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399
제398화
칸의 수도 홍연의 한 공방. 그곳에서 비밀스러운 일이 행해지고 있었다.
“인중로 준비는 어떻게, 잘 되어가고 있어?”
“아, 마무리 단계야. 각인만 새겨 넣으면 끝이야.”
흉악한 인상을 가진 사내들의 앞에는 쇠로 만든 거대한 무언가가 놓여 있었다.
“큭큭… 필생의 역작이 탄생을 목전에 두고 있다고.”
기괴한 웃음.
인중로는 용화의 시련이건만, 이들은 용화들도 아닌데 어째서 인중로를 준비한다는 것일까.
“주술로 눈을 가리고 귀를 멀게 하다니… 제정신인가 싶군.”
“괴팍하긴 하지만, 용궁 놈들이 언제는 제정신이었나?”
“하긴… 그런 놈들이니까.”
남자가 물건을 매만지며 말했다.
“이걸 운반하려면 어지간한 수레로는 턱도 없겠군.”
“이미 공수해놨어. 특별 제작했다고.”
“그럼 다행이군.”
두 사내의 눈빛이 교차했다.
무언가, 위험한 눈빛이었다.
“큭큭… 어디 성대하게 일을 벌여 보자고.”
“…인중로 당일은 잊지 못할 날이 될 것 같군.”
“그래, 우리에게도 그녀에게도 말이야.”
“…용은 우리가 선택한다.”
* * *
인중로를 조금 앞둔 날이었다.
설홍은 그녀의 시비인 천주를 찾았다.
그녀의 가장 오래된 시비였다. 시비라 했으나 유모나 마찬가지인 존재.
아니, 얼굴도 본 적 없는 어머니 대신 어머니가 되어준 존재다.
그녀는 현재, 노환 때문에 고생하고 있었다.
일에서도 물러난 지 오래다.
“늙은이가 뭐가 걱정된다고 이리 이른 시각에 찾아오시는 겁니까?”
“나이 든 사람 시간은 빠르게 간다며? 아이들이 발걸음 좀 해달라고 성화라….”
화아, 휘아, 청아.
곽성이 보낸 아이들이 이제는 천주의 역할을 대신했다.
세 명이 손발이 맞으니 늘 물샐틈없이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그것을 확인한 천주가 일에서 물러나겠다 말한 것이다.
“고 앙큼한 것들이 또 쓸데없는 짓을….”
“쓸데없지 않아.”
“…….”
“천주는 내 소중한 사람인걸.”
“중요한 이 때에 그런 소리를 하러 오신 겁니까? 세상 제일 하찮은 일이 젊은 사람이 늙은 사람 인생 걱정하는 일입니다.”
“음… 그런가.”
설홍이 천주의 침대에 풀썩 누웠다. 그녀의 가지런한 옷가지가 퍼졌다.
“…유화 님을 참 많이 닮으셨군요.”
“다들 그 소리야. 그렇게 닮았어?”
설홍은 귀계에서 돌아오고 나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동안의 작았던 모습이 마치 신기루였던 것처럼 근 몇 년 사이 몸이 자라났다.
이제는 유화가 환생하여 돌아왔다고 해도 열 명 중 두 명 정도는 믿을 것이다.
“네, 아름다움은 대물림되는군요.”
“…다음 시련, 들었어?”
“인중로 말씀이군요.”
천주도 설홍의 옆에 누웠다.
둘은 천장을 바라보고 대화를 나눴다.
“들었습니다. 가혹한 시련이더군요.”
“주술로 눈과 귀, 그리고 코까지 빼앗아간대. 줄 하나에만 의지해 제국민의 터전을 지나쳐 용궁까지 걸어야 해.”
“누가 생각했는지는 몰라도 참으로 고약한 녀석일 겁니다.”
“하하… 동감이야.”
“…부담이 크실 겁니다.”
“없다면 거짓말이지. 그야….”
설홍이 말끝을 흐렸다.
“죽을 수도 있으니까.”
죽는다는 가능성.
호위 없이 줄 하나에 의지해 사람들 사이를 가로지른다는 건 용화들에게 엄청난 부담이었다.
“말릴 거야?”
“제가 왜 말립니까?”
“위험하잖아. 위험한 건 항상 말렸잖아.”
“그건… 그놈이 다 망쳐놨습니다. 제 딱딱한 사고방식을 그놈이 다 깨부숴놔서… 큰일을 하려면 위험 정도는 무릅써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어버렸지 뭡니까?”
“그놈… 그놈이라….”
“……사라진 망할 놈 말입니다.”
피식…
민감한 주제의 대화를 이렇게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는 상대는 아마도 그녀에게 천주가 유일할 것이다.
“용이 되려면, 반드시 걸어야 하는 길입니다.”
“날 미워하는 사람도 있겠지?”
“세상에 몇 명 정도는 있겠죠.”
“그런 사람들도 인중로가 시작되기를 기다릴 거야.”
“그래도 길바닥에서 설홍 님 배때기를 칼로 쑤실 정도는 아닐… 아이고, 말이 조금 험했습니까?”
