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sting to Fight Bulk RAW novel - chapter 97
“이제 알려줄게.”
쨍그랑.
남영훈은 있는 힘껏 빈병을 내려쳐 깨뜨렸고, 그의 머릿속에 있던 정상적인 생각마저 같이 깨졌다.
푹!
“윽…….”
“대장님!”
날카로운 유리 조각이 남영훈의 허벅지를 파고들었다.
물론 성지형이 한 건 아니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그런 것이니까.
“깡패가 형사를 찌르면 되나.”
“이런 미친 새끼가!”
다만, 이대로 경찰서로 간다면 찌른 사람은 당연히 성지형이 될 터이다.
“성지형 씨 당신을 특수공무집행방해와 국가공무원 살인미수혐의로 현행범 체포합니다.”
허벅지에서 흐른 피가 발목까지 흘러 하얀 양말을 빨갛게 물들였다.
하나 남영훈은 아무렇지 않은 듯 성지형을 보며 옅은 미소를 보였고, 전혀 예상치 못한 일에 광수대 식구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뭐해? 빨리 연행해.”
“아… 네!”
“이런 개새끼가!”
오히려 흥분한 쪽은 성지형이었다.
남영훈의 미친 짓이 자신에게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빤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생각했다.
지금 자신을 도와줄 사람은 오로지 한 명뿐이라고.
그리고 남영훈이 놓친 게 하나 있었다.
불법적인 일을 하는 사람의 몸에는 휴대폰이 여럿 있을 거라는 걸.
광수대 식구들에게 끌려 차에 올라탄 성지형은 그들의 눈치를 보며 속주머니 속으로 재빨리 손가락을 움직였다.
[도와주십시오, 한 검사님.]* * *
“대장님 어쩌시려고…….”
성지형이 탄 차량이 떠나자 남영훈은 널브러져 있는 수건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지혈했다.
“잘 들어, 한 형사.”
“네.”
“일단 수사본부 유치장에 가둬 놓고 아무도 못 만나게 해.”
“한 검사는 어쩌시려고요? 예약 메일 가면 저희 큰일 나는 거 아닙니까?”
영등포 주류 사무실에 남은 두 사람.
남영훈 대장과 광수대 형사 한지훈이었다.
“우리는 불법 도박 사이트 수사에 핵심적인 인물을 조사하러 여길 방문한 거라고 수사 기록지에 써.”
“네. 그 다음은요?”
“영장 없이 단순 임의동행을 요구했고, 흥분한 성지형이 나를 죽이려했다. 너희들이 있었지만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어쩔 수 없었다, 라고 보고하고.”
“네.”
남영훈은 성지형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으려고 하는 것이다.
경찰이, 그것도 광수대 대장이 범인의 칼에 찔렸다는 건 언론에 크게 회자될 것이고 검찰이 쉽게 성지형을 데리고 갈 수 없다고 판단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뇌물을 받았다는 사실을 묻어 버림과 동시에 공권력을 향해 흉기를 날린 성지형의 신뢰를 바닥에 떨어트리려 하는 것이다.
“또 사이버 수사대에 의뢰해서 인터넷에 성지형 명의로 되어 있는 모든 메일 계정 알아봐.”
“인계받은 후 장부만 지우라는 말씀이시죠.”
“그래.”
“알겠습니다…….”
한지훈은 남영훈의 눈치를 살피며 대답했다.
하나 그의 눈빛을 읽을 수는 없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할까?
단순히 승진을 목적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찌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 대장님…….”
“어.”
“혹시 제가 모르는 게 있습니까?”
“모르는 거라니?”
한지훈은 은근슬쩍 물어봤다.
자신이 모르는 것이 있다면 식구들이 위험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불법 도박 사이트를 소탕하고자 계획된 수사팀.
서울에 뿔뿔이 흩어져 있던 베테랑 형사들이 모여 만들어졌기에 한지훈은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사건이 끝나면 남영훈 대장과는 이별을 고하겠지만, 자신이 데리고 온 식구들과는 남은 형사 생활을 같이 할 터이니 말이다.
