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bsolute on the Tennis Court RAW novel - Chapter 9
테니스 코트 위의 절대자 009화
바르셀로나 테니스 아카데미
#. 2015년 4월 21일
#-1. 스페인 바르셀로나
#-2. 카스텔데펠스 해변
바르셀로나 엘프라트 공항 서쪽.
차로 약 10분 정도밖에 안 되는 짧은 거리.
이곳은 바르셀로나의 유명 해변 도시인 카스텔데펠스다.
“저 수영하고 와도 되죠?”
“그럼, 물론이지.”
“금방 다녀올게요.”
“몸은 충분히 풀고!”
“걱정하지 마세요! 이얏호!!”
상의를 훌러덩 벗으며 바다를 향해 달려간 신우주가 멋진 다이빙을 선보인다.
풍덩-
선수였던 어머니의 영향인지, 신우주는 어렸을 때부터 수영은 곧잘 했다. 지금도 소년은 멋진 솜씨를 뽐내며 바다 위를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4월의 바르셀로나.
한낮 기온이 아직은 20도 안팎이라, 수영하기에는 사실 조금 이른 시기다. 실제로 해변을 걷던 사람들도 깜짝 놀라, 수영을 치는 낯선 동양인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신우주는 전혀 개의치 않고 있다.
더 추운 날에도 수영했던 친구다.
“꽤 활발한 녀석을 데려왔군.”
“응? 오-! 조르디!”
뒤쪽에서 나타난 남성을 본 플라브시치가 벌떡 일어서며 반갑게 끌어안는다.
그러자 조르디라고 불린 남성은 짓궂은 표정을 지었고, 포옹한 상태로 플라브시치의 엉덩이에 묻은 해변의 모래를 털어내는 동작을 취했다.
깜짝 놀라거나 할 법도 했건만, 플라브시치는 익숙하다는 듯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연락을 안 한 제자치고는 제법 신수가 좋군.”
“하하. 잘 지내셨죠?”
“갈수록 배만 나오고 있어.”
“그럼 잘 지내고 계신 거네요.”
“뭐야?”
“하하.”
조르디 꼬말라(Jordi Comalat)는 세계적으로 명성 높은 테니스 아카데미 중 하나, 바르셀로나 테니스 아카데미(이하 BTA)의 경영 이사이자 스포츠 매니저다.
동시에 미국 프로 테니스 협회에 등록된 강사기도 하며, 플라브시치의 스승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애정이 깊었던 옛 제자의 연락에, 조르디 꼬말라는 BTA 방문을 흔쾌히 허락했다.
“저 꼬마인가? 얀코가 데려왔다는.”
“네. 우주라고 해요.”
“우주. 한국인치고는 이름이 쉽군.”
“우주 외의 한국인을 아시나요?”
“몇몇. 바르셀로나 시내에 한국 식당이 있어. 그리고 손녀가 요즘 한국 가요와 드라마에 푹 빠져 있다 보니, 주워들어서 알게 되더군. 아무튼, 대체 저 꼬마 뭐 하는 건가?”
“아, 그게요.”
“아직 4월이야. 얼어 죽고 싶은 건가?”
“하하. 괜찮을 거예요.”
“일단, 앉지.”
“네.”
조금 전 플라브시치가 앉았던 자리 주변에 나란히 앉은 두 남자가 모처럼의 회포를 푼다.
그렇게 약 10분 정도가 흘렀을 때, 신우주가 수영을 끝마치고 해변으로 나와 모래사장 위에 드러누웠다. 얼마 뒤 남매로 보이는 두 꼬마가 다가왔고, 곧 셋은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 건가?”
“아뇨. 그렇지만 아마…….”
“응?”
“특기를 발휘하는 중일 거예요.”
“특기?”
“네. 아이들이랑 참 잘 놀아주거든요. 신기할 정도로 아이들이 우주를 좋아해요.”
“……그렇군.”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고 오해했을 것이다.
한창 뛰놀던 아이들이 어머니인 것 같은 여성에게 달려갔는데, 해맑게 웃는 아이들을 본 여성은 신우주를 올려다보며 미소와 함께 손에 든 무언가를 건넸다.
그런 뒤 서로 손을 흔들어 인사했고, 그제야 플라브시치 쪽을 돌아본 신우주가 얼른 발을 움직여 달려왔다.
“해변인데도, 잘 뛰는군.”
“발을 잘 쓰거든요.”
“…….”
맨발로 모래 위를 달리는 신우주의 모습을 똑바로 지켜본 조르디가 그제야 소년의 몸을 천천히 살폈다.
‘팔이 길군. 나머지도 훌륭해.’
전 세계의 모든 유명 테니스 아카데미는 그들만의 분명한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BTA는 그중에서도 특히 피트니스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과거엔 해롤드 솔로몬(Harold Solomon/168㎝)이나 마이클 창(Michael Chang/175㎝) 같은 선수가 톱 랭커가 될 수 있었지만, 현대 테니스에서 그러기는 어려운 일이 됐다.
