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bsolute on the Tennis Court RAW novel - Chapter 8
테니스 코트 위의 절대자 008화
조코비치와의 첫 만남
#. 2015년 4월 13일
#-1. 프랑스 호끄뷴느
#-2. 몬테 카를로 컨트리 클럽
“노박!”
“영감님!”
몬테 카를로 마스터스 셋째 날.
총 24개의 단식 경기가 펼쳐지는 오늘, 이른 오전 코트 적응 훈련에 임한 노박 조코비치를 데니스 포포비치가 찾았다.
“변함없이 성격은 지랄 맞으신가?”
“그야 제가 영감님께 드릴 말씀이죠.”
“자넨 여전하군. 여전히 건방져.”
“사람이 쉽게 변하나요.”
오랜만의 만남에 반가움을 잔뜩 표현하던 중, 조코비치가 데니스의 뒤에 있던 한 남성을 발견한다.
살짝 머쓱한 얼굴로, 조코비치가 손을 들었다.
“안녕, 네마냐. 오랜만이네.”
“그래, 노박. 네 활약은 TV로 잘 보고 있어.”
“그래. 고마워.”
“…….”
플라브시치와 조코비치가 데면데면한 이유는 안드레이 때문이다. 다른 TTA 코치들도 같은 이유에서 세계 톱 랭커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조코비치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어디까지나 이해관계의 충돌일 뿐이지만, 그래도 감정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화제를 돌리고 싶었던 조코비치.
때마침 안드레이가 합류하면서 살짝 냉랭해졌던 분위기에 온기가 피어났다.
“우주!”
“우주?”
“안드레이 코치님!”
훈련한 것들을 정리하고 등장한 안드레이가 신우주를 알아보고 단번에 반가움을 표현한다.
그제야 신우주에 시선을 준 조코비치는 저 소년이 전날 안드레이가 말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직 별다른 인상을 전해받지 못하고 있다.
다만, 안드레이의 표정이 밝다는 건 확실했다.
저런 표정은 본 적이 없다.
‘그만큼 아이들이 좋다는 건가?’
어린아이들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코비치는 단 한 번도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에서 희열을 느껴보지 못했다.
지금까지 자신을 이끈 것은 언제나 더 많은 그랜드슬램 우승이었고, 7개의 트로피를 집으로 가져간 지금도 그러한 열망의 크기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잠시 뒤, 신우주를 이끈 안드레이가 다가왔다.
그러곤 바로 동양인 소년을 소개했다.
“얘가 바로 우리 TTA의 에이스야.”
“반가워. 난 노박이라고 해.”
“안녕하세요. 경기…….”
“응?”
“경기하시는 거 진짜 많이 봤어요.”
“그래? 그거 고맙구나.”
필요하다면 본인 경기 티켓을 구해주겠다고 말하는 조코비치의 앞에서, 안드레이는 그것보다는 신우주의 훈련을 한번 지켜봐 줄 수 없겠냐고 한다.
시합 전날.
모든 것을 완벽히 루틴 안에 끼워 맞추는 조코비치기에, 그의 코치인 마리안 바이다(Mariàn Vajda)가 단번에 이를 거절하려고 했다.
한데, 오히려 조코비치가 코치를 가로막는다.
그러곤 안드레이를 바라봤다.
“좋아. 일정을 늦추겠어. 단, 30분 이상은 안 돼.”
“충분해. 우주야. 준비는 했지?”
“네. 코치님이 말씀하셨으니까요.”
“준비라고?”
“따라오기나 해.”
이례적으로 일정을 늦추는 조코비치.
당연히 코치는 이것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만에 하나 지금의 일정 지연이 경기일 컨디션 문제로 이어지기라도 한다면, 거기에 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이냐며 플라브시치에 은근한 으름장을 놨다.
하지만, 플라브시치는 가볍게 받아넘길 뿐이다. 이것 또한 마리안 바이다에겐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다.
“준비됐니?”
“네!”
비어 있는 코트를 차지한 안드레이와 신우주가 네트를 사이에 두고 선다.
시작은 평범한 스트로크.
랠리가 계속 이어진다.
팡!
팡!
테니스 프로들은 선수의 스트로크만 봐도 많은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신우주를 모르는 노박 조코비치와 마리안 바이다 역시, 평범한 스트로크에서 정보들을 빠르게 습득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바로 그립이다.
