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81
제80화
땅거미 마을에서 있었던 끔찍한 일.
그곳 마을 주민들은 그릇된 신앙에 빠져 외지인들을 사로잡아 그들의 신에게 제물로 바쳤다.
강설 일행은 그 과정에서 마을을 쓸어버렸고, 한시적으로 카렌은 심적인 충격을 받아 외부의 습격에 대응하지 못했다.
이후 땅거미 마을의 흑막이었던 남자가 등장해 강설을 추격했고 그 과정에서 쟈마드만으로 남자와 상대해야 했던 강설은 도주를 선택. 물안개 마을까지 떠내려온 것이다.
‘놈이 왔어.’
지옥을 구현해 낸 악귀 같은 자.
그 힘은 여태껏 강설이 만난 적들과 비교했을 때 대단치 않았지만, 한 사람이 끼친 부정한 영향이 마을 전체를 얼룩지게 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경계해야 했다.
그 악의만큼은, 가장 지독했으니까.
‘어떻게 추격해 온 거지? 흔적은 남지 않았을 텐데.’
물길을 따라 추적해 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사악한 추적술이 붙어 있었다면 진즉 알아차렸을 것이고.
“줘어어….”
강설의 발밑에서 절단된 괴물의 머리가 계속해서 무어라 말을 했다.
괴물의 몸은 마치 누더기에 점액질을 덕지덕지 바른 것처럼 미끄덩했지만, 그 머리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어 더욱 혐오스러웠다.
그것을 보던 강설이 잠시 멈칫했다.
“…잠깐.”
“왜?”
촤락.
강설이 차오의 두루마리를 펼쳤다.
그곳에 그려진 남자의 얼굴.
그리고 지금, 강설의 발밑에 있는 괴물의 얼굴.
“…닮았어.”
“뭐? 어디!”
카렌이 강설에게 다가와 두루마리를 함께 보았다. 그리고 그녀 또한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네? 정말 닮았어!”
“이 괴물이 목표였던 거야?”
– 헐; 몸뚱이 다 태워버렸는데 약은 어떡해!
– 약까지 다 태워 먹었네 ㅅㄱ
– 근데 약은 어디 숨긴 거지?
– 주머니!
– 주머니가 없는데?
‘아니, 뭔가 이상해.’
얼굴은 확실히 두루마리에 그려진 그림과 보면 볼수록 흡사했다.
하지만, 이 안개의 망령이 잠이 드는 약을 가지고 있을 확률은 한없이 낮아 보였다.
“줘어어….”
“이 머리가 뭐라고 자꾸 말하는데?”
“쉿, 조용히 해 봐.”
강설이 무릎을 굽혀 잘린 머리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머리의 말이 제법 또렷이 들렸다.
“돌려줘어어….”
그 말을 들은 강설의 표정이 굳어졌다.
“왜, 뭐라고 하는데?”
“돌려달래.”
“뭘?”
잘린 머리는 어느새 딱딱히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강설은 방금 자신이 들은 말을 카렌에게 그대로 말해주었다.
“얼굴을… 돌려달래.”
“…이런.”
[‘잠이 드는 약’의 주요 내용이 변경됩니다.]
[‘잠이 드는 약’이 ‘얼굴 수집가’로 변경됩니다.]
모험 12-1. ‘얼굴 수집가’
당신은 차오가 부탁한 일을 해내기 위해 물안개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단순히 사람을 찾아 약을 회수하기만 하면 될 것 같았지만, 순탄하게 진행될 것만 같았던 일은 계속해서 꼬여만 갔습니다.
인근 마을에 퍼진 안개 병이 물안개 마을에도 또 한 명의 감염자를 만들었고, 당신이 물안개 마을에 오기 전 땅거미 마을에서 대적했던 괴물이 마을 근처에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 괴물의 얼굴은 두루마리에 그려진 얼굴과 매우 똑같았고 마치 사람처럼 말을 했습니다. 괴물은 죽어가는 와중에도 한 문장을 완성했습니다.
‘내 얼굴을 돌려줘.’
당신은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 이 괴물의 얼굴을 빼앗아간 자를 찾아야 합니다.
목표 : 두루마리에 적힌 목표 달성.
목표 달성 실패 시 차오의 호감도 하락.
현재 남은 시간 「약 10일」
차오의 두루마리에 적힌 잠이 드는 약을 구해온다는 모험 목표는 바뀌지 않았지만, 내용은 대부분이 바뀌었다.
괴물을 마주친 지 하루가 지나 밤이 될 때까지, 강설의 고민은 계속되었다.
“얼굴을 빼앗는다니, 정말일까?”
“아마도 정말이겠지. 지금까지 두루마리에 적힌 인물을 찾지 못한 걸 보면.”
“제길… 이러면 어떻게 찾아야 하는 거야?”
드륵.
카렌이 불평하며 의자를 발로 밀쳤다.
“아니, 오히려 알게 된 점도 있어.”
“뭐?”
