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Star Player's Lucky Draw RAW novel - Chapter (71)
71화
사람이 너무 황당한 일에 직면하게 되면 말문이 제대로 트이지 않는 법이다.
지금 카르페가 그랬다.
뭔가 입에서 말을 뱉어야 할 거 같긴 한데, 지금 기분을 단어로 형용하기 어려웠다.
-와, 씨. 이게 뭔…….
그리고 그건 천마도 마찬가지였는지 ‘와, 씨, 뭔’ 같은 욕과 감탄사의 중간쯤 되는 단어를 한 글자씩 뱉고 삼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렇게 30초쯤 지났을까.
카르페가 깊은 숨을 토해내며 감탄을 터뜨렸다.
“에픽?!”
카르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깜빡이며, 아이템 정보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당연하지만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등급란에 아로새겨진 ‘에픽’이라는 두 글자가 눈이 부시다 못해 성스럽게 느껴졌다.
“와, 무조건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꼼짝없이 얼음 동상이 될 거라 생각했지만, 이게 웬걸.
죽기는커녕 말도 안 되는 아이템을 선물받았다.
“크으. 이런 걸 두고 전화위복이라 하는 거죠?”
-아니, 전화위복에도 정도가 있는 거지. 이건 너무 하지 않냐? 내가 10년 동안 게임 하면서 구경한 에픽 템이 10개가 안 되는데…….
그런 아이템을 갑자기 세계관 최강자가 튀어나와서 툭 하고 던져 주고 가다니.
다른 사람들에게 있는 그대로 얘기해 줘도 소설 쓰지 말라고 욕 처먹을 게 뻔했다.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역시 인생은 될놈될이다. 카르페는 다시 한번 세상의 진리를 깨우치며 반지를 쓰다듬었다.
“서빙제의 힘을 빌린다라.”
올 스텟 상승 효과를 제외하고는 유일한 옵션이었다.
하지만, 그 유일한 옵션으로 충분히 에픽값을 하고 남을 것이 틀림없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세계관 최강자의 힘이었으니까.
“어떤 식으로 빌려주는 거지? 반지를 사용하면 서빙제가 소환되나?”
-설마. 만약 그렇다면 나라 하나 뒤집는 건 일도 아닐텐데.
라세가 미치지 않고서야, 게임을 개판으로 만들 수도 있는 기능을 집어넣진 않았을 것 같다.
-사용하면 얼음 관련 능력이 대폭 증가하거나, 그런 식일 거다. 비슷하게 작동하는 아이템을 몇 번 본 적 있어.
“그래요? 조금 아쉽네요. 10대 길드가 한곳에 모인 자리에서 터뜨려 보고 싶었는데.”
-……넌 어째 발상이 하나같이 사람 멕이는 데 특화된 거 같냐?
“제가요? 설마. 저처럼 선량한 게이머가 어딨다고.”
-아냐. 내가 장담해. 넌 사람 빡치게 하는 데 재주가 있어.
지금까지 카르페의 행동에 수도 없이 뒷목을 잡았던 천마였기에 더 설득력이 있는 발언이었다.
“그런데…… 재밌는 게 뭘 말하는 갈까요?”
서빙제는 단순히 반지만 던져주고 간 것이 아니었다.
재밌는 걸 품고 있다느니, 영겁의 굴레라느니 하면서 언뜻 듣기에도 의미심장한 떡밥을 뿌려 놓고 떠나간 것이다.
-글세…… 생각해 볼 만한 건 두 개쯤 있겠군.
첫 째로 ‘해금’.
지금까지 역사에 없었던 전무후무한 10성 스킬이었다.
태초의 괴물이라 불리는 서빙제라도 확실히 흥미를 느낄 수밖에 없는 요소였다.
-그리고 해금이 아니라면…… 나겠지.
10성 스킬과 마찬가지로 이전까지 등장한 적이 없었던 0성 배후령이라면 충분히 사해의 흥미를 자극할 수 있을 터.
-사해에 관한 정보는 거의 없다시피 하니까 뭐라 판단하기 힘들지만, 내 생각에는 해금 때문일 것 같다. 내가 다른 사해를 만났을 때는 저런 반응이 없었거든.
“어? 형도 만난 적 있어요?”
-그래. 2회차 때 한 번, 3회 차 때 한 번 만났었지.
천마의 말에 따르면 히든 퀘스트를 수행하는 와중에 남풍마, 그리고 동해룡과 한 번씩 만난 적 있다는 모양이었다.
-내 경우에는 대화는커녕 안중에도 안 두던데? 난 사해가 대화 가능한 존재라는 것도 이번 퀘스트로 처음 알았다.
“그렇습니다. 주군. 제가 읽고 들은 역사에서도 사해가 먼저 인간에게 접촉했다는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필시 서빙제 또한 주군의 대단함을 알아본 것일 테지요. 역시 주군이십니다.”
