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52
제51화
그림자로 된 병정들과 흉기를 든 사람들이 밤거리를 휩쓸고 있었다.
“꺄아아악!”
“건물로 들어가! 창문도 열지 마!”
노비라는 지금, 도시에 깃든 부정한 기운을 피와 철로 씻어내고 있었다.
“크아악!”
“가, 감당할 수 있겠어? 헤카가 너희를 전부 죽여 버릴 거야!”
“그러기 전에 너희를 쓸어버린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
“자, 잠….”
푸우욱…
생명의 불씨가 꺼져간다.
도시의 곳곳에서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생의 가치를 매기는 것은 죽음이라 하건만, 값어치 없는 죽음만이 도시를 수놓고 있었다.
“늑대야… 크흑… 이번에는 꾀를 좀 내었다만, 지금이라도 물러나는 게 어떨까?”
“어째서인가?”
“헤카가 곧 올 거야, 이 도쥬를 물어버린 네 멱을 뒤에서부터 잡아 뜯기 위해 크흐흐….”
“안다. 그래서 서두르는 것이고.”
“…….”
도쥬는 사방으로 빠져나갈 곳을 찾았다. 하지만,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사람이 있었다.
아니, 사람이 없더라도 그림자는 있었다.
“키보, 아직도 죽은 단원들을 그림자로 거두는 것이냐?”
“뭐, 아직은 그렇다만.”
“구역질 나는 자식… 네 단원들이 불쌍하구나.”
“말이 길어졌다. 네가 사라져도 밤은 길 예정이니 서둘러 가라.”
“그, 그마안! 커허어억….”
서걱-!
머리와 몸을 이어주는 선이 뼈까지 갈려 나가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렸다.
“도쥬가 죽었다. 놈들에게 알리고 투항하는 놈들은 살려줘라.”
“예!”
“이제… 헤카만 남은 건가….”
“헤카가 살아 있으니 계획은 이제 시작입니다.”
“그래, 긴장들 놓지 말고 헤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확인해라. 우선, 슈르와 합류하지.”
도시가 피로 물들고 있었다.
잔인하다면 잔인한 광경이었지만, 폭군의 최후를 동정하는 이는 그 누구도 없었다.
키보는 난리 통에 슈르와 합류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서, 키보의 첫 번째 예측이 빗나갔다.
‘헤카는 우리가 합류하기 전에 나타났어야 마땅한데… 어째서?’
오만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치든지, 아니면 당장 전투에 끼어들 만한 상황이 아니든지.
키보는 문득, 늑대의 밤이 시작되기 전 유미라에게 맡겼던 임무가 떠올랐다.
헤카와 강설이 충돌하려 한다는 정보를 듣고 그녀를 보냈다. 그 이후로 소식이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키보, 무사했군.”
“아, 자네도.”
“도쥬를 처치했다는 얘기는 들었네. 이제 헤카만 남았군.”
“사납다고 해서 머리가 없는 놈은 아니야, 아마 전열을 정비하고 다시….”
그때였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둘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키보 님! 유미라가 돌아왔습니다!”
“미라가?”
“예! 그, 그런데….”
“무슨 일이냐?”
“직접 보셔야만 할 것 같습니다.”
터벅. 터벅.
힘없는 걸음걸이.
목적을 잃은 듯한 모습.
누군가 키보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미라야!”
“키보….”
“무사했구나, 다행이다.”
“키보, 있잖아….”
유미라는 입술을 깨물고 어떤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을 망설였다.
키보는 참을성 있게 그녀를 기다렸다. 성질 급한 그녀가 이 정도로 망설이는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일 테니까.
“후우….”
스윽…
유미라의 한숨과 함께, 그녀의 손이 앞으로 내밀어졌다. 그리고 그 밑에서 덜렁거리는 뭔가도 함께.
‘머리?’
일반인의 머리라면 놀랄 것도 없었다. 지금 도시 곳곳에 깔린 게 사람의 머리였으니까.
하지만, 키보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건 헤카 아니냐.”
“응.”
“죽었더냐? 어째서? 네가 도운 것이냐?”
유미라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도착했는데, 이 꼴이었어.”
휘청…
키보의 한쪽 무릎이 풀렸다.
“키보!”
“괜찮다, 너무 놀라서 그런 것뿐이야. 그가 한 짓이냐?”
“그밖에 없었어. 이걸 탁자 위에 올려놓고 날 기다리고 있더라고.”
키보가 눈을 감고 말했다.
“사자가 결국, 폭풍에 휩쓸렸구나.”
– 그는 아마 이 항쟁에 가장 중요한 폭풍이 될 거야. 부디, 폭풍이 사자 쪽으로 몰아치길 바라야지.