강설이 팔짱을 끼고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말했다.
“처음에 했던 가정 기억해?”
“약을 가진 사람이 병을 퍼트렸을 거라고? 그 약 자체가 병을 일으킨 원인일 수 있다고….”
“그리고 병을 만들었다면 당연히 그 해약도 가지고 있겠지.”
“확실히. 남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놈들은 꼭 제 목숨은 소중히 하니까.”
“바로 그거야. 그럼 놈을 찾으면 이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될 가망이 보여.”
카렌은 강설의 추론을 들으며 동의를 표했다.
강설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문제는 이 자식을 어떻게 찾냐는 거야.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내겐 차오가 그려준 놈의 얼굴이 있어.”
“그건 아까 그 괴물의 얼굴이….”
“내 얼굴을 돌려달라고 했지? 얼굴이 있는데도?”
“그랬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이미 얼굴이 있는데 돌려달라는 건….”
“바꿔치기했구나!”
“강제로 교환했거나. 뭐, 그런 뜻이겠지.”
강설의 얘기를 듣던 카렌은 절로 신이 나서 고개를 맹렬하게 끄덕였다.
“그리고? 또?”
“두루마리에 남은 차오의 말을 되짚어 보자면, 그녀는 굳이 물안개 마을로 가라고 했고 굳이 이 얼굴이 목표라는 것도 알려줬어.”
“놈이 물안개 마을에 있던 건 확실하다는 거네.”
“응, 그리고 우리는 한두 달 전에 그녀에게서 두루마리를 받았고 그녀가 목표를 본 시점은 우리에게 두루마리를 건넨 시점보다 훨씬 전일 거야.”
“차오가 놈을 봤을 땐 그 얼굴이었다는 거고!”
“맞아.”
카렌이 탁자를 쾅! 하고 두들겼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 강설을 보며 말했다.
“결국, 처음의 생각이 맞았던 거네! 놈이 아직 여기 있을 수도 있어. 얼굴을 바꾼 채로.”
“그래.”
“그런데, 놈이 얼굴을 바꾸면 마을 사람들이 눈치채는 게 정상 아니야?”
“모르지, 환영술을 익혔는지 사령술을 익혔는지… 그도 아니면 다른 지식이 있는 건지도. 간단한 정신 마법 쪽에도 인식 장애를 쉽게 일으킬 만한 것들이 산더미니까.”
그간, 마을에 머물면서 강설의 통찰안은 한 번도 발동하지 않았다.
‘아직은 통찰안도 만능은 아니니까.’
아직 통찰안의 개화가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문제를 다 잡아낼 수는 없었다.
현재 아주 간단한 마법은 쉽게 꿰뚫어 볼 수 있지만, 그보다 높은 단계의 마법, 특히 위장 마법은 알아채지 못할 가능성도 존재했다.
‘놈을 어떻게 찾아내야 하지? 이제, 시간이 부족한데.’
벌써 보름 정도의 시간을 허비했기에 그리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었다. 그래도 문제의 핵심에는 접근했으니 답만 도출하면 된다는 게 그나마 긍정적인 점이었다.
‘마을 사람들을 모두 모아놓고 대조 심문이라도 해야 하는 건지 원….’
쿵, 쿵, 쿵!
고민하던 강설은 문밖에서 들려온 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문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군트입니다. 자리에 계십니까?”
“군트 선생님이시군요. 어쩐 일로….”
끼이익…
강설이 문을 열자, 참담한 표정의 군트가 서 있었다. 그 얼굴에서 절절한 슬픔이 느껴지는 것이 카렌과 강설을 불안하게 했다.
“세라 양이… 잠에 빠졌습니다.”
“잠… 잠이라면?”
“병세가 악화된 겁니다.”
“그럼….”
“이제, 뾰족한 방법이 없습니다. 아마 세라 양은, 남은 생을 전부 잠 속에서 보내게 되겠죠. 그마저도… 짧은 생이지만. 자, 저를 따라오시죠.”
강설은 카렌과 함께, 세라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녀는 침상에서 죽은 듯이 잠이 들어 있었다.
병에 걸리지 않은 마을 사람들이 전부 나와 그녀의 마지막을 보았다.
“세라야, 어떻게 이 밝은 아이가….”
“신도 무심하시구나, 이 가엾은 아이를 데려가다니.”
“돌봐줄 가족도 없을 텐데 불쌍해서 어떡해 흑….”
곱게 잠이 든 세라의 곁에, 군트가 앉았다.
그리고 말을 시작했다.
“세라 양, 비겁하게 이제 와 고백하지만, 당신을 보면서 힘을 많이 얻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만치 떨어져 군트의 고해성사를 들었다.
“저도 세라 양처럼 고아였습니다. 세상이 미웠고, 제 운명을 탓했습니다. 저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불우한 운명을 타고났으니 불평할 권리 정도는 당연히 있다고 생각하면서요.”