팔각형 모양의 라켓 손잡이 부분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선수가 선호하는 플레이 스타일을 파악할 수 있다.
검지의 첫 마디뼈 아래에 닿아 있는 중수골의 손바닥 부분을 베이스너클이라 부르는데, 이것의 위치에 따라 선수가 편하게 처리할 수 있는 샷(Shot)이 정해진다.
노박 조코비치의 경우, 탑스핀과 플랫(Flat) 모두에 장점이 있고 포핸드에 특히 강한 세미 웨스턴 그립을 택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신우주 역시 자신과 같은 세미 웨스턴 그립을 하고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왼손이란 점이었고, 억지로 회전을 주기보단 볼의 흐름에 맞춰가는 샷이었다.
그런데.
“백핸드!”
“네!”
안드레이가 백핸드 볼을 예고한 바로 다음 장면에서 매우 흥미로운 장면이 연출되었다.
왼손으로 포핸드를 휘둘렀던 신우주가 오른손잡이가 양손 백핸드를 처리하는 그립을 잡았기 때문이다. 왼손은 그대로 세미 웨스턴 포지션에 둔 채, 오른손을 그 대각 위치에 두었다.
강한 백핸드를 보내기에 쉬운 그립답게, 신우주의 백핸드는 포핸드만큼이나 강하게 네트를 넘어갔다.
이에 즉각 반응한 것은 마리안 바이다다.
그는 곁에 있던 플라브시치에게 물었다.
“저 꼬맹이. 왼손잡이 아닌가?”
“글쎄요.”
“글쎄? 자네들 선수 아닌가?”
“일단 보시죠.”
“…….”
플라브시치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켜보는 것 외에는 다르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백핸드가 몇 개 처리된 이후, 넘어온 테니스공을 가볍게 가로막은 안드레이가 오른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런 직후엔 바로 베이스라인 앞으로 걸어갔다.
자리는 듀스(Deuce)코트.
신우주도 자연스럽게 위치를 잡았다.
한데, 라켓을 쥔 손이 조금 이상하다.
“오른손?”
“후후.”
의아해하는 마리안 바이다의 목소리를 들으며 낮게 웃어 보이는 플라브시치.
조코비치는 조금 전부터 표정이 굳어 있다.
“…….”
그것이 조금 신경 쓰이는 플라브시치였지만, 일단 더 지켜보기로 하며 다시 코트에 시선을 뒀다.
안드레이의 토스.
서브가 이어진다.
구질은 슬라이스.
평범하게 포핸드 리턴 처리가 가능한 코스다.
팡!
“오?”
평범한 스트로크 연습과는 당연히 다르겠지만, 그걸 고려하더라도 오른손을 쓴 포핸드 리턴은 상당한 괴리감이 있었다.
무엇보다, 샷의 형태가 달랐다.
웨스턴.
구질의 궤적은 웨스턴 그립이었다.
“흡!”
팡!
정확히 가운데로 배달된 리턴을 다시 안드레이가 처리해 넘기고, 마찬가지로 가운데에서 자리를 잡은 신우주가 포핸드를 가져간다.
팡!
그렇게 몇 번 포핸드 랠리가 이어졌고, 얼마 후 다시 백핸드 위치로 볼이 향했다.
사전 예고 없이 볼이 향하는 방향이 바뀌었지만, 신우주는 당황하지 않고 의연한 대처를 보여준다. 오른손이 살짝 느슨해지며, 쥐고 있던 라켓이 살짝 회전했다.
그러곤 다시 오른손을 움켜쥐더니, 자연스럽게 왼손이 반대 위치에 얹어졌다.
이번에도 양손 백핸드인가 했지만, 의외로 두 손이 아닌 한 손 백핸드였다.
팡!
포핸드 때와 마찬가지로, 강한 탑스핀을 먹은 테니스공은 곡선을 그리며 코트에 떨어진 후 지면에 튕김과 동시에 강한 반발력을 가지고 튀어 올랐다.
왼손 포핸드의 느낌이 조코비치와 닮았다면, 오른손으로 칠 때는 라파엘 나달이 떠올랐다.
흥미로운 사실은 실제 조코비치는 오른손.
그리고 나달은 왼손잡이라는 사실이다.
백핸드에서는 누굴 닮았다는 느낌은 특별히 받지 못했다.
그러나, 기본기는 아주 잘 잡혀 있다.
“코너!”
팡!
