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462
제461화
북부 연방에서 벌어진 엄청난 마력 파동. 서리 열병 감염자에 마력 반응을 0에 가깝게 만들어 버린 마법.
이것은 마법이라 부를 수 없었다. 인간의 시대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마도이니.
“으… 으으….”
“깨어났군.”
한소미는 우르에게서 뻗어 나온 마력 파동을 감지하자마자 전신의 힘이 빠지며 그대로 기절했다는 것을 지금 막 깨달았다.
쟈마드가 그녀를 일으켰다.
“걸을 수 있나?”
“…예, 예. 걸을 수는 있어요.”
일어서자마자 걷기 시작하는 한소미. 아직은 엉거주춤한 자세였다.
“어? 어째서 몸이 이렇게….”
“…과도한 마력 파동에 노출되어서 그런 거겠지. 아마 한동안 그럴 거다.”
“…아!”
지하도의 문을 열고, 몇 차례나 내부 격벽을 지나쳤는데도 느껴진 마력.
그 아찔한 힘에 정신을 잃었었다.
“…우르는요?”
“모른다.”
“알잖아요.”
“모른다. 짐작할 뿐이지.”
한소미가 억지로 물었다.
“짐작은요?”
쟈마드가 한소미를 보고 말했다.
“죽었다. 이 정도 마력량… 죽는 게 당연하지.”
“으… 으으….”
“울지 마라.”
“듣기 싫어서요?”
“네가 나약한 녀석이라는 걸 증명하려면 다른 방법도 많다.”
“난… 나약하지 않아요!”
한소미가 씩씩거리며 물기 가득한 눈으로 쟈마드를 째려보았다.
“기세 좋군. 그래, 그런 모습으로 있어라. 그게 녀석이 말했던 네 모습이니.”
“녀석? 우르가 저에 대해 뭐라고 말했었나요?”
“허약하고 평상시에는 별다른 도움이 안 된다고 했었지.”
“…설마 그게 끝은 아니죠? 그럼 방금 운 거 취소할래요.”
“보기보다 용감하고 위기가 오면 제 할 일은 해내는 여자라고도 했었고.”
“흑흑… 좀 더 울어야 했어. 역시….”
“그러니, 신뢰를 줘도 된다고 했다.”
“흐어어어엉….”
“이상하군. 이렇게 말하면 울지 않을 거라고 했었는데.”
“…….”
한소미와 쟈마드가 시선을 교차했다.
“너… 괜찮아졌군.”
“…네.”
그녀가 히죽 웃었다.
“실컷 울었잖아요! 이제 울어도 소용없는데 뭐.”
“회복이 빠르군.”
“워낙 놀라운 일들을 많이 겪어서요. 시간의 틈에 혼자 남겨져 본 적도 있는데 뭐…. 강설 오빠랑 만나면 꼭 이렇게 되더라고요.”
“큭큭… 녀석은 주변에 사고를 몰고 다니지 않나. 그래도 덕분에 목숨은 건지지 않나.”
“그러게요, 신기하네… 근데 우르가 말한 안내인이라는 사람은 언제 나타나는 거죠?”
저벅…
저벅…
불 꺼진 지하로에 인기척이 흘러나왔다. 아마도 우르가 말한 안내인이라는 자인 듯했다.
“…오셨네요.”
“마리쥬?”
“네, 저예요. 모두 무사하셨네요….”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에요….”
파악-!
한소미가 마리쥬에게 달려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마리쥬는 말없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고생 많았어요.”
“밖! 혹시 밖의 상황을 아시나요?”
마리쥬가 쓰게 웃었다.
“연방의 모든 소식이 끊겼어요. 서리 열병에 감염된 자들은 전멸… 모두 얼어붙었죠.”
“…….”
“밖은 심장이 멈춘 세계예요, 소미 양.”
말을 하는 마리쥬도 끝을 흐렸다. 감정을 애써 통제하고는 있지만 슬픔이 묻어나왔다.
