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402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후일담 26화
26. 헤어질 시간
며칠 전.
PC방에 있던 아즈라칸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목표를 정했다.
‘대한민국, 서울로 간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최초로 호스트가 죽었던 장소가 대한민국의 한 결혼식장이기 때문.
하지만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다.
‘영상에서 보이는 저 남자가 검은 낫이란 말이지?’
뉴스로 이미 널리 퍼진 검은 낫의 영상을 보며, 아즈라칸은 확신했다.
라폴라이를 비롯한 시드들을 모조리 죽인 존재가 저자일 것이라고.
‘인간의 고사성어 중에 지피지기 백전불태라는 말이 있지.’
도망치더라도 상대가 누군지는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하에 인터넷을 뒤졌는데 이런 수확이 있을 줄이야.
‘시드를 죽인 존재가 바로 검은 낫이었어.’
이제야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라폴라이가 왜 알 수 없는 행동을 했었는지.
동료들을 배신할 이유가 없는데 왜 배신했었는지.
‘검은 낫에게 협박당하다가 쓸모가 없어지니 버려진 거야.’
배신자인 줄 알았는데 오해였다.
하지만 오해라고 말할 기회도 없었다.
이제 이 땅에 남은 시드는 자신뿐이니까.
‘검은 낫은 나를 찾으려고 백방으로 뛰고 있을 확률이 높다.’
인간을 지키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가?
모르긴 몰라도 호스트와 시드를 제거하려는 것만은 분명하다.
‘좀 더 정보를 뒤져보자. 놈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아야 해.’
인터넷을 뒤져 검은 낫에 대한 정보들을 뽑아냈다.
그 결과, 검은 낫과 함께 파이널 라운드에서 살아남은 96명의 플레이어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의 결혼식장에 검은 낫이 나타났고 말이지….’
서아린.
검은 낫이 그녀의 결혼식장에 나타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리라.
과거에 생사를 함께한 동료였기 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 없던 것이리라.
‘이거다! 이게 놈의 약점이었어!’
뭘 노려야 할지 명확히 깨달은 아즈라칸은 히죽 웃으며 인터넷 속에서 정보를 얻었다.
서아린에 대한 정보를.
모든 인터넷망을 제집처럼 드나들고 정보를 얻을 수 있기에 서아린의 집 주소를 찾기란 어렵지 않았다.
‘월패드에 찍혔다. 검은 낫과 서아린의 얼굴이.’
그리고 안상철이라는 남자의 얼굴 또한 보였다.
차량을 해킹해 보니 이 남자가 서아린을 태워다주는 매니저라는 게 밝혀졌다.
‘서아린을 노리려면, 안상철이라는 인간으로 위장하는 편이 좋겠군.’
목표를 정한 아즈라칸은 어렵지 않게 안상철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혼자 있을 때.
츄르르릇!
“읍!”
기습적으로 안상철의 콧속으로 들어가 뇌를 차지해 버렸다.
“안상철의 기억을 모두 공유받았다. 이제 나는 완벽한 안상철이야.”
의심받을 여지는 없다.
아즈라칸은 안상철이 되어 서아린에게 접근했다.
괴물로부터 지켜주겠다는 명목으로.
그러나 그것도 여기까지였다.
“저놈은 매니저가 아니다.”
검은 낫이 나타나 자신의 정체를 까발렸으니까.
* * *
“저 녀석이 바로 시드야.”
류민은 안상철을 보며 그리 말했다.
의심의 여지는 없다.
안상철의 속마음을 듣다 보면 실체를 파악하기란 어렵지 않았으니까.
‘그나저나 시드가 서아린을 노리고 안상철로 위장해 있을 줄이야…….’
솔직히 류민이 아즈라칸을 찾은 건 우연이었다.
광속의 룬으로 쿨타임이 돌 때마다 세상을 뒤져봤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인간으로 위장한 녀석은 멈춰진 시간 속에서도 분간해 내기 어려웠으니까.
‘특정 사건이나 참사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놈을 찾기란 어려워.’
허탕을 친 뒤 광속의 룬 쿨타임이 도는 동안 서아린을 지켜볼 생각에 찾아가 봤더니 웬걸?
