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mporarily Closed for Work Reasons RAW novel - Chapter (283)
순간, 내 분노를 느꼈는지 손에 쥐고 있는 그것이 덜덜 몸을 떨었다.
나는 손을 들었다.
고오오오!
내가 가진 모든 신력이 내 검지에 깃들었다.
“짓뭉개는 신의 검지.”
나는 그것을 지구에, 그곳에 기어 다니고 있는 추악한 벌레들을 향해 겨눴다.
내 소중한 지구는 감히 너희 같은 잡것들이 발 디딜 곳이 아니다.
“그러니 꺼져라.”
콰직! 콰지직!
그날 지구의 모든 던전과 게이트가 사라졌다.
***
지구가 발칵 뒤집어졌다.
-긴급 속보입니다! 전 세계에서 활성화되고 있던 던전과 게이트가 동시에 소멸했습니다! 심지어 올해 헌터워 토벌 대상이었던 아프리카의 몬스터들 역시 99% 이상 소실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신께서 내려 주신 기적일까요? 아니면 더 큰 재앙을 암시한 폭풍 전야일까요!
세계 곳곳에서 각양각색의 언어로 이루어진 속보들이 넘쳐 났다.
그것을 신의 눈으로 보고 있던 유일신의 악의 분신, 유이신이 낮게 투덜거렸다.
“흥, 우리한테는 사고 치지 말라더니 지가 제일 요란하게 벌이는군.”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던전과 게이트를 봉인한 이 대사건을 일으킨 유일신은 앤트리니아로 향하더니, 그곳의 연못에 손에 쥐고 있던 미꾸라지를 풀어놓았다.
퐁당!
-자, 뱀아. 너도 미물의 기분을 느껴 봐.
미꾸라지의 정체는 바로 유일신에게 가진 모든 신력을 잃고 영락해 버린 심연 늪의 지배자였다.
-캬악! 캬악!
먹이다!
잠시 후, 연못의 주인인 새끼 악어 악돌이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도망치는 미꾸라지를 쫓기 시작했다.
이신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가끔 이놈은 나보다 더 잔혹하다니까. 이런 놈이 어찌 선신이라 자처하는지.”
그런 이신에게 턱시도를 잘 차려입은 잘생긴 중년 남자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다가왔다.
“드시지요, 이신님. 최고급 루왁 원두를 직접 갈아 만들었습니다.”
이신이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로 음료를 받아 들었다.
쪼오옥!
꿀꺽!
한 모금 그것을 마신 이신이 부르르 전율했다.
그래, 바로 이 맛이다. 이 지구의 진한 카페인 맛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착석감은 좀 어떠십니까? 제가 신께서 귀환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오리하르콘 실을 수놓아 만든 옥좌입니다만”
“훗, 제법 앉을 만하군. 수고했다, 강우.”
“영광입니다.”
마치 숙련된 집사 같은 차림을 한 S급 창조 헌터이자, 회귀자인 강우.
그가 화려한 옥좌 위에서 다리를 꼰 채 오만하게 앉아 있는 이신을 향해 황송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나락에 대한 정보는 있느냐?”
“소, 송구합니다. 알려 주신 정보를 바탕으로 수색해 보고 있긴 하지만, 아직 별다른 진척이…….”
이신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다. 우리의 눈으로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은밀하게 숨은 녀석이니 쉽게 찾는 게 이상하지.”
처음 지구에 오자마자 자신들은 나락을 토벌하려 했다.
그러나 개안한 신의 눈으로도 놈의 존재를 찾을 수는 없었다.
유일신도 그렇겠지만, 특히 이신은 놈을 반드시 갈가리 찢어 죽이리라 결심하고 있었다.
아직도 전생에서 놈에게 벌레처럼 처참하고 치욕스러운 죽음을 맞았던 때를 떠올리면 분노가 들끓었다.
놈을 죽이는 데 다른 분신 놈들의 힘을 빌릴 것도 없다.
자신은 이미 신들의 정점이라 불리는 최상급 신을 초월한 최강의 마신이었으니.
‘그래, 꼭꼭 숨어 있어라. 나락 놈아.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낼 때가 네놈의 제삿날이 될 것이다!’
“커억!”
“으으윽! 수, 숨을 못 쉬겠어!”
순간 사방에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신음의 정체는 바로 그를 섬기는 신도 무리였다.
대부분은 린 샤오밍과 검귀가 수습한 삼협회의 무인들이었지만, 그중에는 급하게 전갈을 받고 당도한 엘프인 로이스와 잭 화이트도 있었다.
하지만, SSS급 헌터인 그들 또한 이신이 흘린 살기에 덜덜 몸을 떨고 있었다.
“쯧쯧, 한심한 것들.”
나락을 떠올리며 무심코 흘린 살기도 견디지 못하다니.
“이런 것들이 위대한 대마신인 내 신도라 할 수 있겠는가? 아무래도 안 되겠군.”
