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11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11화
11. 편의점
집으로 향하는 길.
류원이 형을 보며 연신 입을 다물지 못했다.
“혀, 형. 어떻게 된 거야? 어디서 무술이라도 배웠어?”
“내가 그럴 시간이 어디 있냐?”
“하긴…….”
고등학생이 되자마자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알바 자리를 구한 형이었다.
최소한 졸업장은 따자는 생각에 학교와 병행하며 일했으니 무술 따위를 배울 시간은 없었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된 거야? 그런 몸놀림은 대체…….”
“너도 기사 제대로 안 봤구나? 이계에 다녀온 플레이어들은 능력을 현실에서도 발휘할 수 있어. 이렇게.”
류민이 인벤토리를 열어 스틸레토를 꺼냈다.
“헉! 뭐, 뭐야?”
시스템은 다른 사람의 눈엔 보이지 않는다.
동생으로선 허공에서 갑자기 칼이 생겨난 것으로 보일 수밖에.
“어, 어디서 난 거야? 그 칼은?”
“말했잖아. 플레이어는 현실에서도 능력을 쓸 수 있다고.”
류민이 다시 단검을 집어넣자 마술처럼 감쪽같이 사라졌다.
보고도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재차 입을 벌렸지만, 그보다도 믿을 수 없는 건 아지트에서 벌어진 일이다.
‘형이 방태규를 이길 줄이야…….’
중학생 선배들은 물론 고등학생들조차 방태규를 보면 무서워서 피하기 일쑤다.
그런 괴물을 류민은 가뿐하게 이겼다.
단 한 대도 맞지 않고 압도적으로.
“플레이어들은 다 형처럼 움직일 수 있는 거야? 어떻게 그걸 다 피할 수가 있어?”
“내가 민첩 스탯이 11이거든.”
“스탯? 게임의 그 스탯?”
류민은 아직 모르는 게 많은 동생에게 차근차근 설명해 줬다.
“그, 그럼 민첩에 올인해서 그렇게 빨랐던 거라고?”
“그렇지.”
“보통이 몇인데?”
“평범한 성인이 3이고 운동선수 수준이 10 정도라고 보면 돼.”
말하자면 류민은 숙달된 복서와 같은 민첩성을 지닌 셈이다.
“그, 그럼 나중에 레벨이 높아져서 민첩이 30, 50 수준으로 높아지면 어떻게 되는 거야?”
“나야 모르지. 그 수준까지 가보질 않았으니.”
물론 거짓말이었다.
민첩만 300 이상을 찍어본 류민이다.
‘300 정도가 되면 그야말로 괴물이 되는 거지.’
이때가 되면 총알도 피할 수 있는 수준이 된다.
현대 병기는 통하지도 않고 맞힐 수도 없다.
같은 플레이어가 아니고서야 잡을 수 없는 일인 병기로 성장하는 셈이다.
‘앞으로 여기저기서 사고 치는 플레이어들이 속출할 거야.’
살인, 강간, 방화, 납치, 절도 등.
몇몇 삐뚤어진 플레이어가 자신의 능력을 온갖 범죄에 이용한다.
먼 이야기가 아니다.
불과 몇 개월 후면 벌어질 현실이다.
‘심지어는 플레이어끼리 싸우기도 하지.’
서로 협동해서 라운드를 헤쳐나가도 모자랄 판에 서로의 목숨을 노린다.
‘그런 플레이어들의 싸움에 동생을 휘말리게 할 순 없지.’
11회차에서 류민은 동생에게 회귀자임을 털어놓았었다.
그 결과, 회귀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동생은 납치를 당해야 했다.
‘동생이 어디 가서 회귀자의 가족이라고 떠벌리지도 않았는데 말이지.’
이유는 간단했다.
장석현이라는 납치범에게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읽는 룬이 있었으니까.
이후로 류민은 장석현에게 복수했다.
그가 우연히 발견한 히든 룬인 [속마음의 룬]까지도 자신이 차지했다.
‘장석현. 그놈의 룬은 이번 회차에서도 내가 차지한다.’
속마음의 룬은 정보 획득이나 상황대처는 물론 피아 식별에도 굉장히 유용하다.
류민이 정한 필수로 얻어야 하는 18가지 룬 리스트 중 하나에 들어가기도 한다.
‘내가 룬을 차지하면 동생이 장석현에게 납치당할 일도 없겠지만…….’
그렇다고 회귀자임을 밝히고 싶진 않다.
‘나 때문에 동생이 그런 수모를 당했으니까.’
비록 과거의 일이고 앞으로의 위협을 원천 차단한다고 해도, 꺼림칙한 게 사실이다.
그런 일을 겪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동생에게 미안했다.
그것이 동생에게 회귀자임을 밝히지 않는 이유였다.
“형, 도와준 건 고마운데…….”