안상철로 변장한 아즈라칸이 있었다.
처음 봤을 땐 솔직히 놀랐다.
‘날 협박하기 위해 서아린한테 접근한 거라고?’
얼굴을 보는 건 지금이 처음인데도 녀석은 자신의 정체를 파악했다.
그리고 동료로 위장하며 협박할 정도로 나름 머리를 쓸 줄 알았다.
‘다른 시드들보단 똑똑한 편이야. 하지만…….’
자기 눈에 띈 이상 아즈라칸은 이제 죽은 목숨이다.
물론 바로 죽일 생각은 없지만.
츠츠츠츠!
세상이 온통 검게 물들자 아즈라칸이 흠칫 놀랐다.
“이, 이건……?”
“시공의 결계다. 넌 이제 내 허락 없이는 못 나가.”
“정체가 뭐냐? 누군데 이런 힘을…….”
“그런 질문도 이젠 지겹더라고.”
말이 끝나자마자 빛이 번쩍였다.
아즈라칸의 몸이 열두 조각으로 잘렸다.
“크, 크윽!”
“생소하지? 이런 고통은.”
전격 한 방에 죽일 수 있었지만, 류민은 그러지 않았다.
아즈라칸이 최대한 고통을 느낄 수 있도록 낫으로만 베었다.
서걱! 서걱!
“끅! 끄악!”
시공의 결계에서 아즈라칸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반격을 해봐도 맞질 않았으며 도망쳐봤자 검은 낫이 귀신처럼 달라붙었다.
그 무엇도 통하지 않았다.
상대는 자신을 초월한 그 무언가였다.
고등체인 시드도 가지고 놀 정도로.
‘크흐윽, 내 생전 겪어본 적 없는 느낌이다. 너, 너무 고통스러워…!’
온몸이 조각나는 고통 속에서 아즈라칸은 생존하기 위한 몸부림을 쳤다.
상대가 어째서 자신을 죽이려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일단은 살아야 했다.
“그, 그만! 그만하고 대화를 해보자. 워, 원하는 게 뭐냐?”
“원하는 거? 딱히 없는데?”
“…뭐?”
“네가 이 세계의 마지막 남은 시드라는 것도 알고 있고, 데오란트에 대한 마땅한 정보도 없다는 걸 이미 다 파악하고 있거든.”
“그, 그러면 왜 날…….”
“괴롭히냐고?”
류민은 마무리를 위해서 손바닥을 폈다.
“넌 내 소중한 사람을 노렸으니까.”
“뭐…? 끄아아아악!”
손아귀에서 뻗어나간 전광이 아즈라칸을 뒤덮었다.
안상철의 몸이 새까맣게 타버리며 아즈라칸 역시도 사멸했다.
“이걸로 시드는 전부 처리했군.”
시드 12마리와 호스트 300마리를 모두 제거했다.
이제 서아린의 세계선이 붕괴할 일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정보도 얻을 수 있었어.’
아즈라칸에게 고통을 주면서 그의 생각을 읽어봤다.
그러나 데오란트에 대한 별다른 정보는 얻을 수 없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진 않았다.
‘엘시스의 리와인드 기능으로 보았지. 녀석이 데오란트와 했던 대화를.’
류민은 둘의 대화를 상기했다.
-데오란트 님. 저를 통솔자로 임명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유? 그야 내가 보낼 세계선의 시드 중엔 네가 가장 우수하고 똑똑하니까.
-그 말은 다른 세계선의 시드와 비교하면 떨어진다는 이야기인지……?
-질투하는 게냐? 그럴 것 없다. 너희는 어차피 내가 창조한 피조물들이 아니더냐? 누가 낫든 못 낫든 내 눈엔 모두 똑같은 자식이니라.
아즈라칸과 백발의 노인과의 대화에서 류민은 힌트를 얻었다.
‘큰 정보는 아니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어. 데오란트는 자신이 창조한 시드와 호스트를 자식으로 여긴다는 걸.’
아즈라칸에게 한 말이 빈말이 아니라면, 데오란트로선 자신이 만든 피조물이 죽는 걸 달가워할 리가 없다.
‘지금처럼 세계선을 옮겨 다니며 시드와 호스트를 제거해 나간다면? 열 받은 데오란트도 언젠가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겠지.’
