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Star Player's Lucky Draw RAW novel - Chapter (3)
3화
정훈은 그 배후령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
짙은 눈썹이 인상적인, 2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다른 배후령들과 아주 큰 차이점이 있었다.
흰 티에 청바지.
판타지나 무협 쪽 특징은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는 현대인의 복장이었다. 거기에 ‘강진호’라는 이름까지 더해진다면 가능성은 하나뿐이었다.
“한국인이네.”
현대인이 배후령으로? 그런 경우가 있었나?
정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입벤에 접속해서 정보를 검색했다.
그러나 현대인이 배후령으로 등장했다는 정보는 조금도 찾을 수 없었다. 더불어서 0성 배후령의 정보조차도.
‘……버그인가?’
라세는 버그가 없기로 유명한 게임이었지만…… 인간이 만든 게임에 어찌 ‘완벽’이란 것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틀림없이 자잘한 버그는 있을 것이고, 정훈은 지금 상황이 그런 자잘한 버그 중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다른 유저의 개인 정보가 넘어온 모양인데……. 왜 이렇게 낯이 익지?’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인데.
정훈은 잠시 기억을 뒤져 봤으나, 누구인지는 떠올리지 못했다. 적어도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인물을 절대로 아니라는 뜻이었다.
‘아무렴 어때. 대충 개발사로 버그 리포트 보내고 게임이나 하자.’
정훈이 버그 리포트를 작성하려는 그 순간.
띠링.
0성 배후령의 정보가 눈에 들어왔다.
「0성 – 강진호」
[해당 배후령은 고유 대사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해당 배후령은 배경 설명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계열 : 플레이어, 이레귤러]“……”
이것 봐라.
정훈은 리포트를 보내려던 걸 종료한 뒤 다시 배후령을 쳐다봤다. 아무래도 단순 버그는 아닌 것 같았다.
짧지만 하나하나가 심상치 않은 정보였다. 하지만 정훈은 다른 정보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보는 순간 즉시 뇌리에 박히는 하나의 단어.
‘이레귤러!’
심장의 고동이 빨라지는 것을 느껴졌다.
정훈은 중·고등학교 시절 글줄 꽤 읽은 사람이었다. 물론, 여기서 의미하는 ‘글줄’은 만화책이나 판타지, 무협 등의 소설을 일컫는 말이었다.
학창 시절 성적과 맞바꿀 정도로 미친 듯이 탐독하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관련 주제가 나온다면 이야기에 껴서 즐겁게 대화를 할 수 있는 레벨은 되었다.
그런 정훈이기에 당연히 알고 있었다.
클리셰 적으로 ‘이레귤러’라는 단어는 꽝일 수가 없다는 것을!
‘게다가 정보창에 [이레귤러]라고 명확히 표시되어 있어. 시스템 오류가 아니라는 거겠지?’
버그가 아니다.
알려지진 않았지만 라세에는 ‘이레귤러’라는 직군이 존재하고, 지금 자신은 그걸 뽑은 것이다.
‘……다른 선택지는 없어.’
정훈은 힐긋 눈을 돌려, 은색 오오라를 뿜고 있는 기사를 쳐다보았다. 7성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눈을 사로잡는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사실 라세에서 6성을 뽑고 시작하는 것은 썩 괜찮은 출발이라 할 수 있었다. 다른 이들은 그 6성조차 뽑지 못해 울며 겨자 먹기로, 4성이나 5성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태반이었으니까.
6성. 그것도 인기 직종인 ‘기사’ 계열의 케이라면 안정적인 성장은 보장될 터였지만.
‘0성으로 간다!’
정훈은 안정적인 성장 같은 걸 고려하는 게이머가 아니었다. 정훈이 그런 걸 신경 썼다면 첫 뽑기에서 진즉에 7성을 선택했으리라.
빡겜보다는 즐겜.
더 재밌을 것 같은 선택지가 있으면, 이득을 다소 포기하더라도 돌진.
