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166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166화
166. 사신교
두 사람의 시선에 제프리는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민망함에 목덜미가 시뻘겋게 물들었다.
“네가 정말로 예언자를 협박한 게 맞느냐?”
“그, 그게…….”
“길게 답할 거 없고, 맞냐고 물었다.”
입술을 달싹이던 제프리가 고개를 푹 수그렸다.
“마, 맞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아.”
“하.”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한탄이 나왔다.
“이, 이유가 있습니다. 다 설명할 수 있…….”
“이유는 방금 녹음으로 듣지 않았느냐. 내 딸을 위해서 그랬다며.”
“맞습니다. 저는 크리스틴에게 정보를 주기 위한 마음에…….”
“그렇다고 예언자를 협박하는 건 선 넘었지.”
자신의 편을 들어줄 줄 알았던 네이선이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누차 말하지 않았느냐. 예언자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배를 가르려고 하면 오히려 황금을 놓치게 될 거라고.”
“…….”
“그런 예언자에게서 정보를 쥐어짜기 위해 협박을 해? 예언자와의 관계를 파투내고 싶어서 작정한 게냐?”
“크, 크리스틴의 생사가 달린 일이었습니다. 미리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좋을 게…….”
“예언자가 이미 크리스틴에게 말했다더구나. 미래가 바뀔 위험이 있어서 그 이상의 정보는 절대로 알려줄 수 없다고. 너도 그걸 엿들었기에 움직인 것일 터.”
“…….”
“그런데도 너는 협박할 마음을 먹었다. 경솔한 행동이었고 무지한 행동이었지.”
“며, 면목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사과는 아버지가 아니라 예언자님에게 하셔야죠.”
쌀쌀맞은 목소리로 크리스틴이 끼어들었다.
“대체 무슨 생각이었어요? 제프리 집사님?”
“죄, 죄송합니다…….”
“아버지도 잘한 거 없어요.”
“응? 나? 나 말이냐?”
갑자기 불똥이 튀자 당황한 네이선이었다.
“아버지가 제프리 집사님을 미행시켜서 이 사달이 났잖아요.”
“그건 너를 지키기 위해…….”
“제가 바본 줄 아세요? 그게 아니라 절 감시하려고 붙이신 거겠죠. 한국이 나이지리아처럼 위험 구역도 아닌데 위험할 일이 뭐가 있겠어요? 그리고 제가 분명히 말했을 텐데요? 저 혼자서 가겠다고. 그런데 결국 말을 안 들어서 이 지경이 됐으니 아버지 탓도 있죠. 제 말이 틀려요?”
“…….”
틀린 말은 없었기에 네이선도 제프리처럼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하아아……. 애당초 예언자님이 예언해 주신 덕분에 조금이라도 더 대비할 수 있는 건데 그걸 이렇게 망쳐놓다니……. 이제 예언자님 얼굴을 어떻게 보죠? 11라운드를 무사히 넘긴다 해도 그다음 라운드는요? 예언을 못 들으면 어떻게 공략하죠?”
“너,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내가 직접 예언자에게 사과를 전할 테니.”
“아버지보다는 제프리 집사님이 먼저 사과해야죠!”
“그, 그래. 내, 내가 사과할게. 크리스틴. 그러니까 화 풀어. 미안해. 정말 미안하고 다 내 잘못…….”
“할 거면 빨리하세요. 그리고 저한테 더 이상 말 걸지 마세요. 듣기 싫으니까.”
단단히 화가 난 크리스틴은 더는 말도 섞기 싫다는 듯 자리를 떠났다.
그 모습을 멍하니 보던 제프리의 뒤에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쯧쯧, 그러게 왜 예언자를 건드려? 건들기는.”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크리스틴의 말마따나 나한테 사과할 일은 아니지.”
“지, 지금 바로 예언자에게 전화하겠습니다.”
“고작 전화로 해결될 일이냐? 이게?”
앉아 있던 네이선이 몸을 일으켰다.
“직접 찾아가서 잘못을 빌어야지. 마음도 달랠 겸 선물도 좀 사 가고.”
“지, 직접이요?”
놀란 제프리를 뒤로하고 네이선이 문을 열었다.
“뭐 하고 있어? 얼른 짐 싸거라. 나와 같이 한국으로 넘어간다.”
* * *
집으로 돌아온 류민은 제프리를 떠올렸다.
‘지금쯤 그 녀석은 어떻게 됐으려나? 크리스틴의 반응을 보니 가만두지 않을 기세였는데.’
놈에게 단검으로 협박당할 때, 류민은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 두 개를 조작해 녹음을 켜뒀다.
