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454
제453화
후우욱…
후우우욱…
불길이 전보다 더 뜨거워졌다.
이곳이 분화구의 심처임을 감안해도 옷을 입고 있을 수 없을 정도로 타들어 갔다.
“변한… 아니, 착각이군.”
파아악-!
반으로 뚝 잘린 검.
비신은 카렌의 팔을 쳐내고 목을 움켜쥐기 위해 손을 뻗었다.
흠칫-!
뤼지에의 몸은 알아채지 못했지만, 비신의 감각은 잡아냈다. 손을 뻗으면 위험하다.
파앗-!
뒤로 훌쩍 물러나는 비신.
“…뭐지?”
비신은 뤼지에의 몸에 깃들며 그의 신체 능력과 마력 전반을 흡수했다. 비신의 힘 또한 부패의 힘, 뤼지에와는 상성이 아주 잘 맞았다.
후우욱…
후우우욱…
카렌이 숨이 가쁜 듯 숨결을 내뱉었다. 그 호흡 하나하나에 불꽃이 깃들었다.
비신은 멈춰 선 카렌을 보며 생각했다.
그녀가 검을 잃은 이상, 승패는 이미 정해졌다. 검이 있다고 한들 자신의 아래였는데, 검이 사라졌으니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어째선지 그녀에게 섣불리 접근할 수가 없었다. 마치 접근하는 순간 모든 상황이 뒤바뀔 것만 같은 예감.
“…이래서 벌레의 몸에 깃들기 싫었다.”
뤼지에가 더 강했다면 확실한 우세로 돌아섰겠지만, 감각의 사각이 약점으로 다가왔다.
카렌이 히죽 웃었다.
“자, 본격적으로 해보자.”
“…허세를 부리는군. 검은 부러졌다. 여력이 남았나?”
카렌이 방금 발동한 규율은, 환상 절기에 준하는 힘을 가졌다.
무엇보다도, 그녀가 이전에 머물렀던 지고의 벽을 완벽하게 깨부술 수 있게 해준 힘이었다.
[탈각(脫却)! 그림자의 한계를 벗어납니다.]
[스스로 실체를 정의할 수 있습니다.]
[투쟁하는 불 카렌이 탄생합니다!]
[투쟁하는 불 카렌이 완전한 지고의 경지에 이릅니다.]
[투쟁하는 불 카렌은 대장군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환상 절기를 창안할 수 있습니다.]
[환상 절기는 전승이 불가합니다.]
[환상 절기는 기존 절기보다 훌륭한 효과를 지닙니다.]
[예속된 이는 환상 절기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환상 절기를 창안할 수 없는 대신 불꽃으로 창조할 수 있는 갑주의 범위가 늘어납니다.]
[환상 절기를 창안할 수 없는 대신 불꽃으로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의 강도와 범위가 늘어납니다.]
[환상 절기를 창안할 수 없는 대신 상승할 수 있는 능력치의 제한이 사라집니다.]
[환상 절기를 창안할 수 없는 대신,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그에 버금가는 규율(規律)의 영향을 받습니다.]
[겁화(劫火)를 일반 능력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사용 빈도가 낮고 조건이 까다로운 능력이 사라지는 대신, 겁화의 화력을 크게 높입니다.]
[겁화는 아군의 기운을 북돋습니다. 투쟁하는 불 카렌이 속한 파티는 치명타 확률이 크게 상승하며 치명타 피해량 배수 또한 마찬가지로 상승합니다.]
[겁화는 공방 일체의 힘입니다. 겁화로 상승한 공격력만큼 방어력이 상승합니다.]
[겁화를 견디기 위해 신체가 벼려집니다.]
[체력과 지구력의 회복이 압도적으로 상승합니다.]
[투쟁하는 불 카렌은 모든 능력이 전투와 관련되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20% 상승합니다.]
[모든 무기를 일정 수준 이상 다룰 수 있습니다. 무기가 아닌 물건도 카렌의 손에 들리면 병기 보정을 받습니다.]
[모든 저항력이 20% 상승합니다.]
[기사는 강인한 신체를 가졌습니다.]
[물리 저항력이 30% 상승합니다.]
[최대 체력이 20%만큼 상승합니다.]
[열기에 면역입니다.]
[겁화를 완벽하게 다룰 수 있습니다. 의도하지 않는 불꽃은 뜨겁지 않습니다.]
