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263
제262화
“미아는….”
유신이 난처한 듯이 한숨 쉬었다.
“그녀는 지금 누군가를 만날 만한 상황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일면식도 없는, 당신 같은 사람은 더더욱요.”
강설이 의외로 쉽게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미아라면 그렇겠지.’
미아는 경계심이 많았기에 다른 누군가와 접촉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오직 한 사람에게만 마음을 열고 살아갔던 여인이었기에.
유신과 단순히 알고 지내는 것이 아니라 근래에 방문까지 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
하지만, 그렇다 해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얘기만이라도 나눌 수는 없을까요?”
“미아에게 해가 될지도 모르는 얘기라면, 별로 권하고 싶지는 않군요.”
“음….”
유신이 아이들을 돌볼 때는 마냥 사람이 좋아 보였는데 지금은 정반대로 몹시 쌀쌀맞게 느껴졌다.
그의 변한 태도 때문에 그에 대해 안 좋게 평가할 수는 없었다.
영안족은 찬란했던 과거와 달리 그 수가 극히 적어진 자들. 경계심을 갖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그때,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생각하던 강설의 앞으로 설홍이 나섰다.
“유신, 강설은 나쁜 사람이 아니야.”
“그걸 어떻게 믿어? 미아는….”
“날 믿어.”
“…….”
“그를 믿을 수 없다면, 날 믿으면 돼.”
설홍이 유신을 애타게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주면 안 될까?”
유신이 강설과 설홍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하아…
곧, 한숨을 쉬며 그가 이렇게 답했다.
“내일, 너희들이 오늘 마차를 세워놓은 장소에 미아를 데리고 갈게. 아마 만나지 않으려 할 테지만… 설홍 네가 믿는 사람이라면 미아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미아는 지금…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거든.”
“잠깐, 마차? 우리 마차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어?”
“응, 잠시 소란이 있었나 봐. 설홍 네 마차라는 걸 전달해서 다른 문제는 없었어.”
설홍의 마차가 아니었다면, 험한 꼴을 당했을지도.
이곳이 도깨비 거리라는 걸 잠시 잊었었다. 아마 마차를 털려고 한 파락호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다음부터 한 명은 마차에 남아야겠네.’
다시 올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기어코 약속을 받아낸 설홍 일행은 그대로 도깨비 거리를 빠져나왔다. 유신의 손님이라는 게 소문이라도 났는지 방해는 일절 없었다.
끼이익…
마차에 도착하니, 마부가 하소연을 해왔다.
“설홍 님, 위험했습니다. 휴, 흉악한 놈들이 막 마차를 흔들고 위협을 하길래 어떻게 해야 하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들었어요. 일단 이곳을 벗어나죠.”
“어이쿠!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부는 이, 악취가 풍기는 위험한 거리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설홍이 물었다.
“한데, 어찌 미아라는 자와 만나려는 건가? 그녀라고 하는 걸 들어 보니 여인인 것 같은데.”
설홍은 강설이 무슨 목적으로 미아라는 여인을 만나려는 건지 알지 못한 상태에서 강설을 돕고자 나선 것이다.
어떻게 보면 무책임하다고 여길 수 있었지만, 반대로 설홍이 그만큼 강설을 신뢰한다고도 볼 수 있었다.
“미아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그녀와 만나 확인할 일이 있습니다.”
“중요한 일인가?”
강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 * *
다음 날이 되자 마차는 이번에도 같은 자리를 찾았다.
어제와 다른 점은, 모두 마차 밖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 정도.
곧,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등장했다.
로브의 후드를 깊게 푹 눌러쓴 남자와 여자. 둘은 안대를 쓰고 있었다.
강설은 그중에서도 여인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미아?’
강설이 이처럼 놀란 이유는 미아의 모습이 강설이 기억하고 있던 모습과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누, 누가 나를 찾는다고 해서… 정말 오기 싫었는데….”
미아는 말을 더듬으며 풀 죽어 있었다.