이신이 혀를 차며 옥좌에서 일어섰다.
고오오오!
동시에 이신의 몸에서 흉포한 악신의 신력이 치솟더니, 그의 머리에서 마왕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뿔이 튀어나왔다.
“크크, 기뻐해라. 내 친히 나약한 너희들을 내 신도에 어울릴 만큼 단련시켜 주마.”
이신이 겁에 질린 수천 명의 신도들을 굽어보며 사악하게 웃었다.
“히이익!”
“사, 살려 줘!”
“꼬르르륵!”
단지 그것만으로 오줌을 지리거나 게거품을 물며 기절하는 이들이 속출했다.
‘드, 드디어 그날이 온 것인가!’
로이스와 잭 화이트는 금기를 깨고 드디어 다시 하나의 육신으로 다시 합체해야 하는 때가 온 것인가 고민했다.
“오오! 검신 님의 검을 다시 견식할 수 있다니! 이렇게 영광스러울 데가!”
“아아, 위대하신 신님의 체벌을 받을 수 있다니! 하악 하악, 린매는 너무 행복하여요!”
오직 검귀와 린 샤오밍만이 진정한 광신도답게 붉게 뺨을 붉히며 설레어했다.
-캭! 캭!
연못에 웅크린 채 나는 짧은 다리와 꼬리를 바삐 움직이며 미꾸라지를 쫓고 있는 악돌이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여차.”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주변을 살폈다.
이곳은 앤트리니아의 세계다.
정확히는 황제가 기거하고 있는 철혈 제국의 황성.
과연 제국의 황성이라고 불릴 만큼 화려하고 웅장한 곳이다.
내가 전생에서 만들었던 신성 가야미국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일단 악돌이가 있는 연못만 해도 호수만 한 크기였으니까.
아, 지금 나는 이 세계에 맞게 육체가 개미만 한 크기로 줄어든 상태다.
육체를 자유롭게 조정하는 재주는 신의 탑을 오르면서 얻은 신도 중, 천변만화라 불리는 마법 소녀에게서 얻은 스킬이다.
사실 마법 소녀라기보다는 도둑에 가까운 녀석이었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이게 대체 얼마 만이지?’
이 세계를 기준으로 한다면 내가 떠난 시간은 기껏해야 몇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무려 수천 년 동안이나 탑에 갇혀 있었다.
감회가 새로웠다.
“후우, 좋아.”
여운에 잠기는 것도 잠시.
그럼 모처럼 왔으니까 친구랑 우리 애들이나 만나러 가 볼까? 다들 별일 없이 잘 지내고 있으려나.
쿵! 쿵!
철그렁! 철그렁!
“응?”
갑작스레 뒤에서 들려온 시끄러운 쇳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터무니없이 거대한 아령들을 품에서 떨어뜨린 채, 부릅 커진 눈으로 날 바라보는 사내가 보였다.
“이, 이럴 수가.”
슬쩍 봐도 숙련된 헬창으로 보이는 검은 톤의 우람한 근육을 가진 남자, 일호가 눈물을 그렁거리며 내게 돌진했다.
쿵! 쿵!
“유, 유일신 님이시여! 드디어 돌아오셨군요! 흐어엉!”
“오, 일호야. 잘 지냈어?”
나는 씨익 웃으며 양팔을 옆으로 벌린 채, 내게 달려드는 일호를 맞았다.
우드드득!
“크흐윽! 저희가 얼마나 유일신 님을 걱정했는지 아시옵니까! 흐어어엉!”
“커헉! 이, 일호야! 숨, 숨 막혀!”
전신이 으스러질 것 같은 기분, 아니 아니 진짜 으스러질 것 같잖아!
아무리 내가 분신들과 분리한 상태라 전력이 아니라지만, 그래도 최상급 신위급 이상의 신력을 쌓았는데 말이다.
더 이상 신도, 용사도 아닌 일호의 괴력은 내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아차! 제가 너무 반가워서 그만! 유일신 님! 제 불경을 용서해 주소서!”
일호가 사색이 된 얼굴로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일호야, 잠깐만 있어 볼래?”
“네?”
나는 일호를 신의 눈으로 ‘보았다’.
띠링!
-미완의 ‘개안(開眼)한 신의 눈’이 지구를 봅니다.
그러자 내 눈에 지금 일호의 상태가 보이기 시작했다.
순간, 내 등줄기를 타고 전율이 스쳐 지나갔다.
‘이, 이럴 수가!’
실낱같은 기운이었지만, 일호의 몸 안에서는 신력이 흐르고 있었다.
더군다나 그것은 너무나 낯이 익은 신력이었다.
저 눈부신 황금 광휘의 신력은 분명 영겁의 구도자, 바로 날 위해 희생했던 전생의 일호의 것이었다.
주르륵.
“허억! 유, 유일신 님이시여? 지, 지금 우시는 겁니까?”