“…우르가 말한 안내인이 당신이에요?”
“네. 우르는 끝내 오늘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거라 말했어요. 빠르든 늦든, 도달할 수밖에 없다고.”
“…무엇을 안내하는 거죠?”
“그건, 절 따라와 보면 알게 될 거예요.”
쟈마드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한 한소미도 마리쥬를 따라나섰다.
저벅…
저벅…
쿵…
쿵…
의사당의 지하로는 외부에서 마력 폭발이 일어나도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튼튼했다.
또한, 지하로는 수도 세르비온의 주요 시설과 연결되어 있어 이곳에서 어디로든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러니 정작, 마리쥬가 어디로 향하는지는 쟈마드와 한소미 둘 다 알지 못했다.
“곧장 움직이지 않았다면… 마지막 희망마저 없었겠죠.”
“모든 걸 우르가 지시한 건가요?”
“예, 모든 게 다….”
첫 번째 마도사의 치밀함을 말해 무엇할까. 일이 최악의 상황을 직면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전부 일러주는 정도야 그에겐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지하로의 존재를 말한 적도 없는데 비슷한 시설의 존재를 추궁했고, 그것이 전부 어디로 연결된 건지 확인한 그다.
저벅…
저벅…
몇 시간이고 걸은 한소미가 조금 지쳐 했다.
“쉬, 쉬었다 갈까요? 좀 머네요….”
“다 왔어요. 곧 쉴 수 있어요.”
“아, 그럼 됐네요.”
“여기예요.”
쿠궁…
쿠구구구궁…
문이 열렸다.
끼이이이이이이…
“여기는….”
“역사(驛舍)예요.”
“설마?”
굳이 역사를 목적지로 잡을 이유가 없었던 일행. 만일 역사가 그 목적지여야만 했다면, 당연히 목표 또한 이곳에 있어야 했다.
“우리는, 카스트랭을 타고 이동할 거예요.”
“…아!”
저 멀리서 일단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모두 정복을 차려입어 구분하기 쉬웠다.
“오셨습니까? 마리쥬 님.”
“모두 몸 성히 계셨군요.”
“하하하… 저희야 미리 철저히 격리되어 있었으니까요.”
“…모두 예상대로 되었어요.”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한소미는 그들이 카스트랭의 기관사들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연료와 보급은 이미 마쳤습니다. 선로는 정비를 핑계로 전부 비워뒀고요.”
“…말씀대로 해주셨군요.”
“마리쥬 님이 아니었다면 모두 미친 소리로 치부했을 겁니다. 아니… 일주일 동안 발생할 예상 손해를 파라 님의 가문이 전부 책임 지불하지 않았다면….”
익숙한 이름.
“파라… 파라 님은 어떻게 되셨죠?”
“…약속 장소에 오지 못했습니다. 감염을 눈치채신 거겠죠.”
안타깝게도, 파라를 포함한 은사자회의 일원들은 모두 해일에 휩쓸린 듯했다.
“그럼… 출발하죠. 우리는 역사적 사명을 품고 행동하는 거예요. 저와 함께 있는 이분들을 최전선으로 보내는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는 거, 모두 잊지 마세요!”
“예! 준비해두었습니다. 1호에 오르시면 됩니다!”
1호.
거기다 이렇게 많은 기관사까지.
열차 한 대를 모는 일에 사람이 이리 많이 필요했던 걸까?
한소미는 곧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세상에….”
역사에 줄지어 배치된 열차들.
“이, 이렇게 많은 열차가 필요한 거예요?”
“우르 님이 그리 말했어요.”
“…그럼 맞겠네요.”
뿌우우우우우우우-!
카스트랭이 기적을 울리며 바퀴를 움직였다.
철컹…
1호 차에 올라탄 한소미 일행.
카스트랭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긴장감이 조금 풀렸다.
퍼서석-!
선로를 덮쳤던 감염자들의 시체를 자비 없이 부수고 나아가는 카스트랭.
“이제 제 역할은 끝이 났네요….”
