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sting to Fight Bulk RAW novel - chapter 76
검사실보다 조사실에 있는 시간이 더 많은 공안부 검사.
거친 정치 사범을 상대하며 15년을 공안부에서 구른 내공이 내 등골을 오싹하게 한 것이다.
“그럼 죄송하지만 하나 여쭙겠습니다.”
“말해.”
“왜 저를 떠보시는 겁니까?”
“뭐?”
하나 나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거친 걸로 따지면 조직도 마찬가지이고, 그 험한 곳에서 몇 십 년을 굴렀으니.
“제가 리드 아웃소싱 사건 챙겨갈 거라는 거 알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네.”
그래서 한 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공안부 부장의 심리 싸움에 말이다.
그의 눈빛을 보아하니 싸우지 않고서는 사건 기록을 받을 수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쉽게 생각했다.
공안부는 관심 없을 거라 생각했고, 그렇기에 내 손에 들어오는 것이 쉬울 거라 착각했다.
“이상해서요. 사이즈도 작고 지극히 평범한 사건인데 사건 기록이 아직 부장님 손에 있는 게 말입니다.”
“아직 사건을 배당할 마땅한 검사가 생각나지 않아서 그랬네.”
“그럼 저희 부장님한테 넘겨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한 프로, 당돌한 건 좋은데 건방진 건 못 참아. 어디 부장한테 사건을 넘기라 마라 하고 있어.”
“죄송합니다. 제가 도를 넘었습니다.”
꾸벅.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섣부르면 안 될 것이다.
내 앞에 석찬영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니까.
“이 사람아.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나도 차장님한테 건의를 하고 사건을 넘겨 줄 거 아닌가.”
힐끔.
석찬영의 말에 식어 버린 커피를 바라보았다.
‘혹시?!’
그리고 이내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번뜩였다.
합당한 이유를 듣고 싶은 건 석찬영이 아니라 유대명일지도 모른다고.
혹은 둘 다일지도 모르고.
“이유…….”
“그래 이유 말이야. KH 그룹 사건을 만지는 자네가 왜 리드 아웃소싱 노동 사건을 가져가려 하는지.
내 추측이 사실이라면 부장실 안은 나를 위해 만든 세트장일 것이다.
연출과 동시에 배우 역할까지 한 유대명과 석찬영.
그런 생각을 하니 소름이 끼쳤다.
‘도대체 어디까지 연관된 거야. KH 그룹도 유대명을 스폰한 건가?’
어떻게 해야 할까.
이유를 들키지 않고 사건을 가져가려면.
“수사에 필요한 자료가 껴 있습니다.”
“그 자료가 뭔데?”
그나마 다행인 건 늦지 않았다는 것이다.
석찬영의 검은 속을 조금 빨리 알았으니까 말이다.
“아무래도 특수부 사건이다 보니…….”
“말해 줄 수는 없다?”
“네.”
그만 떠보지.
당신 이미 나한테 들켰는데.
보이지 않는 칼이 입에서 나와 서로를 노렸고, 또 보이지 않는 방패가 필사적으로 칼을 막았다.
하나 석찬영은 내가 그 사실을 모를 거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나는 이유도 묻지 말고 넘기라는 소리인가? 한 프로 자네 눈에는 우리 공안부가 특수부 하위 부서쯤으로 보이나 보지?”
알고 있다.
이유를 말하지 않으면 절대로 사건을 넘겨주지 않을 거란 걸.
다만, 쉽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부장님.”
“참, 어이가 없네.”
조사를 밥 먹듯이 하는 공안부 검사.
그의 귀는 어렵게 들은 말일수록 더 신뢰할 것이다.
“그래… 무시할 만하지 검사장님은 특수부 출신이고, 총장님은 형사부 출신이니. 공안부가 동네북으로 보이겠지.”
“그런 거 아닙니다, 부장님. 수사상…….”
쾅!
석찬영의 손이 테이블을 내려친다.
“그러니까! 수사상 필요한 이유를 말하라고! 고집 부린다고 내가 넘겨줄 것 같나? 내가 동네북이라고 자존심도 없을 것 같아?”
진동에 흔들리는 커피 잔.
커피 잔처럼 내 마음도 흔들어 보겠다는 것이다.
빤히 보이는 수사 기법.
내가 검사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규모가 큰 조직은 형사부가 아니라 공안부에서 담당하기도 했고, 조사를 받아 보도했으니까 말이다.
그때는 몰랐지만 검사가 된 지금은 확신한다.
책상을 내려치는 행동 또한 일종의 조사 방법이라는 걸.
“사실…….”
그럼 슬슬 흔들려 주는 척해 볼까.
“리드 아웃소싱 대표가 KH 그룹 우대현 회장과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흠… 무슨 연관?”
“도급과 파견 매출의 90% 이상이 KH 그룹에서 나오고 있으며 독점 계약이 이상한 것은 아니지만 불법 파견이 종종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업과 아웃소싱 업체에서 흔히 있는 일 아닌가? 임금 체불 문제만 없다면 약식기소만 하면 될 터인데.”
잘 포장된 이유를 넘겨주었다.
“혹시 몰라서 알아보려는 것뿐입니다.”
