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569
제568화
푸화아아아악-!
이미 동공에 힘이 풀린 레인.
카렌은 그의 몸에 틀어박힌 새벽을 뽑아내었다.
휘오오오오…
새벽은 카루나로 되돌아가고.
쿠우우우우웅-!
레인은 그 자리에서 뒤로 쓰러졌다. 그리고 어떠한 움직임도 그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잿가루만 흩날릴 뿐.
그들에게만 보이는 잿가루가.
바로 떨어진 태양이 남긴 것이다.
“아… 아아….”
카렌이 쓰러진 레인의 가슴팍에 손을 올리고 울었다.
“아아… 아아아!”
아픈가?
괴로운가?
눈물샘은 계속된 자극으로 타버린 것만 같았다. 오히려 눈물을 계속해서 흘리는 이 상태가 평온할 지경이다.
눈물이 마르는 순간, 무거운 현실과 감정이 들이닥칠 것 같았다.
“…있잖아, 카루나.”
“…응.”
“지금 우린 무엇을 위해 싸우는 걸까?”
“…….”
“우리는 대체… 무엇을 위해….”
“누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츠즈즈즈즛…
그들에게 미치는 흰 나무의 힘이 강해지며 머리칼 일부를 차지한, 백발의 영역이 조금 더 넓어졌다.
몬트라의 태양 레인은 오늘 이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가 가장 총애했던 후계자들에게.
“…진을 만나야겠어.”
카렌이 죽은 레인의 눈을 쓸어 감겨주었다.
“만나야 해. 녀석이라면… 말해줄 거야.”
그녀는 정신을 부여잡기 위해 애썼다.
“무엇 때문인지,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녀석은 다 말해 줄 거야. 그렇지, 카루나?”
“…….”
카루나는 선뜻 답하기 어려운 질문에 머뭇거렸다. 카렌이 이 모든 상황을 견뎌내기 위해 던진 말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더욱.
그녀가 이대로 무너지지 않기만을 바랐다. 그 때문에 비겁하게도 그녀의 말에 긍정했다.
“맞아, 진이라면 모두 답해줄 거야.”
“그래… 한때는, 우리가 섬겼던 왕이니까.”
배시시 웃는 그녀.
“…재회가 기대된다. 그렇지, 너도?”
“…응.”
“즐거울 거야, 분명.”
그녀는 자신을 속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조금 더 걸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만 했다.
카루나가 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응이었다.
스윽…
레인의 시체를 두고 일어나는 카렌. 그녀가 잠시 시체를 눈여겨보고는 뒤돌아서며 말했다.
“기다려 줘, 레인. 우리가 꼭 모두를 구해낼게. 그럼 괜찮을 거야.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거야.”
최면은 이어진다.
그들이 연회장 너머의 회랑을 계속해서 걸을 때까지도.
그으으으으으응…
카렌은 대검을 쥔 손을 늘어트려 검으로 바닥을 긁으며 걸었다.
그 소리가 썩 좋지 않았지만 카루나 역시 생각에 잠겨 의식하지 못했다.
“있잖아, 어떤 표정으로 우리를 반길까?”
“…….”
“헤어질 땐 작별 인사도 제대로 못 했었잖아. 카루나도… 그리고 나도.”
“모르겠어.”
언뜻언뜻 보이는 풍경은 꽤 익숙했다.
이곳을 거닐었을 땐 그 나날들을 당연시했었다.
언제나처럼, 열 명의 수호자가 웃음을 감춘 채로 위엄을 지켰었다.
흐린 날의 기억은 없다.
햇살 가득한 날의 기억만 남아 있다.
“…카렌.”
“응.”
“여기….”
카렌은 카루나에게 다가갔다.
그가 가리킨 건 황성 밖이 훤히 보이는 창이 있었다.
온통 암흑.
저 멀리, 빛이 보였다.
연합군이 여전히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빛은 처음과 달리 현저하게 줄었다.
아마 이름 정도는 알고 있던 사이의 사람들 대부분이 죽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들의 싸움을 하고 있다.
“…가자.”
“그래.”
닫힌 문 앞에 선 그들.
심호흡을 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흐트러질 테니까.