이후로는 모든 일이 일사천리였다.
슈르와 키보의 병력이 패잔병들의 목숨과 희망을 거두어들였다.
유적 사냥꾼들은 이날 밤을 늑대의 밤이라 명명했고 모두 키보와 슈르에게 모여들었다.
슈르는 공의 대부분을 키보에게 양보했다. 그가 이 끔찍한 밤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키보 때문이었으니까.
이로써 노비라의 세력 구도가 재편되고 있었다. 이리저리 분산되어있던 힘이 늑대를 중심으로 강력하게 모였다.
그리고 지금, 이제는 노비라 유적 사냥꾼들의 수장이 된 키보가 유미라와 함께 비밀스러운 자리에 나와 있었다.
그들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키보.”
“왜 그러느냐.”
“키보가 여기서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고 밖에 나가서 소문내도 돼?”
“맘대로 해도 좋다. 하지만 누가 믿기는 할까?”
키보가 다른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거리에 나가 떠들어 봐야 미친 사람 소리밖에 듣지 않을 것이다.
그는 당장에 노비라의 모든 것을 취한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약속장소에서 사람을 기다린다니, 그건 분명 질 나쁜 농담일 것이다.
똑, 똑.
“오셨습니다.”
“그래, 알겠네.”
키보의 수하가 문을 열기 전 조용히 전했다. 키보는 옷매무새를 만지고 유미라에게 말했다.
“오늘은 조용히 좀 있어라.”
“봐서. 그리고 나도 느끼는 바가 있으니까.”
“어련하시겠어.”
“히힛.”
둘은 걱정거리가 사라진 사람들답게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하지만 뒤이어 문을 열고 한 사람이 들어오자 그 미소는 긴장감으로 인해 사라졌다.
끼이익…
“자주 보는 느낌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강설이었다.
다소 피곤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그 묵직한 존재감은 여전했다.
키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반겼다.
“어서 오시게나. 이 앞에 앉게.”
강설이 앉을 자리는 금빛으로 번뜩였고 기이한 장식들로 치장되어 있었다.
“의자가 좀 부담스럽군요.”
“하하… 처음 만났을 때와는 상황이 정반대로군.”
강설의 별채에서 장식용 의자에 앉았던 키보가 그것을 떠올리고 실소했다.
키보는 강설을 지켜보며 그가 먼저 말을 하길 기대하는 눈치였다. 강설은 그를 보며 말했다.
“거래였습니다.”
헤카를 죽인 이유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역시, 그럼 그냥 그때 받아들이는 게 낫지 않았나?”
– 이번 헤카와의 항쟁에서 우리를 좀 도와주게.
키보도 역시, 강설에게 했던 부탁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때도 끼어들 생각은 없었으니까요.”
“흠흠… 뭐, 지나간 일이야 어쨌든 피차 사소한 일에 목매는 건 아까운 사람들이니…. 원하는 게 있나?”
헤카의 목을 벤 대가.
그것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키보가 물었다.
강설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무엇이든.”
“물건이 아니라?”
“제게 도움이 될 만한 걸로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호오… 이거 아무래도 오늘 크게 뜯길 것 같군.”
키보가 잠시 미간을 찌푸리고 답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지만, 정말 만만하지 않은 자로군.”
“제 요구가 부담되십니까?”
“천만에, 정적의 목을 베어주는 자가 하는 요구라면 얼마든지 들어줘야겠지. 안 그래도 자네가 바랄 만한 것들을 몇 가지 추려놓고 있었네.”
특이한 요구를 해오는 강설도 강설이었지만 키보 또한 이런 요구에 순순히 응하는 대범함을 보였다.
“생각해두신 게 있습니까?”
“물론이지. 그것도 자네가 아주 관심 있어 할 만한.”
“기대되는군요.”
“이 얘기를 다른 사람에게 하게 될 줄이야… 이거 가벼운 사람이라고 놀림이나 안 당하면 다행이겠군.”
키보는 말을 꺼내는 게 어려운지 상당히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내가 아주 젊었을 적 일일세. 그 당시에는 돈 되는 일이라면 굳이 유적 사냥이 아니더라도 다 했어. 용병들이나 할 법한 호위나 수색, 암살까지도.”
그는 오래된 기억을 끄집어내는 듯이 아련한 눈빛으로 허공을 바라봤다.
“서쪽의 사막을 떠돌고 있을 때의 일이네. 단원들과 숙영을 하던 도중,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누군가를 발견한 거야.”
“그를 구했습니까?”
“젊었으니까. 몸이 먼저 튀어 나가더라고. 그 때문에 큼지막한 상처도 얻었지만 말이야.”