“걱정할 거 없어.”
“응?”
“방태규가 혹시라도 경찰에 신고할까 봐 걱정하는 거잖아.”
“그, 그렇지. 가뜩이나 우리 돈도 없는데 치료비라도 물어줘야 하면…….”
“신고 안 할 거야. 죽고 싶지 않다면.”
류민은 확신하고 있었다.
전 회차에서도 그랬으니까.
방태규는 류민의 경고를 허투루 들을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다.
‘단순히 패싸움하다가 다쳤다고 둘러대겠지. 주변의 목격자들이야 녀석이 알아서 입단속 시킬 거고.’
절대로 입을 열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에, 류민은 안심할 수 있었다.
혹시라도 입을 열어도 상관은 없다.
‘합의금 주고 죽여 버리면 그만이니.’
지금이야 합의금은커녕 월세 낼 돈조차 변변찮은 실정이지만 걱정하지 않았다.
‘돈이야 벌면 그만이니.’
하지만 동생의 생각은 다른지 얼굴엔 여전히 수심이 깊었다.
혹시 모른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고 있으리라.
‘하긴 나처럼 수십 번의 상황을 반복해서 결과를 알고 있는 것도 아니니.’
돈 때문에 걱정할만하다며 피식 웃는 류민이었지만, 류원이 걱정하는 바는 따로 있었다.
‘정말 내가 아는 형이 맞나?’
힐끔 쳐다본 형의 모습은 분명 어제와 같았지만, 류원은 똑똑히 보았다.
방태규의 애원에도 인정사정없이 손가락을 꺾던 형의 모습을.
그 잔혹함에 소름이 끼치거나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고통에 울부짖는 방태규의 모습에 통쾌하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
‘문제는 내가 아는 형이 이렇게 냉철하고 잔인한 성정이 아니라는 거야.’
플레이어가 되면 사람이 바뀌기라도 하는 걸까?
아니면 죽고 죽이는 혹독한 경험이 사람을 변하게라도 한 걸까?
‘나야 생존게임을 겪어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류원이 힐끔 형을 쳐다봤다.
그러자 시선을 느낀 류민이 의아하다는 듯 바라본다.
“왜?”
“아, 아니야. 아무것도.”
고개를 돌린 류원은 속으로 안도했다.
‘싸울 때는 몰라도 지금은 내가 아는 형이 분명해.’
싸울 때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지만, 지금은 평소의 형과 다르지 않았다.
‘그거면 돼.’
류원은 걱정을 놓았다.
형이 바뀌었다고 해서 뭐가 문제란 말인가?
이렇게 강해져서 살아 돌아왔는데.
‘그거면 돼. 그거면.’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한 그때, 류원의 눈에 편의점이 보였다.
그 순간 배에서 민망한 신호가 왔다.
꼬르륵-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 탓이다.
그 소리를 놓치지 않은 류민이 옆에서 피식 웃었다.
“배고프지? 편의점에서 아침이라도 먹을래?”
“어, 조, 좋지.”
민망해서 머리를 긁적인 동생이 형을 따라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식사하기엔 초라해 보일지라도 월세를 감당하기에도 빠듯한 형제에겐 편의점만 한 천국이 없었다.
요즘 편의점은 없는 게 없을 만큼 잘 나왔으니까.
다른 음식점에서 외식을 할 수도 있었지만, 형제에게 편의점 이상은 사치에 불과했다.
그때 류민이 편의점 옆의 ATM기로 다가갔다.
“형? 뭐해?”
“잠깐만, 돈 좀 뽑고.”
ATM기에 카드를 집어넣자 초라한 금액이 보인다.
[출금 가능 금액 : 133,202원]전 재산 13만 3천 원.
얼마 없는 돈이지만 벌이가 시원찮은 형제에겐 전 재산이었다.
그래도 류민이 주말마다 고깃집 알바를 해서 어느 정도 생활은 됐다.
보통 사람에 비하면 꽤나 궁핍한 생활이었지만.
그런데 류민은 그 얼마 없는 돈의 대부분을 출금해 버렸다.
“형?”
10만 원을 현금으로 뽑는 형의 모습에 류원이 놀라서 물었다.
“그걸로 뭐 하려고?”
“쓸데가 있어서.”
궁금해하는 동생에게 미소를 지어주고서 류민이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따라 들어간 동생은 평소처럼 컵라면을 고르려고 했지만, 형은 황당하게도 냉동식품 코너에 있었다.
“자, 여기서 골라.”
“형? 거긴 비싼 것들뿐이잖아.”
최소 5천 원이 넘는 냉동식품들에 류원이 거절했지만.
“괜찮아. 오늘만큼은 마음껏 먹어.”
류민은 무슨 생각인지 평소와 달리 사치를 부리려고 들었다.
“형, 고깃집 사장님이 보너스라도 줬어?”