정훈은 그런 타입의 인간이었다.
띠링.
[‘0성 배후령 – 강진호’를 최종 배후령으로 선택하시겠습니까?] [배후령은 게임 전반에 걸쳐 플레이어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한 번 선택하신 배후령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변경할 수 없습니다.] [정말로 선택하시겠습니까?]“겁주기는.”
뻔한 경고문이 등장했지만, 정훈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기다렸다는 듯 ‘Yes’를 터치했다. 그러자 즉각 반응이 일어났다.
“아.”
다른 배후령들이 사라져갔다.
선택한 배후령을 제외한 나머지 배후령들이 스르르 사라지면서 푸른 기운을 남겼다. 아니, 배후령뿐만 아니라 자판기 역시 사라지면서 커다란 푸른 기운 남겼다.
이윽고 그 푸른 기운들이 한데 엉키기 시작하더니 남아 있던 배후령, 0성 강진호에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눈을 감고 있던 배후령이 천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정훈이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배후령을 완전히 선택하면 잠시 대화를 가질 시간이 있다고 했지.’
라세에 존재하는 배후령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유저 수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많았다.
자연히 한 배후령이 여러 명의 유저를 담당할 수밖에 없었고, 분산되는 만큼 플레이어를 세세하게 케어해 줄 수가 없었다.
‘실제 게임을 시작하면 진짜 가끔 한두 번씩 대화할 수 있다지.’
아니, 대화라고 말하기도 민망했다. 보통 배후령 쪽에서 일방적으로 할 말만 하고 사라진다고 했으니까. 대화라기보다는 신탁이나 계시라고 보는 쪽이 옳으리라.
하지만 그렇게 콧대 높은 배후령들과도 진득하게 대화할 수 있는 순간이 있었으니, 바로 배후령을 뽑은 직후였다.
아무리 바쁘고 콧대가 높다 하더라도 처음 만났는데, 서로 소개할 시간은 있어야 했으니까.
‘듣자 하니 조조 같은 배후령은 첫 만남 임팩트가 쩐다던데.’
말로써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수준이라고 했던가. 듣고 있노라면 가슴 깊은 곳에서 저도 모르게 삼국지 뽕이 차오르며, 당장이라도 말을 타고 전장을 달리고 싶은 기분이 된다고 했었지.
비단 조조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수많은 유저들이 배후령과의 첫 만남에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들었다.
꿀꺽.
과연 이 배후령은 자신에게 어떤 감동을 줄 것인가. 정훈은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강진호를 쳐다보았다.
-후우.
짧은 호흡과 함께, 배후령이 완전히 눈을 떴다. 인지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일까. 그는 자신의 몸을 잠시 살펴보더니 주먹을 몇 번 쥐었다가 폈고, 제자리에서 발을 구르기도 했다.
그리고 고개를 똑바로 들고 정훈을 쳐다보고 입을 열었다.
-시벌. 이게 뭔 상황이야?
“…….”
그것이 정훈과 강진호의 첫 만남이었다.
* * *
-후우. 그러니까…….
정훈에게 대충 설명을 들은 강진호는 황당하다는 듯 턱을 긁적였다.
-그러니까, 그쪽…….
“강정훈입니다. 말씀 편하게 하세요. 저보다 한참 형이신데.”
-아니, 한참 형까지는 아니…… 에이, 편하게 하라니 편하게 한다.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지금 네 말대로라면 내가 라세의 배후령 뽑기에 등장했다, 이 말이지?
“네. 그것도 0성으로요.”
-하아. 방금까지 멀쩡히 게임하고 있었는데 이게 뭔 일이야? 도대체?
짧게 이야기를 나눠 본 결과, 강진호는 라세 세계관의 배후령이기는커녕 그냥 유저였을 뿐이었고, 대박이라고 생각했던 ‘0성 이레귤러’는 아무래도 시스템의 오류였던 것 같았다.
