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mporarily Closed for Work Reasons RAW novel - Chapter (69)
***
사람이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한다.
나는 내 지푸라기를 찾으러 식당에 왔다.
식당 한가운데 테이블에서 식판에 산처럼 고기를 쌓아 놓고 먹고 있는 근육질의 남자가 보였다.
[최강산]수컷 인간이다. 사용한 지 58년 되었다.
특이 사항 : 초월의 가능성이 있는 근육이다. 딸을 구해 준 당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
“우적우적, 동생. 아까부터 뭘 그렇게 빤히 보고 있나?”
“강산 형님, 제가 부탁드릴 게 하나 있는데요.”
“꿀꺽! 부탁? 하하, 뭐든 말만 하게나. 동생의 부탁이라면 뭐든 들어주지!”
“별건 아니고요.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 그대로 한 번 따라 해 주실래요?”
내 말을 듣더니 최강산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뭐, 그러지. 자, ‘유일신 님을 믿습니다.’ 됐나? 쩝쩝! 별 이상한 걸 시키는군.”
혹시나 하고 기대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유일신 님을 믿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 신도가 되는 키워드다. 하지만, 미리 씨 때와는 달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으, 안 되나?’
내가 최강산에게 이런 것을 시킨 이유는 그가 바로 초월의 가능성을 가진 S급 헌터이기 때문이었다.
[퀘스트 : 하급 선신 승급(진행 중)]초월의 가능성이 있는 S급 이상의 지적 생명체 신도 : 5(+1)/10
“언니, 나물도 같이 먹어야지. 자, 아~.”
“아~.”
저기 미리 씨의 도움을 받으며 밥을 먹고 있는 성미나가 2명분의 신도 조건을 만족해서 현재 하급 신 승급까지 남은 S급 신도 수는 이제 겨우 4명이다.
그래서 하급 신이 된다면 혹시라도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은 것이다.
하지만, 신앙 활성화의 호감도와 믿음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저 키워드를 말해도 신도는 되지 않는 모양이다.
“강산 형님, 혹시 제가 뭐 도와드릴 거 없을까요? 뭔가 해 주면 ‘와!’ 하고 저에 대한 믿음이 강하게 생길 일이라든가?”
최강산의 눈빛이 게슴츠레하게 변했다.
“무슨 수작이지? 혹시…….”
이크, 너무 직접적으로 말했나?
“내가 아무리 널 좋게 보고 있긴 해도 내 딸은 못 준다!”
쿨럭!
이 딸 바보가 지금 무슨 헛소리를!
확실히 양호 샘이 이 근육 노친네와 같은 유전자를 공유한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이지적인 미인이긴 하지만.
“걱정 마세요. 전 연상은 별로라…….”
그러자 옆에서 미리 씨와 함께 급식을 먹고 있던 성미나가 움찔 어깨를 떨며 날 불안한 눈으로 흘깃 보았다.
쾅!
최강산이 발끈하며 숟가락을 테이블에 박았다.
“이놈! 지금 내 딸이 마음에 안 든다는 거냐!”
이놈의 영감탱이가!
대체 어떤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네!
“아!”
그때 최강산이 불현듯 뭔가 떠올랐는지, 날 향해 은근히 물었다.
“그러고 보니 너. 치유 능력이 있다고 했지? 혹시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도 치유할 수 있을까?”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이라니?
의아해하고 있을 때, 갓메이커가 반응했다.
띠링!
-초월의 가능성이 있는 S급 지성체 최강산의 ‘신도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기적의 미라클
띠링!
-초월의 가능성이 있는 S급 지성체 최강산의 ‘신도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신도 퀘스트]최강산의 친우를 치료해서 그에게 위대한 신의 전지전능함을 보여라.
-대상 : 최강산
-퀘스트 보상 : 최강산의 신앙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갓메이커에 최강산의 신도 퀘스트가 떴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최강산의 친우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게는 이 ‘치유하는 신의 약지’ 권능이 있었다.
“당장 가죠!”
좋아, 일단 S급 신도 1명 확보다.
***
최강산과 내가 도착한 곳은 부활 대학 병원이었다.
낯이 익은 곳이다.
전에 내가 미리 씨와 함께 파괴신의 떨거지인 빡빡이의 테러를 막았던 그 병원이다.
