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sting to Fight Bulk RAW novel - chapter 99
* * *
똑똑.
사고로 병원에 누워 있던 기간에 강철호 총장은 꽤 자주 내 병실을 찾았다.
또 착각인지는 몰라도 내 귀에 강철호의 울음과 분노가 들려오기도 했다.
“건강하니 보기 좋구나.”
“안녕하셨어요, 총장님.”
“아니. 좀 서운하구나. 검사복 걸쳐 준 뒤로 한 번도 안 찾아오지 않았느냐.”
“죄송합니다…….”
처음엔 강철호 총장이 그저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한 계단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민태호와 함께 강 총장 딸을 죽인 범인을 잡아다가 갖다 바쳤기에 만들어진 계단 말이다.
하나 강총장은 나를 자식 같이 생각했는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키우듯이 했다.
시보 생활부터 지금까지 특수부로 임지가 결정된 것과 내가 가장 믿고 신뢰하는 동기를 같은 부서에 배치한 점.
초임검사에게 수십 년 경력의 수사관을 배치한 점.
그밖에 강철호 총장이 나를 위해 한 일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강철호 총장이 아는지 모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모든 게 내 착각일 수도 있고.
“죄송합니다만… 오늘도 안부차 찾아온 것은 아닙니다.”
“그래 알고 있다. 일단 앉지.”
자리에 앉으라는 손짓을 보고서는 강 총장 옆에 앉았다.
“고자질 좀 하러 왔습니다.”
“하하하하! 솔직해서 좋구나.”
호탕한 웃음을 보이는 강철호.
그에게 지금까지 있던 일을 모두 고했다.
“하하! 아빠한테 이르러 온 아들 같구나.”
“하나가 빠졌네요.”
“뭐가?”
“존경하는 아버지라는 단어가요.”
“검사가 되더니 능글맞아졌군. 하하.”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강철호.
그가 자신의 책상에 있는 전화기로 향한다.
— 네, 총장님.
그리고 내 고자질 때문에 광수대는 발칵 뒤집어질 것이다.
— 경찰청장 미팅 좀 잡지.
* * *
서울 지방경찰청 청장실.
“커피 향이 좋네요. 기계를 좋은 거 쓰시나 봅니다.”
“하하, 이번에 큰 마음 먹고 장만했습니다.”
“국민 세금으로 말입니까?”
“그건…….”
커피 향을 맡으며 여유로운 강철호와 달리 채현우 청장은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서울 지방경찰청장.
서울의 치안을 책임지고 어깨에는 태극 무궁화가 세 개나 있지만 검찰총장 앞에서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1급 공무원과 장관급 공무원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나는 직위였다.
물론 두 사람의 관계를 계급으로 따지는 건 이치에 안 맞고, 상하관계 또한 아니다.
하지만 채현우 청장은 찔리는 게 많은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 시커먼 속내 때문에 절로 식은땀이 나고 있는 것이고.
“피습된 청장님 식구는 괜찮은가요?”
“네. 형사한테는 흔한 일이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하하, 다행이군요. 그건 그렇고 피의자 조사는 잘되고 있습니까?”
“현행범이고 광수대 형사들이 전부 목격자이니 별 어려움이 없을 것 같습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객관성 있는 목격자가 없다는 말씀이네요.”
흠칫.
채현우 총장의 입으로 향하던 커피 잔이 멈추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알다시피 강철호 총장은 강력부 출신 검찰총장이었다.
검찰 내에서는 전설적인 인물로 통하는.
그렇기에 강철호 총장의 파워는 역대 검찰총장 중에 가장 강하다고 평가받고 있었다.
왜?
검사동일체의 원칙.
검사의 직급은 총장과 검사로 나뉘며 2,000명의 검사들은 오로지 총장의 명령에 따라 하나의 동일체처럼 움직인다.
하지만 검사동일체의 원칙이 구속력 있다고 해도 검찰총장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가끔 삐딱선을 타는 고위 검사들이 있기 마련이다.
지검장과 지청장이 총장의 명령을 제대로 듣지 않는다면 소속 검사들이 총장의 명령에도 재대로 움직이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러나 강철호 총장에게만큼은 예외였다.
2,000명의 검사 중 강철호 총장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라인을 탄 것도, 그렇다고 집안이 좋은 것도 아닌 강철호는 오로지 실력 하나로만 검찰총장 자리에 앉은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제왕적 권력 때문에 검찰총장의 권한을 축소하자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그런데 2,000명의 거의 모든 검사가 존경하고 인정하는 검찰총장의 힘을 생각해 보면 아주 간단히 알 수 있다.
