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401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후일담 25화
25. 아즈라칸
아즈라칸은 시드들을 관리하는 통솔자로서 막대한 권한을 부여받았다.
대화 한 번 해보지 않아도 시드들의 주파수와 이름을 알 수 있으며, 어디에 몇 마리가 살아남았는지도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이게 말이 되나…?’
정작 아즈라칸은 현재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보낸 시드 여섯이 전부 죽었다고……?’
몇 분 전.
라폴라이를 숙청시키기 위해 시드들이 한자리에 뭉쳤다.
그러나 아즈라칸만은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찜찜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아즈라칸? 왜 자리에 나오지 않은 건가?
-왜 대답이 없지? 말을 해봐!
-설마 무서워서 나오지 않은 건 아니겠지?
-통솔자라 믿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겁쟁이였군!
-필요 없다! 너 하나 빠져도 라폴라이쯤은 우리끼리 잡을 수 있으니!
비난이 쇄도했으나 아즈라칸은 꾹 입을 다물었다.
‘그래. 나 하나 없어도 너희 여섯이면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일곱이나 여섯이나 거기서 거기니까.’
그런 마음으로 라폴라이의 위치만 알려준 뒤 상황을 관망했다.
그런데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라폴라이와 붙었던 여섯 명의 신호가 끊어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주범인 라폴라이조차 신호에서 사라졌다.
일곱의 시드가 한순간에 몰살한 것이다.
‘인간의 말로 치면 동귀어진한 건가?’
그리 여겼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일개 시드 한 마리가 호스트 좀 먹었기로서니 동시에 여섯의 시드를 소멸시킬 수 있다고?
‘불가능하다. 다른 뭔가 있는 게 분명해.’
신호를 느끼기만 했지 직접 현장을 본 건 아니기에 확신할 수는 없지만…….
‘라폴라이가 아니다. 다른 존재의 개입이 있었던 거야!’
그리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아니고서야 한순간에 라폴라이까지 사라질 수는 없다.
‘설마 라폴라이도 이용당한 건가? 제삼자에 의해?’
그렇다면 그의 갑작스러운 배신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여태껏 다른 누군가에 의해 협박받고 있었다면 말이다.
‘시드를 한순간에 멸종시킬 수 있고 협박할 수 있는 존재라니…….’
그런 존재가 있다면 자신은 필시 상대도 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혼자 남기도 했고, 11명의 시드를 모조리 처리한 존재를 어찌 막는단 말인가?
‘힘에서는 상대가 안 되지만, 그래도 유리한 점은 있다. 녀석이 내 위치를 모른다는 점!’
그렇기에 라폴라이를 협박해 시드들을 끌어내어 하나하나 처리했던 것이리라.
위치를 알았다면 이렇게 유인 작전을 쓸 것도 없이 직접 나섰을 테니까.
‘그렇다 해도 일단은 몸을 피해야 한다. 마지막 시드인 날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을 테니.’
괜히 불안해진 아즈라칸은 인파들 사이로 몸을 숨겼다.
상대의 정체는 모르겠으나, 확실한 건 놈이 우리 호스트와 시드를 멸종시키려 한다는 점이다.
저벅저벅-
한참을 인간의 몸으로 걸어 다니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른다.
‘나는 대체 누구와 싸우고 있는가?’
‘앞으로 어찌해야 하며, 누구를 피해 도망 다녀야 하는가?’
‘녀석의 정체는 무엇인가?’
고민하며 걷다 보니 한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지금은 상대가 누구인지부터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아즈라칸이 곧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PC방이라는 간판이 달린 건물이었다.
* * *
-아린 씨. 정말 괜찮겠습니까?
“네. 전 괜찮아요, 매니저님.”
서아린의 핸드폰에 걱정 가득한 안상철의 얼굴이 보였다.
-말만 그러지 마시고 정말로 안 찾아가도 되겠습니까?
“빈말이 아니라 진짜로 멀쩡해요. 밥도 혼자서 잘 챙겨 먹고 있고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서아린의 말엔 굳이 찾아오지 않아도 된다는 속뜻이 담겨 있었다.
안상철도 그 정도는 알아들을 눈치가 있었고.