물론 중요한 알맹이는 빼버렸지만.
“그것뿐인가?”
“네. 사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그랬습니다. 쉽게 말씀드리지 않은 것은 말씀드렸다시피 수사상…….”
“하하, 보기보다 고지식하구먼, 한 프로.”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내 눈알을 파악하려 하던 석찬영의 매서운 눈빛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방 안의 공기 또한 가벼워졌고 그의 얼굴에 피어 있는 여유로운 미소까지.
석찬영의 그런 모습에 안심했다.
이 싸움에 승자는 나일 터이니.
“하하, 아니야. 나도 큰소리쳐서 미안하네. 그러길래 처음부터 말했으면 좋지 않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박 부장한테 말해서 자네 검사실로 사건 기록 넘겨주지.”
꾸벅.
“감사합니다.”
가벼운 인사와 함께 석찬영 부장실을 나왔다.
아마 보지 못했을 것이다.
뒤돌아 보인 내 미소를.
“눈알은 개뿔.”
문 앞에서 한 혼잣말까지도.
* * *
“검사님! 또 어디 다녀오시는 겁니까.”
“죄송해요. 사건 기록 넘어왔죠?”
“네. 그런데 이게 뭐예요?”
피해자 설득이 끝났는지 나민호 기자는 내게 점심을 청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검사실.
발로 뛰는 검사 덕분에 현장을 나가지 못해서인지 정대필 수사관의 잔소리가 늘어 갔다.
“자, 잘 들으세요!”
그럼 이제 내보내 줘야지.
“리드 아웃소싱 사건 기록에 기사 파견 업무한 사람들 전부한테…….”
책상을 두 손으로 짚고 말하자, 수사관과 실무관 모두가 나에게 집중했다.
“고소장 받아 오세요.”
* * *
똑똑.
“휴…….”
긴장이 되는지 긴 한숨을 내뱉고 검사장실 문을 두드리는 석찬영.
“들어 와.”
이내 유대명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니야, 일단 앉지.”
유대명의 손짓에 석찬영은 자리를 찾아 앉았고, 꽤 여유로워 보였다.
왜?
자신이 맡은 임무를 완수했다고 착각하고 있으니까.
“커피 한잔 마실 텐가?”
“괜찮습니다. 그것보다…….”
“그래. 말해 보게.”
그 사실을 유대명 역시 알고 있는지 조용히 귀를 기울었다.
“별다른 건 없었습니다. 오히려 저한테 하소연을 하더라고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으니 사건 기록을 넘겨 달라고.”
“하하하하!”
석찬영에 말에 검사장실이 떠나가도록 박장대소하는 유대명.
“…….”
하나 석찬영은 그 웃음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것 같았다.
허리를 뒤로 젖히며 웃는 유대명을 멀뚱멀뚱 바라만 보고 있으니까 말이다.
“대단하네, 진짜.”
“하하… 감사합니다.”
석찬영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자네 말고.”
“네?”
척.
[고소장]“이게 뭡니까…….”
유대명 검사장이 던진 서류가 석찬영 부장 앞에 놓였다.
“뭐긴 자네가 한치우한테 작업 당했다는 뜻이지.”
스르륵.
유대명 검사장의 말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듯 재빨리 서류를 살펴보는 석찬영.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눈썹이 찡그려지고 얼굴이 붉어졌다.
“이런 씨…….”
“하하, 자네도 이제 감을 잃은 것 같네. 아무리 특수부라지만 공안부장이나 되는 사람이 초임 검사한테 구워지고 말이야.”
털썩.
웃으며 얘기하는 유대명 앞에 석찬영이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머리를 바닥에 조아리며 큰 소리로 말했다.
“어허, 왜 이러나. 이 사람아 농담일세.”
힐끔.
유대명의 말에 고개를 들어 눈치를 살피는 석찬영이였다.
“사람은 누구나 방심할 수 있네. 더군다나 자네는 한치우가 누군지도 모르지 않는가.”
“죄송합니다. 그런데…….”
눈치를 살피며 천천히 일어나던 석찬영은 어느새 자리에 다시 앉았다.
유대명의 위로가 진심이라 믿고 있으니까 말이다.
“왜 초임 검사를 신경 쓰시는 겁니까?”
석찬영의 머릿속에는 몇 개의 물음표가 있었다.
리드 아웃소싱 사건을 홀딩 시키라는 검사장의 말에 대한 의문.
그리고 한치우가 올 테니 이유를 들어 보라는 의문.
마지막으로 한치우에게 향한 유대명의 지나친 관심에 대한 의문까지.
“그냥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검사라서 말이야.”
물론 그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유대명이 진실을 말할 리가 없을 테니까.
자신이 한치우를 죽이려 했다는 사실을.
“그런데 왜…….”
“사건을 홀딩시켜 놓고 이유를 들어 보라고 했냐고?”
“네, 맞습니다. 혹시 KH 그룹과…….”
“내가 스폰이라도 받고 있다는 소리인가?”
궁금증은 과했고 덕분에 웃고 있던 유대명의 표정은 굳어졌다.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허허, 이거 자존심이 상하는데? 검사장이나 돼서 구멍가게 스폰이나 받을 것 같나?”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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