“……난 서빙제 싫어. 마스터. 그 반지 버리는 게 어떨까? 그 나쁜 놈이 분명 저주를 심어 놨을 거야.”
“설마. 저주가 있었으면 해금이 반응했겠지.”
서빙제에 대한 악감정이 심한 미라쥬가 투정을 부렸지만, 자기가 생각해도 억지였는지 그 이상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으으음. 에이 뭐 어때. 좋은 게 좋은 거지.”
어차피 지금 고민해도 답이 나올 문제가 아니었다.
서빙제가 뿌리고 간 떡밥은 미래의 자신에게 맡기고, 현재에 충실하기로 했다.
“그럼 다음 사냥터로 가야겠네요. 고성능 네비 부탁드리겠습니다.”
-오오냐. 나만 믿고 따라오너라. 최단 거리, 최고 속도로 40레벨에 이르게 해 줄 터이니.
엘프의 숲에서 사용할 수 없었던 천마비급이 오랜만에 등장할 차례였다.
* * *
“야! 어제 영상 봤냐?”
“당연하지. 캬, 드디어 라세에 엘프가 등장하는 구나.”
“아까 보니까 트렌트 숲 쪽에서 누가 엘프 봤다더라. 나중에 우리도 가서 구경이나 하자.”
“뭐? 야, 그런 건 진작 말해야지. 퀘스트고 나발이고 일단 엘프부터 찾자!”
“웬만한 연예인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라던데…… 진짜 실제로 보면 기절할 듯.”
카르페가 잊혀진 숲에서 퀘스트를 수행함에 따라, 엘프 종족이 세상에 공개되었다.
지금 루아나 유저의 모든 관심사는 엘프에 쏠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심지어는 고렙 존의 유저가 페널티를 각오하고 다시 루아나로 돌아오기도 한다는 모양이었다.
라세 유저들의 엘프에 대한 집념은 상상보다 더 무서웠다.
“조금 답답합니다. 주군.”
카르페의 로브 주머니 속, 티나가 그렇게 말했다.
“그래? 그럼 룸으로 돌아갈래?”
“그럴 수는 없습니다. 주군의 에스코트는 기사의 책무! 그 어디라도 주군을 따라갈 것입니다. 조금 불편해도 참도록 하겠습니다.”
카르페가 해변 도시 루아나로 복귀함에 따라, 티나는 다시 인형 모드로 돌아간 상태였다.
티나의 외모는 엘프만큼이나 눈에 띄었으니까.
그대로 돌아다니면 엘프 이상의 관심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참고로 또 눈에 띄는 외모를 자랑하는 미라쥬는 사람 많은 곳은 무섭다며 진즉에 룸으로 돌아간 참이었다.
“미라쥬랑 같이 있는 게 좋지 않을까? 엘프들이랑 떨어져서 쓸쓸할 텐데.”
“그래서 미라쥬는 향에게 부탁했습니다. 향이라면 미라쥬의 좋은 벗이 되어 줄 테지요.”
“……그래? 그럼 다행이고.”
아무래도 권속 간의 커뮤니티는 아주 순조로운 듯했다.
-넌 복 받은 거지. 입벤 테이머 게시판 같은 데 가 봐라. 거기는 허구한 날 권속끼리 사이 안 좋아서 힘들어 죽겠다는 소리밖에 없으니까.
“그래요? 의외네.”
-그게 보통이야. 개체마다 성격도 다르고 살아온 환경도 다르니, 사이 좋은 게 더 이상하지.
어떤 개체를 특히 이뻐하면 다른 개체가 삐쳐서 호감도가 깎이고, 둘이 연계해서 싸워야 하는 상황에서 서로 치고받고 싸운다는 둥, 테이머는 개체 간 호감도 관리에 모든 힘을 쏟아야 하는 직업이었다.
그런 이유로 호감도 관리 아이템(주로 간식)에만 월에 50만 원 이상 깨졌고, 부자만 할 수 있는 직업이라 불리기도 했다.
“딴 세상 이야기네. 진짜.”
-쓰읍. 전대 마도왕 이야기 들어 보면 인형들이 맹목적인 충성심을 가지는 것도 아닌데…… 희한하네. 얘들이 도대체 뭐가 좋아서 널 따르는 걸까?
“군사님답지 않은 우문입니다. 주군께서는 정의롭고 현명하시며 또한 인덕이…….”
-됐다. 더 떠들어 봤자 나만 미친놈 되지. 갈 길이나 가자.
천마가 제시한 다음 사냥터는 루아나에서 꽤 멀리 떨어진 ‘바람의 동굴’이라는 던전이었다.
-그곳에는 ‘어둠에 홀린 바람의 정령’이라는 몬스터가 주로 등장하지.
