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mporarily Closed for Work Reasons RAW novel - Chapter (281)
과거의 전생에서 이런 일은 없었다.
이것은 운명이 변함으로 나타난 변수인가?
아니면 나락의 농간일까?
뭐가 됐든 그녀들을 건드린다면…….
우드득!
나는 부서질 듯 주먹을 쥐었다.
***
‘죄악의 던전’ 내부.
쉭! 쉬익!
차라라라라락!
섬뜩한 울음소리와 함께 비늘이 부딪치는 소리가 사방에서 섬뜩하게 울려 퍼졌다.
바로 도망친 먹이를 찾기 위해서.
그 먹이의 대상은 바로 두 여인이었다.
‘치잇! 끈질긴 놈들!’
성미나가 던전 통로의 틈에 몸을 숨긴 채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녀의 품에는 반파된 헬멧과 찢긴 슈트를 입고 있는 피투성이인 소녀가 안겨 있었다.
바로 S급 승급을 위해 이 던전에 도전한 A급 헌터 뇌제,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소중한 동생인 성미리였다.
“하아하아. 어, 언니.”
미리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미나에게 힘겹게 말했다.
“난 신경 쓰지 말고…… 언니라도 도망쳐…….”
“시바, 닥……! 아니 조용히 해.”
자신도 모르게 험한 말이 나가려는 걸 애써 억누르며 미나가 부드럽게 미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넌 언니만 믿고 있어. 내가 이런 일쯤 한두 번 겪어 본 줄 알아? 게다가 곧 구조 팀이 올 거야. 넌 아무 걱정 하지 마.”
애써 동생을 안심시키려고 애쓰고 있는 성미나였지만, 그녀의 마음은 격랑처럼 술렁이고 있었다.
‘제길, 왜 이런 일이!’
짧은 기간 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동생, 뇌제 성미리는 S급 승급을 위해 이 ‘죄악의 던전’에 도전했다.
S급 승급의 조건 중, 하나는 A급 이상의 던전을 단신으로 토벌하는 것이었으니까.
사실 미리가 이 던전을 선택하게 된 것은 성미나의 입김이 많이 들어갔었다.
대외적으로 S급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성미나의 등급은 SS급이다.
실질적인 대한민국 최고의 헌터라고 할 수 있을 정도.
미나는 헌터 협회에 고집을 부려 일부러 A급 중에서도 약한 던전을 고르고, 만에 하나 일어날 불상사를 대비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시험관으로 파견 오기까지 했었다.
그것은 나락의 제물이 될 운명이었던 동생의 성장을 막기 위해 일부러 매몰차게 대했던 전생의 미나의 행보와는 대조되는 것이었다.
그녀의 파트너인 백유현은 물었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생각을 바꾼 것인지.
“……그 사람이랑 약속했거든, 미리가 바라는 대로 해 주기로.”
“약속? 대체 그 사람이 누구길래 쇠심줄 같은 네가 생각을 바꿀 정도야?”
“흥! 넌 몰라도 돼!”
성미나는 차마 그 계기가 꿈에서 만난 작고 귀여운 신님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마치 개미를 닮은 그 신님은 오랫동안 미나를 괴롭혔던 나락의 낙인을 풀어 주었다.
-지금은 이 정도밖에 해 줄 수 없지만, 기다려 줘요, 미나 누나. 내가 다시 돌아오는 날에 반드시 누나를 괴롭히던 악몽을 끝내 줄게요.
언제 죽을지 전전긍긍하며 시한부의 삶을 살던 미나에게 그 정체불명의 신의 존재는 어둠 속의 등불과도 같았다.
분명 처음 보는 존재였지만,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친숙하고 또 의지가 되는 신님.
게다가 그의 꿈을 꾼 것은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동생인 미리도 자신과 같은 꿈을 꾼 것을 계기로 엄청난 능력의 향상을 이루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언니! 우리 선생님이 말이야!”
서로 꿈에서 보았던 그 정체불명의 신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며,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았던 두 자매의 관계는 회복되었다.
그것은 기적이었다.
미나는 그 기적에서 구원의 희망을 품었다.
그래서 미리의 바람대로 그녀가 S급 헌터가 되는 것을 허락했던 것인데…….
‘그랬으면 안 되는 거였나 봐.’
미나는 뒤늦게 후회했다.
처음 시험은 미나의 바람대로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미리는 이제는 뇌제란 별명이 어울릴 정도로 자유롭게 뇌전을 사용했다.
그 힘은 S급인 다른 베테랑 헌터들과 비교해도 조금도 뒤지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미리가 죄악의 던전의 보스 몬스터를 처리하기 직전.
쩌적! 쩌저적!
던전 내부에서 갑자기 균열이 발생하더니, 그 틈을 비집고 지금 그녀들을 노리고 있는 괴물이 나타났다.
위험을 감지한 미리가 황급히 미나를 구하기 위해 던전에 뛰어들었다.
설령 SS급 몬스터라도 어떻게든 감당할 자신이 있는 미나였지만, 저것은 그런 차원을 아득히 넘어섰다.
