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Star Player's Lucky Draw RAW novel - Chapter (27)
27화
카르페가 경매장 건물 내부로 들어가는 순간 천마가 물었다.
-일단 먼저 확인하는데, 집에 캡슐 놓을 공간은 있지? 캡슐 들여놓는 데 부모님 허락을 받아야 한다거나 그래야 해?
“공간은 충분합니다. 허락도 괜찮아요. 부모님 안 계시거든요.”
-아…….
천마가 말을 삼켰다.
늘 밝은 녀석이기에 크나큰 고난 없이 그저 행복하게만 자랐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아픔이 있었을 줄이야.
-배려가 부족했군. 미안하…….
“아프리카 동티모르인가? 어디인가로 파견 가셨거든요. 한 2년 됐나?”
-이 새끼가?
“제가 한 중학생쯤 때부터인가? 툭하면 해외로 봉사 활동을 다니셨어요. 두 분 다 그게 취미셔서.”
-……중학생? 제삼자가 왈가왈부하는 것도 우습긴 한데, 너희 부모님 너무 쿨하신 거 아니냐?
사실 ‘무책임한 거 아니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남의 부모님에게 그렇게까지 말할 수 없어서 천마는 에둘러 말했다.
“괜찮아요. 뭐, 다른 일도 아니고 좋은 일 하러 다시는 거니까. 게다가 저도 딱히 외로움을 타는 성격은 아니고, 생활비는 꼬박꼬박 보내 주시고……. 무엇보다 게임 실컷 할 수 있는 게 좋았어요. 윈윈이었죠.”
-……그래. 본인이 괜찮다면야.
천마는 확신했다. 이놈이 가끔 보여 주는 무대포 성향은 100% 유전이 틀림없다는 걸 말이다.
-아무튼 잘됐군. 일단 경매장에 네 계정부터 등록하러 가자.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캡슐 사는 거랑 경매장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이왕 사는 거 제일 좋은 모델로 사는 게 좋잖아.
“네?”
-곧 알게 될 거야.
경매장 건물은 무척 크고 넓었다.
현실의 대형 백화점 수준은 아니더라도, 그 절반 정도의 규모는 충분한 수준.
당연히 건물 안은 수많은 유저와 NPC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저기 보이지?
그 넓은 공간 속에서 천마가 가리킨 곳은 마치, 현실의 은행 창구 같은 공간이었다.
파티션으로 나뉜 데스크에서 선남선녀 NPC들이 웃는 표정으로 고객을 응대하고 있었다.
-실제로 하는 일도 은행이랑 비슷해. 은행 거래를 하려면 계좌를 개설해야 하듯, 경매장을 이용하려면 비슷한 게 필요하거든.
“아하.”
상황을 이해한 카르페도 대기표를 뽑고 기다렸다.
띵동.
“137번 고객님. 용무 도와드리겠습니다.”
대기하는 유저들도 많았지만, 창구 역시 많았기에 순서는 금방 돌아왔다.
카르페가 창구 앞 의자에 앉자, 여성 NPC가 웃는 얼굴로 응대해 주었다.
“어서 오세요, 고객님. 이곳은 경매장을 이용하기 위해 계정 정보를 등록하는 곳입니다. 등록을 도와드릴까요?”
“아, 네.”
“그럼 앞에 있는 구슬에 손을 얹어 주세요. 등록까지는 다소 시간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
“아하, 이게 등록 장치였군요.”
자리에 앉자마자 눈앞에 마녀 수정구 같은 게 보여서 이게 뭔가 했던 참이었다.
시키는 대로 수정구에 손을 얹으니, 수정구에서 약한 빛을 뿜어지기 시작했다.
-네 정보를 읽고 있는 거야. 계정 정보나 지문, 연동된 계좌 같은 것들.
‘와, 그렇게까지 해야 해요?’
-라세는 현 거래 중개소를 직접 운영하니까 어쩔 수 없지.
온라인 게임에서 유저 간 거래 시스템이 성립하는 한, 현 거래는 반드시 존재할 수밖에 없다.
특히, 오래전 대법원에서 게임 내 재화도 개인의 재산으로 인정한다는 판례가 나온 이후엔 더욱 활성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온라인 게임 현 거래에는 언제나 고질적인 문제점이 따라다녔다.
바로 사기꾼들이 횡행한다는 것.
현금을 입금했는데 거래 상대가 날라 버린다면?
온라인은 익명성이라는 특성상 잡기도 힘들고, 잡을 수 있더라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래서 등장한 개념이 바로 ‘아이템 매x아’ 같은 현 거래 중개 사이트들이었다.
-라세는 그걸 게임 내에서 직접 운영한단 말이지. 수수료 딱 1%만 먹으면서 말이야.
