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sting to Fight Bulk RAW novel - chapter 114
내 말을 듣고 뭔가 느끼는 게 있겠지만 아직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건 누군가의 말로 깨달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수사관 생활을 계속하다 보면 알겠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깊이 이해하는 정대필과 지성한처럼.
“제가 지금 박 사무관님께 내리는 지시는 부당합니다. 올바른 지시가 아니니까요. 거부하셔도 어떠한 불이익도 드리지 않을 겁니다. 물론 수사에서 제외시키지도 않을 거구요.”
피식.
내 말에 옅은 미소를 짓던 박하준이 바닥에 있는 자신의 짐들을 다시 챙긴다.
“아닙니다. 다녀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 좀 해 주세요.”
“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쾅.
그렇게 박하준이 나가고 회의실 안은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아직 내가 입을 열지 않아서이기 때문이다.
어디부터 가야할까.
우선 박하준을 믿어볼 것이다.
방산 비리 결재 라인에 있는 사람들의 모임을 촬영해 온다면 언론에 흘릴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우선 박 검사님과 저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신영개발 쪽으로 가시죠.”
“네, 한 검사님.”
신영개발 관계자들을 만나보는 게 옳은 판단이다.
“수사관님들은 국세청 좀 다녀오세요.”
“국세청이요?”
“네. 마일즈 장비를 납품하는 신풍공영과 일신공업은 신영개발과 군수사와 납품 비리 혐의가 있는 두 업체가 출자한 기업들입니다. 출자 과정에서 문제가 없는지, 혹은 차명 주식이 없는지 파악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검사님.”
“자! 그럼 본격적으로 움직여 보죠.”
* * *
[신영개발]대전 지검에서 출발한지 얼마 안 되어 도착한 이곳.
신영개발의 본사이자 국내 최대 규모의 군수품을 생산하는 공장이다.
“어떻게 오셨죠?”
“대검찰청 중수부 연구관 한치우 검사입니다. 혹시 회장님을 만나 뵐 수 있을까요?”
“아… 잠시만요!”
기업에 검사가 방문하는 일은 흔치 않을 터이고, 그렇기에 입구를 지키던 경비원 또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지금 검사님들께서 찾아 오셨는데…….”
아마 시간이 조금 걸릴 것이다.
몇 번의 통화를 거치고 나서야 우리의 방문이 회장실로 전해질 테니까.
“미팅을 거부하거나 부재중이면 어떡하죠?”
경비원의 통화를 기다리는 사이에 옆에 서 있던 박채이가 넌지시 물었다.
“그럴 일 없습니다.”
부재중이면 몰라도 우리를 매몰차게 내쫓지는 않을 것이다.
밑도 끝도 없이 자신을 만나러 온 사람이 궁금할 터이니 말이다.
특히나 그 사람이 검사라면 더더욱 궁금하겠지.
“저… 검사님들.”
수화기를 들고 통화를 하던 경비원이 수화기를 손으로 막은 채 우리에게 묻는다.
“네?”
“혹시 무슨 용건 때문인지 여쭈어 봐도 될까요?”
“여쭈어 볼 게 있다고 전해 주십시오.”
“저… 여쭈어 볼 게 뭐냐고…….”
“하∼ 제가 말할 테니까 바꿔 주세요.”
머뭇거리며 당황하는 경비원에 수화기를 빼앗아 들었다.
내가 말하는 게 훨씬 더 빠를뿐더러 아무 상관없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보세요. 한치우 검사입니다.”
— 네. 죄송하지만 무슨 일 때문에 방문하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누구시죠?”
— 회장님 비서실장입니다.
“들어가서 말씀 드리면 안 될까요?”
— 스케줄이 있으셔서 급한 일이 아니면 미팅이 어렵습니다.
“급한 일입니다.”
— 그러니까 용무를 말씀해 주십시오. 아니면 영장을 들고 오시던가요.
“하하, 뭐라고요?”
되풀이되는 말에 비서실장도 화가 났는지 말투에서 짜증이 느껴졌다.
그리고 조금 건방졌다.
감히 검사에게라는 생각 때문은 결코 아니다.