제2의 로드 레이버(Rod Laver/173㎝)라든가, 제2의 켄 로즈웰(Ken Roswell/170㎝)은 환상 속의 이야기다.
이제 테니스 선수는 커야 한다.
그리고 강해야 한다.
육체와 정신 이 모든 부분에서 최상의 교육 수준을 자랑하는 BTA는 앞으로 약 3주간, 신우주를 특별 손님으로 맞이해 특별 훈련을 진행할 예정이다.
특정 아카데미에 속한 톱 레벨 수준의 유망주가 다른 아카데미에서 수습(修習)하는 건 흔한 일이다.
조르디 꼬말라는 동양인이라고 하여 약간 걱정했는데, 신우주의 탄탄한 상체를 보자 바로 안심이 됐다.
이 정도면, BTA의 엘리트 훈련을 버틸 수 있다.
그리고 분명 더 성장할 것이다.
“Encantado, Señor. Buenas tardes.”
“엥?”
“오-?”
뜻밖의 제대로 된 인사에, 플라브시치와 조르디의 표정이 빠르게 변한다.
플라브시치는 금시초문이란 얼굴이었고, 조르디는 살짝 놀라더니 곧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신우주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그러곤 영어로 대답했다.
“반갑구나. 혹시 연습했니?”
“네. 오늘 여기 오면서요.”
“훌륭하구나. 멋진 자세야.”
“헤헤. 감사합니다.”
조르디는 쑥스러워하면서도 자신의 기분을 분명하게 밝히는 신우주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영어를 할 수 있음에도 굳이 스페인어를 외워 자신에게 첫 마디로 던진 것 역시 좋았다. 상대를 존중하는 법을 알고 있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BTA가 피트니스 못지않게 수강생들에게 집중적으로 강조하는 부분이었다.
진짜 프로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테니스 실력만 갖춰서는 안 됐다. 실력에 걸맞은 마음가짐과 단단한 멘탈 역시 갖춰야 했는데, 이를 가장 잘 증명하는 테니스 선수가 있다.
닉 키리오스(Nick Kyrgios).
2013년 롤랑가로스에서 세계 랭킹 8위 라덱 스테파넥(Radek Štěpánek)을 꺾으며 파란을 일으켰고, 강력한 힘과 정제되지 않은 기술을 앞세워 많은 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문제는 키리오스의 성격인데, 누구에게서도 무언가를 배우고 싶지 않았던 그는 도움을 주겠다는 주변의 손길을 몽땅 거부하며 역대급 재능을 썩히고 있다.
재능은 100점 만점에 200점
실력은 100점 만점에 80점.
하지만 태도와 멘탈은 100점 만점에 0점보다 더 나쁜 마이너스 수준이다.
코칭을 두고 과거 전화 통화를 나누다가 학을 뗀 전력이 있었던 조르디는 그날 이후 멘탈을 더 강조하고 있다.
“일단, 아카데미로 가자꾸나. 춥진 않니?”
“네. 아이들과 뛰어놀았거든요.”
“그래. 옷은 챙겨 입으렴.”
벗어두었던 티셔츠를 다시 입을 때까지를 기다렸던 조르디가 신우주와 플라브시치를 아카데미로 이끈다.
해변 앞 도로에서 위로 몇 블록.
10분 정도만 걸으면 된다.
아카데미로 향하는 길, 앞서 걷는 조르디가 곁에 따라붙은 신우주에게 연신 질문을 던진다.
“바르셀로나는 처음이니?”
“네. 마드리드는 가본 적이 있지만요.”
“그렇군. 이곳은 어떤 것 같니?”
“아직 잘은 모르지만, 해변이 마음에 들어요.”
“하하. 다들 그러지. 음식은 가리는 것 없고?”
“네. 그래도 해산물이 더 좋은 것 같긴 해요.”
“멋지구나. 이건 비밀인데, 우리 아카데미가 어지간한 고급 레스토랑보다도 훌륭한 해산물 요리를 만든단다. 특히 오징어가 일품인데…….”
그리고 이 모습을 뒤에서 보는 플라브시치.
알고 있었지만, 새삼 혀를 내두르게 된다.
열 살 때 한국을 떠나 어머니와 함께 뉴욕에서 생활했고, 불과 3개월 만에 얀코의 눈에 띄어 세르비아로 다시 이동했다. 이후엔 유럽의 몇몇 도시를 돌아다녔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신우주는 힘든 티를 내지 않았다.
이는 놀라운 거다.
어린 선수들을 가르치며 가장 힘든 건, 그들이 합숙 생활을 버티지 못할 때다.
하물며 아카데미 소속과 같은 나라에서 온 아이들도 그런데, 신우주는 홀로 동양인임에도 누구보다 더 빠르게 주변 사람들과 친해졌다.
가끔 몰상식한 인간들에게서 인종차별을 경험할 때도 있긴 했지만, 그때도 저 소년은 의연했다.