“그냥… 단순히 사건 해결이 목적이라면 한치우 검사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한치우를 네가 알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언론에 많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초임 검사가 벌써 두 대기업을 박살냈으니…….”
“그래서 우리가 죽 쒀서 한치우 입에 갖다 바치자는 얘기야?”
“그건 아니지만…….”
“한 형사 식구들 종로서에서 비주류 아니야? 그래서 이번 수사에 적극적으로 지원한 거고.”
남영훈에 말에 한지훈은 땅만 바라볼 뿐이었다.
이번 사건으로 인하여 특진을 하고 조금 더 나은 생활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식구들까지 말이다.
“내가 왜 종로서 지능팀을 뽑았는지 알아?”
“잘 모르겠습니다.”
“너희가 비주류라 뽑은 거야. 나 같은 비주류라.”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같이 주류가 되어 보자고. 한 형사처럼 이리재고 저리재면 언제 주류가 되나.”
이번 사건을 수사하면서 성지형에게 뇌물을 받은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남영훈과 한지훈을 포함한 광수대의 모든 형사들이 말이다.
그렇기에 성지형을 마지막까지 찾지 않았던 것이고.
“이제 와서 죄책감이라도 느끼는 거야? 형사의 자존심? 그럼 애초에 성지형의 돈을 받지 말았어야지.”
뇌물을 받았다는 사실이 검사 귀에 들어간다면 광수대가 아니라 경찰 자체가 국민들에게 욕을 먹을 것이다.
또한 자신들은 이번 수사에서 제외되는 것뿐만 아니라 옷을 벗어야 할 게 빤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으면 너희들이랑 나는 형사 옷 벗었어야 돼. 내가 허벅지까지 찔러가며 총대 메는데 뭐가 문제야?”
“죄송합니다… 대장님.”
“한 번 시작했으면 흔들리지 말고 끝까지 가는 거야. 그래야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는 것이고. 지금 그만두면 다시 돌아가지도 못해.”
그래.
죄책감이 느껴지는 건 사실이지만, 남영훈 대장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한지훈은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길을 걸어왔고, 이제 와서 시작점으로 갈 수도 없었다.
“그런데 대장님, 성지형이 이미 한 검사한테 털린 거면 저희는 계속 한 검사 그림자만 따라가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한 검사가 도착할 도착지 앞에 먼저 가 있을라고.”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 사건은 불법 도박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결국 끝은 정치권에 흘러들어 간 비자금 사건으로 마무리될 거야.”
그렇기에 남영훈은 생각했다.
치우가 불법 도박 사이트를 소탕하고 있을 때 자신은 한 발 앞서 정치권 쪽에 가 있겠다고 말이다.
“도박 사이트 운영자들 백 명 천 명 잡아봤자 국회의원 한두 명 잡는 것만 못해. 잔챙이는 한 검사에게 던져 주고 우리 경찰은, 아니, 광수대는 국회의원들을 잡는다.”
“그런데… 검사도 힘든데 경찰이 국회의원을 잡아넣을 수 있을까요, 대장님?”
“결국 기소는 검사가 하겠지만 우리는 확실한 증거를 잡아 광수대가 찾았다고 언론에 먼저 터뜨릴 거야. 검찰이 뺏어가지 못하게.”
무서운 사람이다.
수많은 상관을 봤지만 남영훈의 시커먼 속은 도저히 파악할 수가 없다.
“알았으면 빨리 가서 메일부터 지워. 한치우한테 발송되기 전에.”
“네, 알겠습니다.”
서둘러 성지형의 사무실을 나가는 한지훈과 고개를 숙이며 자신의 허벅지를 바라보는 남영훈이었다.
“다리 하나쯤이야 뭐…….”
* * *
SY를 향해 달리고 있는 차.
서윤호의 운전 실력 때문에 사고가 나지 않는다면 무사히 도착할 줄 알았다.
한 통의 문자가 오기 전에는…….
“뭐야 이게.”
[도와주십시오, 한 검사님.]“뭐가?”
“스탑.”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자 한 통.
