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319
제318화
휘이이이이잉…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무슨 일이 있던 건지. 폭발에 휩쓸린 강설은 어디까지 떠내려온 것인지.
꿈뻑… 꿈뻑…
천근 같은 눈꺼풀을 애써 위로 추켜올리며 강설이 눈을 떴다.
입에 뭔가가 잔뜩 들어가 있다.
“퉤에….”
눈과 얼음 조각들.
“…눈?”
강설은 상체를 바로 세워 주변을 둘러보았다.
만져지는 건 차가운 눈.
보이는 것도 설원뿐.
설원이 끝도 없이 수평선 저 너머까지 펼쳐져 있었다.
‘죽은 건가?’
잠시 멍해지는 강설.
‘아니, 그럴 리가 없어.’
경계석의 폭발을 막을 수는 없었지만, 그 힘에 휘말려 목숨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그것은 강설 자신이기에 가능한 말이지 치우나 설홍에게 적용되는 말은 아니었다.
‘누가 오는군.’
사박…
사박…
눈을 밟으며 누군가 다가왔다.
이런 한적한 설원에서 마주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맹수나 마수 정도일 것이라 예상했는데, 놀랍게도 사람이었다.
새빨간 코와 동그란 눈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고글처럼 생긴 보호경을 끼고 있었다.
“이봐, 괜찮아?”
다행히 강도는 아닌 듯했다.
‘어디로 튕겨 나온 거지?’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일 칸과 가깝다면 설홍에게 금방 돌아가는 것이 가능할지도 몰랐다.
“내가 말했지? 잘못 본 거 아니었잖아!”
“미안, 미안. 그래도 이 설원에서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믿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니야?”
“그건… 그렇네.”
푸른 눈을 한 여인이 다가왔다.
마찬가지로 코가 새빨갰다.
“이봐, 근데 안 추워?”
“어… 네.”
“대단한데… 혹시 냉기 저항 수치가 높은 편이야? 비결은?”
“네?”
“아, 전이자가 아닌가?”
상대는 전이자인 것 같았다.
동질감 요소를 드러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기에 강설이 정체를 밝혔다.
“전이자입니다. 강설이에요.”
“아, 이름. 이름이 꼭… 한국인인가?”
“당신은?”
“일본!”
스윽…
씨익.
복면을 내리고 히죽 웃는 남자.
턱에 김처럼 붙어있는 수염이 인상적이었다.
“이시이! 이시이라고 부르면 돼. 으… 추워… 혀가 얼겠네.”
“이시이….”
“나는 예바. 러시아…에 살았었어. 뭣 좀 물어보려고 해.”
두꺼운 털옷으로 온몸을 감싼 그들이 서로 구시렁거렸다.
“물어보라니까, 빨리… 어색해지기 전에….”
“아니 그… 네가 물어보면 안 돼?”
이들이 머리를 잠시 긁적이다가 강설에게 물었다.
“그… 우리가 며칠 좀 끼니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서… 혹시 먹을 것 좀 있어?”
강설은 새하얀 설원에서 새로운 인연을 마주쳤다.
끄덕…
“저, 정말? 다행이야!”
* * *
먹을 것을 나눠주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았다. 아니, 요리 숙련도를 올리는 가장 쉬운 방법은 배고픈 이에게 훌륭한 음식을 대접하는 데 있으니 직접 요리를 해줘도 좋을 것이고.
“이쪽으로 쭉 가면 전초기지가 있을 거야.”
“거리상으로 얼마나 멉니까?”
“음… 그것까지는 몰라. 우리도 널 발견한 곳까지 오는 건 드문 일이거든. 그보다 말 편하게 해.”
“알았어, 이시이. 그런데… 전초기지라니?”
강설이 묻자 예바가 이시이를 꾸짖었다.
“전초기지라고 하지 마, 혹시라도 뭔가 그럴듯한 걸 기대할라.”
“그런가? 저기… 저쪽으로 가다 보면 눈은 피할 수 있는 쓰레기 같은 동굴이 있을 거야. 벌레도 잔뜩 나오니까 혹시 토 쏠리면 먼저 말해줘.”
전이자 이시이와 예바.
이들과 강설이 있는 곳은 대체 어디쯤일까.
설원을 보아하니 떠오르는 곳이 한 군데 있기는 했지만…
‘북쪽이겠군.’