‘아하,’
스킨 팔아먹는 거로 서버비가 유지되려나 했더니, 이런 식으로 돈을 쓸어 담고 있었던 것이다.
괜히 ‘세계의 부가 라세로 몰리고 있다’라는 소리가 나오는 게 아니었다.
-다른 중개 사이트에선 수수료가 30%를 넘는 걸 생각하면 혜자도 이런 혜자가 없지.
‘그러고 보니, 라세 때문에 현 거래 사이트 대부분이 망했다는 기사를 본 거 같기도 하고.’
경매장 중개 시스템도 그렇고, 채널 라세도 그렇고. 기존에 있던 플랫폼들이 라세를 통해 돈을 버는 것을 절대로 두고 보지 않았다.
‘게임은 우리가 만들었는데 왜 돈은 게임도 안 하는 니들이 버냐?’부터.
‘빡치니까 스트리밍 플랫폼도 우리가 만들고, 거래 중개소도 우리가 만든다. 독점으로!’까지.
라세가 게임 내 운영은 무심해 보여도 이런 외적인 부분은 철저했다.
‘근데, 형.’
-왜?
‘다 알겠는데, 이거랑 캡슐 구매는 무슨 상관이에요?’
-그건…….
그때였다.
“정보 등록이 완료되었습니다. 지금부터 경매장에 물품을 등록하실 수 있습니다.”
“그럼 이제 끝난 건가요?”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계정 등급 측정이 이루어집니다.”
“계정 등급?”
“네. 계정 등급이 높으면 높을수록 각종 혜택이 주어집니다.”
“아아.”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았다.
아이템 중개 사이트에서도 거래 실적이 많으면 많을수록 계정 등급이 오르고, 그에 따라 수수료를 줄여주는 둥의 혜택이 주어진다. 그런 시스템이 라세에도 있는 것 같았다.
-저거 때문이지.
‘네?’
-저 등급 측정 때문에 굳이 경매장을 들른 거라고.
‘의미가 있어요? 당연히 최하 등급 나오겠죠.’
그도 그럴 것이, 거래 실적이 단 한 건도 없지 않은가.
-뭐, 일반적으로는 네 말이 맞겠지.
천마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수정구의 빛이 사라졌다.
“측정이 완료되었습니다. 고객님의 등급은…… 어머?”
계속 사무적인 태도를 고수하던 여성 NPC가 처음으로 인간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 반응을 보며 천마가 씨익 웃었다.
-하지만, 라세가 일반적인 게임은 아니잖아. 여러 가지 의미로.
잠깐 사이에 당황한 표정을 지운 NPC가 밝은 미소로 말했다.
“고객님의 등급은 ‘블랙’으로 측정되었습니다. 본사의 최고 등급으로, 본사가 운영하는 모든 기관에서 최고의 혜택을 제공받으실 수 있습니다.”
“……네?”
브론즈, 실버, 골드, 플래티넘, 다이아 그리고 블랙.
총 여섯 가지의 계정 등급 중에서도 블랙 등급은 특별했다.
마치 현실의 블랙카드처럼 선택받은 소수만 가질 수 있는 일종의 특수 등급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라세의 계정 등급은 다양한 요소를 통합적으로 평가해서 결정된다.
단순히 돈이 많다고 가질 수 있는 등급이 아니었다.
물론, 카르페가 말한 것처럼 거래 실적 또한 등급 책정에는 중요한 요소였다.
그러나 등급 책정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따로 있었다.
-라세라는 게임에 얼마나 거대한 발자취를 남겼냐는 것.
유저의 플레이 정보는 유저의 계정에 전부 저장되었다.
그리고 이 수정구는, 유저의 저장된 플레이 정보를 읽어 내는 장치였다.
카르페가 손을 얹는 순간, 수정구는 발견한 것이다.
플레이 기록 속에 숨어 있는 ‘신화’라는 거대한 발자취를 말이다.
-현시점에서 신화 등급으로의 전직보다 더 큰 발자취가 있겠냐? 블랙 중에서도 단연 독보적이지.
‘……그럼 블랙인 사람은 거의 없겠네요?’
-당연한 소리. 평범한 유저들은 블랙 등급이 존재하는지도 몰라. 어디 보자, 지금 시점이면…… 한국에 5명은 되려나?
“5명?!”
너무 놀란 나머지, 말이 육성으로 튀어나오고 말았다.
카르페는 당황하여 좌우를 흘긋 쳐다봤다. 칸막이의 방음이 괜찮은 것인지, 다행히 그 누구도 카르페의 돌발 행동을 신경 쓰지 않았다.
“고객님?”
“아, 네.”