“아, 아무것도 아냐.”
나는 황급히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비록 전생의 영겁의 구도자는 소멸했지만, 본래 한 사람이었던 인과율 때문인지 그의 신력의 일부가 이번 생의 일호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이 너무나 기쁘고 감격스러웠다.
잠시 후, 애써 감정을 추스르며 일호에게 물었다.
“다른 애들은 잘 지내? 앤티는 어디 있니?”
“앗! 앤티 황제님 말씀이시옵니까?”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 그게 무슨 소리야? 앤티가 황제라고?”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번 생에서는 가야미국을 만든 적도 없는데 왜 앤티가 황제야?
***
철혈 제국의 대전.
그곳에 무려 수만 명에 이르는 충인 신하들이 만인지상의 군주가 앉아 있는 화려한 옥좌를 향해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옥좌의 옆에는 철혈 제국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십검(十劍)들과 그곳에서 유일하게 무기를 소지하는 것이 허락된 근위대장, 가야미족의 창술사 이호가 있었다.
옥좌의 주인, 백설 같은 피부를 가진 아름다운 소녀가 양손을 꼬옥 쥔 채 수심 어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직도 원인을 찾지 못하였나요?”
순간 대전의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송구하옵니다! 폐하!”
“백방으로 수소문해 보았지만 아직 그 원인을 찾지 못했사옵니다!”
면목 없다는 듯, 수만의 대신들이 일제히 머리를 바닥에 박았다.
“아아, 유일신 님…….”
철혈, 아니 이제는 철혈 가야미 제국의 황제 앤티의 에메랄드빛 눈동자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
이 소란의 원인은 바로 태상황제 폐하의 친우이자 가야미족의 신인 유일신이 입장했던 신의 탑이 아무런 전조 없이 소멸되었기 때문이다.
앤티의 눈물을 보자 십검 중 일인, 사마귀 충인 카미키리가 살벌한 기세를 뿜으며 낫처럼 생긴 팔을 들었다.
“하등 쓸모없는 것들이로구나! 내 너희들의 목을 베어 폐하께 바치겠다!”
“히이익!”
“황제 폐하! 제발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그만두세요, 카미키리 공. 저들의 잘못이 아닌걸요.”
앤티가 손을 뻗어 카미키리를 만류했다. 그리고 대신 자신의 옆에 공손히 서 있는 섭정, 거미 여인 아라크네를 바라보았다.
“아라크네 언니, 백신전(百神殿)에서 뭔가 답이 왔나요?”
아라크네가 고개를 저었다.
“말씀을 낮추시옵소서, 폐하. 소첩이 신점을 쳐 보았지만, 신의 탑을 만든 것은 신들의 정점이라 불리는 최상급 신들이기 때문에 백신전의 신들로서는 파악이 불가능하다는 답만을 들었습니다. 유일하게 답을 주실 수 있는 것은 투신뿐이시지만, 그분께서도 언제부터인가 응답이 없으시군요.”
“흐윽흐윽, 유일신 님 무사하시온지요……. 흐아앙!”
마침내 더 이상 참지 못한 앤티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며 오열했다.
모두를 구하기 위해 홀로 신의 탑에 입성하신 유일신 님을 더는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화, 황제 폐하! 제발 용루(龍淚)를 멈추어 주소서!”
“폐하! 저희들이 죽을죄를 지었나이다!”
대전에 있는 모든 이들이 신생 철혈 가야미 제국의 황제 앤티의 울음에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쿵! 쿵!
그때였다. 굳게 닫혀 있던 대전 밖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일호 님! 회의 중입니다! 아무리 일호 님이라 해도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어허, 저리 비키래도! 내 긴히 앤티 황제님께 고할 게 있다 하지 않았느냐! 흐아압! 근유우욱!”
콰콰쾅!
우렁찬 함성과 대전 문이 박살 날 기세로 열리더니, 족히 백 명은 될 것 같은 근위병 무리가 질질 뒤로 밀려나 갔다.
황소 같은 기세로 콧김을 씩씩 품으며 근위병들을 밀어내고 있는 일호의 뒤로.
저벅저벅.
전신에 휘황찬란한 순백의 기운을 뿜고 있는 사내가 대전에 모습을 드러냈다.
“으윽! 눈부셔!”
“어, 어찌 저리 신령스러운 기운이!”
대전에 있던 수많은 충인들이 차마 그런 유일신의 모습을 직접 바라보지도 못한 채, 홍해가 갈라지듯 옆으로 몸을 피했다.
그런 유일신과 황제의 옥좌에 앉아 있던 앤티의 시선이 마주쳤다.
유일신이 씩 웃으며 그녀를 향해 손을 들었다.
“안녕, 앤티야. 잘 지냈어? 우와, 못 본 사이에 많이 예뻐졌구나!”
“아아…….”
앤티는 순간 숨이 막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