대뜸 영장을 찾는 이유 때문이지.
또 영장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찔리는 게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저기요, 비서실장님. 영장이 있으면 제가 이렇게 친절히 여쭙겠습니까?”
검사 생활이 그리 길지 않았지만, 임의동행 요구도 아니고 단순히 면담을 요청하는 것마저 거부하는 사람은 없었다.
“회장님한테 말씀은 전하셨습니까?”
— 제가 들어 보고 전하겠습니다. 그게 제 업무이니까요.
그런데 이 새끼 뭐야.
뭔가 찝찝하다. 검사의 면담 요청을 비서실장 선에서 커트한다?
그래 커트는 말이 된다 치지만, 소식조차 전하지 않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잘 들으세요, 비서실장님. 회장님의 얘기를 들어 보려 친절히 여기까지 방문했는데 이렇게 나오시면 저도 의심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 무슨 의심이요?
“그건 말씀드릴 수 없고 결정하세요. 여기서 아무런 말도 듣지 못하고 검찰로 돌아가면 저는 소환장이 아닌 신영개발에 대한 압수수색영장과 국세청에 세무조사 협조 요청을 할 겁니다.”
— 하…….
그의 한숨 소리만 듣고 다시 경비원에게 수화기를 건넸다.
굳이 대답을 들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 네! 알겠습니다.”
지잉—
[산업통상자원부 지정 방위산업체.] [보안 시설 관계자외 출입 금지]빨간 글씨가 선명한 문구들이 양옆으로 갈라지며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이 열렸다.
“엄청 넓네요.”
공장 내부에 들어서자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하는 박채이 검사였다.
그도 그럴 것이, 문이 열리고 눈앞에 드러난 공장 내부는 작은 산업 단지를 방불케 했기 때문이다.
“박 검사님.”
“네?”
“신영개발 회장 프로필 알고 계세요?”
“네. 파악해 놓은 게 있는데 검사실에 있습니다.”
“수사관님께 전화해서 메일로 보내 달라고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회장 프로필은 왜요?”
“궁금한 게 있어서요. 그리고 비서실장 프로필도요.”
수사에 있어 찝찝한 점이 있다면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 한다.
그냥 넘겨 버리면 나중에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올지 모르니까.
그리고 지금 내가 느낀 찝찝함은 바로 비서실장이다.
“왔네요. 한 번 보시겠어요?”
“네.”
박채이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더니 나에게 건넸다.
[신현우 회장]가장 먼저 보이는 신현우 신영개발 회장의 프로필.
눈에 보이는 특이점이 몇 가지 있었다.
자수성가형 재벌 회장이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점과 그렇기에 자신의 회사를 물려줄 사람이 없다는 점.
그리고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고령의 나이라는 점.
“최근 몇 년간 대외 활동이 전혀 없네요?”
“네. 나이도 그렇고 최근 건강이 안 좋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주가를 신경 쓰느라 발표는 안 하고 있는 것 같고요. 실무진들이 경영을 분담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실무진이라면?”
“여려 명 있죠. 이사들이나 부장급 인원들이요. 소문으로는 전문 경영인을 차기 회장 자리에 임명한다고 알고 있어요.”
“흠…….”
하긴 물려줄 핏줄이 없으니 전문 경영인을 앉혀야겠지.
“내부 승진은요?”
“저도 신영개발 부사장이 내부 승진을 통해 차기 회장 자리에 앉을 줄 알았는데 무슨 영문인지 외부에서 전문 경영인을 스카우트한다고 하더라고요.”
“신현우 회장 뜻이겠군요.”
“아마 그렇겠죠?”
[김현철 신영개발 비서실장]박채이와 얘기를 나누며 걸는 와중에도 내 손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바쁘게 서류를 넘기며 김현철 비서실장의 프로필을 살펴보았다.
“비서실장은 특별한 게 없네요.”
“네. 뭐…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았어요. 운전기사 출신으로 20년 넘게 신현우 회장을 보필한 것 말고는 특별한 건 없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박 검사님…….”