문의 장식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몰랐었던 훌륭한 부분이다. 아쉬움이 남았다. 그때는, 그 오래전에는 어째서 이것을 충분히 음미하지 못했는가.
후회는 인간을 영원히 따라다니는, 보이지 않는 꼬리다.
“여는 거야.”
“…응.”
카렌은 왼쪽 문을, 카루나는 오른쪽 문을 붙잡고 함께 문을 열었다.
스으으으으으…
공기와 공기가 맞닿으며 숨으로 바뀌었다.
아아.
그의 향기가 났다.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손발이 묶여도 이 향기라면 언제고 떠올릴 수 있다.
“…….”
대전은 웅장했지만 평범한 구조이다. 아니, 분명 과거엔 평범한 구조였다.
지금은 천장 일부가 무너져 내려 그곳으로 엄청난 양의 어둠이 토해지고 있었다.
고오오오오오오오오…
첫 번째 수호성이다.
첫 번째 수호성이 대륙 전체를 뒤덮은 어둠을 이곳에서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첫 번째 수호성을 제외한 여덟의 수호성이 좌우로 넷씩 늘어섰다.
그들은 황제의 사람이 즐비해 있어야 할 왕좌의 앞을 그들만으로 채웠다.
휘오오오오…
기막힌 일이다.
몬트라 최후의 수호성인 라진까지 이곳에 있으니, 모든 수호성이 한자리에 모인 셈.
그리고 아홉의 수호성들을 거느린 왕좌. 그곳에 누군가 앉아있다.
그리고 살아 있다.
분명히 살아 있다.
“…….”
태양을 다스렸던 황제.
진 아우뎀 몬트라.
그가 또렷한 눈동자로 쌍둥이를 응시했다.
그것으로, 카렌은 깨달았다.
그에게서 어떠한 얘기를 듣더라도, 바뀌는 건 없을 거라는 걸.
그렇기에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
지금, 말해야 한다.
카루나도 분명 같은 생각일 테니.
철그럭…
검이 무겁다.
하지만 늦지 않게 들어 올렸다.
두 검이 앞으로 향하며 진을 겨눴다.
그들이 섬겼던 옛 왕을.
재회의 첫 마디는, 분명해야 했다.
“오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왔습니다.”
“진 아우뎀 몬트라, 우리의 왕. …우리의 친구여.”
– 네가 언젠가 제국 최강의 기사가 되면 그때 생각해 보마.
– …기사?
– 그래, 그땐 기꺼이 내 목숨을 주마. 이 제국을… 네 손으로 멸망시킬 기회를.
그렇다.
모든 것은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건지도. 어쩌면 운명이라는 게 그리 어려운 말은 아닐지도.
오래된 약속을 지키는 것뿐이다.
진이 무거운 음성으로 말했다.
“…기다리고 있었어.”
“…….”
“너희를.”
불청객이 환영받았다.
진은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미래를 보았다.”
“진.”
“모든 것이 사라져,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생명의 미래를.”
그 역시, 말하고 싶었던 듯했다.
“외면할 것인가, 싸울 것인가. 다가올 미래를 덮어둔 채로, 살아갈 수 있는가.”
진은 옛 친구들의 의문을 해소해주기 위해 노력했다.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그것뿐이었다. 더 나은 선택은… 내릴 수 없었다.”
“그게….”
카렌은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화를 내는 듯이.
“고작해야 그런 게… 이 많은 생명을 사라지게 한 이유야?”
“…….”
“네게 휘말린 그 많은 생명은!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가야만 했던 생명은!”
“기사여, 묻겠다.”
진은 물러서지 않았다.
한참이나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선택을 내린 자이니, 그 어떤 명검보다도 단호했다.
“그대는 모든 생명을 같은 의미로 존중하는가?”
“그게 무슨….”
“갓 태어난 망아지, 풀벌레, 인간과 이종족, 결코 양립할 수 없는 마물까지도.”
진은 계속해서 말했다.
“살아 숨 쉬는 모든 것엔 생명이 깃들었다. 그러나 그대는 그들이 가진 생명에 그리고 그들의 선택에 우열을 정할 것이다.”
“…….”
“인간이라고 다른 것인가?”