“…조금 많이.”
“아무튼, 제가 아는 설홍 님은 자애로우신 분이니 분명 큰일은 없을 겁니다.”
천주와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심적으로 큰 위안이 되었다.
“천주, 나는 용이 될 수 있을까?”
“간절히 바란다면요. 한데 설홍 님은….”
“응, 자신이 없어졌어.”
“…심각하군요. 이게 다 그 빌어먹을 놈 때문입니다.”
설홍이 싱긋 웃었다.
“그는 모든 걸 내 힘으로 이뤄냈다고 착각하게 하고 쉽게 의지하게 했어. 그리고 갑자기 사라졌지.”
“설홍 님….”
“그늘을 만들어주던 큰 나무가 사라진 거야.”
설홍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나는 빈틈이 많은 사람이고, 온전히 내 힘으로 이 자리까지 온 게 아니라는 것도 잘 알아. 그런 내가 용에 걸맞은….”
“설홍 님, 태어날 때부터 용이었던 녀석은 아직도 지하에 처박혀 있습니다.”
“…응?”
“화그무 말입니다. 비늘 있고 불 뿜는 녀석.”
천주의 말에 설홍은 헛웃음을 흘렸다.
“사람이 용이 되려면 결국 사람과 부딪혀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부딪혀 단련된 자만이….”
천주의 늙은 손이 설홍의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용의 자리에 도전할 수 있는 거죠.”
“…….”
“그 남자 또한, 결국 설홍 님과 부딪혔던 사람일 뿐입니다. 용의 딸이여 부디….”
낡은 미소 한 조각.
“용이 되소서.”
* * *
인중로를 하루 앞둔 오후.
내일 이맘때쯤엔 10인의 용화가 각기 흩어져 길을 걷고 있을 것이다.
용쟁이기에, 이면에서 많은 공작이 이루어질 수 있다. 특히나 용화들이 전부를 걸고 나서는 만큼 상대를 방해할 확률이 높았다.
이를 위한 안전장치는 나름 강구되었다.
10인의 용화들이 서로에게 해를 끼치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았고 이는 주술로서 강제력을 발휘했다.
어길 경우, 승부의 결과와 상관없이 직위를 박탈당하며 가문의 역사가 불에 탈 것이다.
인중로에 오른 자들은 오직 민중들에 의해서만 평가받게 되며, 정도 이상의 강자가 길에 접근할 경우 기록관이 접근을 통제하게 될 것이다.
즉, 아무 힘없는 자들만이 길을 걷는 용화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물론, 손을 잡아끌거나 길 안내를 하는 행동은 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은 인간의 강에서, 과거의 과오를 씻어내기 위한 것이다.
원한이 있는 자는 가까이 오라. 모든 것을 껴안을 테니. 극복하지 못한다면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리.
이것이 최후의 시련에 인중로가 선택된 이유였다.
“그럼, 각자에게 배당된 인중로의 경로를 확인하여 주십시오.”
스윽…
손바닥만 한 종이에 그려진 인중로의 경로를 확인하는 용화들.
그 순간 유독, 설홍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모든 것이 정해졌다.
“그럼 용쟁 최후의 시련 인중로는 내일, 정해진 위치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행운을 빌겠습니다.”
흩어지는 용화들.
저마다 떠들어대기 바빴다.
“…설홍.”
치우가 혼자 남아있는 설홍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어째선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경로, 확인했어?”
끄덕…
“봐도 돼?”
끄덕…
설홍의 종이를 넘겨받는 치우. 그리고 경로를 확인한 후 설홍과 마찬가지로 눈을 질끈 감았다.
“말도 안 돼… 이건… 이건… 잘못됐잖아.”
“에헤헤… 그게, 그렇게 됐네.”
“내가 바로잡을게. 이건… 빈민가를 지나잖아.”
빈민가.
유신이라는 빛이 그곳의 아이들을 거두어 키우고 있으나, 여전히 삶의 밑바닥인 곳.
유신이 아무리 그곳에서의 영향력이 크다 한들, 모든 어둠을 거느리진 못했다.
그렇기에 온갖 문제와 위험이 도사린 장소. 용화 중 유일하게 설홍의 경로가 빈민가를 관통하고 있었다.
“설홍, 아직 시간이 있으니….”
탁…
설홍이 치우의 손을 붙잡았다.
“치우, 하지 마.”
“왜! 불공평하잖아! 다른 용화들은 멀쩡히 대로변을 걷는데! 너는 어째서 오물을 뒤집어써야 하는 거야?”
“불공평하지 않아. 그들도… 원해서 그곳에 태어난 게 아니잖아.”
“그…….”
맞는 말이었다.
빈민가에 사는 이들이, 빈민가에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게 아닐 것이다.
그들에게 불공평을 말할 수 없었다. 그건, 해서는 안 될 행동이었다.
“그래도 1구획과 3구획은 쭉 뻗은 길이야. 괜찮아. 할 수 있어.”
“설홍….”
씨익…
“해낼 거야, 반드시.”
내일, 빈민가를 지난다.