칸보다는 훨씬 북쪽일 것이다.
이동 거리로만 따져도 한숨이 나왔다.
“그런데, 여기가 어디지?”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왔다고? 혹시 방금 전이됐어?”
“아니, 전이는 한참 전에 했지.”
“으음… 난 또. 여기는….”
“얘기는 전초기지에 가서 하자. 아니….”
“전초기지 말고. 쓰레기장.”
“그래. 아무튼 쓰레기장에 가서 쉬면서 얘기하자. 지금 입을 열면 찬바람이 들어와서 장기가 얼어붙는 것 같으니까. 근데 정말 먹을 만한 건 있는 거지?”
끄덕…
강설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시이가 배를 움켜쥐었다.
“하아아… 다행이다. 보급도 단절되고 사냥도 먹을 만한 건 잡히지 않아서 걱정이었거든.”
“먹을 만한 것?”
“이곳의 마물은 고기에서 누린내가 너무 심하게 나거든. 어…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그냥 냄새만 맡아도 기절할 것 같아. 입에 한번 집어넣으려다가 이시이의 양말을 쑤셔 넣는 기분이라 바로 다 쏟아냈어.”
“야! 발 냄새 안 나!”
“아무튼 간.”
점점 더 이곳이 북부라는 것에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북부는 척박하기로도 악명이 높고 말을 육성할 때도 초반부에 이곳에 떨어지면 정말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게 되었으니까.
그렇게 한참을 걸어간 일행은 마침내 전초기지, 아니 통칭 쓰레기장에 도착했다.
“…….”
“거봐, 실망할 거라고 했지?”
“정말 뭐가 없구나.”
찬바람을 막기 위한 인위적인 방한막.
그 안으로 들어가자 어설픈 침상과 불을 피운 흔적만이 눈에 들어왔다.
이시이와 예바가 복면을 벗었다.
둘 다 훤칠한 이목구비를 가졌다.
이시이는 곱슬거리는 머리가 어깨에 닿기 직전인 단발이었고 예바는 어깨를 조금 넘는 머리칼이었다.
뽕…
예바가 침상 머리맡에 두었던 병을 가져와 땄다.
“마실래?”
“술?”
“어, 춥잖아? 진솔한 대화에는 이게 최고거든.”
“난 괜찮아.”
애당초, 강설은 지금 별로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고대 빙하 아귀 브란카와도 자웅을 겨뤘던 강설이니, 이 정도 되는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뭐 안 마시려면 말고.”
어깨를 으쓱한 예바는 병에 든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고 그건 이시이도 마찬가지였다.
“크으으….”
“어흐… 좋다.”
이시이가 수염을 긁적이며 물었다.
“어… 저기, 그러니까 여기가 어딘지 물었었지?”
“히끅….”
“야, 저리 가.”
예바가 딸꾹질을 하자 이시이가 그녀를 물리쳤다.
“예바는 술버릇이 고약하거든, 저렇게 취해서 잠드는 게 도움이 될 지경이야. 밤이 되면 한기를 견디기가 힘들어.”
“음….”
“우선, 아까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하자. 넌 여기에 어떻게 떨어지게 된 거야?”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는데….”
“…휘겔텅.”
강설의 눈이 번뜩였다.
“휘겔텅이라고?”
그리고 고개를 갸웃했다.
‘휘겔텅의 지형과는 일치하는 부분이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은데….’
역시, 예상대로 이시이가 빙긋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붙였다.
“…의 지척인 연방의 전초기지야.”
“너희는 북부 연방 소속이야?”
“오, 북부 연방을 알아? 이쪽으로 전이된 건가?”
“그건 아닌데… 소문은 들었어.”
예측했던 대로, 이곳은 북부가 맞았다.
‘야단났군… 칸과는 거리가 엄청날 텐데.’
뭐, 언제가 됐든 돌아가기만 하면 되겠지만. 아직, 유화의 유지를 되찾지 못했으니 칸으로 되돌아가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 게 맞았다.
‘그나저나… 연방이 휘겔텅 인근까지 세력을 넓힌 건가?’
정확히는 인프라는 그대로 두고 경계선만 늘어트린 결과겠지만, 아무튼 간에.
판데아의 북부에는 연방이 있다.
