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mporarily Closed for Work Reasons RAW novel - Chapter (282)
“스킬 공유, 최봉식 ‘공간의 지배자’.”
미나가 놀란 얼굴로 황급히 외쳤지만.
“자, 잠까……!”
슈우욱!
공간이 왜곡되며 미나 자매의 모습이 내 앞에서 사라졌다.
그녀들은 지금도 던전 밖에서 맹렬히 화염을 뿜고 있는 백유현에게로 전송시켰다.
저벅저벅.
그리고 홀로 남은 나는 균열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츠츠츠츠!
신의 탑에서 수없이 겪었던, 세계의 경계를 넘나드는 감각과 함께 내 눈에 다른 세계가 펼쳤다.
처음 나를 맞은 것은 유독 성분이 가득 배어 있는 지독한 악취다.
부글부글!
그 악취의 원인, 오수처럼 시커먼 늪에서 물이 들끓듯 쉴 새 없이 기포가 피어났다.
늪에 발을 디딘 나를 집어삼키려는 손길을 뿌리치며 나는 허공에 부유한 채 주변을 살폈다.
대륙과 바다로 이루어진 지구와는 달리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단 하나, 저 깊이를 짐작할 수 없는 심연의 늪뿐이었다.
-호호호! 설마 진짜 따라올 줄은 몰랐는데?
요사한 웃음소리와 함께 세기의 미인이라고 불릴 만한 아름다운 얼굴과 풍만한 몸매를 가진 나신의 여인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나는 별 감흥이 없었다.
잘록하고 유려한 그녀의 허리 아래에 붙어 있는 것은 차가운 검은 비늘로 뒤덮인 뱀의 하체였으니까.
마치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반인반수의 라미아를 연상케 하는 모습.
아니, 애초에 라미아의 기원이 바로 저것일지도 모르겠다.
전생의 헌터 워에 출전한 그리스 헌터들이 미약하지만 저 자의 신혈을 가지고 있기도 했었으니까 말이다.
-정말 어지간히도 그 벌레들을 아꼈나 보구나. 아니면 혹시 나와 즐기고 싶었어?
심연 늪의 지배자가 새하얗고 풍만한 자신의 가슴을 어루만지며 나를 도발했다.
던전에서 날 경계하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왜 내숭이지? 내가 따라오길 바랐으면서.”
-호호호! 그래! 너를 처음 본 순간, 마치 사랑에 빠진 기분을 느꼈단다. 들리니, 내 가슴의 심장 소리가?
샤아악!
심연 늪의 지배자의 입에서 튀어나온 뱀의 혀가 그녀의 검은 입술을 탐스럽게 핥았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어떻게 그 불완전하고 나약한 하위계 피조물의 육체에 상급 신을 초월하는 신력을 품을 수 있지?
불완전하고 나약한 육체라고?
“아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
지금의 나는 분신들과 분리된 상태니까 말이다.
단순 계산으로도 본래 전력의 4분의 1 수준밖에는 되지 않는다.
게다가 선신의 신력밖에는 남지 않은 나는 이신이나 삼신 녀석처럼 전투에 특화된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결론은 만만하게 보였나 보다.
스륵, 휘리릭.
심연 늪의 지배자의 뱀의 꼬리가 은밀히 내 몸을 휘감았다.
-너를 보고 난 확신했다.
로프처럼 날 결박한 심연 늪의 지배자가 보물을 보듯 날 바라보며 입을 벌렸다.
-널 먹는다면 나도 신들의 정점이라 불리는 최상급 신이 될 수 있겠다고! 오호호호호!
쩌어억!
코끼리조차 가볍게 삼킬 것처럼 거대해진 그녀의 입이 나를 단숨에 집어삼킬 기세로 덮쳤다.
물론 나는 얌전히 먹힐 생각은 없었다.
“스킬 공유, 일호 ‘초강체’.”
불끈불끈!
심연 늪의 지배자가 불완전하고 나약하다 비웃던 내 육체가 전생에서 내가 기억하고 있는 일호, 아니 그의 궁극의 형태라 할 수 있는 ‘영겁의 구도자’의 육체로 변신했다.