-알겠습니다. 그럼, 이번 주는 편히 쉬십시오. 필요한 일 생기면 언제든 연락하시고요.
“네. 그럴게요. 고마워요.”
서아린은 싱그러운 웃음을 보이며 영상통화를 종료했다.
핸드폰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한숨이 나왔지만.
“하아…… 이럴 땐 연기자라서 다행이네.”
말은 괜찮다고, 정신적으로 아무 문제 없다고는 말했으나, 실제론 속이 곪아가고 있었다.
평생을 약속한 반려자가 결혼식 당일 식물인간이 되었는데 어찌 멀쩡할 수 있을까?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다.
병실에 있을 류민을 생각하니 금방 또 눈물이 차오른다.
‘이럴 때가 아니야……. 강해져야지. 민이를 생각해서라도.’
문득 류민을 떠올리자 자연스레 검은 낫도 떠올랐다.
동일 인물이라 할 수 있으나 서아린은 둘을 구분 지었다.
검은 낫과는 소원 성취 이후의 추억이 전혀 없었으니까.
어떻게 보면 다른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그건 그렇고 검은 낫 님이 몸을 사리라고 하셨지?’
조심하는 게 좋겠다는 말에 매니저의 접근도 차단하며 꼬박 하루를 집에 박혀 있었다.
딱히 불편한 점은 없었다.
‘갔던 일은 잘 되어가고 있을까?’
궁금증을 뒤로하며 식사를 마쳤다.
입맛이 없어 하루에 한 끼를 먹는 데 그쳤지만, 모처럼의 휴식이라 그런지 나름대로 잘 지내고 있었다.
그런 줄 알았다.
고비가 찾아오기 전까지는.
* * *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시드와 호스트를 제거하러 가시더니 소식이 없으시네…….’
서아린은 하루 종일 집에만 박혀 있는 일이 생각보다 힘들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이 천생 배우 체질이었다는 것도.
‘하루가 멀다고 쪽잠을 자며 바쁘게 생활했었는데…… 막상 시간이 남으니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당장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고 싶을 정도로 일에 대한 욕구가 치솟았다.
그래서 시간을 때우기 위해 대본을 보거나 거울을 보며 연기하는 등.
유의미하게 시간을 보냈다.
‘원래 시간이 날 땐 민이와 함께 보냈는데…….’
이제는 류민과 대화하기는커녕 병문안도 갈 수 없는 처지에 이르렀다.
일을 마무리 짓기 전까진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계엄령이 있었기에.
‘아무리 그래도 병문안은 가봐야 하는데…….’
민이의 몸 상태가 걱정됐기에 서아린은 온종일 불안하게 보냈다.
그리고 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기어코.
철컥-
밖으로 나갔다.
누가 알아보지 못하게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서.
* * *
“민아. 잘 지냈어?”
“…….”
병실에 말없이 누워 있는 류민을, 서아린이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잘 지냈을 리가 없지……. 이런 몸 상태가 됐는데…….”
“…….”
“근래 찾아오지 못해서 미안해. 돌아다니면 위험하다는 말을 들었거든. 누가 그랬냐고? 들으면 놀랄걸?”
서아린은 대답도 하지 않고 눈을 꼭 감은 류민을 향해 주절주절 말을 이어 나갔다.
아무렴 좋다는 듯이.
“검은 낫 님이야. 물론 네가 검은 낫이지만……. 진짜 플레이어의 능력을 지닌 검은 낫 님 말이야. 이게 무슨 소린가 싶겠지만…… 하여튼 그래. 내 눈에는 둘이 다른 사람으로 보여. 그렇게 생각할래. 나와 행복한 추억을 쌓았던 류민은 검은 낫 님이 아니라 여기 있는 너니까.”
검은 낫이 진짜 류민인 걸 알지만, 서아린은 병상에 누운 류민에게 더 애정이 갔다.
함께 손을 잡고 데이트도 하고 평생을 같이하기로 약속한 사람은 단연코 여기 있는 류민이었으니까.
“반드시 일어나야 해. 반드시. 난 너 없으면 안 된다고…….”
두 손을 꼭 잡은 서아린이 일어났다.
슬슬 갈 때가 되었다.