최흉의 몬스터에게나 붙는 SSS급,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쉬익! 쉬익!
그때 사방에 뿔뿔이 흩어지며 그녀들을 찾고 있던 뱀의 시선 중 하나가 송곳처럼, 던전의 틈에 숨어 있는 미나 자매에게 박혔다.
미나가 황급히 능력을 발동해서 그 뱀의 정신을 부쉈다.
-키아악!
뱀이 검은 피를 토하며 쓰러졌지만, 아쉽게도 한발 늦었다.
차라락! 차라라락!
뱀 비늘이 소름 끼치게 부딪치는 소리가 사방에서 성난 파도처럼 울려 퍼졌다.
“치잇!”
미나가 미리를 들쳐 업으며 도망치려 했지만, 이미 수백만 마리는 될 것 같은 뱀 떼가 자신들의 몸으로 던전 통로를 통째로 틀어막으며 퇴로를 차단했다.
스륵, 스르륵!
그때 뱀의 일부가 뒤엉키더니, 인간의 형태로 합쳐지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뱀으로 이루어진 그것의 입술이 열렸다.
-제물들아, 겨우 여기 숨어 있었느냐?
온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을 느끼며 미나가 그 존재를 노려보았다.
뱀으로 이루어진 여인의 나신 같은 몸에 살아 움직이는 뱀으로 이루어진 머리칼은 마치 그리스 신화의 메두사를 연상케 했다.
“넌 대체 뭐야? 왜 우리를 노리지?”
-나는 심연 늪의 주인, 위대한 악신 중 하나다. 영광으로 여겨라. 내가 하위계의 피조물에 불과한 너희들을 제물로 선택했느니. 그 혈육과 혼을 바쳐 나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파괴신의 하수인인 나락에게 먹히느니 그게 너희들에게도 낫지 않겠느냐?
“닥쳐! 망할 뱀 년아!”
나락.
그것은 과거 자신들을 제물로 지목하고 제물의 낙인을 새긴 나락용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동생만은 어떻게든 살린다.
설령 자신의 목숨을 바치더라도 반드시!
“궁극 스킬, ‘심상(心想) 공간’!”
성미나의 이마에 폭발할 듯 혈관이 치솟으며, 코와 귀에서 시뻘건 핏물이 흘러내렸다.
고오오오!
쩌적! 쩌저적!
성미나가 목숨을 쏟아 낼 기세로 발하는 정신 능력의 영향에 던전 내부의 풍경마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지금 성미나가 쓰려고 하는 것은 자신의 정신세계에 상대를 끌어들여 봉인시키는, 그녀가 가진 최고의 스킬이었으나.
-후후, 하찮은 발악이로구나.
저 괴물을 가둘 수는 없었다.
그것은 마치 우물로 대해(大海)를 담으려 하는 감각.
뱀 여인이 조소하며 가볍게 손을 저었다.
쩌저적!
쨍그랑!
그 가벼운 손짓 한 번에 성미나의 능력이 발동하기도 전에, 그녀의 심상공간이 파훼되었다.
“커허억!”
능력의 반동에 성미나가 가슴을 움켜쥐며 시커멓게 죽은 울혈을 토했다.
그런 그녀를 가엾다는 듯 내려다보며 뱀 여인, 심연 늪의 지배자가 혀를 끌끌 찼다.
-가엾구나. 고작 하위 세계의 피조물 따위가 위대한 신의 정신을 가둘 수 있을 거라 여겼느냐? 어찌 이리 아둔한 존재인지.
심연 늪의 지배자가 자신의 권속에게 명령했다.
-자아, 어서 제물을 내게 바치거라.
쉬익! 쉬이익!
그러자 사방에서 울부짖는 검은 뱀 떼가 해일처럼 쏟아지며 미나와 미리를 집어삼켰다.
아니, 그러려 했다.
미나는 보았다.
자신들 앞에 우뚝 선 채, 해일처럼 몰아치는 검은 뱀의 해일을 겨우 검지 하나로 막고 있는 남자를.
이상했다.
분명 처음 보는 남자였지만, 왜인지 모르게 너무나 낯이 익고 친근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꿈속에서 보았던 그 작고 귀여운 신님처럼…….
“누군가 했더니 너였냐, 뱀?”
남자, 유일신이 심연 늪의 지배자를 차갑게 노려보았다.
신은 자신의 자격을 증명한다
쉬익! 쉬이익!
시커먼 뱀들이 사납게 꿈틀거리며 울부짖었지만, 그것들은 내 손끝에서 펼쳐진 신력의 벽에 가로막혀 미동도 하지 못했다.
스윽.
“누군가 했더니 너였냐, 뱀?”
나는 그 뱀 떼 너머, 이것들은 이것을 불러낸 존재를 노려보았다.
바로 전생에서 나를 괴롭혔던 악신 중 하나이자, 황제에게 잡아먹혔던 대악신 ‘심연 늪의 지배자’.
아니 정확히는 그것의 화신(Avatar)체가 있었다.
시간대는 차이가 있지만 분명 전생에서도 이랬다.