정훈은 내심 아쉬웠지만, 어깨를 으쓱한 뒤에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버그인 모양이네요.”
-버그? 말도 안 되는 소리. 라세에 버그는 없어. 정보 창에 내가 0성 배후령 이레귤러라고 떴다면서? 그럼 시스템이 날 배후령이라고 인정한 거야. 진짜 배후령이 된 거라고. 젠장.
“네? 아니, 누가 봐도 버그잖아요. 유저가 갑자기 NPC가 되는 경우가 어디 있어요?
-처음 겪는 사례긴 하지만, 절대 버그는 아냐.
“그걸 어떻게 알아…….
-나는 알아. 개발자들을 제외…… 아니, 개발자들 포함해도 라세에서 가장 오래 플레이한 사람이 나다.
“…….”
제정신이 아니구나.
너무나도 중2병스러운 대사에 정훈이 한 발짝 물러났지만, 강진호는 그런 정훈을 신경 쓰지도 않고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뭐가 어그러진 거지? 이런 건 예정에 없었는데…….
그리고 정훈 역시, 강진호의 중얼거림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버그 리포트나 보내고 밥이나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저는 이제 접속 종료할게요. 새벽에 챔스 결승 봐야 해서 미리 자 둬야 하거든요.”
-설마 나비 효과…… 응? 챔스 결승?
강진호는 뭔 이상한 소리냐는 듯한 표정으로 정훈에게 다시 말했다.
-무슨 소리야? 챔스 결승은 6월이잖아.
“네. 6월 5일이요. 그러니까 오늘 새벽.”
-지금은 3월인데? 3월 19일.
“……저, 초면에 실례인데. 혹시 정신적으로 좀 편찮으신지?”
무례한 말이었지만, 정훈은 그렇게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까는 개발자보다 게임에 대해 더 잘 안다더니, 이번에는 날짜 감각마저 뒤틀려 있었다. 한 3개월쯤 냉동 당하다 탈출했나? 존나 캡틴 아메리카이신가?
-돌겠네, 시벌. 진짜 6월 5일이라고?
“네. 진짜요. 하루 이틀 정도는 착각할 순 있어도, 3월은 때려 죽어도 아니죠. 그걸 어떻게 헷갈려요.”
-그래, 맞아. 보통은 헷갈릴 수가 없지.
보통은 말이야. 강진호는 이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뭔가 짐작이 간다는 듯 정훈에게 물었다.
-혹시 3월 19일에……. 아니, 그렇게 구체적으로는 기억 못 하겠군. 좋아. 3월 중순 즈음에 뭔가 큰일이나 사건 같은 건 없었나?
“갑자기 그게 뜬금없이 무슨 소리예요? 큰일이라니?”
-세상에 큰 사건이 일어났다거나, 아니면 너에 대한 일 말이야. 그것도 아니라면 라세에 관한 사건이라도 좋아. 뭔가 큰 이슈가 될 만한 일 같은 거 없었어?
“흐음.”
그야말로 뜬금없는 질문. 그러나 강진호의 눈빛은 진지했다. 때문에, 정훈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보자. 3월 중순 즘에 내가 뭘 했더라?’
딱히 뭔가가 크게 있었던 것 같진 않은데. 평범하게 휴학 신청을 하고, 즐거운 휴학 라이프를 즐기고 있었을 때다.
‘그래서 휴학하고 게임이나 즐겨 보자는 생각에 라세를 하려고 했다가…… 어?’
순간, 정훈은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생각에 고개를 들어 강진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어쩐지 낯이 익은 그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어디서 봤나 했더니!’
그래, 확실히 자신은 3개월 전쯤에 라세를 시작하려고 했었다. 그리고 모종의 사건으로 그 결심을 접었었다.
그 모종의 사건이란 바로.
“강진호. ‘라스트 세이비어’를 플레이하다 사망한 최초의 유저. 그 사망 사건 때문에 가상 현실 게임에 대한 제재가 이슈가 됐었……죠.”