그리고 하나를 미끼로 던져 다른 하나의 존재를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이후 마경록에게 물어 크리스틴과 네이선의 전화번호를 알아낸 뒤 녹음파일을 보냈다.
‘속 좀 쓰릴 거다. 짝사랑하는 사람의 미움을 사게 됐으니.’
제프리는 이번 일로 확실히 알았을 거다.
예언자를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쯧쯧 혀를 찬 류민이 손으로 목덜미를 쓸었다.
랭킹 1위의 목을 잡은 플레이어는 녀석이 처음일 거다.
‘암살자라 그런가? 힘이 그리 세진 않던데. 이 정도 힘으로 크리스틴을 지키겠다고 한 건지, 쯧.’
아프진 않았다.
기분이 더러울 뿐.
그래도 나름 예언자의 강단을 보여줄 기회가 돼서 만족은 한다.
‘하여간 사랑에 눈이 머는 것만큼 바보 같은 짓도 없지.’
그때 류민의 핸드폰으로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사랑에 눈이 먼 사람이 여기에도 있었다.
[민주리 : 민, 혹시 종교 믿는 거 있어?]‘갑자기 종교는 왜 묻지? 설마?’
류민은 모른 체하며 답을 이어갔다.
[류민 : 없는데, 왜?] [민주리 : 잘됐다. 그럼 나랑 같이 어디 좀 가자. 시간 좀 낼 수 있지?] [류민 : 어디?] [민주리 : 어딘지 말할 거면 진작 말했겠지! ㅋㅋ 비밀이야!] [류민 : 알써. 그럼 10분 있다가 편의점 앞에서 보자.] [민주리 : ㅇㅋㄷㅋ]‘뭔가 느낌이 싸한데…….’
어떤 종교인지는 말 안 했지만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거기는 가기 좀 그런데…….’
그래도 한 번쯤 가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보였다.
어떻게 만들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외출복을 입고 나갈 채비를 하자 동생이 다가와 묻는다.
“형, 어디 가?”
“친구 만나러.”
“나도 친구 만나러 가도 돼?”
친구란 말에 류민의 눈이 경계 모드로 변했다.
“친구 누구.”
“온라인 게임에서 만난 친구인데 서울에 산대. 시간 나면 같이 만나서 피시방에서 놀자고 했었는데 이런저런 핑계 대면서 계속 거절했었거든.”
‘친구라 해서 누군가 했더니 게임 친구였구나.’
요새 집에만 있는다고 게임에 맛 들이더니 결국 게임 친구를 사귄 모양.
이전 회차에서도 게임을 하긴 했으나 친구를 사귄 것까지는 몰랐었다.
류민이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자 류원이 말을 덧붙였다.
“같이 피시방에서 놀다가 오려고 하는데, 응? 안 될까? 이제 나쁜 플레이어도 줄었고 안정도 됐잖아. 외출하게 해준다며.”
고민하던 류민은 안 될 건 없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허락할게.”
“진짜아? 오우예!”
“대신 늦게까지 놀면 안 돼.”
“알았엉.”
“내가 문자 하면 바로바로 읽고.”
“알았다구. 히히! 오늘 만나자고 연락해야겠다. 형! 고마워! 잘 다녀와!”
얼마나 좋은지 본체만체하며 후다닥 약속을 잡으러 가는 동생이다.
‘저렇게 좋을까.’
그 모습에 미소를 짓던 류민이 일순 표정을 굳혔다.
‘흠. 혹시 모르니.’
톡톡톡톡-
류민의 손가락이 빠르게 문자를 적었다.
* * *
약속 장소에 도착한 류민은 조금 당황했다.
대뜸 조수석에 타더니 출발하자고 손짓하는 민주리의 모습에.
“어디로 가자고?”
“양평.”
“거긴 왜?”
“종교가 거기에 있대. 혼자 가긴 무서워서……. 같이 가줄 거지?”
강아지 같은 눈빛으로 바라보는데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종교인데.”
“일단 가봐. 가서 얘기해 줄게.”
혹시나 안 간다고 할까 봐 숨기는 그녀였지만 이미 속마음을 읽어서 알고 있다.
‘예상대로 사신교에 갈 생각이구만.’
허태석이 만든 사신교는 경기도 양평에 있다.
가보진 않았지만 플세바 카페에 홍보 글을 올린 걸 봤기에 기억한다.
‘저번에 이계에서 민주리가 관심 있어 하니까 은근슬쩍 주소를 알려준 모양이야.’
딱히 뭔가를 할 것도 없고 서울에서 1시간이면 도착했기에 시간은 충분했다.
‘이렇게 민주리와 다니는 것도 몇 개월 남지 않았으니 시간 좀 내어줘서 나쁠 건 없지.’