그곳 최상층의 특별 병실.
엘리베이터부터 경계가 삼엄했다.
척 봐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경호원들이 득시글거렸는데 하나같이 이름이 감정 가능한 네임드들, 즉 최소 B급 각성자들이었다.
경호원들은 최강산의 신분을 확인하더니 깊게 고개를 숙이며 그의 출입을 허락했다.
띠링!
경호원 중 하나가 카드키를 특별실 입구에 인식시키자 자동문이 열렸다.
지이잉.
마치 무균실을 방불케 하는 특별 병실 안.
성인 넷은 잘 수 있을 것 같은 커다란 침대에 잠들어 있는 여인이 보였다.
나는 흘깃 옆에 있는 최강산의 얼굴을 보았다.
“뭘 보나?”
“친구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럼! 단순한 친구가 아니라 생사를 함께한 전우지!”
최강산이 콧김을 씩씩 뿜으며 외쳤다.
이거 부녀지간이라고 해도 위화감이 없을 것 같은데.
잘해 봐야 내 또래 정도밖에는 되어 보이지 않는 백발의 여인.
침대에 가득 놓인 꽃과 나뭇잎에 둘러싸인 모습은 환자라기보다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코스프레 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겉모습으로 판단하기는 이르다.
이 사람은 청소부란 이명으로 활동했던 최강산과 더불어 대한민국을 구한 영웅 중 1명이다.
부정기적으로 발생하는 게이트와 던전의 발생을 완벽하게 예측하여 수많은 인명을 구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최고의 예지 능력자.
사람들은 그녀에게 경의를 표하며 미라클이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다.
S급 헌터지만 지병을 이유로 드문드문 활동하던 그녀가 공개 석상에서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15년 전 나락용 사태 이후였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가족을 잃고 분노하는 사람들 앞에 깊게 허리를 숙이며 오열하던 소녀의 모습은 어렸던 내게도 지금까지 잊히지 않을 정도로 강렬히 기억에 남았다.
혹자는 나락용 사태를 예지했어도 그 피해를 막는 것은 불가능했을 거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15년 만에 다시 본 미라클의 외모는 칠흑 같던 머리카락만 백발로 변했을 뿐, 전혀 변함이 없었다.
스스스.
그때 미라클의 주변에 깔아 둔 꽃과 나뭇잎들이 눈에 보이는 속도로 시들어 갔다.
“잠시만요.”
병실에 있던 간호사가 익숙하다는 듯 곧 그것을 회수하고 새로운 꽃과 나뭇잎들을 미라클 주위로 다시 깔았다.
“이미 미라클의 수명은 한계에 달했다. 이런 식으로 주변의 에너지를 흡수해서 간신히 생명을 유지하고 있지. 의사나 치유 계열의 헌터도 그녀를 치료해 보려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최강산이 기대와 초조함이 섞인 얼굴로 물었다.
“어때? 할 수 있겠나?”
“한번 해 볼게요.”
그 전에 일단 어떤 상태인지 감정을 해 볼까.
나는 내 권능 ‘눈먼 신의 눈’을 발동해 보았다.
[이미래]암컷 인간이다. 사용한 지 ???년 되었다.
특이 사항 : 가사 상태로 얼마 남지 않은 생명을 동결시켰다.
가사 상태로 생명을 동결시켰다라…….
어라? 그런데 왜 사용한 년, 나이가 보이지 않지?
마치 숫자만 모자이크로 가린 것같이.
‘오류인가?’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당혹감을 느끼며 그 부분에 의식을 집중해 보고 있을 때.
-여자의 나이에 집착하는 것은 신사의 행동이 아니랍니다.
마치 옥구슬이 구르는 것 같은 청량한 소녀의 음성과 함께.
스르르르.
내 시야가 변했다.
짹짹짹!
예전 소설에서 흔하게 쓰였던 클리셰처럼 생뚱맞은 참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병실에 있지 않았다.
수풀이 우거진 공원.
“후후, 맛있니?”
짹짹, 짹짹짹!
그곳 벤치에 앉아서 쌀을 뿌리며 참새한테 먹이를 주고 있는 백발의 여인이 보였다.