[전투 중, 경직에 큰 저항을 가집니다.]
[카렌은 전투가 시작된 후부터 타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녀가 투쟁을 시작한 순간부터 계속해서 강해집니다.]
[앞서간 자의 가르침이 존재합니다.]
[깨달음! 규율(規律) : 뜨거운 격려를 깨우칩니다.]
……
그녀 또한 한차례 허물을 벗고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존재가 된 것이다.
철커엉-!
철커어엉-!
비신과 접촉하며 썩어들어갔던 카렌의 갑주 부분이 새로운 갑주로 뒤덮였다.
“볼썽사납군, 우스운 꼴이다.”
겉으로 보기엔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남성이 입을 만한 갑옷이었다. 비신은 그 점을 꼬집어 비웃었다.
“카하핫! 좀 그렇지? 근데, 그래서 좋은 거야. 이 모습은.”
“…뭐?”
“든든하잖아, 보기만 해도.”
파아아아앙-!
도깨비 걸음을 발동한 카렌이 비신에게 쇄도했다.
검을 잃은 그녀가 어떤 공격을 해올까. 잠시 긴장했던 비신은 카렌이 다짜고짜 주먹을 뻗어오는 모습을 보고 허탈해했다.
“고작해야 그런….”
[비신이 썩은 수풀을 사용합니다.]
[부패의 잔가지가 경로에 형성됩니다. 함정 취급을 받으며 일반 부패의 2배만큼 중첩을 쌓습니다.]
[높은 경직을 보유합니다.]
촤라라락-!
뻗어 나오는 수풀.
거무튀튀한 그 장애물은 순식간에 부피를 키워갔다.
비신은 카렌이 장애물에 머뭇거리는 사이 다음 공격을 준비할 계획이었다.
콰지지지직-!
“…어?”
퍼어어어어어어어억-!
그 얼굴에 카렌의 주먹이 틀어박히기 전까지는.
잠시 주먹을 얻어맞고 턱이 흔들린 비신이 고개를 흔들었다.
“무슨….”
“푸허어어억….”
카렌이 피를 토했다.
부패 중첩이 폭증하여 한차례 임계점을 건드린 것이다.
이처럼, 부패 중첩이 최고조에 달하면 신체에 충격을 주게 된다. 천천히 상대를 쓰러트리는 게 비신이 가진 전투의 미학이었다.
보통 때의 비신은, 상대의 부패 중첩이 터지는 때를 노려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다.
중첩 반응이 올 때, 신체는 누구보다 솔직해진다. 당연하게도 약점을 훤하게 드러내기 마련.
그런데, 상대의 중첩이 언제 최고조에 달하게 될지를 방금 놓치고 말았다.
“…제정신이냐?”
애초에 썩은 수풀은 함정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무식하게 돌파하지 않고 다른 길을 선택하면 피해 없이 무마할 수 있었다. 비신도 그에 맞춰 전투를 조율했을 터였다.
한데, 가로막는 걸 부수고 타격을 가하다니. 본인이 입은 손해가 훨씬 클 텐데 말이다.
“허억… 허억….”
“오래가지 못할 거다.”
“히히히… 날 썩게 만들 수는 없어. 이렇게 타오르는데.”
화르르륵-!
불길이 커졌다.
철컹-!
철커어엉-!
갑주도 더해졌다.
비신은 상대의 재생력이 보통을 넘어섬을 깨달았다.
– 잘하고 있어! 카렌!
[뜨거운 격려가 발동합니다!]
[잘하고 있다, 카렌! 이 발동합니다.]
[잃은 체력에 비례해 체력 회복이 상승합니다.]
휘오오오…
열기가 갑옷을 뒤덮었다.
– 잘하고 있다, 카렌!
카렌만 들을 수 있는 레인의 음성이 전해졌다.
“헤헤… 알고 있어.”
“…미쳤군.”
비신이 고개를 저을 정도로 카렌의 상태는 온전하지 않았다.
애초에, 규율이 이런 모습이 된 것 자체가 그녀의 못 말리는 어리광이다.
단순히 칭찬받고 싶었다는 열망이, 가슴에 남았다. 레인과 닮고 싶다는 열망이 그녀의 무거운 갑주에 더해진 것이다.
그렇다.
그녀는 경지 이상을 넘어, 레인이라는 가치에 다다르고 싶은 것이다.