근원의 물음이다.
“어떤 이는 살인자, 어떤 이는 창부, 어떤 이는 부랑자, 어떤 이는 군인, 어떤 이는 노역자, 어떤 이는 떠돌이, 어떤 이는 과부, 어떤 이는….”
진은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내뱉었다.
“그대는 세상에 존재하는 그 모든 자의 말에 귀 기울이던가? 아닐 것이다. 자신만의 기준으로 중요한 순서를 정한다. 인간은 이를 부정할 수 없다.”
“난….”
답에 티끌만큼의 거짓이라도 섞인다면, 의미를 잃는다. 그러니 카렌은 답 대신 침묵을 선택했다.
“하루살이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여 벌레의 하루가 허영심 넘치는 인간의 하루보다 값진 삶인가? 감히 그것을 재단할 수 있는가? 모든 것을 존중한다는 말은, 모든 것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진의 선택이 잔혹함으로 이어졌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다.
“하나의 선택을 내리는 것에도 무수한 선택이 뒤따른다. 황제는 모든 것을 가늠한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옳은가? 아니다, 언제나 옳지는 않다. 망설인다면 영원히 선택할 수 없다.”
“…….”
“황제란, 가장 중요한 선택을 내려야 한다.”
그는 말한다.
“제국의 황제란 모든 것을 선택하는 자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선택을 하는 자다.”
“그래서 네가 선택한 결과가… 제국을 멸망시켰는데도?”
“제국의 백성들을 위한 선택이 아니었으니. 이 땅에 살아갈 생명을 위해서였다.”
옳은 선택.
옳은 선택이란 무엇일까.
“오직, 그것뿐인 선택이었다. 선도 악도 개입하지 못할 단순한 문제였다.”
모든 선택지가 비난받는다면,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게 맞는 것일까.
그러나 그것 역시 착각일 것이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 또한, 역시 선택했다는 것이다.
진은 선택했다.
그것이, 그가 인간이 쌓아 올린 역사상 최흉이자 최악의 황제가 된 이유다.
“참으로… 대단하시군요, 황제 폐하. 신이라도 될 참입니까?”
“앞으로의 일에 필요하다면, 마다하지 않겠지.”
으득…
“그렇다면… 당신이 가늠한 제 쓰임은 무엇입니까?”
“…….”
“무엇 때문에, 우리를 당신의 울타리에서 내치신 겁니까.”
“계시자가 보여주었다.”
“계…시자?”
“그는 인간의 이해를 넘어선 자이며 신의 완전무결함에 흠집을 낼 만큼 위대한 자다.”
카렌이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몸을 떨었다.
“사이비…라니.”
“그가 내게 보여주었다. 지금 이 자리에, 너희가 오리라는 것을.”
“…묻겠습니다.”
카루나가 말을 이어받았다.
“계시자가 보여준 미래엔, 우리의 오래된 약속이 마침내 이뤄졌습니까?”
“…….”
“그랬다면 좋겠습니다.”
후우우웅…
카렌이 말했다.
“지금부터, 약속을 이행할 테니.”
파아아아아아아앙-!
잉걸불을 손에 쥐고 수호성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카렌.
한순간에 진과 카렌 사이의 거리가 단축되었다. 공간이 접히는 듯한 착각.
수호성들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다.
아니, 안 한 것처럼 보였다.
끼긱…
끼기기기긱…
검은 도중에 멈추었다.
그녀를 멈춰 세운 건 카루나가 아니었다.
“너는….”
“아직은, 아니야. 시작하기엔 조금 이르다고.”
불사.
이 모든 일에 개입한 실로이가 빙긋 웃으며 그녀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콰아아아아아앙-!
“커허억-!”
카렌이 엄청난 속도로 튕겨 나갔다.
잠시 잊었었지만, 진에게 다다르기 위해선 불사라는 존재를 반드시 넘어서야 했다.
할 수 있을까.
많은 힘을 써버린 지금, 그를 쓰러트릴 수 있을까.
그녀의 망설임은 오래가지 않았다.
콜록… 콜록…
“커헉….”
카렌이 쓰러진 채로 피를 토했다.
그리고 그것은 카루나도 마찬가지다.