“다행히 구한 거군요.”
“애초에 오랜 추격으로 지쳐있는 자들이었어. 모두 모래 밑에 묻어주었지.”
“제게 주실 건 그날 구해준 사람과 관련 있는 모양이군요.”
“정확하네.”
강설은 키보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점점 더 관심이 갔다.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걸 보면 심상치 않은 정보인 게 분명하다.’
내심 그런 생각을 하며 키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아무튼, 모래에서 만난 인연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네. 그자는 내게 빚을 졌다며 언제고 크게 갚겠다고 말했지.”
“제가 받을 건 무엇입니까?”
“그자에 대한 빚이지. 정확히는 내가 그자를 구한 은혜를 자네에게 넘기려는 것이고.”
“그게 헤카의 목을 대신 벨 만한 가치가 있을까요?”
강설이 다소 실망한 듯이 이렇게 말하자 키보가 웃었다. 마치, 그렇게 말해주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자네, 오르고라는 사람을 아는가?”
“오르고… 오르고라면… 피에 젖은 자 오르고?”
“내 예상보다 더 박식한 편이군, 이쪽에도 관심이 있나?”
“이런저런 일 때문에 알게 됐습니다. 설마, 구해준 사람이 오르고와 관련된 인물입니까?”
“오르고의 후예일세.”
“아….”
피에 젖은 자 오르고.
대장장이이자 뛰어난 투사이기도 했던 이.
재밌는 점은, 이름 앞에 붙은 말과 달리 그는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않았다.
그에게 피에 젖은 자라는 멸칭 아닌 멸칭이 붙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가 만든 무기 때문이지.’
그는 생전에 여러 무기를 만들었는데, 그 무기를 손에 넣은 자는 너나 할 것 없이 대륙을 피로 물들였다.
그로 인해 크게 낙심한 오르고는 결국, 속세를 떠나 사라진다.
강설이 이렇게 그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이유는.
‘내가 오르고였으니까.’
아직도 당시에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그때 당시엔 여러 컨셉을 잡고 한창 다양한 캐릭터를 플레이했었는데, 그중에서도 오르고는 기억에 남는 캐릭터였다.
타고난 재능이 훌륭해서 소재에 손을 대는 족족 엄청난 물건들이 만들어졌다. 심지어는 비슷한 레벨 대의 모험에 가서 얻는 보상들보다 그가 직접 만든 물건들이 훨씬 좋았었다.
분명, 오르고는 대단한 캐릭터였고 그대로 정진했으면 강설의 후반부에 만들어졌던 10개의 캐릭터만큼 명성을 떨쳤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오르고는 그러지 못했다.
‘하필 멘탈이 약해서….’
그가 만든 물건들은 악인들에게 넘어가 대륙을 피로 물들였다. 그가 인간에 대해 회의적으로 변했던 것도 그 무렵이었다.
오르고는 많은 사건을 겪었고, 그건 그를 지치게 했다. 그는 결국,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렸고 강설도 이에 대해 고심했다.
결국, 남은 방법은 한 가지였다.
[오르고의 모험을 포기하시겠습니까?]
1. 그렇다.
2. 아니다.
강설이 선택한 것은, 오르고가 살고 싶은 대로 살게 해주는 것.
그게 비극적인 결말을 지켜보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모험가 오르고는 이제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나갈 것입니다.]
[비록 가슴 뛰는 모험은 끝이 났지만, 그의 삶은 계속됩니다.]
순박한 대장장이로 시작했다가 사람들의 한 서린 원망을 받았던 오르고는 그렇게 사라졌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오르고의 이름을 듣게 될 줄이야.’
강설이 다른 때와 달리, 오르고의 이름에 반색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오르고는 분명, 강설이 영원의 세계에 어느 정도 적응하고 만든 말이었다.
따라서 허무하게 죽거나 하는 일은 없었고 여러 업적도 남겼다.
‘그의 흔적을 찾으면, 지금의 내게 도움이 될 확률이 높다.’
적어도 그보다는 더 많은 모험과 세상을 경험했던 말이니까.
그리고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하문인가… 아직 살아 있었던 거야?’
그가 오르고일 때 거뒀던 제자, 하문.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 그를 다시 보게 된 것이다.
키보가 입을 열었다.
“그자의 이름은 하문, 이제는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 사람이야. 단, 내게 진 빚은 반드시 갚겠다고 했지. 그렇게 시간이 흘러 자네에게까지 전해진 거야.”
“…하문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내가 이 얘기를 왜 꺼낸 것 같은가?”
강설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그는 지금 노비라에 있군요.”
“그래, 하문은 이곳에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