아무런 보호도, 무장도 없는 상태로. 수도 홍연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꼽히는 그곳을 지난다.
시련을 선택할 순 없다.
빈민가의 삶이 그렇듯, 그 길을 걷는 자도 마찬가지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루의 시간이 주어질 것이다.
포기해도 좋다.
결정할 수 있는 건 지금뿐이며, 침묵하며 걷는 자만이 거머쥘 것이다.
그것이 오욕이든 영광이든.
그날 밤, 설홍을 포함한 세 사람이 한 장소에 자리했다.
태율과 신요, 그리고 설홍이 모였다. 용에 가장 가까운 자들.
“내일이면 한 명쯤 없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모임이군.”
“오라버니, 무슨 말을 그렇게 살벌하게 하세요?”
“농이었다.”
“농담은 권속들이 가르쳐주지 않나 봐요….”
“…필요하다면 배우지.”
“됐어요. 그보다… 인중로의 경로 보셨죠?”
“보았다.”
간단하게 전해 듣기로, 태율은 쭉 뻗은 길을 배정받았다. 그것은 신요도 마찬가지였고.
아니, 그 어떤 길이든 설홍의 길보다는 나았다. 설홍이 최악을 뽑았으니 다른 이들은 못 해도 차악 정도는 되었다.
“오라버니랑 설홍… 얼굴이 심각하네….”
그때였다.
태율로부터 뜻하지 않은 제안을 받게 된 것은.
“설홍, 길을 바꿔줄까?”
“…예?”
“나와 길을 바꾸겠냐 물었다.”
“…진심이세요?”
“진심이다.”
어째서일까.
다른 의도는 숨겨져 있지 않을까.
설홍은 태율의 말에 숨겨진 진의를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태율은 그런 자가 아니다. 늘 당당했고 최선을 다했다. 잔꾀를 부릴 자가 아니니, 순수한 호의일 것이다.
어쩌면 그야말로 가장 용에 어울리는 사람인지도.
“괜찮습니다.”
“음… 어째서냐? 네가 나를 도운 걸 생각하면 이 정도쯤은 얼마든지….”
“주어진 길을 걷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요. 피하지 않는다는 게 중요한 거니까.”
무표정한 신요마저도 웃음을 흘릴 대답이었다.
“정론이네.”
끄덕…
태율이 설홍의 말에 동의했다.
“정말로, 배정된 길 따위는 중요치 않을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원한이지.”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원한을 쌓았는가. 그 증오의 연쇄를 인중로에서 끊어낼 수 있는가.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과거일지니 후회와 함께 지난 과오가 닥쳐올 것이다.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특히, 나는 많은 과오를 저질렀다.”
“오라버니는 늘 최선을 다했어요. 그건 저도 알고 있어요.”
“최선을 다한들, 결과가 좋지 않으면 후회는 남는 법.”
태율이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쩌면 내일 이 자리에 없는 건 내가 될 수도 있겠구나.”
죽을 수도 있다.
아니, 많은 용화가 죽을 것이다.
“권속들에게 명해 목숨만큼은 보전….”
고개를 젓는 태율.
“전부를 걸겠다. 마지막 시련이니까. 마지막만큼은 온전히 나라는 사람의 그릇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려 한다.”
태율은 그런 자다.
“한 걸음 한 걸음, 내 전부를 눌러 담아 사람의 강을 거슬러 용이 되겠다. 신요, 너는 어떠냐?”
“…저도 마찬가지예요.”
강직한 자.
현명한 자.
그리고 자애로우나 방황하는 자.
인중로 당일.
10인의 용화는 모두 8인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하룻밤 사이에 2명이 시련을 포기한 것이다.
그 둘은 용쟁을 치르며 이미 너무 많은 거친 행동을 했기에 원한이 산더미만큼 쌓인 용화들이었다.
틀림없이, 시작한 후 얼마 안 되어 죽을 것이다. 어쩌면 현명한 행동을 보인 것일지도.
기록관이 말했다.
“사망화여, 눈에 담으십시오. 그대가 보게 될 마지막 세상일지도 모르니.”
“…겁을 주시는군요.”
“당신을 걱정하여 한 말입니다. 자, 안대를 씌우겠습니다. 오직 피부로 전해지는 감각만이 남을 것이며 눈과 귀, 코를 빼앗을 겁니다. 아, 현명한 판단을 위해 다른 용화들의 상황 정도는 전달될 것입니다.”
다른 용화가 포기하면, 뒤따라 포기하는 자들이 우수수 나올 것이다. 그것을 노린 것인지도.
“등을 밀치면 길을 걸으라는 신호입니다.”
“…예.”
“마지막으로… 절대로, 줄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줄을 놓치면 시간 내에 용궁에 도달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스윽…
눈에 안대가 씌워졌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설홍 님! 여길 좀….”
삐이이이이…
그 순간 세상은 모두 꺼진 채, 설홍 홀로 남겨졌다.
의지할 것은 오직 잡아당기며 나아갈 줄 뿐.
퉁…
뒤에서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졌다.
인중로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