-하이고 시벌. 이제 하다 하다, 죽어서 게임 NPC로 박제되네. 내 얼굴이 뉴스에 나왔어?
“네. 그래서 낯이 익었나 봐요. 저기…… 근데요.”
-뭐? 왜?
“혹시 귀신?”
-나도 모르겠다. 그런데 아마도 아닐 거야. 라세의 시스템이 배후령으로 판정했으니까. 아마도 게임 도중에 뭔가가 터져서 내 신체 정보나 데이터, 영혼 같은 게 게임의 시스템에 편입됐다, 이런 스토리 아닐까?
“말도 안 돼.”
그거 판타지 소설이나 영화 같은 것에나 나오던 설정이잖아. 차라리 귀신이 더 현실성이 있는 것 같았다.
“아니, 그런데 왜 이렇게 덤덤하세요? 엄청 큰일인데.”
-더 이상한 일도 겪어 봤거든.
“…….”
도대체 사망해서 영혼이 NPC화 되는 것보다 더 이상한 일이란 게 뭘까?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강진호는 답답해 미치겠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더니 크게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이걸 말해 줘도 믿을지 모르겠다만…….
그때였다.
띠링.
[스킬 뽑기가 시작됩니다.]시스템 알림과 동시에 바닥에서 새로운 자판기가 쑤욱 하고 등장했다. 그리고 정훈이 제대로 인식하기도 전에 자판기 속의 캡슐들이 맹렬하게 뒤섞이기 시작했다.
“어? 이건?”
-스킬 뽑기가 시작됐군. 배후령을 뽑고 대화가 좀 진행되면 시작되지. 근데 말만 뽑기지, 배후령 뽑기만큼 쫄깃한 건 없어. 등급이 정해져 있으니까. 배후령 뽑기와 마찬가지로 등급이 높을수록 화려한 이펙트가 뿜어지는데…….
“뿜어지는데?”
-……이건 도대체 무슨 이펙트냐? 나도 처음 보는데. 이럴 리가?
6성은 은빛. 7성은 금빛.
스킬 등급도 마찬가지였다. 등급에 해당하는 이펙트를 자판기 전체에서 뿜어내기 시작한다. 6성이면 은색으로 빛나고, 7성이면 금색으로 빛난다.
그러나 지금 눈앞의 자판기는 그 어떤 빛깔도 띠지 않고 있었다.
다만, 자판기 전체에 쩌저적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아까 내 등급이 0성이라고 했지?
“그랬죠…… 어? 설마?!”
-그래, 아마 그 설마 같다.
스킬 뽑기가 배후령 뽑기보다 훨씬 재미가 없는 것은 다른 게 아니다.
바로 등급이 정해져 있다는 것.
라세의 뽑기 시스템에서 배후령의 등급과 스킬 등급의 합은 항상 10으로 일정했던 것이다!
지지지직!
자판기의 균열이 절정에 이르렀고.
펑!
자판기가 산산이 깨지면서 하나의 캡슐이 튀어 올랐다.
띠링.
[10성 스킬이 지급됩니다.] [축하합니다. 서버 최초로 10성 스킬을 획득하셨습니다.] [타이틀 : ‘최초의 10성 스킬’을 획득하셨습니다. 해당 10성 스킬에 보너스가 부여됩니다. 또한, 레벨 업마다 스킬 포인트가 추가로 지급됩니다.] [축하합니다. 서버 최초로 0성 배후령을 획득하셨습니다.] [타이틀 : ‘최초의 0성 배후령’을 획득하셨습니다. 배후령의 제약이 하나 삭제됩니다.] [타이틀 : ‘두 개의 최초’를 획득하셨습니다.]-와. 똥겜 미친.
“와. 갓겜 미친.”
0성을 뽑은 정훈의 선택이 잭팟을 터뜨렸다.
뽑기로 강해진 10성급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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