기습적인 한 마디와 함께, 안드레이의 포핸드가 신우주의 오른쪽으로 파고든다.
그 즉시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 신우주는 스프린트를 이어갔고, 오른팔을 어깨까지 뒤로 잔뜩 젖혔다. 그러곤 상당히 낮은 위치에서 스트로크를 가져갔다.
아래에서 위로 깎여져 맞는 볼.
엄청난 회전을 머금은 샷은 앨리라인을 빠져나갈 듯하더니, 네트를 통과한 시점부터 급격히 방향이 휘어지며 결국 라인 안쪽에 떨어져 내렸다.
“Buggy Whip Shot?! 설마!”
라파엘 나달의 전매특허이자, 강한 탑스핀 구질을 선호하는 어린 선수들이 가지길 원하는 기술.
그걸 지금 신우주가 보여줬다.
“제기랄. 됐어. 이봐, 안드레이!”
무언가 잔뜩 심기가 상한 조코비치가 목소리를 높이려고 할 무렵, 테니스공 하나를 쥔 손을 조용히 들어 올린 안드레이가 더 이어지는 말을 가로막는다.
그러곤 신우주에게 소리쳤다.
“우주! 스트랜드!”
“네!”
이번엔 반대로 애드(Ad)코트에서의 서브.
공은 백핸드 포지션으로 향했다.
그리고.
팡!
신우주가 양손 백핸드로 힘껏 받아친 리턴은 다운 더 라인 궤적으로 날아가 앨리라인의 위에 정확히 안착한 후, 뒤로 얼마를 더 나아가 벽에 부딪혔다.
퉁.
투둥.
툭.
“…….”
“…….”
적막이 찾아든 코트.
어느새 마리안 바이다는 머리를 감싸 쥐고 있었다.
***
평범하게 시작되었던 신우주의 연습이 끝났을 때, 노박 조코비치의 기분은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 조코비치가 SUV 맞은편에 앉은 안드레이 시미치에게 목소리를 높인다.
“대체 그건 뭐였어?! 어?!”
“노박.”
“그건 테니스에 대한 모욕이야!”
조코비치가 볼 때, 신우주의 테니스는 하나의 광대 짓이었다. 그래서 냉랭하게 잘 봤다는 말 한마디를 남긴 후 화가 나서는 SUV로 돌아왔던 거다.
“양손이라고? 양손? 그리고 대체 그 샷들은 뭔데?”
“어떤 샷?”
“버기 휩. 그리고 스트랜드? 진심으로?”
“…….”
“걔는 제대로 된 테니스를 처음부터 다시 배울 필요가 있어! 제대로 된 샷과, 제대로 이 볼 게임에 경의를 표하는 방법을! 생각해 봐! 아까와 같은 방식으로 실전 경기를 소화한다면, 상대 선수는 어떻게 느끼겠어?”
테니스는 상당히 보수적인 스포츠다.
공식적인 규칙 말고도, 지켜야 할 상당수의 불문율이 있다.
그리고 그중엔, 상대 선수를 향한 것도 있다.
“그건 매너가 아니라고!”
“아냐? 어째서?”
“뭐?”
“양손잡이. 마스터스 레벨에서는 없지만, 챌린저에서는 여전히 양손잡이들이 뛰고 있어. 그리고 테니스계는 그것을 엄연히 인정하고 있지. 그리고 생각해 봐. 우주가 무슨 잘못을 했지? 오늘 훈련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았던가? 아니면 코트를 훼손했어? 아니잖아. 걔는 그냥, 테니스를 하는 것일 뿐이야.”
“안드레이!”
“걔는.”
“?”
“그냥, Нови универзум인 거야.”
“Нови…… универзум?”
다시 한번 등장한 New Universe.
이 어처구니없는 말에, 조코비치는 더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다는 듯 시트에 몸을 파묻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양손.
네 개의 그립.
그에 따른 네 개의 볼 처리 방식.
거기에 스트랜드를 위한 것 하나 더.
‘웃기지 마.’
지금까지 본 적도 없는 새로운 테니스를 구사하는 신우주는 현재까지, 현대 테니스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강한 거부감을 안겨다 주고 있다.
물론.
“조코비치 선수가 싫어해요? 괜찮아요. 그럴 수 있죠.”
본인은 조금도 그것에 개의치 않고 있지만 말이다.
소년은 그저, 자신의 테니스를 찾고 있을 뿐이다.
“1번 시드 경기부터 보는 거죠?”
