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mporarily Closed for Work Reasons RAW novel - Chapter (280)
***
주르륵!
“자까님…….”
내가 주물럭거려도 부처님처럼 요지부동이던 담당이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어, 담당님. 왜 울어요?”
설마 내가 확인차 만진 살들 중에 예민한 부위가 있었나?
덥석!
담당이 갑자기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이 자까 놈이 글을 쓰다 너무 몰입해서 드디어 맛이 갔구나.’ 하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어쩐지 갑자기 원고를 팍팍 주신다고 했더니만, 이런 마음의 병을 앓고 계셨다니! 자까님, 제가 잘 아는 정신과가 있는데 같이 가시죠! 크래커 작가님 아시죠? 그분도 불면증에 공황장애까지 시달렸는데 거기 가고 나서 한 방에 싹 좋아졌지 뭡니까! 자, 어서 갑시다!”
“어허! 난 멀쩡해여! 내 정신 건강보단 담당님 뱃살이나 신경 쓰시져!”
탁! 나는 매몰차게 담당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황급히 팔목을 바라보았다.
“앗,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다니! 밀린 스케줄들이!”
“저기, 자까님. 팔목에 시계는커녕 아무것도 안 차고 계십니다만. 역시 저랑 병원에 가는 게…….”
“아무튼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웠어요. 담당님. 그럼 뒷일은 잘 부탁드려요! 이번 건 잘 팔려서 사인회도 열 수 있으면 좋겠네요!”
“거참, 사인회라니 꿈도 크시…… 엇? 자까님? 어디 가셨어요? 자까님!”
담당이 눈을 부비며 주위를 살폈지만, 당연하게도 나는 이미 그곳에 없었다.
***
슈우우웅!
세계 곳곳에서 날아온 비행기들이 푸른 하늘을 바삐 수놓고 있는 곳.
바로 인천국제공황.
척!
그곳에 지금 미국에서 날아온 한 남자가 도착했다.
공황을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절로 그에게 쏠렸다.
“연예인인가?”
“아니, 처음 보는 얼굴인데?”
“와, 저게 다 얼마야? 쩐다!”
화려한 금발에 거친 남성미를 뽐내기 위해 검게 태닝을 한 잘생긴 청년의 몸에는 도배하듯 값비싼 명품이 가득했다.
슥.
그가 쓰고 있던 구찌 선글라스를 살짝 내리며 한국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훗,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헌터가 될 나, 스티브 최가 왔다.”
그는 미국의 헌터 아카데미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S급 헌터 스티브 최, 한국 이름은 최봉식이었다.
그가 미국의 제의를 뿌리치고 한국에 온 것은, 세계 최고의 헌터가 즐비한 미국에서는 자신이 톱이 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왜 동양의 속담 중에 용의 꼬리가 되느니 뱀의 머리가 되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왜인지 얼마 전부터 한국에 돌아오고 싶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향수병이란 거겠지.’
냉혹한 전장을 오가는 헌터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감정이지만, 그는 이 또한 자신의 매력을 더해 주는 인간미적인 요소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대한민국으로서는 영광스러운 일일 것이다. 덕분에 최고의 헌터인 자신을 얻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니 실망이군.’
스티브 최가 흘깃흘깃 자신을 보며 지나치는 사람들을 보며 혀를 찼다.
혹시 몰라서 사인용 매직펜도 준비했는데 말이다.
“게다가 마중도 아직이라니.”
스티브 최가 혀를 쯧 찼다.
운 좋게 퍼스트 클래스 좌석을 예약할 수 있게 되어 예정보다 빨리 도착하긴 했지만, 헌터 협회에서 마중도 안 나오다니!
대한민국 최고의 헌터가 될 자신에 대한 예의가 없지 않는가!
그때였다.
붕붕!
누군가가 그를 향해 요란하게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얼굴은 자신과 비할 정도로 잘생기긴 했지만, 좀 어벙해 보이는 놈이었다. 게다가 언제 빨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후줄근한 저 녹색 추리닝은 뭐란 말인가?
‘흥, 저런 놈이 헌터 협회에서 보낸 놈일 리 없지.’
그렇게 콧방귀를 뀌며 무시하려고 했었는데.
“봉식아~!”
움찔!
“안 들리니~! 봉식아~! 나야~!”
슈욱! 스티브 최가 번개처럼 공간을 이동하며 황급히 녹색 추리닝의 입을 틀어막았다.
“보옹, 우웁!”
“뭐, 뭐냐, 너! 어떻게 그 이름을 알고 있지!”
툭!
그 순간 녹색 추리닝, 아니 유일신이 스티브 최 봉식이의 팔을 가볍게 먼지 털듯 털어 냈다.