– 혜명! 저거 봐, 예쁘지?
– 뭘 보라는 거야? 어디? 뭐가 있는데?
– 별 말이야, 별!
강설이 알고 있던 미아는 지금의 모습보다 훨씬 쾌활하고 밝은 분위기였다.
“도, 돌아갈래.”
“미아, 여기까지 왔으니 얘기는 나눠봐.”
“싫어. 분명히….”
미아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림을 그리게 하려는 거잖아….”
그림.
그 말에 치우와 설홍의 눈이 의문으로 차올랐다. 그림이 무엇이길래 여인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것일까.
유신이 강설을 쳐다보았다.
“미아에게 그림을 그리게 하려는 겁니까?”
강설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 말에 유신이 싱긋 웃고는 미아에게 말했다.
“들었지, 미아? 네게 그림을 그리게 하려는 게 아니라고 말했어.”
“저, 정말이야?”
미아가 강설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럼… 얘기는 괜찮아.”
강설은 미아와 단둘이 얘기하고자 한다고 일행을 설득했다.
그를 믿는 설홍과 치우는 당연히 수락했지만, 유신은 승낙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미아가 승낙하지 않았다.
“가, 같이 있어 줘. 유신.”
“미아?”
“혼자는… 무서워.”
유신이 강설을 바라보며 어떻게 해야겠냐는 뉘앙스의 제스처를 취했다.
강설은 고개를 끄덕여 유신에게 답했다.
“괜찮습니다.”
끼이익…
강설이 마차에 오르자, 맞은편에 유신과 미아가 앉았다. 미아가 멀쩡하지 않은 상황이었으니, 얘기는 강설과 유신이 주도해야 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죠, 미아를 어떻게 알고 있는 겁니까?”
“나, 나는 그림 안 그려… 이제 못 그려….”
계속해서 그림을 못 그린다고 중얼거리는 미아. 완전히 폐인의 모습처럼 보였다.
강설은 대답으로 적당한 말을 골랐다.
“광야령을 찾고 있습니다.”
움찔…
그 순간, 혼탁했던 미아의 정신이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되돌아왔다.
“광야령…?”
“네, 광야령.”
“…미아?”
유신은 미아가 뭔가 변했다는 것을 눈치챘다. 곧, 그녀에게서 들려온 말은 충격적이었다.
“유신, 나가 있어 줄래?”
“…괜찮겠어?”
“응, 나가 있어 줘.”
“어… 어.”
마치 모든 게 연기였다는 듯, 유신이 마차를 빠져나가자 미아가 말했다.
“광야령을 제게서 찾는다는 건….”
“당신에게서 광야령의 행방을 찾을 수 있을 거라 판단했습니다.”
“어째서?”
“알고 있으니까.”
“…….”
“그가 마지막으로 광야령을 넘긴 게 당신이라는 걸.”
“어째서, 어째서 알고 있는 거지? 그는… 설마 그와 만난 거예요?”
“…예.”
– 그가 누군데?
– 또 그 화법!
– 소명 개같은 거 우리한테도 좀 알려죠!
– 뇌에 이식받고 싶다. 그의 정보….
“그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
“아주 멀리 떠났습니다.”
“……역시. 바라는 건 이루셨나요?”
“그것까지는 모릅니다.”
아니, 알았다.
하지만 그것까지 말할 수는 없었다.
“혜명… 그 사람이 광야령에 대해 말해줬나요?”
“그것까지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좋아요… 하지만, 너무 늦었어요.”
– 혜명이 누구야?
– 몰라 또 소명이랑 엮여있겠지
– 왜 다 이름만 말하면 벌벌 떠는겨 ㅋㅋㅋ
부스럭…
미아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계란만 한 크기의 방울.
“설마 이건….”
“예, 혜명이 남기고 간 광야령이에요. 하지만 보시다시피….”
광야령은 힘을 잃었다.
분명 번쩍거렸던 그 모습이, 지금은 탁한 기운으로 물들어 삭아버렸다.