“네?”
“북부 발전의 상징이었던 카스트랭이… 이제는 이곳에서 유일하게 온기를 가진 물건이에요.”
“…….”
“모두… 모두 얼어붙었으니까.”
스윽…
눈을 닦은 후 자리를 뜨는 마리쥬.
촉망받는 귀족이었던 그녀는, 우르와의 마지막 대화를 떠올렸다.
– 마리쥬, 힘든 역할일 거다.
– 왜 내게… 왜 내게 이런 짐을 지우시나요?
– 상대는 어쩌면 연방이 세워지기 전부터 일을 꾸며온 자들이다. 연방의 붕괴는 막을 수 없다. 살아남는 자는 1할도 되지 않겠지.
– 연방이 무너지면… 모든 게 끝인 거 아닌가요?
– 그대들의 끝일 수는 있겠지. 하나, 인간의 끝은 아니다.
– 내 친구… 내 가족들… 내 일과 사람들이 모두 죽게 된다는데! 그런… 그런….
– 버티기 힘들겠지. 그럼, 죽었다 쳐라.
– 그게 무슨….
– 내가 보낸 자들을 카스트랭에 실어라. 거기까지만 하면 네 역할은 끝이다. 원하는 대로 해. 그게 네가 진정 원하는 거라면… 짐이 무겁다면 말이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지금에 와서 더 선명하게 깨닫는 마리쥬.
그녀가 2층 휴게실에서 눈 내리는 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눈보라가 오네요. 아름다워….”
히죽 웃는 그녀의 얼굴이 창문에 반사되었다.
그녀의 관자놀이에 총구가 닿아 있었다.
“정말로… 아름다워.”
타아아아앙-!
앉아 있던 한소미와 쟈마드 중 누구도 총성에 놀라지 않았다.
아니, 쟈마드는 놀라움을 느끼긴 했다. 한소미의 태연함에.
“…알고 있었나?”
“마리쥬, 눈이 죽어 있었어요. 일이 이렇게 된 순간… 이미 죽은 사람이잖아요?”
“…….”
“카스트랭에 오른 순간, 두 눈이 완전히 희망을 잃었어요. 그저… 해냈다는 아우성만 느껴졌죠.”
“…그녀가 정차하는 역은 여기였던 거다.”
“알아요. 그럼… 우리의 정차 역은 어디일까요?”
한소미가 히죽 웃었다.
“열차에 희망을 실었는데 자신은 동시에 희망을 잃기도 하네요. 사람은 이렇게 모순적이에요.”
“…넌 두렵지 않나?”
“미치지 않으면 버티기 어려운 세상이잖아요.”
그녀의 과한 유쾌함.
그것은 어쩌면 필사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욕구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한소미는 위기에 강하니까! …모순적이게도.”
쟈마드와 한소미가 마주 보며 웃었다.
이들은 서로에게 희망을 연기해야 했다.
창밖에는 눈보라가 몰아쳤다.
연방이 얼어붙는 동시에 시작된 눈보라였다.
눈보라는 시대가 바뀌기 전까지, 단 한 순간도 그치지 않으리라.
그야말로 사계의 끝이다.
* * *
“이번엔 허탕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라진의 정보가 잘못된 건가?”
강설 일행은 한차례, 라진이 짚어 주었던 위치 중 한 곳에 다녀왔다.
결과만 말하자면, 허탕이었다.
“처음에 간 곳은 지상에 위치해서 그런가… 유적의 훼손이 너무 심각했어.”
세월의 기억을 품은 유적이 지상에 남겨지면 풍화하기 마련이다.
비와 눈에 깎여나가고 바람에 파인다.
도굴꾼과 유적 사냥꾼들도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고.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
탄시아의 물음에 카렌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조금만 더 가면 유적이야. 오늘 그곳이 멀쩡한지 눈으로 확인할 생각이거든.”
“지난번처럼 아무것도 없으면 어떡해?”