군트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세라 양은 달랐습니다. 세라 양은 그 존재만으로 많은 이들을 행복하게 했고 또 굳세게 불행을 이겨냈습니다. 당신은 오로지 행동으로 저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했습니다.”
강설과 카렌은 군트가 흐느낄 때마다 진심을 느꼈다. 환자를 아끼는 의사의 마음을 넘어선 어떤 존재에 대한 호감 그 자체를.
사삭…
삭…
그의 옆에, 물안개 마을에서 가장 어린 여자아이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군트와 세라의 모습이었다.
“그림 그리는 거니?”
“응, 오빠.”
“왜? 왜 그리는 거야?”
“남겨두고 싶어서. 병에 걸린 사람들이 잠에 빠지면, 그림을 그려.”
“좋은 의도구나.”
“응. 이러면 영영 못 보더라도 기억할 수 있어. 벌써 집에 이런 그림이 잔뜩 쌓였어. 우리 집에 놀러 오면 보여줄게.”
그림이 쌓여간다는 것은, 그만큼 잠이 드는 병자들이 많아진다는 얘기.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는 마을 아이를 보며 강설은 착잡해졌다.
사삭…
사…
“응?”
“왜 그래?”
“아니… 이게 잘… 으음… 안 그려져서.”
아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화구를 물고 고민하다가 다시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강설의 눈길을 끌어 그도 아이가 완성해가는 그림을 보게 되었다.
“잘 그리는데?”
“응! 그래서 엄마가 돈 많이 모아서 아우데닌으로 보내준댔어. 거기 가면 제대로 배울 수 있다고.”
“좋은 어머니시네.”
“응, 자! 다됐다! 볼래?”
“어디.”
강설은 아이의 그림을 받아들었다.
곤히 잠이 든 세라와 오열하는 군트가 무덤덤하게 그려진 그림.
채색조차 되지 않은 그림에서, 강설은 여러 기분을 느꼈다.
이것이 어린아이의 그림이 맞나 싶을 정도로 훌륭한 실력에 대한 순수한 감탄.
그림 속에 있는 세라는 그저 잠을 자는 것 같은데, 현실에서는 그녀가 죽음의 과정으로 향하고 있는 데에서 오는 괴리감.
그리고, 이상함.
“…어?”
“왜? 나도 좀 보자.”
카렌이 더는 우울해지기 싫었는지 강설이 손에 든 그림을 넘겨받았다.
“…어?”
그리고 강설의 반응과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간파가 발동합니다.]
[이질적인 그림입니다.]
때맞춰, 간파가 발동했고 강설은 이 기분이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얼굴이 달랐다.
세라가 아닌 군트의 얼굴이.
그림 속에 그려진 군트의 얼굴은, 차오의 두루마리에 나온 그 얼굴이었다.
강설은 침착하게 그림을 내려놓고, 아이에게 물었다.
“이거, 군트 선생님이야?”
“응!”
“군트 선생님을 왜 이렇게 그렸어?”
“응? 왜냐니?”
아이가 여전히 훌쩍이는 군트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렇게 생겼잖아?”
강설은 굳은 얼굴로 아이의 머리를 한차례 쓰다듬은 후, 그림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카렌에게 넌지시 말했다.
“가끔은 이런 행운도 있네.”
“그러게? 영 운이 안 좋은 줄만 알았는데.”
그리고 카렌과 함께 군트가 있는 세라의 침상으로 다가갔다.
군트는 여전히, 눈물 줄기를 만들어내며 흐느끼고 있었다.
“세라 양, 부디 다음에는… 흑….”
“…군트 선생님.”
“세라 양을 보내는 흑… 게… 쉽지 않네요. 죄송합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군트 선생님.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흑… 흑… 지금은 곤란합니다. 대체 왜 이렇게 무례하게 구는 겁니까?”
군트가 무례한 강설에게 분노하여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그의 싸늘한 표정을 보았다.
“왜 그러셨습니까?”
“무슨….”
“카렌.”
휘릭-!
카렌이 세라가 덮은 천으로 그녀를 휘감아 품에 안았다. 그리고 뒤편에 사뿐히 내려놓았다.
그들의 영문 모를 과격한 행동에 마을 사람들이 기겁했다.
“꺄아아악! 세, 세라한테 왜 그러는 거예요!”
“자네들! 갑자기 이러는 이유가 뭔가!”
군트가 얼이 빠진 얼굴로 강설에게 물었다.
“…무슨 짓입니까?”
“세라 양, 아니 마을 사람들에게 왜 그런 짓을 한 겁니까?”
“흑… 지금 절 의심하시는 겁니까?”
“대답하시죠.”
군트는 고개를 숙이고 울었다.
“끄흑… 흑… 흑… 대체 왜… 흑….”
그리고, 울음소리는 점차 기괴해졌다.
“흑… 흑… 힉힉… 히히히히히히히! 대체 왜!”
그가 벌떡 일어나 강설을 쳐다보았다.
군트의 눈이 붉게 변했다.
“왜 들킨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