 입에 입술을 맞췄다.
쪽!
퍼엉!
그러자 마치 보석 같은 빛을 뿜는 알이 생성되더니, 그 안에서 그들의 아이가 태어났다.
“움파움파~!”
“움파♡!”
방금까지 언제 싸웠냐는 듯 화기애애한 표정으로 부모 움파가 갓 태어난 새끼의 뺨에 얼굴을 부비적거렸다.
그런 현상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음, 저건 전투라기보다는 그냥 구애 행동으로 보이는데…….
그만 보도록 하자.
나는 어쩌면 무시무시한 종족을 탄생시켜 버린 건지도 모른다. 게다가 저런 애들에게 전쟁(?)의 신앙을 얻어 내 저 세계에서 탈출한 투신의 집념이 존경스럽게까지 여겨졌다.
“대단하군. 저것이 최상급 신의 전투인가.”
나는 감탄한 표정으로 두 신이 싸우는 모습을 올려다보고 있는 황제에게 물었다.
“친구야, 너 이름이 뭐랬지? 네 말대로 이제 황제라고 부르긴 좀 그렇잖아.”
“……이름 따윈 오래전에 잊었다.”
“그럼 내가 지어 줄까?”
나는 진지하게 그동안 생각했던 이름을 말했다.
“오신, 유오신 어때?”
“닥쳐.”
두 번 생각하지도 않고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매정한 녀석.
일상
“치, 친구야! 그렇게 화낼 것까지는 없잖아! 유오신이 어때서! 일부러 생각해서 남겨 둔 이름인데! 아니면 유칠신으로 할래? 럭키 세븐 좋잖아?”
“그 주둥이 닥치라고 했다!”
“으악!”
콰아아아!
노호하는 황제의 고성과 함께 유일신을 향해 학살의 불꽃이 쏟아졌다.
같은 시각, 현실의 지구.
“오신이라니. 그건 좀 아니지, 일신아.”
황제와 유일신을 지켜보고 있던 네 번째 분신, 사신이 피식 웃었다.
저렇게 네이밍 센스가 없어서야.
“역시 우리 중 내가 제일 낫다니까.”
본체와 다른 분신들을 떠올리며 사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본체 놈은 저렇게 멍청하고 이신은 싸움만 아는 전투광, 삼신이는 파괴 소리밖에는 할 줄 모르는 먹보니까 말이다.
띵!
사신이 타고 있던 엘리베이터가 최상층에서 멈췄다.
그곳은 바로 헌터들이 주를 이루는 각성자들의 전문 병원인 부활 병원의 최고 VIP 병실이 있는 층이었다.
병실의 복도에는 헌터 협회에서 직접 파견한 헌터들이 삼엄한 기세를 품으며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하나같이 B급 이상의 랭크를 가진 내로라하는 실력자들이다.
“교대 시간이 얼마나 남았지?”
“앞으로 30분 정도.”
“의무제긴 하지만 지루하군. 차라리 현장에서 뛰는 게 낫겠어.”
“뭘. 목숨 걸고 하는 현장보다는 이런 호위 업무가 훨 낫지.”
“……그런데 전세계의 던전과 게이트가 일시에 닫혔다는 소식이 정말 사실일까?”
사신이 잡담을 나누는 헌터들을 지나쳤다.
저벅저벅.
바로 코앞에서 스쳐 지나감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았다.
마치 투명인간이라도 된 양, 사신의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신이 카드 키가 있어야 열 수 있는 특수 병실의 도어 록에 손을 얹었다.
슥. 스스슥.
모래에 스며드는 물처럼 그의 몸이 도어 록을 통과해 지나갔다.
그 안에 그녀가 있었다.
아름다운 꽃과 식물들로 가득 장식된 커다란 침대 위에 마치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잠들어 있는 백발의 여인.
겉모습은 20대로 보였지만, 그녀는 S급 최강산과 함께 대한민국의 전설이라 불리는 헌터였다.