드라이브 삼아 다녀오기로 한 류민은 불평불만 없이 묵묵히 운전대를 잡았다.
그런 류민이 민주리는 고마웠다.
“따라가 줘서 고마워. 내가 해줄 건 없고…… 버프 받고 힘내!”
“하하…… 힘이 나네.”
딱히 운전에 도움은 되지 않지만, 마음이 편안해지는 효과는 확실히 있었다.
“도착했어.”
1시간을 달린 끝에 도착한 곳은 작은 촌락.
보통이라면 이런 곳에 종교 시설이 있다고는 상상도 못 하겠지만 있었다.
동네 노인정 같은 허름한 집이었지만.
“민. 여기야?”
“응. 네가 알려준 주소로 보면 이 집이 맞아.”
가까이 다가가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한자가 음각된 나무 간판이었다.
“사신교(死神敎)? 여기 오자고 한 거였어?”
류민의 물음에 민주리가 쑥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웅…… 사신교가 뭐냐면…….”
“알아. 검은 낫을 숭배하는 단체잖아.”
“어? 사신교에 대해 알고 있었어?”
“플레이어들이 이용하는 카페에 올라온 홍보 글을 봤거든.”
그리 말한 류민이 진지한 어조로 물었다.
“그래서 여기 가입하려고?”
“아니. 그냥 어떤 곳인가 궁금해서 와본 거야.”
‘거짓말. 가입할 거면서.’
류민도 궁금하긴 했다.
사신교가 있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본거지에 가본 적은 없다.
어느 순간 존재감이 사라졌었기에.
‘허태석이 교주로 유명해진 건 15라운드 전까지였지.’
마의 15라운드는 사신교 교주마저 소멸하게 만드는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했다.
‘이번 회차에선 다른 결과가 나오겠지만.’
사이비 느낌이 물씬 났지만, 자신을 추앙한다는데 싫을 리가 없다.
더구나 사신교는 12라운드에서 다른 나라를 규합하며 세력을 키우기 시작하는데, 은근히 많은 추종자가 모이게 된다.
‘그중에 쓸 만한 인재 좀 골라서 키우면?’
훗날 류민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어디 어떻게 꾸몄나 들어가 볼까?”
약간의 기대를 하며 들어간 사신교의 내부는 기대 이하였다.
우중충한 분위기에 있는 거라곤 바닥에 깔아놓은 매트와 돗자리가 전부.
흔한 마을 노인정, 아니, 그보다도 못한 초라한 집이었다.
더구나 모인 사람도 별로 없었다.
“이게 다야……?”
류민과 민주리를 제외하고 다섯 명 남짓한 사람이 있었는데, 모두 모르는 얼굴이었다.
두 사람만 제외하고는.
“어서 오십시오. 신도님.”
허태석이 등을 밀자 한 남자가 웃는 낯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엄준석?’
허태석이나 엄준석이나 커스터마이징을 안 했는지 이계와 현실의 얼굴이 일치했다.
“저희 사신교에 잘 오셨습니다. 혹시 가입하러 오셨습니까?”
“아, 아니요. 그냥 둘러보러…….”
“보아하니 플레이어 같은데, 음? 익숙한 얼굴이시네요?”
엄준석이 민주리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희 어디서 본 적 있나요?”
“이계에서 소개받고 왔거든요.”
“어? 서, 설마 버퍼님이세요? 닉네임이 민주주의 님?”
“네, 맞아요.”
민주리가 버퍼라는 걸 알게 되자 엄준석이 놀람을 금치 못했다.
“허태, 아니, 교주님? 교주님!”
“무슨 일이세요? 엄 추기경.”
자기들끼리 교주네 추기경이네 하는 모습에 코웃음이 나왔지만 류민은 참았다.
지금이야 영향력이 미미해도 몇 달만 있으면 세력이 크게 불어난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게 사신교였다.
“여기 검은 낫 님의 파트너, 민주주의 님이 오셨습니다!”
“오오, 그래요?”
허태석이 반색하며 민주리에게 다가왔다.
‘파트너?’
그 와중에 파트너란 말이 신경 쓰였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정말로 민주주의 님이세요?”
“네에. 그쪽은…… 노폐인 님?”
“하핫, 맞습니다. 제가 노폐인노게이입니다. 이계에서는 성숙해 보였는데 실제로는 젊은 대학생이셨군요? 20대 초반?”
“네. 20살이에요.”
허태석의 고개가 자연스레 류민에게 향했다.
“그럼 이분은 검은 낫…… 님은 아니실 테고, 누구시죠?”
“제 친구예요.”
“닉네임이……?”
류민은 고민 끝에 민주리에게도 밝히지 않은 닉네임을 공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