나는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근육에 아주 가볍게 힘을 주었다.
“근육.”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나를 집어삼키려던 심연 늪의 지배자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우드득, 우드드득!
-그, 그만두지 못……!
우지지지직! 차아아악!
-꺄아아아악!
갈가리 찢긴 심연 늪의 지배자의 파편이 늪 속으로 풍덩풍덩 처박혔다.
나는 검은 피로 젖은 얼굴을 손으로 닦으며 가만히 그녀를 삼킨 늪을 응시했다.
-네 이놈! 네까짓 게 감히이이!
구구구구궁!
세계를 뒤흔드는 노호성과 함께 늪에서 늪의 세계가 통째로 움직였다.
나는 보았다.
오수처럼 시커먼 늪으로 이루어진 그것의 머리는 하늘에 닿고 그 크기는 소대륙에 달할 정도의, 마치 신화에 등장하는 리바이어던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뱀을.
-네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이곳에서의 나는 불사신이다! 네놈은 결국 내 먹이가 될 것이야!
띠링!
-미완의 ‘개안(開眼)한 신의 눈’이 ‘심연 늪의 지배자’의 본질을 봅니다.
순간 내 눈에 그것의 정보가 새겨졌다.
그래, 이것이야말로 자신의 세계에 나를 끌어들인 심연 늪의 지배자가 가진 자신감.
이 세계를 뒤덮고 있는 이 늪 자체가 심연 늪의 지배자의 육신이자, 신력의 근원이었던 것이다.
전생에서 저것을 잡아먹었던 황제도, 만약 이곳에서라면 저것을 쉽게 당해 내지 못했을 것이다.
늪으로 이루어진 저것의 육체를 부숴 봐야 금세 재생하고 말 테니까 말이다.
-반항해도 소용없다! 얌전히 내게 먹히거라! 이름 모를 변방의 신아!
나는 반박했다.
“이름이 없던 건 전생의 일인데.”
캬오오오오!
심연 늪의 지배자, 세계를 뒤덮은 죽음의 늪이 내 말은 들은 척도 않고 나를 집어삼키려 했다.
나는 그것을 무미건조하게 응시했다.
확실히 녀석의 말대로 분신과 분리된 지금의 내 상태는 불완전하긴 하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지금의 나와는 다르게 완벽하고 멋진 육체를 완성한 존재를.
나는 내 신도이자 신인 그의 이름을 불렀다.
“사도 강림 ‘산을 씹는 거신’.”
-껄껄껄! 내게 맡기시오! 삼라만상을 쓰는 자시여!
동시에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나를 매개로 이 세계에 신이 강림했다.
정확히는 그 신의 일부가.
콰르르 콰콰쾅!
천지를 요동케 하는 폭음과 함께 심연 늪의 세계가 칠흑 같은 어둠으로 뒤덮였다.
심연 늪의 지배자는 갑작스럽게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대경실색했다.
-뭐, 뭐냐! 이건! 이, 이 내가 갇혔다고?
심연 늪의 지배자는 온몸을 뒤틀며 그것에서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그를 가둔 정체불명의 어둠에는 바늘이 빠져나갈 틈도 없었다.
-꺄아아악! 내, 내게 무슨 짓을 한 거냐! 이건 대체 뭐란 말이냐!
그러자 내가 신의 탑을 오르는 동안 억겁의 고행, 아니 식탐 끝에 심연 늪의 지배자보다도 거대하고 강대한 육체를 키운 ‘산을 씹는 거신’.
-껄껄껄! 참으로 작고 하찮은 미꾸라지구나!
그가 바위로 이루어진 자신의 거대한 손에서 발악하는 심연 늪의 지배자를 향해 껄껄 웃었다.
신은 자신의 자격을 증명한다 (2)
-끼아아아악! 내보내 줘! 제바아알!
심연 늪의 지배자. 수많은 세계에서 악명이 드높은 대악신이 비명을 지르며 날뛰었다.