“오늘은 좀 늦게까지 있었네. 다음에 또 찾아올게. 마음 같아선 매일 오고 싶지만, 검은 낫 님이 혼낼까 봐 그러지 못하겠어.”
웃음 지은 서아린은 그렇게 류민의 손을 놓고 병실을 나왔다.
그렇게 택시를 타고 집에 온 순간이었다.
턱!
“아!”
어깨를 짚는 손에 놀란 서아린이 고개를 홱 돌렸다.
“……매니저님? 놀라서 소리 지를 뻔했잖아요.”
안상철이 딱딱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놀랐다면 죄송합니다.”
“여긴 무슨 일이세요?”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네?”
“아린 씨가 위험합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표정이 심각한 걸 보니 정말 뭔 일이 있는 모양.
무슨 일인지 묻기보다 서아린은 안으로 들어갔다.
삑삑삑- 삐릭!
문이 열리자, 안상철이 따라 들어온다.
여전히 주변을 경계하는 눈초리로.
흡사 겁먹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저렇게 경계하는 걸 보면 정말로 심각한 일인가 본데…….’
일단 앉아서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다.
“여기 앉으세요.”
“네.”
“뭐 마실 거라도 드릴까요?”
“아닙니다.”
“대체 무슨 일인데 연락도 없이 저희 집 앞에서 기다리고 계셨어요?”
“아, 그게 말입니다. 음…….”
안상철은 대답을 망설였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서아린은 그가 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표정도 그렇고 분위기도 평소와 다르게 느껴진다.
‘겁먹으셔서 그런가? 왜? 뭣 때문에?’
전직 경호팀장이었던 안상철이 뭐가 무서워서 저리도 겁을 먹는단 말인가?
서아린으로선 이해할 수 없었으나 이건 약과에 불과했다.
더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이 안상철로부터 나왔기에.
“아린 씨. 갑작스럽겠지만 저 좀 재워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
“밖에 아린 씨를 노리는 괴물이 있습니다. 경호를 위해서라도 아린 씨와 함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만…….”
“괴, 괴물이요? 설마 그때 저를 노렸던……?”
“맞습니다.”
호스트가 자신을 노린다?
왜? 어째서?
의문이 들었으나 안상철이 저리 불안에 떠는 점은 이해가 됐다.
괴물이 노린다는데 무섭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나?
‘하지만 여긴 나와 류민의 신혼집인데…….’
나중에 민이가 깨어났을 때, 이곳에서 알콩달콩 살 예정으로 준비한 신혼집이다.
외간 남자를 재우고 싶지 않은 게 서아린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아무리 생사를 함께했던 매니저라 해도 말이다.
“절 지켜주는 건 고마워요. 하지만 상대가 괴물이라면 둘이 있나 혼자 있나 위험하긴 마찬가지일 거예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고 매니저님은 돌아가시는 게…….”
“나가면 저는 그 괴물에게 죽습니다. 여기서 나가면 절대로 안 됩니다.”
“그렇다고 함께 지내는 건…….”
“예전에도 펜트하우스에서 같이 지내지 않았습니까?”
“잠을 같이 자진 않았죠.”
“제가 뭐 나쁜 짓을 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재워줄 수 없는 겁니까?”
“…….”
괴물이 그리도 두려운 걸까?
끝내 나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안상철을 돌려보낼 말을, 서아린은 찾지 못했다.
“알았어요. 우선 오늘은 집에 계시는 걸로 하고…… 매니저님?”
안상철이 뭘 봤는지 잔뜩 겁먹은 표정이 됐다.
시선이 자신의 뒤쪽에 가 있다.
등을 돌리자, 어둠 속에서 인영이 걸어 나왔다.
검은 낫이었다.
가면도 쓰지 않은 채 맨얼굴로 다가오고 있다.
안상철로선 아마 귀신을 본 듯한 심정일 거다.
식물인간이었던 류민이 멀쩡히 돌아다니는 걸로 보일 테니.
해명할 필요성을 느낀 서아린이 다급히 말했다.
“매니저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요…….”
“저놈은 매니저가 아니다.”
“네?”
검은 낫의 말에 서아린은 보았다.
안상철이 움찔 어깨를 떠는 것을.
“저 녀석이 바로 시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