“모든 등록이 완료되었습니다. 지금부터 본사의 모든 계열사에서 블랙 혜택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혹시 다른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아뇨. 괜찮습니다. 충분해요.”
“네, 알겠습니다. 블랙 등급이 받을 수 있는 구체적인 혜택 내용을 메일로 발송해 드리려 하는데, 보내 드려도 괜찮으실까요?”
“네. 부탁드릴게요.”
“지금 발송했습니다. 언제든 문의 사항이 있으시면 다시 찾아 주십시오. 끝으로.”
거기까지 말한 여성 NPC는 자리에서 일어나 양손을 배꼽으로 모은 뒤 허리를 숙였다.
‘이 이상 정중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만큼 완벽한 인사였다.
“라세의 역사와 함께할 수 있어서 무한한 영광이었습니다. 모쪼록, 오랫동안 본사의 게임을 즐겨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카르페는 NPC의 인사를 잠깐 멍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현실과 게임을 구분할 수 있는 NPC라니, 이게 어딜 봐서 프로그램이란 말인가? 실제 라세 직원이 직접 플레이하는 캐릭터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또 하나의 세상이라.’
사람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NPC를 보고 있자니, 문득 라세의 캐치프레이즈가 떠올랐다. 그리고 조금 납득했다.
카르페는 NPC에게 고개를 살짝 숙인 후, 곧장 경매장 밖으로 나왔다.
* * *
경매장에서 나온 뒤, 카르페는 접속을 종료했다.
물론, 접속을 종료하기 전에 천마로부터 어떻게 캡슐을 구매해야 하는지 전달받은 상태였다. 듣고 나서도 납득은 잘 안 됐지만.
‘천마 형. 그래도, 블랙 등급이라고 캡슐을 공짜로 주진 않을 거 아니에요.’
-당연하지. 거의 원가로 주긴 하겠지만 돈을 내긴 해야지.
‘저 돈 없는데요?’
-보물 지도 알려 줄 테니까 필요한 만큼 꺼내다 써. 다 써도 되고.
그렇게 말한 천마는 카르페에게 몇 가지 정보를 전달했다.
그 정보를 바탕으로 도착한 곳이 바로 지금, 강남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헬스장이었다.
‘보자, 네온 피트니스 클럽. 여기 맞네.’
간판을 확인한 카르페는 망설임 없이 헬스장 안으로 들어갔다.
짤랑.
“안녕하세요. 네온 피트니스입니다.”
헬스장에 들어서자 카운터의 직원이 카르페를 반겨 주었다. 카르페는 고개를 살짝 숙인 후 탈의실 쪽으로 걸어갔다.
‘후우우우.’
심장이 쿵쾅거린다.
혹시라도, 직원이 처음 보는 얼굴이라며 붙잡지 않을까 싶었는데……. 하긴, 생각해 보면 데스크 직원이 모든 요일, 모든 시간대의 회원 얼굴을 기억할 리가 없었다.
‘163번……. 아, 이거군.’
당연한 말이지만, 카르페는 헬스장에 운동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헬스장 사물함에 들어 있는 어떤 물건을 회수하기 위해서 온 것이었다.
띠리릭.
사물함은 도어락 형식이었고 천마가 알려 준 비밀번호 네 자리를 입력하자 전자음과 함께 사물함이 열렸다.
사물함 안에는 천마가 말했던 대로, 커다란 검은색 크로스백이 들어 있었다. 꺼내서 들어 보니 꽤 묵직했다.
목적을 완수한 카르페는 헬스장을 나와서 강남역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변기 칸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크로스백 속 내용물을 확인했다.
“……진짜 미친 거 아냐?”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아서 헛웃음을 터뜨렸다.
검은색 크로스백 안에는 5만 원 다발이 잔뜩 들어 있었다. 바닥을 뒤적거리자 골드바도 몇 개 튀어나왔다.
“……하.”
눈앞에 천마가 있었다면 멱살을 잡고 흔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떤 미친 인간이 고작 헬스장 사물함에 이딴 걸 넣어 놔!
‘아니, 진짜 돈뭉치를 헬스장에 넣어 놨다고요?’
-어. 진짜로.
‘그러다가 분실되면 어쩌려고요?’
-분실되면 어쩔 수 없는 거지. 헬스장이 의외로 보관하기 괜찮아. 계좌 추적당할 위험도 없고, 2년 정도 장기로 등록해 놓으면 다른 사람들이 손댈 염려도 없고.
‘돌겠네, 진짜.’
천마가 자신에게 종종 비정상적이라고, 또라이라고 하는 게 억울할 지경이었다. 누가 누굴 보고?
화장실에서 심장을 충분히 진정시킨 후, 카르페는 라세 한국 지부 본사로 향했다.
뽑기로 강해진 10성급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