온전한 태양에.
후우욱…
후우우욱…
그녀의 모습을 본 비신이 생각을 달리했다.
“정했다. 이 녀석의 몸을 닳아 없어질 때까지 확실하게 써주지.”
충돌을 피해왔지만, 상대가 저런 막무가내인 이상 어쩔 수 없었다.
비신도 육탄전으로 응수할 생각이었다.
파아아아앙-!
파아아아아앗-!
동시에 다가서는 둘.
파바바박-!
순식간에 몇 합이 오고 가고.
후우우웅-!
카렌의 팔꿈치가 비신의 광대뼈를 긁었다.
핏-!
뻐어어어어억-!
“우우욱….”
비신의 무릎이 카렌의 명치를 타격.
부패 중첩이 치솟는 것이 느껴질 정도.
빠가각-!
카렌이 다리를 부러트리는 힘으로 비신의 하체를 걷어찼다.
“크하악-!”
“잡았다!”
“어딜!”
화아악-!
비신의 손바닥이 카렌의 갑옷에 얹어지자, 갑주들이 터져나갔다.
빠가가가가각-!
갑주들을 수습하기 위해 물러나겠지.
‘아니, 이 여자는 계속 덤벼들 거다!’
비신이 위험을 감지하고 재빨리 떨어졌다.
파아아아아앙-!
뒤늦게 비신이 있던 자리를 끌어안는 카렌.
“아쉽다. 끝낼 수 있었는데.”
“…….”
비신이 만일 저 품에 들어갔다면 고깃덩이처럼 으스러졌을 것이다.
카렌의 깨진 투구 속에 비친 얼굴에 검은 반점이 어른거렸다.
계속해서 비신의 힘에 고통받고 있는 것이다.
전투는 비등.
– 굼떠! 이 녀석아!
[뜨거운 격려가 발동합니다!]
[굼떠! 카렌! 이 발동합니다.]
[민첩이 80만큼 상승합니다.]
[이동 속도가 늘어납니다.]
“…버러지가.”
파아아아앙-!
비신이 카렌에게 돌진했다.
육체는 이미 포기했다.
빠아악-!
파바바바바박-!
빠아아아악-!
“쿨럭….”
카렌이 부패를 통제하지 못하고 휘청이자 비신의 발이 그녀의 투구를 날려버렸다.
“컥….”
“죽어라! 썩어서 죽어!”
전투는 다시 비신 우세.
퍼어어억-!
퍼버벅…
연달아 공격을 허용한 카렌이 다시 전투의 흐름을 따라잡기 위해 정신을 바로잡았다.
– 지켜보고 있다, 카렌! 움직여!
[뜨거운 격려가 발동합니다!]
[지켜보고 있다, 카렌! 이 발동합니다.]
[고통이 가라앉습니다.]
[평온한 정신을 유지합니다.]
다시 한번, 격려가 발동하고 나자 비신의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녀의 눈빛이 되돌아왔다. 뜨거운 격려가 계속되자 레인의 기억이 더더욱 선명했었다.
‘아… 그랬지.’
레인과의 일이 있은 후, 그녀가 꾸던 꿈이 점차 변질되었다.
고풍스러운 갑주를 입고 보석이 세공된 검을 휘두르던 이상적인 모습의 기사가 된 자신이 나오던 꿈은, 완전하게 바뀌었다.
진흙탕 속에서 단단한 갑옷으로 몸을 둥글게 말아 보호한 채 전열로 뛰어드는 모습의 꿈으로.
그래, 꼭 레인의 모습처럼.
지금 그녀가 입은 갑옷, 능력이 동경심의 발로라는 말은 이런 의미였다.
“으하아아아!”
고함을 내지른 카렌이 비신의 틈을 찾았다.
파아아악-!
그대로, 비신의 한쪽 다리를 붙잡고 바닥에 패대기치는 카렌.
콰아아아앙-!
“컥….”
콰아아앙!
콰아아아앙!
연달아 세 번을 후려치자, 비신의 발목이 뜯어졌고 비신은 저 멀리 튕겨 나갔다.
갑작스럽게 카렌 우세.
– 그거야! 카렌!
[뜨거운 격려가 발동합니다!]
[그거야, 카렌! 이 발동합니다.]
[마지막 공격의 피해량만큼 체력을 회복합니다.]
후우우웅-!