결국 잠시 길가에 차를 멈추었다.
“형, 목적지를 바꿔야 될 것 같은데.”
“뭔 소리야 갑자기.”
내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서윤호.
“그게…….”
영등포 주류 대표 성지형과의 인연을 꽤 긴 시간 동안 설명했다.
“흠… 오늘 검찰에 자수하기로 한 녀석이 도와주십시오, 라는 문자를 남겼다라.”
긴 얘기를 듣는 동안 몇 개비의 담배를 피운 서윤호는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소재지 파악할까?”
“응.”
지잉.
방법을 말하는 서윤호와 수긍하는 나.
“아니,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아.”
하지만 단 한 통의 문자로 인하여 그 방법은 필요 없어졌다.
스윽.
“뭐야 이게. 검찰로 자수한다며?”
“그러게 뭘까 이게.”
서윤호와 나는 문자메시지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검사님, 영등포 주류 성지형 사장이 경찰관 살인미수 혐의로 광수대에 체포됐습니다.] [피해자가 누구죠?] [서울 지방청 광역수사대 대장 남영훈입니다.]남영훈 대장에게 빨래질을 당하다가 분에 못 이겨 흉기를 휘둘렀다?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다.
내가 본 성지형은 쉽게 당할 부류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더군다나 나에게 이미 털렸다는 걸 알았다면 굳이 실랑이를 벌일 이유가 없는데…….
“형, 뭔가 이상하지 않아?”
“맞아. 검찰에 자수하기로 한 녀석이 갑자기 경찰을 죽이려다가 체포당했다는 게 이치가 안 맞지.”
“그렇지. 그것도 광수대 대장을 변두리 조폭 두목이 찔렀다? 말이 안 돼.”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백날 생각해 봤자 여기서는 답이 안 나올 것 같아, 형.”
“그래. 운전대 틀자.”
다시 차에 올라타 우리는 서울 청으로 향했고, 혹시 몰라 주파수를 맞추어 놓은 라디오에서는 우리가 꼭 들어야 할 뉴스가 흘러나왔다.
— 최근 정부는 검경 합동 수사를 통해 불법 도박 사이트 소탕을 하고 있으며…….
가장 중요한 대목.
뒤이어 흘러나오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로 인해 중요 쟁점은 바뀌어 버렸고.
— 경찰에서 수사팀을 이끌고 있던 남영훈 광역수사대 대장이 피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렸습니다. 생명에 지장은 없지만…….
흐름이 넘어가 버렸다.
도박 사이트 운영자를 한 번에 잡으려 언론에 흘리지 않았건만.
결국 사건의 포커스는 검찰과 한치우가 아닌 경찰과 광역수사대, 그리고 남영훈에게로 넘어가 버린 것이다.
“자수한다는 놈이 경찰 손에 잡혀 버렸네. 그것도 남영훈 대장을 찌르고 말이야.”
“그러게.”
“결국 여론은 경찰에 일벌백계를 원할 거야. 우리 검찰이 아닌.”
머릿속에 말도 안 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이내 멈추었다.
“형, 혹시…….”
“뭐가?”
“아니야…….”
자작극.
남영훈이 자신을 찌르고 모든 혐의를 성지형에게 덥혀 씌운 거라면?
그렇게 해서 사건의 포커스를 경찰에 돌린 거라면?
그런 생각과 상황을 대입한다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이 딱 맞아떨어진다.
어떠한 오류도 없이 말이다.
“남영훈 대장이 자신의 허벅지를…….”
“아이고, 한치우 검사님. 영화 좀 그만 보세요. 말이 되는 상상을 해야지.”
“하긴… 답답하니까 별 생각이 다 드네.”
그래.
말도 안 되는 상상이다.
내가 만나 본 남영훈은 그래도… 경찰이었다.
공을 뺏길까 두려워 했지만 불법 도박 사이트를 수사하자고 먼저 손을 내밀었다. 또한 약간의 협박이 있긴 했어도 자신들이 첩보한 모든 자료를 넘긴 경찰이었다.
나는 그를 믿고 싶었다.
“일단 빨리 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