그게 얼마나 대단한 힘을 줄지 말이다.
“나 강력부 출신 검사요. 당신 부하가 피습된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피의자에 억울함이 없게 하는 것도 중요하단 말이죠.”
흉기와 살인, 조폭 같은 키워드는 강철호 총장에게 있어 누구보다 익숙한 단어였다.
“지금 저희 식구가 자작극이라도 벌였다는 말입니까?”
“그렇게 들렸다면 미안합니다. 다만, 광수대 대장이 피습된 사건을 경찰이 그것도 광수대가 조사하는 게 이치에 안 맞는다는 말입니다.”
“총장님, 저희는 경찰입니다. 저희가 백날 조사해 봤자 검찰로 송치해야 하고 수사의 종결권은 검찰에 있는 거 아시잖아요.”
경찰은 사건을 수사하고 범죄자를 체포하며 조사를 해 검찰로 사건을 송치한다.
사건을 인계받은 검찰은 범죄자를 재판에 세울지 말지 결정하고 그 권한은 오로지 검사에게만 있다.
“예쁘게 포장해서 사건 송치해 봤자 검사가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데 뭐가 걱정이십니까?”
“하하, 이번 사건은 다르죠. 포장지를 열어 보고 내용물을 바꾸기에는 여론의 눈치를 봐야 하니까요.”
치우는 강철호 총장과 대면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강철호 총장의 머릿속을 들여다 볼 수는 없을 거라고.
얼마나 능구렁이 같은지 슬금슬금 사람을 둘러싸 옥죄어 버리는 게 특기인 사람.
“이미 경찰에서 빨래질 당해 먹물 쫙 빠진 상태로 검찰에 넘어올 텐데 검찰총장으로서 두고 볼 수는 없죠.”
“그렇다고 지금 검찰로 성지형 씨를 송치해 드릴 수는 없습니다.”
“왜죠?”
“여론이 지켜보고 있지 않습니까. 무슨 뜻인지 아시죠?”
일벌백계하겠다는 경찰청장의 인터뷰.
그 인터뷰가 성지형을 경찰 속에 가두는 방어막과도 같았다.
“흠… 그럼 이렇게 하시죠, 청장님.”
하지만 그 방어막은 강철호 총장 앞에서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어떻게요?”
“합수부를 발족하시죠.”
“갑자기 합수부라니요?”
“청장님 말씀대로 여론이 지켜보고 있지 않습니까. 경찰이 사건을 넘겨 봤자 종결권은 검찰에게 있다고 불만도 표하고 있고요.”
은은한 미소를 보이며 채현우 청장을 바라보는 강철호.
반대할 명분을 찾고 있는 채현우.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봤자 답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국가적 사건도 아니고 도박 사이트 하나 잡자고 검경이 합수부를 발족하는 건 과하다고 생각됩니다.”
“아까는 여론이 지켜보고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여론이 지켜보면 그게 국가적 사건이지 국가적 사건이라는 게 따로 있나요, 뭐. 그리고 경찰이 그것도 광수대 대장이 피습된 사건입니다. 명분은 충분하다고 보는데요.”
또 어설프게 답을 내놓아 봤자 강철호 총장에 의해 막혀 버릴 것이다.
“수자 지휘부터 조사, 그리고 종결까지 합수부 안에서 다이렉트로 이루어진다면 경찰도 검찰도 능률이 오를 겁니다. 그게 합수부를 발족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건 그렇지만…….”
“걱정 마시죠. 대단하게 꾸릴 것도 아니고 초임 검사 둘이 수사본부장을 맡는 작은 규모의 합수부입니다.”
보통 대형 사건을 수사하기 위한 합수부는 고위 검사가 수사본부장을 맡는다.
특수통. 공안통.
이름 앞에 붙는 타이틀은 당연히 필요했고.
부장급 검사 혹은 사건의 규모와 주목도가 높다면 지검장급이 수사본부장을 맡기도 한다.
“수사본부장을 초임 검사한테 맡기겠다는 말씀입니까? 저희 쪽 책임자는 곧 경무관 승진을 앞 둔 남영훈 대장입니다.”
“그래서요?”
“합수부의 지휘 체계가 엉망이 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흠… 그럴 수도 있겠네요.”
턱을 만지작거리며 말하는 강철호.