사신이 잠든 그녀를 향해 속삭이듯 말했다.
“미라클, 약속을 지키러 왔습니다.”
* * *
그 후로, 일주일이 흘렀다.
쾅! 쿠르릉!
콰콰쾅!
여전히 앤트리니아의 하늘에서는 섬뜩한 굉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박살 난 행성의 파편들이 어지럽게 날아다니고 있는 우주.
그 우주적 민폐를 끼친 존재들.
투신이 쩍 갈라진 자신의 가슴의 흉상을 어루만지며 입을 열었다.
-분신 주제에 제법이구료. 설마 나를 상대로 이 정도로 싸울 수 있을 줄이야, 상상도 하지 못했소.
이신이 반쯤 찢긴 마신의 날개를 뜯어내며 응수했다.
“흥, 너도 노망난 늙은이치고는 제법이다.”
-크크크! 크하하하!
“키킥! 하하핫!”
피투성이인 투신과 이신이 서로를 향해 늑대처럼 새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하지만, 이제 장난은 끝이오!
투신이 흉흉한 안광을 빛내며 자신의 대검을 치켜들었다.
-강림하라, 살육과 전쟁의 군세여. 나 투신의 대적자를 도살하거라!
웅웅웅!
검에서 핏빛처럼 시뻘건 기운이 폭사하더니 해일처럼 사방으로 번져 갔다.
쩌적! 쩌저적!
그러자 마치 게이트가 열리는 것처럼 공간이 갈라지더니 그 틈에서 수많은 세계에 흩어져 있는 투신의 사도와 신도 들이 소환되기 시작했다.
“위대한 전쟁! 투신이시여!”
“부름을 받고 강림하였나이다!”
“크르릉!”
“캬오오오!”
인간, 천족, 마물, 괴이족 등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신력을 가진 신도들의 숫자가 무려 수백만에 이르렀다.
투신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그려졌다.
이들이야말로 파괴신을 토벌하기 위해 그가 수많은 세월을 들여 권속으로 삼았던 투신의 군세다.
본래라면 앤트리니아의 황제 또한 군세에 포함되었겠지만, 놈은 아쉽게도 배교해 유일신의 휘하에 들어갔다.
하지만, 상관없다.
이들로도 저 분신 놈을 토벌하기에는 충분할 터.
한편 투신이 소환한 군세 중에서는 막 신도가 된 움파족들도 섞여 있었다.
“움파움파♥~!”
“움파아~!”
전투에는 적합하지 않은 탓인지 녀석들은 열심히 짧은 팔다리를 흔들며 열렬히 투신을 응원하고 있었다.
투신이 슬그머니 그를 외면했다.
투신이 소환한 군세들을 보는 이신의 입술이 뒤틀렸다.
“재미있군! 군대에는 군대로 상대해 주지!”
고오오오!
이신의 전신에서 오수처럼 시커먼 어둠의 신력이 사방팔방으로 퍼지더니, 주변의 공간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쩌적! 쩌저적!
“나 마신 이신이 부르느니 오라! 내 휘하의 군단들아!”
마치 천사처럼 아름답고 단아한, 그러나 머리에는 마족의 증거인 검은 뿔을 가진 소녀가 제일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가 이신의 발치에 무릎을 꿇었다.
“마왕 엘리야, 위대하신 마신의 부름을 받고 당신께 받은 목숨의 빚을 갚으러 왔사옵니다.”
곧이어 몸에서 뿜는 기세가 상급 악신에 이르는, 품에 아기를 안고 있는 오만한 인상의 미남자가 강림했다.
“크크, 나 지옥대공 카니지. 맹약에 따라 마신을 돕겠다!”
그리고 고위 마족들과 수백만의 악마 군단들이 그곳에 강림했다.
“사천왕 휘하 백군단장들! 마신님의 부름을 받아 달려왔사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