“어째서 이렇게 된 겁니… 대충 알겠군요.”
“제가 예상한 것보다 많은 걸 알고 계시네요.”
강설이 쓰게 입매를 비틀었다.
‘그때 한 번 사용했을 때, 힘을 다 소모한 거구나.’
혜명은 이 광야령을 사용해 단 한 번, 엄청난 이적을 발휘했었다.
“그가 떠난 후, 광야령은 힘을 잃었어요. 마치… 지금의 저처럼.”
“…미아? 힘을 잃었다니….”
미아에겐 다른 영안족들보다도 훨씬 뛰어난 힘이 있었다. 아니, 모든 영안족을 통틀어 그녀보다 강렬한 힘이 있을까 싶었다.
‘한데, 그런 힘을 잃었다고?’
미아는 특별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이제 더는 그림을 그릴 수 없어요…. 아까의 모습은 조금 의도가 섞여 있었지만,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건 정말이에요.”
“손이 불편한 겁니까?”
“아뇨. 그림을 그려도 예전과 같은 특별한 그림은 그릴 수 없게 된 거예요. 제힘은 이제 끝이 났어요.”
“…그렇군요. 폐인 행세를 한 건 혹시라도 당신의 존재를 찾고 있을 누군가 때문입니까?”
“몇 번 곤욕을 치른 적이 있었지만… 다행히 그들은 스스로 재앙에 빠져 사라졌죠. 그래도 일전의 기억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똑같이 행동하고 있어요. 습관이라고… 해야 하나.”
강설은 잠시 대화를 곱씹다가 한숨을 쉬었다.
‘결국, 쉽게 풀리진 않는군.’
모든 일이 그렇듯, 아니 최근에 얽히는 일이 전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어그러지고 있었다. 이번에도 그런 것 같았다.
“후우… 아무래도 광야령은 포기하는 게 맞겠군요.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자, 잠깐….”
“…….”
“그는… 혜명은 어떤 삶을 살았나요? 날 떠난 이후에….”
강설은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얘기해 줄 수 있었다.
“오직 묵묵히 걸었습니다.”
“…그 사람답네요.”
“그럼….”
“사실….”
미아가 숨겨두었던, 사실을 밝혔다.
“사실 아직 한 폭이 남아있어요.”
“…예?”
“혜명과 제가 남아있는 그림이, 아직 한 폭 남아있어요.”
“…맙소사.”
미아는, 강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그림을 내어드릴 테니,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겠어요?”
* * *
강설이 미아와 접촉한 후, 이틀이 지났다. 강설은 미아와 접촉한 날 이미 앞으로의 계획을 설홍과 치우에게 설명했었다.
“그게 정말인가?”
“예, 충분히 모험해 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말은 틀리지 않았지만, 세상에 그런 힘이 존재하리라는 건… 믿을 수가 없군.”
“그러니까! 이게 말이나 되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설홍 님?”
“…….”
결국, 다음 시련은 강설의 의견대로 하기로 결정되었다.
특이한 점은, 치우도 그 일정에 합류하기로 했다는 것.
그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었다.
“재밌을 것 같아!”
강설과 설홍 입장에서는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치우의 도움을 받는다면 일이 한층 쉬워질 테니까.
그렇게 이틀째가 되는 날, 그들은 미아의 은거지에 도착했다. 깊은 야산에 있는 허름한 나무집.
“흥흥… 종이 냄새가 잔뜩 나네.”
“그러게….”
강설은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종이 냄새라면, 이곳에 잘 찾아온 것이다.
똑똑…
끼이이익…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시작하죠.”
곧장 뭔가를 부랴부랴 준비하는 미아.
강설과 치우의 도움으로 집 안에 있던 집기들 대다수가 밖으로 사라졌다.
그제야 수납공간에 잔뜩 쌓인 족자들이 보였다.
“제가 말한 그림은 이거예요.”
“…확실하군요.”