여러 국가가 연합하여 하나의 공동체로 묶였고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그들은 전이자들을 발 빠르게 흡수해 세를 불렸다고 한다.
아마 이시이와 예바도 그렇게 세력으로 흡수된 전이자의 일부인 것 같았다.
“연방에 대해 알고 있으면 얘기가 편하겠네. 휘겔텅에 누가 사는지 알고 있어?”
“…얼음 두더지와 트롤.”
“오! 잘 아네. 근데 얼음 두더지는 이명일 뿐이고 이곳에서는 에몬이라고 불려.”
“에몬….”
“그래, 세를 급격하게 불려 나가고 있는 에몬과 몰락한 빙하아귀가 휘겔텅에 살고 있지.”
“그럼 너희는 그들을 경계하는 연방의 경계조인가?”
잠시 술에 취해 꾸벅꾸벅 졸던 예바가 번뜩 일어나며 답했다.
“드렇스니다! 염빵의 뎡뎨도입니다….”
“…….”
혀가 잔뜩 꼬인 예바를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던 이시이가 특이한 기운을 응용했다.
쉬이이이…
고약한 알코올 냄새가 잠시 코끝을 스쳤다.
‘이 힘… 신성력?’
강설이 이시이의 손을 잠시 바라보자 이시이가 헤벌쭉 웃었다.
“아, 숙취에는 이만한 게 없어서.”
예바가 인상을 찡그렸다.
“야! 내가 맘대로 내 아까운 술 날려버리지 말랬지!”
“그럼 주정이나 하지 말든가.”
“…혹시 나 말 더듬었니? 몇 마디 했니?”
“응. 한 마디.”
“그럼 잘했어….”
그녀는 다가와 털퍼덕 주저앉으며 이렇게 말했다.
“숨길 게 뭐 있어. 견적 딱 나오는데 뭐. 맞아, 우리는 에몬과 빙하아귀. 그들의 준동을 경계하는 연방의 경계조야. 휘겔텅에 모여 사는 그들을 악다구니를 지켜보는 게 우리의 임무지.”
“저기, 말씀 중에 죄송한데 말이야… 혹시 우선 먹고 얘기하면 안 될까?”
“아… 그래. 우리가 좀 굶었어….”
“보급이 늦는 편인가?”
“평소에는 재깍재깍 보내오는 편인데, 오다가 습격을 받았다고 하더라고. 호위조도 큰 타격을 입어서… 일단 알아서 생존하고 있으라는 야성미 넘치는 명령을 받았지 뭐야.”
강설이 한쪽에 동결건조되고 있는 짐승의 살점을 가리켰다.
“…근데, 저건?”
동결건조된 넓적다리 살이 보였다.
“얀구스니의 고기. 얼마 전의 사냥에서 하필 저놈이 잡혔지 뭐야.”
“못 먹는 거야?”
“냄새 한번 맡아볼래?”
“야, 토하면 어쩌려고….”
“뭐, 직접 경험하는 게 좋으니까.”
강설은 그들의 제안대로 얀구스니의 고기에 코를 갖다 대었다.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어때, 굉장하지?”
“고기는 맞아? 썩은 거 아니야?”
“누린내가 아니라 악취라고 하지, 하하하!”
“좋아, 저걸로 맛있는 걸 만들어줄게.”
“하하하! ……뭐라고?”
“…장난하는 거지?”
“지켜봐.”
강설이 통풍을 위해 방한막을 열어젖히고 찬바람을 맞이했다.
칙… 칙…
화르르르르륵-!
곧, 타오르는 모닥불.
“이야… 불 잘 붙는데?”
“뭐야 그거?”
강설의 조리도구는 기본적으로 굉장한 축에 속했다. 불을 피우는 도구 또한 늘 최선의 물건을 지니고 다녔다.
모닥불에 고정할 조리도구를 뚝딱뚝딱 만들어낸 그는, 도마에 아까 본 얀구스니의 고기를 한입 크기로 썰었다.
다다다다…
“칼이 잘 드네?”
강설이 빙긋 웃고는 얀구스니의 고기에 준비해두고 다니던 양념을 발랐다.
원래는 숙성을 거쳤겠지만, 특유의 누린내 때문에 바로 냄비에 투하했다.
치이이이이이…
“우욱… 냄새가….”
썩은 내가 진동했다.
강설은 고기를 볶으며 냄새를 잡기 위한 재료를 잔뜩 투하했다.