지금 신현우 회장은 경영을 손에 놓을 정도로 나이가 많고 건강이 좋지 않다.
또 박채이 말대로라면 실무진들이 경영을 분담하고 있다.
그럼 분담된 업무들이 어느 곳으로 모일까?
바로 20년 넘게 신회장을 보필한 김현철 비서실장에게 모일 것이다.
회장의 결재를 받아야 하는데 도장은 김현철 손에 있을 테니까.
그리고 내 예상이 맞다면…….
“저는 왜 신현우 회장이 김현철 비서실장의 허수아비 같다는 생각이 들까요.”
* * *
만약 내 예상이 맞다면 지금 이 사건은 김현철 비서실장이 계획한 것이리라.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이유는 신현우가 재벌 회장이기 때문이다.
신현우의 건강 문제는 수천 수만 주주들의 돈이 걸려 있는 문제이고, 그렇기에 보안 유지를 철저히 했을 것이다.
또 가족이 없는 신현우 회장을 최측근에서 보필한 것은 김현철 비서실장, 그러니 신현우 회장의 모든 권한을 자신이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
물론 내 추측이긴 하지만…….
앞으로 비서실장을 만나 보면 더 정확해질 테지만, 나는 내 추측이 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이쪽으로 오시죠.”
넓디넓은 공장 건물을 지나자 신영개발의 사무동 건물이 보였고, 프로필상으로 얼굴을 먼저 익힌 김현철 비서실장이 우리를 마중 나왔다.
“반갑습니다, 한치우 검사입니다. 이쪽은 박채이 검사입니다.”
“네.”
내 추측이 아직 확실한 상황은 아니기에 정중히 인사를 건넸지만, 그의 행동은 무례하기 짝이 없었다.
“싸가지가 없네.”
“다 들려요, 치우 씨…….”
“상관없어요.”
나 역시 그리 천사표 인간은 아니다.
무례한 사람에게 끝까지 예의를 갖출 만큼 착한 놈은 아니란 말이다.
“안내판을 보니 회장실은 꼭대기 층인 것 같던데요?”
11층짜리 사무동 건물.
앞장서 걷던 김현철 비서실장은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을 통해 대회의실로 향하고 있었다.
“회장님은 건강이 안 좋으셔서 지금 검사님과 미팅이 어렵습니다.”
“아까는 스케줄이 바쁘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최소한의 스케줄만 소화하고 계십니다. 웬만한 스케줄은 제가 대신하고 있고요.”
“그래서 지금 김현철 씨한테 저희의 용건을 대신 말하라는 겁니까?”
“네.”
김현철 비서실장 뒤를 따라 자연스럽게 대회의실에 도착했고 내 등 뒤로 회의실 문이 닫히는 순간.
“당신 변호사예요?”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김현철에게 말했다.
“변호사는 아니지만 비서실장이고, 제게 말씀하시면 회장님께 여쭈어 답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형법 제126조에 의거, 검사와 경찰 기타 범죄 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사람이 직무상 알게 된 피의 사실을 기소 전에 공표하는 것은 범죄입니다.”
“마치 회장님이 무슨 범죄라도 저지른 것마냥 말씀하시네요.”
“또! 형사소송법 제198조 2항에 보면 검사와 사법경찰관리 그밖에 직무상 수사 관계자에 있는 사람은 피의자의 인권을 존중하고 수사 과정에서 취득한 비밀을 엄수해야 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왜 우리가 무슨 범죄라도 저지른 것처럼 말씀하시냐고요.”
우리?
분명 녀석에 입에서 우리라는 말이 나왔다.
“우리라뇨?”
“그건…….”
다시 되물었고 김현철은 당황해했다.
“김현철 씨야 말로 마치 회장님과 무슨 연관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그거야 회장님의 비서실장으로서 모든 일에 연관되어 있으니 당연하죠.”
내가 지금 신영개발을 찾은 목적은 마일즈 장비 도입을 통한 방산 비리에 대하여 신영개발과의 연관성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신현우 회장이 주도한 건지 아니면 박하준 사무관이 말한 모임, 일명 으뜸회에서 주도한 건지 정확히 파악을 해야 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