그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긴장하는 채현우.
얼마 지나지 않아 강철호 총장이 입이 열린다.
“그럼 제가 직접 맡죠.”
“네?!”
“합수부 수사본부장을 제가 맡겠다고요.”
“말도 안 됩니다! 검찰총장이 수사본부장을 맡다니요!”
“제가 수사본부장을 맡고 중앙 지검 특수부 초임 검사 두 명을 공동 수사본부장으로 임명하겠습니다.”
“그게 무슨…….”
척.
당황하는 채현우 청장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강철호였다.
채현우 청장이 더 이상 대꾸할 말이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말이 안 되는 건 피습당한 피해자가 피의자를 직접 조사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건 형사 사건의 공평성에 맞지 않는 행동이죠.”
“조사 담당자를 바꾸겠습니다. 도박 사이트는 광수대에서 맡되 피습 사건만 이관하는 쪽으로…….”
“그럼 피습 사건만 검찰로 이관하시겠습니까?”
“그건…….”
아무리 반항해 봤자 소용없다.
청장실에 들어와서 단 한 번도 여유로운 미소를 잃지 않은 강철호 앞에서 말이다.
“본부 정해지면 연락드리죠.”
* * *
[검경 합동 수사본부]중앙 지검의 별관.
대회의실에 수많은 검찰 수사관과 경찰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네 뭐…….”
시큰둥한 표정의 남영훈에게 인사를 건네 보지만 쌀쌀한 대답만이 돌아왔다.
“대단하시네요, 검사님.”
“뭐가요?”
“검찰총장님을 움직이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말이죠.”
“하하, 제가 총장님을 움직인 게 아니라, 총장님의 결정에 제가 따른 거죠. 전에 대장님도 경찰청장님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하…….”
오늘 발족한 검경 합수부.
이 본부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다.
검찰총장이 말도 없이 중앙 지검을 찾아왔으니까.
그것도 지검장실이 아닌 일개 평검사들을 찾아왔기 때문이다.
고개를 숙인 채 강철호 총장의 지시에 답한 나와 달리 서윤호는 벌벌 떨며 말을 더듬느라 강철호 총장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뭐가 됐든.
합수부는 만들어졌고, 수사본부장의 자리는 나와 서윤호가 공동으로 맡게 되었다.
처음에는 강철호 총장이 직접 수사본부장을 맡기로 하였지만, 경찰은 합수부에 검찰총장이 있는 게 부담스러웠는지 초임 검사의 수사본부장 직위를 인정했다.
하나 부담스러운 마음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나와 서윤호 등 뒤에 강철호 총장이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으니까.
“말로만 합수부지 결국 경찰이 검찰 시다 노릇하라는 거 아닙니까.”
“무슨 말씀을 그렇게 섭섭하게 하십니까? 시다라뇨. 같이 수사하고 같이 범인 잡자는 겁니다.”
“말은…….”
그렇기에 남영훈 대장의 표정이 시큰둥한 것이다.
꼼짝없이 내 지시에 따라야 하니까 말이다.
경찰청장의 지시?
검찰과 경찰이 섞여 있는 합수부에 지시를 내릴 수도 없을뿐더러 내린다고 하여도 따르지 못할 확률이 높다.
합수부의 책임자는 나와 서윤호이며 그건 합수부의 방향이 검찰이 원하는 쪽으로 흘러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여론 역시 합수부에 대해 옹호하는 쪽이었다.
범인을 잡기 위해 검찰과 경찰이 힘을 합친다는 사실은 국민들에게 좋은 말로 들릴 테니까 말이다.
물론 국민들은 모를 것이다.
지금 나와 남영훈 사이에 흐르는 어색함을.
“일단 만나서 반갑습니다. 도박 사이트 수사를 위한 합수부의 수사본부장이자 서울 중앙 지검 특수 1부 한치우 검사입니다.”
“안녕하세요. 공동 수사본부장이자 중앙 지검 특수 1부 검사 서윤호입니다.”
짝짝짝.
나와 서윤호가 소개를 하자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오른쪽에 앉아 있는 사람들과 왼쪽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박수는 조금 달랐다.
남영훈처럼 시큰둥한 표정으로 박수를 치는 경찰들 쪽과 밝게 웃으며 환호하는 검찰들 쪽의 온도 차이는 꽤 났으니까 말이다.
“경찰 쪽 인원들 소개하시죠.”
“예.”
“합수부 참모를 맡은 광역수사대 대장 남영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