그래, 파괴신에게 멸망을 앞둔 세계에는 이런 악신들이 제물을 노리고 몰려든다. 마치 시체에 꼬이는 송장벌레처럼.
“넌…… 아니 당신은 누구야? 처, 처음 보는 헌터인데.”
피투성이인 미리를 품에 안은 채, 미나가 복잡한 감정이 담긴 눈으로 나를 보았다.
순간, 가슴이 약간 아릿했다.
그녀들과 겪었던 전생의 인연은 사라졌음을 새삼 느꼈기에, 나는 그녀들에게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일 것이다.
-신도 구원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대상 : ‘성미나’, ‘성미리’.
-유일신이여, 당신의 신도인 ‘성미나’와 ‘성미리’를 죽음의 위기에서 구원하시겠습니까? (Yes/No)
하지만, 이렇게 아직 신과 신도로서의 인연은 남아 있다.
나는 그것으로 만족한다.
“치유하는 신의 약지.”
나는 약지를 그들에게 뻗었다.
번쩍!
츠츠츠!
그러자 순백의 빛이 부상당한 자매를 감싸며 피투성이인 그녀들의 몸을 순식간에 치유했다.
그 기적에 미나가 부릅 커진 눈으로 나를 보았다.
“어, 어떻게 이런 치유력을? 다, 당신…… 설마 미국에서 파견된 S급 치유 헌터야?”
“서, 선생님?”
부상이 치유된 미리가 미나의 품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나를 별빛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서…… 선생님 맞으시죠? 꿈속에서 저를 가르쳐 주셨던…… 반드시 돌아오시겠다고 약속한 그분이…….”
나도 모르게 살짝 미소 지었다.
고작 꿈속에서의 일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니 고마웠다.
“응, 안녕. 미리야. 보고 싶었어.”
“유일신…… 선생님…….”
미리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미나도 그런 그녀를 보다니 놀란 눈으로 나를 다시 바라보았다.
“다, 당신이 그 신님?”
그때였다.
쉬이익! 쉬이익!
미나 자매들을 덮치려던 뱀 떼가 썰물처럼 뒤로 빠졌다.
스윽.
뱀으로 만든 인간 여성 형상의 의체(衣體)를 뒤집어쓰고 있던, 심연 늪의 지배자가 나를 관찰하듯 응시하더니 정중하게 물었다.
-너, 아니 그대는 누구십니까? 이 상급 선신에게서나 느낄 수 있는 순양(順陽)한 신력……. 설마 이 세계의 신인가요?
나는 즉답했다.
“그렇다.”
내가 신의 탑에서 인고의 세월을 겪으며 다시 돌아온 이유.
바로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이 세계를 구원하기 위한 신이 되기 위함이었으니까.
“내가 이 세계의 유일무이한 신, 유일신이다.”
내 선언에 심연 늪의 지배자의 텅 빈 안광이 감탄하듯 빛을 발했다.
-멸망을 앞둔 이런 하위계의 행성 따위에 당신 같은 신격이 존재하다니 놀랍군요. 저 피조물들은 그저 파괴신의 제물이라 여겼건만, 설마 저들이 그대의 신도들이었던가요?
“내 소중한 가족이다.”
-호호호! 당신 같은 신이 저런 하등 생물과 가족이라니 무척 질 낮은 농담이군요.
심연 늪의 지배자가 뱀으로 이루어진 가슴을 들썩이며 웃었다.
-하지만, 그대의 마음은 잘 알았어요. 어쩐지 저들에게서 단순히 파괴신의 낙인 말고도 탐스러운 축복의 기운이 느껴진다 했더니 당신의 가호가 깃든 것이었군요.
심연 늪의 지배자가 손을 옆으로 뻗었다.
쩌적! 쩌저적!
그러자 허공에 갈라지며 시커먼 어둠이 꿈틀거리는 균열이 생겼다.
스르륵. 그녀가 그 균열 속으로 천천히 몸을 들이밀었다.
-이 세계의 신인 그대의 면을 보아 오늘은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어요. 어차피 당신 정도의 신격을 이런 조악한 화신의 육체로 상대할 수 없을 테니까.
나는 묵묵히 그것이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저것을 짓뭉개 버리는 것은 분신을 증식해 신력이 약해진 지금의 나로서도 손쉬운 일이다. 그러나 어차피 저것은 본체가 아닌 화신체. 의미 없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혹 오늘 일에 불만이 있다면 부디 제 세계로 강림해 주셨으면 좋겠군요. 당신이 만약 그럴 용기가 있다면! 호호호호!
유혹과 도발이 섞인 웃음을 흘리며 심연 늪의 지배자와 그가 부리는 뱀 떼가 균열 너머로 완전히 사라졌다.
고오오오!
심연 늪의 지배자는 사라졌지만, 그것이 남긴 균열은 여전히 남아 있는 채 마치 나를 유혹하듯 음울한 어둠을 토해 내고 있었다.
아, 그래.
따라오라는 거지?
나는 싱긋 웃으며 멍한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미나와 미리의 손을 잡았다.
“전 아무래도 여기 일 마무리 좀 해야겠는데요. 우리 자매님들은 잠시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래요?”
“뭐?”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