“으… 으으아아아!”
레인과의 필사적이었던 싸움이, 그들을 일어서지 못하도록 했다.
“이것 봐, 무리하지 말라고.”
“너… 너어어어!”
“아, 마침 오는군.”
저벅…
저벅…
회랑의 어둠이 약해지는 곳부터 보이기 시작하는 사내.
대전의 분위기와 그리 어긋나지 않는 남자가 천천히 걸어와 문을 넘었다.
“…아버지.”
“불사.”
휘오오오오…
실로이의 기운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실로이가 권능 : 시대 전쟁을 사용합니다.]
[실로이는 이전 시대의 승자입니다.]
[실로이에게 도전했던 자들의 능력을 지속 시간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대상의 능력은 실로이의 경지에 맞추어 강화되거나 약화합니다.]
[단, 그 대상은 주사위를 던져 정해집니다.]
[실로이의 면이 나온다면 꽝입니다.]
……
[실로이가 환상 절기 : 사기도박을 사용합니다.]
[주사위는 항상 정해진 면이 나옵니다.]
……
도로로로…
주사위는 역시나 강설을 나타냈다.
[‘그림자의 왕 스노우맨’의 능력이 선택됩니다.]
[실로이가 권능 : 그림자의 왕을 사용합니다.]
……
파츠즈즈즈즛…
그의 기운이 폭발할 듯 널뛰었다.
무슨 속셈이기에 자신의 힘을 이용하는 것인지, 잠시 지켜보는 강설.
“몬트라의 수호성은, 황제와 이어져 있어.”
“…….”
“이렇게 하면….”
휘오오오오오…
실로이가 그림자로 흩어져 진의 몸을 빼앗았다.
[실로이가 절기 : 밤까마귀를 사용합니다.]
[실로이가 밤까마귀 형상을 취합니다.]
[실로이의 밤까마귀는 도전자 상태입니다!]
[실로이는 밤까마귀 : 황제 상태입니다.]
[권능 : 내가 보는 세계와 권능 : 주인이 뒤섞입니다.]
……
“…하하!”
파지지지지직-!
아홉 개의 수호성이 그림자로 변해 밤까마귀에 깃들었다.
[실로이의 밤까마귀 : 황제가 권능 : 마왕을 사용합니다.]
[실로이의 밤까마귀 : 황제는 수호성의 힘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이전에 충돌했을 때보다도 더 월등한 기운.
감히, 대적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꾸깃…
누군가 그것을 지켜보던 강설의 늘어진 망토를 붙잡았다.
힘이 빠진 손.
“나의 왕… 모르겠습니다….”
카렌이었다.
그녀는 바닥을 기며 눈물로 애원했다.
“이제,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됐어. 도와줘….”
“…….”
“우리를… 여기서 꺼내줘. 우리를….”
그녀가 고개를 떨구었다.
입에서는 피와 섞인 침이 흘렀다.
“일으켜줘… 싸우게 해줘….”
운명에 굴하지 않기를.
설령 그 선택이 운명의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라 해도.
눈을 떠 늪을 보기를.
휘오오오오오오오…
강설의 그림자가 진동했다.
그는 이제, 불사와 대등하게 맞설 수 있는 자다.
자격 있는 왕이다.
“오라, 나의 기사여.”
파지지지직-!
하얗게 변하는 강설.
야차 위에, 카렌의 그림자가 덧씌워진다.
[환상 절기 : 덧칠을 사용합니다.]
[밤까마귀가 중첩 가능해집니다.]
[덧칠 시 밤까마귀의 효율이 크게 증가하며, 새로운 능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환상 절기 : 야차(夜叉)의 지속 시간이 크게 증가합니다.]
[막대한 집중력과 체력을 소모합니다.]
……
그리고, 이제까지와는 다른 형태.
덧칠은 끝나지 않았다.
파지지지직-!
카루나의 그림자가 그 위에 덧씌워진다.
새하얀 기사가, 탄생한다.
그리고 동공만이 검은 그 기사가 양손에 검을 쥐었다.
[흰 나무의 기사가 탄생합니다!]
……
뒤따르는 메시지.
[준비하세요, 위대한 한걸음이 임박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