“헉!”
그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비록 육체 능력은 좀 떨어지는 공간 계열의 헌터였지만, 명색이 S급 헌터인데 자신을 이렇게 가볍게?
“내가 우리 봉식이를 모를 리가 있나.”
유일신이 방긋 웃으며 십년지기 친구, 아니 꼬붕을 보는 것처럼 봉식이의 목에 팔을 둘렀다.
‘켁켁! 비, 비리비리하게 생긴 주제에 무, 무슨 놈의 힘이!’
스티브 최는 빠져나가려 했지만, 마치 산이 짓누르는 것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심지어 공간 이동까지 써서 빠져나오려 했지만, 능력조차 발동하지 않았다. 봉식이의 등이 식은땀으로 젖어 갔다.
‘설마 한국에 이런 S급 헌터가 있었단 말인가!’
게다가 이상했다.
유일신을 보는 것은 처음이지만, 뭔가 이 상황이 낯설지가 않았다.
“누, 누구냐? 넌!”
“에이, 봉식아. 나야, 나! 유일신!”
스티브 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러니까 유일신이 누구냐고!
“그런데 봉식아, 내가 미안하게도 전생에서 그만 너를 깜박했지 뭐야!”
유일신이 조용히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봉식아, 유일신교를 믿지 않을래?”
덜덜덜!
순간 스티브 최의 전신에 오한이 일며 잔털이 쭈뼛 곤두섰다.
이상했다.
유일신에게서 마치 온통 새하얀 뼈로 이루어진 거대한 용이 자신을 짓누르며 으르렁거리는 것 같은 기묘한 데자뷔가 느껴졌던 것이다.
‘이, 이것이 말로만 듣던, 악명 높은 코리아의 사이비인 것인가!’
그리고 잠시 후.
“내, 내가 왜 미국에 다시……. 그것도 디즈니랜드에…….”
봉식이는 멍한 얼굴로 흥겹게 노래하고 춤추고 있는 디즈니랜드의 마스코트들을 바라보았다.
기껏 반나절 동안 비행기를 타고 한국까지 간 게 무색하게도 그 녹색 추리닝은 한 번에 미국까지 공간 이동해 버렸던 것이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일행까지 데리고.
그건 도저히 인간의 경지가 아니었다.
괴물, 아니 어쩌면 신이나 악마라 불리는 초자연적인 존재다!
한편 유일신이 데려온 일행, 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귀여운 여자아이, 성연이가 멍한 얼굴의 봉식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작은 삼촌. 이 아저씨가 우리 가이드야?”
“파괴!”
삼신이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와와! 신난다!”
성연 이는 잔뜩 신이 났다.
처음에 똑같이 생긴 삼촌들이 우르르 몰려왔을 때는 조금 당황했지만, 시간이 지나니까 금세 적응이 되었다.
어쨌든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삼촌이었으니까.
삼촌이 늘어난 건 아주아주 좋고 신나는 일이었다!
게다가 평소 삼촌은 백수인 데다 움직이는 것도 싫어해서 노는 곳도 겨우 집이나 근처 공원이었는데, 오늘은 무려 디즈니랜드에 데려다준 것이다.
오늘의 성연이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작은 삼촌! 작은 삼촌! 나 저거 먹고 싶어!”
성연이가 매장에서 팔고 있는 츄러스를 가리켰다.
끄덕끄덕.
삼신이 잠시만 기다리라는 듯 가슴을 치더니 멍하니 서 있는 봉식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파괴.”
과자 사 먹게 돈을 내놓아라.
“뭐, 뭐야?”
멍해 있던 봉식이가 자신보다 머리 2개는 작은 소년 삼신을 내려다보았다.
그 미친 녹색 추리닝 놈은 어쩔 수 없었지만, 이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 애송이쯤은!
“파괴!”
번뜩!
그러자 삼신이의 눈이 시뻘건 혈광을 뿜었다.
“여깄습니다! 맘껏 쓰시죠!”
털썩!
봉식이가 공손히 무릎을 꿇으며 삼신이의 손에 자신의 지갑을 바쳤다.
그것은 몸속 깊숙이 새겨진 생존 본능이었다.
삼신이 흡족한 얼굴로 강탈한 지갑에서 꺼낸 돈으로 계산을 하고 성연이와 같이 츄러스를 먹었다.
물론 봉식이의 것은 없었다.
오물오물.
입가에 설탕을 잔뜩 묻히며 입을 오물거리던 성연이가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삼신이에게 물었다.
“근데 작은 삼촌, 다른 큰 삼촌들은 어디 가써?”
처음 이곳에 왔을 땐 삼촌이 네 명이었는데 지금은 작은 삼촌인 삼신 하나뿐이다.