이름 그대로 저주로 인해 흑화해 버린 바람의 정령인데, 경험치와 드랍템이 아주 짭짤하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현재 카르페는 바람의 동굴이 아닌 루아나의 공방 거리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어, 저기서 꺾은 다음에 세 번째 건물이다. 눈에 띄는 곳이니까 찾기는 어렵지 않을 거야. 그 건물 제일 안쪽에 있는 NPC에게 퀘스트 받으면 돼.
다름 아닌 바람의 동굴과 관련된 퀘스트가 있었던 탓이었다.
-35레벨 이상만 수행할 수 있는 퀘스트다. 히든 퀘스트는 아니지만 보상이 좋아. 특히 경험치가 끝내주지. 아, 아이템도 보상으로 주긴 하는데 레어 등급이라 지금 너한테는 크게 필요 없어.
“하긴, 지금 제 템이 좀 너무하긴 하죠.”
다른 유저들은 몇 년을 플레이해도 하나 구경이나 할까 말까 한 아이템으로 도배한 카르페에게 레어 아이템은 굳이 꼭 얻어야 하는 물건은 아니었다.
천마가 알려 준 건물로 들어간 후, 제일 안쪽에 수염이 덥수룩한 NPC 앞에 서자 NPC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오, 거기 자네. 솜씨 있어 보이는 신의 사자로구만. 혹시 괜찮다면 내 부탁 좀 들어주겠나?”
띠링.
“오호.”
몬스터를 잡아서 재료를 가져오면 그 재료를 가지고 장비를 만들어 주는 퀘스트.
굳이 더 설명을 들을 필요도 없는, RPG의 정석 같은 퀘스트였다.
카르페가 퀘스트를 수락하려는 그 순간이었다.
“저, 혹시 바람의 정수 퀘스트를 받으시려는 건가요?”
대장장이 옆에 있던 갈색 머리의 남자가 갑자기 카르페에게 말을 걸었다.
“네. 그런데요?”
“그거 포기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정수가 드랍되는 던전이 바람의 동굴이라는 곳인데…… 혹시 가 본 적 있으신가요?”
“아뇨. 이거 받고 가려고 했죠.”
카르페의 대답에 갈색 머리의 남자는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안타깝다는 듯 말을 이었다.
“뉴비라서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그 던전은 오픈형 던전이거든요.”
라세의 던전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의 던전이 있었다.
일반 오픈 던전과 인스턴스 던전.
카르페가 지금까지 경험했던 대부분의 던전은 인스턴스 던전이었다.
던전에 입장하는 순간 맵이 구성되는 던전, 보통 ‘인던’이라 부르는 이 던전은 같은 파티원 외에 다른 유저랑은 마주칠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오픈형 던전은 달랐다.
필드와 똑같이 그 누구라도 들어갈 수 있었고, 그곳에서 서로 마주치며 한정된 몬스터를 상대로 경쟁해야 하는 던전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한정된 몬스터.
그리고 많은 수의 유저가 모이게 되면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RPG의 단골 현상.
“바람의 동굴은 KD 길드가 ‘통제’하고 있는 곳입니다. 길드원이 아닌 자가 들어가려고 하면 무조건 PK예요.”
-아, 그러고 보니 지금쯤은 그런 게 생겼겠군. 나는 항상 선발대였으니 그런 걸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 깜빡했다.
인던이 아닌 던전에는 고질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문제다.
아니, 사실 인던이라는 시스템도 저 통제라는 행위를 피하기 위해 새롭게 도입된 시스템이라 할 수 있었다.
강력한 길드가 보상이 좋은 사냥터를 독점하고 그 독점으로 인해 더더욱 강해진다.
그리고 그런 통제를 싫어하는 유저들이 대규모로 들고 일어나고 또 찍어 누르고…… 그런 반복 현상은 이제 RPG의 한 흐름이라 할 수 있었다.
“통제라…….”
“네. 괜히 갔다가 죽으면 데스 페널티 먹으실 텐데…… 저도 한 번 죽었거든요. 그래서 알려 드리는 겁니다.”
“아, 감사합니다.”
“아뇨, 뭘요. 저 같은 피해자가 없었으면 해서요. 그럼 즐겜하세요.”
갈색 머리의 남자는 그 말을 끝으로 떠나갔다.
-야, 어쩌…… 아니, 물어볼 필요도 없나.
“흐흐. 흐흐흐.”
카르페는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게임을 했고, 그중에는 RPG도 많이 있었다.
그리고 RPG를 할 때마다, 그런 통제 길드로 인한 피해를 제법 봤던 인간이었다.
그렇기에 웃었다. 아주 환하게.
“엄청 재밌겠네요. 그거.”
뽑기로 강해진 10성급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