작은 단서를 가진 채로 류민은 시공의 결계를 해제했다.
검은 장막이 걷히자, 모습을 드러낸 류민을 보며 서아린이 반색했다.
“검은 낫 님! 괜찮으세요?”
“괜찮아. 너는?”
“저도요. 그런데 매니저님은……?”
서아린의 시선이 류민의 발밑으로 향했다.
새까맣게 타버린 안상철로 추정되는 시신 하나가 있었다.
“내가 죽였다. 시드에 잠식당해서 어쩔 수 없었지.”
“아…… 그럼 시드도?”
“그래. 안상철에게 기생했던 놈이 마지막 남은 시드였다. 저 녀석을 끝으로 이 세계의 시드와 호스트는 모두 제거됐다.”
즉, 서아린의 세계선은 이제 평화를 되찾았다는 뜻.
서아린의 입에서 안도의 숨이 나왔다.
“후… 다행이네요. 더는 피해자가 나오지 않는다니. 매니저님이 당하신 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던 일이었죠?”
“어쩔 수 없었지.”
“그런데 시드가 어떻게 매니저님에게 접근한 걸까요? 서로 아는 사이도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날 견제하려고 안상철에게 붙은 모양이야. 서아린, 너에게 접근하기 쉽도록.”
“저요?”
“너를 인질로 잡으면 나를 협박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겠지.”
“아…….”
모든 정황을 파악한 서아린이었지만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만약 제가 인질로 잡혔으면…… 검은 낫 님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었어요?”
“글쎄. 그 상황까진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네.”
“아…….”
기대한 답이 아니었는지 서아린이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분명한 건 널 구하려 들었겠지.”
“…!”
“뭐라 해도 넌 나한테 소중한 사람이니까.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세계선까지 이동해서 고생하지도 않았겠지.”
“아.”
서아린의 입가에 곧 미소가 번졌다.
이걸로 답이 되었다.
“고마워요. 그렇게 말해줘서.”
눈웃음 짓던 서아린은 안심했다.
검은 낫이 자신을 소중한 사람으로 대해주는 것 같아서.
‘예전 그대로시구나.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던 검은 낫 님 그대로야.’
그런 검은 낫, 류민과 결혼을 원했고 소원으로 자신을 좋아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이기적인 소원이었지만 이곳에서만큼은 자신의 꿈이 이뤄지길 바랐고 거의 이뤄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비록 호스트 때문에 민이가 많이 다쳤지만…… 검은 낫 님이 아니었다면 이 세계도 못 지킬 뻔했어.’
완전히 파멸은 아니었기에 다행이었다.
아직 희망은 끈은 남았으니까.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
“다른 세계선으로 넘어가서 다시 시드와 호스트를 찾아야지.”
“그럼, 저희는 다시 못 보는 거예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평화는 찾았지만, 재회는 이걸로 끝이었다.
아쉬움을 느꼈으나 그래도 진짜 검은 낫을 다시 만난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고마웠어요. 저와 류민을 구해줘서…….”
“내가 날 구했다고 하니 뭔가 기분이 이상한데?”
“하하… 저도 좀 이상해요.”
분명 눈앞에 류민이 있는데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는 미묘하게 느낌이 다르다.
‘아마 검은 낫으로서 능력을 지녔을 때와 일반인이었을 때의 느낌이 다른 것의 차이겠지.’
서아린은 그리 생각하며 몸을 돌렸다.
이제는 정말 헤어질 시간이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뵀으면 좋겠어요.”
“그래. 기회가 되면 찾아오지.”
검은 낫, 류민은 그 말을 뒤로하고 사라지려고 했다.
서아린이 순간 전화를 받고서 놀라지 않았다면.
“여, 여보세요? 무슨 일이세요? 네?!”
무슨 말을 들었는지 서아린의 토끼 같은 눈동자가 서서히 벌어진다.
“그, 그게 무슨… 자, 잠시만요. 지금 병원으로 갈게요!”
무슨 일인지 물을 필요는 없었다.
그녀의 생각을 통해 통화 내용이 머리에 들어왔으니까.
‘이 세계의 류민이…… 죽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