삼신이 꿀꺽 츄러스를 삼키더니 힘차게 외쳤다.
“파괴!”
여자들 만나러 갔어!
성연이가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여자들이라니?
삼촌, 설마 바람둥이여써?
아이는 요람을 나선다. 그리고 (3)
미세 먼지가 자욱이 낀 대한민국 서울의 상공.
“그럼 각자 볼일 끝내고 모이는 걸로 하자. 괜히 사고 치지 말고. 알았지?”
“흥, 너나 잘해라.”
“지구를 실제로 겪는 건 처음이야. 무척 기대되는걸.”
슉! 슉!
나와 똑같은 얼굴을 한 이신과 사신이 뿔뿔이 흩어졌다.
그들의 행선지는 알고 있다.
이신은 회귀자인 강우와 합류한 린 샤오밍과 검귀, 그리고 잔 르망과 엘프들을 만나러 갔다.
사신은 지구에서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며 나도 알고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혼자 남은 난 멍한 얼굴로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그럼 어딜 먼저 갈까?
신의 탑에 갇혀 있었던 수천 년의 시간 동안, 나를 지탱해 준 것은 지구와 가야미국 아이들의 기억이었다.
모두 보고 싶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중 몇몇은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전생에서 내가 갓메이커를 얻고 신과 헌터로 활동했던 시간 축은 사라졌으니.
내가 신이 되기 위해 개미로 환생한 나를 죽이는, 저주받은 무한의 루프는 깨졌다.
이곳에서의 나는 그저 평범한 삼류 작가인 유일신일 뿐이었다.
침울함이 밀려온다.
‘아, 그러고 보니 약속했었지.’
그러다 문득 신의 탑을 오른 수천 년의 시간 한편에 파묻혀 있었던,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다.
‘미나 누나, 미리.’
비록 실제로 만난 적은 없었지만, 신앙을 얻기 위해 꿈을 통해 그들과 접촉하기는 했었다.
특히 미리는 짧은 기간 동안이었지만, 훈련을 시켜 주기도 했고 말이다.
“너무 걱정 마. 반드시 돌아올 테니까. 그때가 되면 꿈속이 아니라 현실에서 만나자. 그동안 언니랑 사이좋게 지내야 돼.”
내가 신의 탑을 오르기 위해 떠나기 직전, 미리에게 했던 말이다.
“그래. 꿈에서 한 약속이지만 지켜야지.”
사실 내가 그녀들을 보고 싶었다.
내 소중한 제자이자 동생인 미리, 그리고 아마 들으면 화내겠지만 우리 귀여운 미나 누나를.
비록 이미 없던 일이 되어 버렸지만, 전생의 나는 그들이 없었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테니까.
슥.
나는 그녀들을 찾아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오늘따라 미세 먼지가 심해서 도심은 잿빛으로 뒤덮였지만, 내 눈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미완의 ‘개안(開眼)한 신의 눈’이 지구를 봅니다.
비록 분신들과 분리되어 백흑적녹(白黑赤綠)으로 빛나는 신의 눈은 아니었지만, 겨우 사람을 찾는 것은 이것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본다.
마치 실타레처럼 얽힌 사람들의 상념과 정보 속에서 나와 신앙으로 연결된 미나 미리 자매의 정보를 모은다.
‘뭐지?’
그때 거슬리는 정보가 내 눈에 비쳤다.
긴급 속보였다.
[S급 승급을 위해 수원 산성에 발현된 A급 던전 ‘죄악의 던전’에 도전한 뇌제와 시험관으로 현장에 입회했던 S급 헌터 성미나가 실종된 지 벌써 36시간째입니다.헌터 협회에서는 곧바로 S급으로 이루어진 구조 팀을 파견하려 했지만, ‘죄악의 던전’에 생성된 정체불명의 배리어를 뚫을 수 없어 구조에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헌터 협회는 ‘죄악의 던전’의 랭크를 황급히 SSS급 이상으로 상향하고, 미국 헌터 협회에게 SSS급 헌터인 로이스의 파견을 요청하였으나…….]
‘SSS급 죄악의 던전에서 미나 자매가 실종되었다고?’
황급히 의식을 전환하자 곧 내 눈에 ‘죄악의 던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콰아아아!
그것에서 처음 본 것은 활화산처럼 솟구치고 있는 거대한 화염이었다.
그 중심에는 나도 익히 알고 있는 적발의 청년, 바로 화염 계열의 S급 헌터 백유현이 있었다.
한계 이상으로 능력을 발현하던 그가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빌어먹을!”
백유현의 불꽃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 자연재해를 방불케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악의 던전을 휘감고 있는 배리어는 미동조차 없었다.
차르르르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