비록 늪으로 이루어졌지만, 어지간한 소대륙만 한 크기의 압도적인 괴물이다.
쾅! 콰콰쾅! 콰르르 콰콰쾅!
그것이 날뛸 때마다 마치 세계가 부서지는 것 같은 광음이 끔찍하게 울려 퍼졌다.
그러나 그런 대악신의 발악은 그저 서유기의 손오공이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는 꼴과 같았다.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심연 늪의 지배자를 가둔 것은 바위로 이루어진 거대한 손이었으니까.
-거룩하고 지고하신 신 ‘삼라만상을 쓰는 자’시여, 이만 으깨 버려도 되겠나?
산을 씹는 거신의 음성은 평온하기만 했다. 아니, 이제 슬슬 지루하다는 기색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인과율을 아끼기 위해서 겨우 두 팔만 소환한 것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심연 늪의 지배자를 제압하기에는 충분했다.
-히이익! 아, 안 돼애애! 사, 살려 주소서! 제가 보는 눈이 없어 천외천의 신을 몰라 뵈었나이다!
산을 씹는 거신의 말을 들었는지, 심연 늪의 지배자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애원했다.
그 닭똥 같은 눈물의 크기가 웬만한 산보다 더 거대했지만, 뭐 사소한 건 넘어가도록 하자.
-어쩔 텐가? 나의 주인이신 거룩하고 지고하신 삼라만상을 쓰는 자시여.
산을 씹는 거신이 내게 다시 물었다.
‘뭔가 좀 그렇군.’
사실 바위로 이루어진 양팔만 덩그러니 소환된 그의 모습은 조금 그로테스크해 보이기도 했다.
그냥 머리까지는 소환할 걸 그랬나?
아냐. 아껴야 잘 살지.
“거룩하고 지고하신 수식어는 어쩐지 낯간지럽네요. 그냥 유일신이면 되는데요.”
-껄껄껄! 그럼 나야 좋지! 하긴 성녀도 없으니까 눈치 볼 것도 없겠군. 어휴, 그 녀석. 어릴 땐 내 말이면 끔벅 죽던 녀석이 이제는 사사건건 신의 위엄을 지켜야 한다고 잔소리를 해 대니!
투덜거리는 거신의 모습을 보니 어쩐지 마누라 바가지에 집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중년 남성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짠했다.
“원래 남자는 나이 들수록 여자 말을 잘 들어야 말년이 편하데요. 그나저나 하데스는 좀 어때요?”
-아아. 그 녀석? 이제 제법 쓸 만해졌지. 이제 웬만한 상급 신은 혼자 토벌할 수 있을 것이오. 우리 유일신께서 이름을 하사해 준 보람이 있지 않겠소! 허허허!
“다행이네요.”
하데스, 전생에서는 고사득의 손녀인 네크로멘서인 고명지의 소환수였던 데스 나이트.
본래 산을 씹는 거신의 수하로 그와 함께 죽음을 맞게 되어 명지에게 사역되는 하데스의 운명도 이번 생에서는 그의 주인과 같이 크게 바뀌었다.
뭐 산을 씹는 거신만큼은 아니지만 말이다.
거신은 신들의 정점이라 불리는 최상급 신위는 얻지 못했지만, 전투력만은 그에 준할 정도로 강해졌다.
그것도 그럴 수밖에. 나와 함께 온 세계의 맛있는(?) 명산들을 씹어 먹고 다녔으니까 말이다.
생각만 해도 진저리가 나는 신의 탑의 시련 중에서는 때로는 여러 곳의 세계를 한꺼번에 구원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가 활약한 일화 중 쉽게 알 만한 예를 하나 들자면, 문어 공주 에스메랄다가 등장하는 대우주 제국의 세계에서 재앙처럼 쏟아지는 유성우를 먹어 치우기도 했다.
그 영향으로 의 스토리가 조금 달라졌지만.
‘아, 그러고 보니 깜박했네.’
지구에 도착하면 필르테쿠스 찌끼리아 감독하고 를 찍기로 약속했는데.