“그럴 분이 아니란 거 알잖아.”
“근데 갑자기 왜 비싼 걸 먹으려고 그래?”
“새해잖아. 오늘 같은 날 라면으로 때울 순 없지.”
“평소엔 안 그랬으면서 무슨…….”
월세에 휴대전화 요금에 식비까지.
알바에 기초 생활 수급비까지 지원 받고 있지만 두 사람 몫을 충당하기란 쉽지 않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류원도 맛있는 걸 고르기에 눈치가 보였다.
안 그래도 한창 먹을 나이에 매일 라면을 먹고 싶겠는가?
“괜찮으니까 골라.”
“진심이야 형? 나 이거 먹어도 우리 생활할 돈은 있어?”
“있어.”
“정말이야? 그럼 골라도 괜찮은 거지?”
“괜찮대도.”
거듭 먹고 싶은 걸 고르라고 해도 동생은 의심 어린 눈빛만 했다.
‘형이 갑자기 왜 이러지?’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형이 생활비 정도는 남겨놨을 거란 생각에, 류원이 먹고 싶은 걸 골랐다.
“그거 먹을 거야? 고추장 삼겹살?”
“응. 나 이거 되게 먹어보고 싶었거든.”
“…….”
그 말에 류민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동안은 돈이 없어서 삼겹살을 먹어볼 기회가 없었다.
“원아. 조만간 고깃집에서 실컷 먹게 해줄게. 한우로.”
“됐어. 우리 형편에 무슨 한우야. 난 이것만으로도 충분해.”
애써 웃으며 말하고 있지만, 아닌 걸 안다.
어린 나이에 남들 다 하는 외식 한 번도 못 했는데 당연히 가보고 싶지 않겠는가.
‘며칠만 기다려. 내가 진짜 지겨울 정도로 고기만 먹게 해줄 테니.’
방금 했던 류민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지금 이렇게 사치를 부리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며칠 뒤에 거액이 들어올 참이니까.
“난 이거 고를게.”
류민이 고른 것은 냉동 찜닭이었다.
“맛있겠다. 형. 나 조금만 주면 안 돼? 내 것도 나눠줄게.”
“그래.”
추가로 햇반 두 개까지 고른 류민이 카운터로 가 카드를 내밀었다.
계산을 끝내고 돌아와서 포장을 뜯은 뒤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좁아터진 집에서 먹는 것보단 이렇게 편의점에서 먹는 게 더 편했다.
“다 됐다. 먹자.”
“잘 먹을게, 형!”
자리에 앉아 편의점에서 동생과 소소한 만찬을 즐겼다.
“맛있다!”
“맛있냐? 많이 먹어.”
류민이 자신의 몫을 덜어주자 동생이 뛸 듯이 기뻐했다.
“고마워, 형!”
평소에 라면만 먹어서 지겨웠는지 동생은 맛있게 먹었다.
며칠 굶은 사람처럼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다.
“아, 잘 먹었다.”
식사가 끝나고 배를 두들기던 동생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형.”
“왜?”
“아까 보니까 카드로 계산하던데…… 그럴 거면 10만 원은 왜 뽑은 거야?”
현금 10만 원으로 살 줄 알았던 모양.
“말했잖아. 쓸데가 있다고.”
“그러니까 어디에 쓸 건데.”
류민은 대답 대신 한쪽에서 종이와 사인펜을 가져왔다.
다름 아닌 로또 용지였다.
“형, 이건 왜……?”
“보면 몰라?”
그제야 동생은 형이 10만 원을 뽑은 이유를 알아차렸다.
“설마 로또 하려고?”
“응.”
“형, 아직 고등학생이잖아. 로또 못 살 텐데?”
“잊었어? 나 오늘부로 성인이잖아.”
“아…… 그렇네.”
마침 오늘은 추첨이 있는 토요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잘 보니 류민이 가져온 용지가 한두 장이 아니었다.
“잠깐만, 몇 장을 가져온 거야? 스무 장? 설마 로또를 10만 원어치나 사려고?”
“구매 한도가 인당 10만 원밖에 안 되니까.”
아쉽다는 투로 말했지만, 동생이 펄쩍 뛰었다.
“형, 미쳤어? 우리 형편에 무슨 10만 원이나 질러?”
한 장은 성인 된 기념으로 해본다 쳐도 스무 장이나 구매하는 건 엄청난 사치였다.
“사치 같아 보이지만, 아니야. 이 정도는 질러줘야 한다고.”
“될지 안 될지도 모르잖아! 보나 마나 다 꼬라박을 텐데…….”
“그건 두고 보면 알게 되겠지.”
류민은 확신에 차 있었다.
무조건 당첨될 거라는 듯이.
그런데 황당한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뭐 하는 거야? 왜 한 번호만 연달아서 찍어?”
류민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야 이게 당첨 번호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