카렌이 탄환이 되어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
“흑-!”
콰아아아아아앙-!
비신이 재빨리 물러났다.
드드드드드…
그가 있던 자리에 커다란 크레이터가 생긴 것도 모자라 분화구 전체가 흔들렸다.
– 카렌, 검에 의존하는 태도는 버려라. 불필요한 습관이야.
언젠가 레인이 건넨 말이다.
– 뭐? 그게 무슨 소리야?
– 네가 지상 최강의 검술을 구사한다 해서 나처럼 될 순 없다.
– 그거, 자랑?
– 아니, 냉정하게 하는 말이다. 애초에 지상 최강의 검술을 구사하는 건 지상 최강의 검사겠지.
레인은 그가 겪었던 시행착오 하나하나를 일러주었다. 그녀가 헤매지 않도록. 그 어떤 위기에도 패배하지 않도록.
– 우리는 검사가 아니라 기사다. 말을 타고 전장을 가로지르는 창.
– …….
– 존재 그 자체로 병기라는 말이다. 손에 쥔 병기 따위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인식을 통째로 뒤틀어라.
그때의 레인은 손바닥을 뒤집어 손등을 보였다.
– 네 신념, 가치관을 전부 육체에 때려 넣어 투영해라. 지금 인내하는 훈련이 그걸 가능하게 할 테니.
“으카하하하핫!”
카렌이 광소했다.
때려 박힌 기억은 그 자체로 아프다.
비가 오는 날엔 시리고, 습관으로 자리 잡은 부분은 흉터보다 더한 아픔이다.
그렇기에 떠올릴 수 있다.
잊지 않을 수 있다.
콰아아아아앙-!
카렌의 공격에 얻어맞은 비신의 몸이 찢어지기 시작했다.
팔이 휘적거리며 저 멀리 떨어졌다.
카렌 우세.
“노오오오오오옴!”
퍼어어어어어엉-!
이번엔 몸에 들어찬 내장을 쏟아내게 한다.
카렌 우세.
비신이 뤼지에의 몸을 찢고 그 본모습을 드러냈다.
[타락한 잉걸불 비신과의 공격대 전투가 이어집니다.]
[일정량의 시대력을 획득 가능한 모험입니다.]
[모험의 결과가 역사에 기록됩니다.]
[모험의 결과가 판데아에 영향을 미칩니다.]
[대단히 위험한 전투입니다.]
[현재 공격대 구성원은 없습니다.]
[전장에 유색영(有色影)이 존재합니다.]
[현재 공격대 구성원은 1명입니다.]
[토벌 성공 시 보상이 대폭 상향됩니다.]
[난이도는 불가능에 근접합니다.]
……
비신이 검은 뱀의 머리를 매단 근육질의 영혼 형상으로 나타나 카렌을 손바닥으로 내리눌렀다.
콰아아아아아아앙-!
[타락한 잉걸불 비신이 권능 : 썩어가는 생명을 사용합니다.]
[이제 전장의 모든 생명체는 부패 중첩을 2배로 획득합니다.]
[부패 중첩이 비신과 닿지 않아도 쌓입니다.]
[부패 중첩이 최고조에 도달한 후, 다음 부패 중첩이 빨라집니다.]
[이는 시전 방해로 차단할 수 없습니다.]
[썩어가는 생명은 비신을 쓰러트릴 때까지 계속됩니다.]
으지직…
으직…
비신이 중얼거렸다.
“…어째서냐.”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 아직 멀었다, 카렌.
[뜨거운 격려가 발동합니다!]
[쓰러지지 마라, 카렌! 이 발동합니다.]
[최대 체력이 일시적으로 30% 상승합니다.]
[일시적으로 근력이 150만큼 상승합니다.]
비신의 몸이 붕, 떠올랐다.
“어째서 이렇게 강한 거지?”
손을 뺄 수조차 없었다.
카렌이 단박에 비신의 몸을 공중으로 던지듯이 끌어올렸기에.
마치 신화 속 반신이 태고의 괴수와 맞서는 모습이었다.
“어째서 썩지 않는 거냐! 너는… 대체 무엇이기에….”
“으아아아아아아!”
비신의 몸이 거꾸로 땅에 내리꽂혔다.
비신은 그의 진력을 해방했다.
거대한 몸을 가졌고, 모든 생명을 썩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
카렌의 절대 우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