그중에는 독초로 분류되는 것도 있었다.
치이이…
“어? 조금 나아진….”
화르르르륵!
화룡점정으로 미리 정제를 거친 특수한 술까지 첨가하자 불꽃과 함께 악취가 날아갔다.
치이이이…
이제는 좋은 냄새까지 나는 듯했다.
이어지는 조리 과정은 간단하게 밖에서 눈을 퍼와 고기와 야채를 그것과 함께 끓이는 것뿐.
부글부글…
냄비에서 참기 어려운 냄새가 퍼져 나오자, 이시이와 예바의 입에서 침이 흘러내렸다.
“익은 거 아니야? 익… 익었을걸? 익었어! 익었다고!”
“동감! 동감이야! 러시아의 의견에 깊은 찬사를 보낸다!”
“일본도 동의했어! 어서!”
[요리가 완성되었습니다.]
[얀구스니 짜글이가 완성되었습니다.]
[풍미가 넘쳐흐릅니다. 요리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전에 없던 새로운 요리법입니다.]
[극지 요리법에 대한 영감을 받습니다.]
[영감이 깨어납니다.]
[새로운 식재를 접했을 시 조리법이 떠오를 것 같습니다.]
[요리 실력이 대폭 늡니다.]
달그락…
그릇에 나누어지는 식사.
“한국식인가?”
“먹어봐.”
“매운 거 잘 못 먹는데….”
예바가 머리를 귀 너머로 넘기며 음식을 먹었다.
“…러시아, 이곳에 잠들다. 크렘린의 궁전이 눈앞에 아른거려.”
“와… 그 악취가 다 사라졌어. 어떻게 이럴 수가….”
[요리 실력이 추가로 상승합니다.]
“크어어어….”
“으으으으으… 좋아.”
– 뭔가 둘 다 반응이 약간 ㅋㅋㅋ
– 한국스러운데?
강설이 이에 대해 묻자 이시이와 예바가 말했다.
“아, 이곳에 오기 전에 같이 어울리던 한국 애가 있었거든. 다른 곳에 발령을 받아서 떨어지긴 했지만. 놀리려고 걔 먹는 모습을 따라 했는데 습관이 됐어.”
“연방은 어때?”
“보면 몰라? 외지에 내팽개쳐 두고 알아서 살아남으라니… 지구가 살짝 그리워졌어.”
“암… 암… 우리는 지구촌의 소중함을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 거야. 모두 한 가족이었던 것을….”
“…그래도 이시이랑은 같이 살기 싫어. 이시이 아침에 입 냄새 너무 심해.”
“예바는 방구 소리 너무 커서 휘겔텅에 있는 에몬들이 땅 파다 말고 고개를 처박아, 지진인 줄 알고.”
“야! 죽인다!”
“누가 먼저 했는데?”
밥 잘 먹고 싸우는 건 만국 공통일 것이다.
이제, 여유가 좀 생긴 그들은 배를 두드리며 말했다.
“아… 너무 많이 먹었다.”
“졸음이 솔솔 오네. 고마워, 강설. 근데 네 얘기는 거의 듣지 못했네?”
강설은 전이 전에 획득했던 보상들을 살펴보기 전에 이시이의 물음에 답했다.
“동방에서 왔어.”
“…어디?”
“칸.”
“이야… 전혀 몰랐어! 혹시 그럼 그거 봤어?”
“뭘?”
“야차 대전 말이야. 무시무시한 괴물 하나 때문에 칸이 덜덜 떨었다던데. 그거 사실이야?”
“…….”
강설의 말문이 막혔다.
가슴이 또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응… 아마도.”
“대단하네. 많이 죽었다며? …그래도 반년이나 지났으니 지금은 괜찮아졌겠지.”
강설의 표정이 굳었다.
“…뭐?”
“응? 뭐가?”
“방금 뭐라고….”
“많이 죽은 거?”
“아니….”
“반년이나 지났다고 한 거?”
“응.”
“그야, 야차 대전은 반년 전이잖아? 아닌가? 7개월 전인가?”
야차와의 일전.
그 후로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강설은 잠들어 있었다.
[대장정이 마무리되지 못했습니다.]
[돌발 모험 ‘피가 어는 곳’이 발생합니다.]
[이 모험은 매우 위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