“그래.”
네마냐 플라브시치는 앞으로 신우주의 앞에 어떠한 역경이 닥쳐오건, 그것을 크게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 * *
※ 2015 몬테 카를로 롤렉스 마스터스 결과
단식 우승 :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
복식 우승 : 밥 브라이언-마이크 브라이언(미국)
* * *
#. 2015년 4월 20일
#-1. 프랑스 호끄뷴느
#-2. 호텔 르 그랑 캽
프랑스에서의 마지막 날, 하루 있는 자유 시간마저 몽땅 테니스용품을 파는 곳에서 보낸 신우주는 지금 한껏 들떠 있다.
며칠 전 다시 모로코로 돌아간 후원자, 데니스 포포비치가 카드를 주며 마음껏 긁어도 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함께한 플라브시치는 조금 아쉬워하고 있다.
-큭큭큭큭.
“웃지 마. 난 정말 다른 곳에 가고 싶었다고.”
-그러게, 그렇게 될 걸 왜 몰랐어?
현재 플라브시치와 통화 중인 이는 미국에서 훈련을 진행하고 있는 얀코 팁사레비치다.
“이봐, 얀코.”
-그래.
“혹시 안드레이에게 이야기는 들었어? 아니면 노박이라든가.”
-아, 그거. 응. 들었어. 노박이 화냈다고?
“노박도 결국은 이해하지 못했어.”
-뭐든 처음은 미친 것처럼 보이기 마련이지.
“MTA의 코치들은 아니었어.”
-그들은 깨어 있으니까. 우리처럼 새로운 세대를 매일같이 접하며 보는 사람들이야. 선수들과는 다르지. 그들은 나름의 테니스 정형이 있어. 거기에 맞춰 이 스포츠를 바라보지. 변화가 가장 느린 스포츠잖아. 안 그래? 그러니까 여전히 로저, 라파엘, 노박이 꼭대기에 머무는 거고.
“그래. 네 말이 맞아.”
얀코로부터, 플라브시치는 위로를 받고 있었다.
신우주의 테니스를 부정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플라브시치는 안타깝고 속상했으나 그것을 표현하지는 않았다. 그럼 신우주가 가장 크게 상심할 것이기 때문이다.
TTA 전체가 신우주의 성공을 확신한 순간부터, 아카데미 내의 모든 코치는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믿음이 흔들린 적은 거의 없다.
그저 지금처럼 살짝 떨릴 뿐이다.
“우린 내일 바르셀로나로 갈 거야.”
-그래. 먼저 가 있어. 우주는?
“여정 지에서의 마지막 날. 맞춰 봐. 그가 뭘 할 것 같아?”
-배운 걸 정리하고 있구나?
“정답. 바로 맞췄어.”
-하여간, 참 대단한 녀석이야.
“테니스에 푹 빠졌지. 그게 오랫동안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야. 우주를 보고 있으면, 나도 덩달아 반성하게 돼. 고작 14살인데, 어지간한 프로보다도 더 프로답게 굴고 있으니까.”
-훌륭한 부모 아래 훌륭한 자식이지.
“하하. 그건 그래.”
얼마 뒤 통화가 끝나고, 기지개를 켜며 일어선 플라브시치가 우주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객실 밖으로 나왔다.
그러곤 하나 더 받은 카드키를 센서 앞으로 가져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예상대로, 불은 전부 꺼져 있었다.
안에선 새근대는 소리가 났다.
“잘 자렴.”
언제 봐도 절로 웃게 되는 소년이다.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신우주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은 플라브시치가 마지막으로 창문 상태와 커튼을 정돈하곤 다시 조심스럽게 객실을 빠져나왔다.
벌써 3년째, 신우주는 매일 밤 10시 전에 잠들고 새벽 6시에 일어나는 생활을 하고 있다.
단 하루도 그것이 어긋난 적 없다.
“그럼 난, 맥주 한 캔만 할까?”
오랜 여행으로 인한 적적함을 맥주로 달랠 생각을 한 플라브시치가 주머니에 있는 지폐를 꺼내어 자판기에 밀어 넣었다.
그러곤 선호하는 종류의 맥주를 선택했다.
딸깍.
투둥.
아래로 떨어진 캔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이 플라비시치를 미소짓게 한다.
치-익.
꿀꺽.
“음- 죽이는군.”
지금과 같은 이 소소한 즐거움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플라브시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