머리를 짧게 치지는 않았지만 승복을 입고 있는, 혜명의 웃음이 담긴 그림이 펼쳐졌다.
치우와 설홍의 표정이 묘해졌다.
“이 그림… 아니, 이 사람 어디서 본 것 같은….”
“유명한… 아주 유명한 사람 같은 느낌이….”
미아는 그들을 무시한 채, 할 말을 했다.
“몇 가지 주의 사항이 있어요. 우선….”
미아는 강설 일행에게 차근차근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설명해주었다.
얘기를 들을 때마다 벌어져가는 치우의 입.
“이게 정말 실제로 벌어질 일이라고?”
“자, 준비하세요. 모두 손을 맞잡아요.”
“미아는 가지 않는 겁니까?”
“제가 그곳에 존재해서는 안 돼요. 그곳에도 제가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강설이 가운데 서서 치우와 설홍의 손을 꽉 붙잡았다. 손을 놓친다면, 대참사가 벌어질 수 있었다.
“그럼, 시작할게요.”
스으으으으…
미아에게서 특이한 기운이 스며 나왔다.
아니, 정확히는 그녀가 손에 든 그림에서.
“종이 너머의 세계를 마주할 수 있게, 채료로 덧씌워진 세계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다오.”
파라라라락-!
주변의 족자들이 이리저리 날뛰었다.
어디선가 바람이 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촤아아아아아아악-!
미아가 든 족자에서 빛이 퍼져 나와 강설 일행을 삼켰다.
쿠우우우웅-!
꽤 높은 곳에서 추락한 듯한 충격.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려왔다.
“끄으응… 뭐야? 실패한 거야?”
“그건… 아닌 것 같은데.”
강설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가리켰다.
풀이 들썩이는,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을 주는 고원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어? 여기는….”
그때, 설홍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강설. 혹시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게….”
그녀의 손가락이 저 멀리 보이는 남녀를 향해 뻗어있었다.
“저들인가?”
“…맞는 것 같군요.”
강설은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은, 아주 후에 찾아올 것이라 예상했었던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 순간이었으니까.
꽤 이른 만남일지도.
“…응?”
승복을 입은 남자와 눈에 안대를 쓴 채로 그림을 그리는 소녀.
둘이 다가오는 강설 일행을 경계했다.
특히나 승려 쪽은 완전히 적대적이었다.
“너희는 뭐냐? 어디서 나타난 거지?”
“…….”
“너희는 뭐냐니까! 대답하지 않으면….”
강설은 말을 잊었다.
그의 눈앞에 아주 건장한 미청년이 길쭉한 봉(棒)을 언제라도 내찌를 것처럼 자세를 잡고 있었다.
그가 육성했던, 최강을 탐했던 10개의 말.
그중 하나.
비록 현재는 미완성된 상태일지라도 언젠가 대덕(大德)이라 불리게 될, 파계승 혜명이 지금 강설의 눈앞에 서 있다.
“뭐냐니까!”
강설은 그의 주인인가, 혹은 그의 또 다른 자아인가.
[숨겨진 모험 ‘광야령’의 추가 정보를 얻었습니다.]
[돌발 모험 ‘광야령’이 발생합니다.]
[이 모험은 매우 위험합니다.]
……
강설의 옆에 있던 치우가 입을 쩌억 벌렸다.
“이게… 말이 돼?”
치우가 놀란 이유는, 혜명의 뒤꽁무니에 숨는 여자아이 때문이었다.
아직 성장이 끝나지도 않은, 설홍보다도 어린 여아가 혜명의 뒤에 숨어있었다.
처음 보는 사이, 그러나 누구인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혜명… 누구야?”
그녀는 미아였다.
미아의 어렸을 적 모습이었다.
어렸던 미아와 완성되지 않았던 혜명이 존재했던 시간.
일행은 미아의 그림 속으로 들어왔다.
[괴상한 힘이 작용하여 돌발 모험 ‘그때 그 시절’이 발생합니다.]
[이 모험은 매우 위험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