-사, 살려 주소서! 위대하고 지고하신 삼라만상을 쓰는 자시여! 제발 자비를 베푸소서!
산을 씹는 거신의 손에 갇혀 있는 심연 늪의 지배자가 나를 부르는 호칭이 달라졌다.
거신이 말하는 걸 들은 모양이다. 제법 눈치가 있는 뱀이었다. 거신이 혀를 차며 말했다.
-쯧, 나는 사실 이런 사악한 종자는 그냥 박살 내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오.
-꺄아아아악! 위대하고 자비로운 지고하신 신이시여! 이 비천한 것의 목숨만은 제바알!
심연 늪의 지배자가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표정으로 엎드린 채 내게 애원했다.
“넌 운이 좋아, 뱀.”
사실 이신이나 삼신이면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죽이거나 먹어 치웠을 것이다. 사신 놈은 내 분신이긴 하지만, 좀 알 수 없는 구석이 있으니까 어떻게 했을지는 알진 못하겠고.
“내가 우리 4인조 중에서 착함을 맡고 있거든.”
그렇다. 나는 선신이니까.
심연 늪의 지배자가 반색했다.
-가, 감사하옵니다!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앞으로는 악업을…….
“응, 그래. 그래도 벌은 받아야지.”
-네, 네?
“신기 소환 ‘삼라만상’.”
츠츠츠!
내가 손을 뻗자 신성하게 빛나는 눈부신 황금 펜이 소환됐다.
나는 그것을 바위 손에 갇혀 있는 심연 늪의 지배자에게 겨눴다.
한편, 신의 본능으로 뭔가 불길한 예감을 느꼈는지 녀석이 온몸을 뒤틀며 비명을 질렀다.
-히익! 자, 잠깐만! 신이시여! 그것만은 제발!
스스슥!
내 삼라만상이 심연 늪의 지배자에 새겨졌다.
슈우우욱!
마감(?)을 끝마친 나는 늪의 세계에서 지구로 귀환했다.
슬쩍 지상을 내려다보니 죄악의 던전 입구에서 백유현과 다투고 있는 미나 누나의 모습이 보였다.
“난 괜찮다니까! 그보다는 빨리 그 사람을 구해!”
“미나야, 정말 사람이 있었던 건 맞아? 방금까지 던전에는 결계가 쳐져 있어서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는데…….”
“시바! 맞다니까! 아무래도 안 되겠어! 내가 다시 들어가야……!”
“야! 알았어! 알았다니까! 그러니까 제발 진정 좀 해!”
나는 슬그머니 주먹을 쥔 손을 바라보았다.
꿈틀꿈틀.
손안에서 그것이 움직인다.
미나 누나는 아무래도 이 녀석과 싸울 내가 걱정됐나 보다.
나는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봉식이에게 얻은 공간 능력이 발동했다.
슈우욱!
잠시 후, 나는 우주에 있었다.
내 발 아래로 아름다운 푸른 별 지구가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있는 내 소중한 고향.
띠링!
-미완의 ‘개안(開眼)한 신의 눈’이 지구를 봅니다.
분신들과 분리된 이 불완전한 눈으로 보았음에도, 내 지구에는 암세포처럼 던전과 게이트 들이 득실거렸다.
저것들이 왜 생겼는지 그 원인은 알고 있다.
파괴신에게 멸망을 앞둬 인과율이 뒤틀리기 시작하는 세계에는 그 콩고물을 노리기 위해 다른 세계의 신들이 자신의 권속을 보낸다.
심지어는 심연 늪의 지배자처럼 자신의 화신을 통해 직접 강림하기도 한다.
어차피 멸망한 세계이니까 그 행위에 대한 죄책감 따위는 없다.
“불쾌해.”
예전에 퓰리처상을 받은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죽어 가는 아이를 가만히 응시하며 그 숨통이 완전히 끊어지기를 탐욕스럽게 기다리고 있는 독수리의 사진.
전 세계인들에게 충격과 역겨움을 주었던 그것과 유사한 광경이 지금 내 지구에서 펼쳐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