“그러게, 어떡하지? 라진에게 쓴맛이라도 한 번 보여줘야 하나 어쩌나….”
라진과 카렌은 꽤 미련 없이 헤어졌다. 라진은 그녀에게 확실히 힘을 넘겼고 카렌 또한 라진에게 남은 아쉬움이 없어 보였다.
한 가지, 라진이 케시이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라고 말하긴 했다. 라진과는 달리, 케시이는 그 어떤 일에도 나설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들이라 했다.
‘뭐, 라진의 말에 따라 죽으라면 죽고 싸우라면 싸울 자들이니….’
신앙이란 그런 것이다.
삶의 목표를 규정할 수 있는 강제력이 되기도 하는 힘.
잠깐의 생각을 이어간 강설은, 해가 지기 전에 목적지에 도달했다는 것을 눈치챘다.
“이곳인가….”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저번에 갔던 곳보다도 더. 지난번에는 그래도 터는 남아 있었는데 말이지.”
“여기, 뭔가 찾았습니다.”
카루나가 손짓했다.
“음? 유적 입구를 찾은 게 아니야?”
그가 찾은 건, 입구가 아니었다.
“누군가, 이곳에 우리보다 먼저 왔습니다. 오래 지나지 않았습니다.”
불을 피운 흔적.
음식을 흘린 흔적까지.
모두의 눈매가 서늘해졌다.
이곳은 시대의 왕과 관련된 유적이었다.
그런 곳에서 마주친 자가 아군일지 적일지는 보통 후자 쪽에 무게가 쏠리기 마련이었다.
“이건… 거 같은데?”
지안이 중앙의 특이한 제단을 바라보며 말했다.
동그란 구체가 있는 제단.
강설이 성큼성큼 다가가, 제단의 구체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후우우우우웅…
제단이 빛을 뿜었다.
“어어?”
아니, 유적 터 전체가.
드드드드드드…
유적 터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내려가잖아! 이거!”
유적이 통째로 지하로 처박히는 경험은 이 중 아무도 없었다.
“카하하핫! 죽인다!”
“죽인다아아!”
카렌과 탄시아만 신난다, 재밌다를 열창하며 즐거워했다.
쿠우우웅…
제단이 바닥에 처박히자, 지안과 신디오가 앞으로 쏟아져 나왔다.
“우욱… 우우우욱….”
“토할 거 같아요….”
“나부터….”
강설 일행은 그들이 지하로 내려왔다는 것과 함께, 이곳이 바로 라진이 말한 새 시대의 왕과 관련된 유적일 확률이 무척 높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앞장설게.”
“부탁해… 조금 어지럽네. 아니었으면 내가 앞장설 텐데.”
“거짓말하지 마요.”
지안과 신디오가 한차례 속을 게워낸 후 강설의 뒤를 따랐다.
벽면에는 온갖 그림이 가득했다.
다만 반복된 형상이 많았고 거기에 더해 의미를 알 수 없게 배치되어 있었다.
“으음….”
“좀 더 들어가 보죠.”
강설이 고개를 끄덕이고 앞에 보이는 갈림길 앞에 섰을 때, 누군가의 기척이 바로 옆에서 느껴졌다.
‘이런!’
유적에 먼저 들어와 있는 자의 실력은 그의 예상을 웃돌았다.
유적 초입에서 습격을 가하는 대담함까지.
완벽한 기습이었다.
파아아아앙-!
물론, 강설의 손은 절세 검수의 손인 신유였다.
낚아채는 손.
‘…여자?’
손목이 가늘고 머리가 길었다.
“응?”
“어….”
“너!”
기습을 받았으니 돌려주어야 했지만, 강설은 망설였다.
일면식이 있는 상대였기에.
“콘지?”
“강설!”
콘지가 강설을 와락 끌어안았다.
꼬르르륵…
“배고파! 죽겠어!”
먼저 유적에 발을 들인 건 스푸노 화산에서 원정대를 도와 겍코를 쓰러트렸던 여인, 콘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