그녀는 조금 전까지 내가 보고 있었던, 병실 침대에 식물인간처럼 누워 있던 미라클, 이미래였다.
나와 미라클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러자 그녀가 박꽃처럼 웃으며 내게 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이 상황에 당황한 내가 어리둥절하게 서 있자, 미라클이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자신의 손에 앉은 통통한 참새를 가리켰다.
“참새가 왜 참새인 줄 아세요?”
“…….”
“참 맛있어서 참새래요.”
그러자 통통한 참새가 화들짝 놀라며 푸드득 도망가 버렸다.
“아.”
그걸 잠시 아쉽게 바라보던 미라클이 다시 내게 말했다.
“바람이 귀엽게 불면 뭔지 알아요?”
그녀가 내게 손을 뻗었다.
깔깔깔.
그러자 아이의 웃음소리와 함께 살랑거리는 미풍이 내 머리칼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듯 불어왔다.
“분당.”
“…….”
“이상하다. 분위기 좀 풀어 보려고 했는데, 재미없어요?”
남자 놈이 했으면 죽빵을 날리고 싶은 아재 개그지만, 확실히 미인이 그러니까 분위기가 다르다.
웃지 못하는 내 입을 때려 주고 싶을 정도로.
“미라클, 그러니까 이미래 님 맞……죠?”
병실에서 공원으로 갑자기 바뀐 풍경.
이것이 처음이라면 당황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성미나와 싸웠던 경험이 있다.
이건 성미나가 쓰던 심상 공간 같은 게 아닐까.
그러자 내 마음을 읽듯 미라클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최근 당신이 거둔 그 가여운 아이와 비슷한 힘이죠, 유일신 님.”
“절 아세요?”
“영차, 당연히 잘 알지요. 유일신. 우리의 세계가 선택한 분.”
절룩절룩.
그녀가 벤치에서 일어나더니 나무 지팡이를 짚으며 내게 다가왔다.
나보다 머리 하나 정도 작은 그녀에게서는 짙은 아카시아향이 났다.
“직접 보니 인상이 다르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예지몽으로 본 당신은 그야말로 악의 화신 그 자체였는데. 역시 사람은 직접 만나 봐야 한다니까요.”
미라클이 날 올려다보며 생긋 웃었다.
“직접 뵈니 생각보다 훨씬 상냥하고 찌질해 보이셔서 조금 안심했어요.”
이건 욕인가 칭찬인가 고민이 된다.
화내야 되는 거 맞지?
미라클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만약 구제할 수 없는 악이라면, 남은 목숨을 걸고라도 제거하려고 했는데 다행이야.”
……역시 참는 게 좋겠다.
연장자이자, 인류의 영웅에 대한 예우를 해 줘야지.
“그런데 왜 절 이곳에……?”
“현실의 육체는 더는 움직이기 힘들어서 이렇게라도 당신을 직접 뵙고 싶었습니다. 부디 무례를 용서해 주세요.”
지나치게 정중한 태도라 낯간지러웠다.
“얼굴을 보셨으면 이만 돌려보내 주실래요? 슬슬 미라클 님을 치료해 드리고 싶은데요.”
난 할 일이 많다.
일단 이분을 치료하고 최강산을 신도로 만든 이후에 나와 앤티들을 노리는 1천억 마리의 벌레 군단과 사도들을 상대할 방책을 고민해야 한다.
“절 치료하는 건 아마 힘들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저한테 당신의 권능을 써 보시겠어요?”
“네? 이곳에서 써도 되나요?”
미라클이 살포시 웃었다.
“당신은 아직 당신의 권능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것 같아요. 자, 어서 해 보세요.”
그러더니 내 앞에서 눈을 지그시 감았다.
별 의도는 없다는 것은 알지만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것이 연상의 매력이란 것인가!
아무튼, 난 약지를 그녀에게 겨누고 권능을 사용해 보았다.
“치유하는 신의 약지.”
츠츠츠.
그러자 눈부신 백광이 그녀의 전신을 휘감더니.
-치유 대상 ‘이미래’의 인과율을 계산합니다.
띠링!
-치유에 실패했습니다.
-현재 당신의 신력으로는 치유할 수 없는 대상입니다.
바람 앞의 촛불처럼 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