‘그것 또한 최고의 재능이지.’
테니스 선수들은 서로를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부른다. 철새로 비유되어왔던 것을 순화한 것에 불과했지만, 어쨌든 프로 테니스 선수는 대회를 따라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집이 있어도 거기에 머무는 시간은 30일이 채 되지 않으며, 그나마 대회가 적은 12월을 휴가 기간으로 삼는다.
겉으로 볼 땐 호화롭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거기에서 오는 괴리감에 슬럼프를 맞는 선수들도 있고, 심하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번 아웃으로 이어져 끝내 은퇴해 버리는 젊은 선수도 부지기수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보아온 신우주의 태도와 멘탈은 테니스를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느껴진다.
“코치님! 뭐 해요?! 빨리요!”
“그래! 지금 가-!”
어느새 뒤처진 자신을 앞에서 이끄는 신우주.
도저히 이 도시가 처음인 것 같지 않다.
‘앞으론 자주 오겠지.’
그때는 물론, 지금처럼 아카데미 수강생이 아닌 프로 대회에 참가한 선수로서일 것이다.
* * *
#. 바르셀로나 테니스 아카데미
낯선 동양인이 약 3주 동안 새로운 수강생으로 온다는 사실은 BTA 전체에 이미 알려져 있었다.
간단한 테스트를 위해 코트에 들어선 신우주를 아카데미 수강생 다수가 지켜보고 있는 이유다. 그들은 지금, 낯선 소년이 하는 행동이 궁금했다.
“쟤 지금 뭐 하는 거야?”
“루틴인가?”
“신기한 루틴도 다 있는데?”
BTA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를 또 꼽으라면, 아카데미에 있는 정식 테니스 코트 모두가 클레이코트란 점이다.
한 개의 그린셋이 있긴 했으나 이는 훈련 외의 용도로 쓰이는 곳이었고, 외에는 두 개의 미니 코트가 전부였다. 나머지 11개의 코트는 테니스가 아닌 빠델(Padel)을 위한 것이다.
그런 21개의 클레이코트 중 하나에서, 지금 신우주는 쪼그려 앉아 바닥을 열심히 손바닥으로 훑고 있었다.
“저 녀석 도대체 뭘 하는 건가?”
“쟤만의 의식이죠.”
“의식? 루틴 말인가?”
“비슷한데, 조금 달라요. 매번 하는 건 아니고, 처음 경험하는 코트에서만 저렇게 하거든요.”
“허!”
길게 설명하고 싶지 않았던 플라브시치가 수군거리고 있는 코트 주변의 수강생들을 바라본다.
“수업이 없나 보죠?”
“하필이면 그 시간이군.”
“……참, 기묘하기도 하군요.”
“크흠, 흠.”
조르디가 헛기침하는 소리를 들으며, 플라브시치는 이것이 의도된 거라고 확신했다.
어째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조르디는 의도적으로 다른 수강생들이 신우주의 오디션을 지켜볼 수 있도록 했다. 썩 내키진 않았지만, 한 방 먹었으니 어쩔 수도 없었다.
대신, 플라브시치는 하나를 부탁했다.
“휴대전화를 켜지 말라고 해줘요.”
“어차피 없네.”
“네?”
“전화기는 아카데미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압수야. 오직 점심시간과 아카데미 일정이 끝났을 때만 사용할 수 있지. 사진이나 영상 걱정은 넣어둬. 그래서 내가…… 이크!”
“그래서 뭐요?”
“크흠, 흠. 아니. 아, 아무것도 아닐세.”
“망할 영감.”
“크흠.”
얼마의 시간이 더 흐르고, 손바닥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선 신우주가 가방을 놓아둔 곳으로 움직였다.
그러곤 그곳에서 라켓을 하나 빼냈고, 테니스공 하나를 주워들어 코트 여기저기를 다니며 공으로 두드려보기를 반복했다. 어떠한 위치에서는 고개를 갸웃하며 몇 번을 더 두들겼다.
“이보게, 네마냐.”
“네.”
“혹시 지금 내가 큰 착각을 하는 중인가?”
“……아닐걸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
신우주가 볼을 바닥에 튕겨보기 시작한 순간부터, 조르디를 포함한 BTA 코치들의 눈빛이 모두 바뀌었다.
수강생 중 다수는 여전히 특이한 루틴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한 번이라도 프로레벨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신우주가 하는 행동의 의미를 알았다.
벽돌을 분쇄한 후 깔고 그것을 다져서 만드는 앙투카와는 달리, 점토를 빚어서 만든 일반 클레이코트는 관리적인 측면이 어렵기로 유명하다.
특히 날씨와 같은 환경적인 요소에 민감해서, 아무리 롤러로 열심히 다져두더라도 코트 컨디션이 일정치 않을 수 있다.
BTA 입구에 거의 다다랐을 때, 도롯가의 고인 물을 본 신우주가 했던 질문을 떠올리는 조르디 꼬말라. 당시에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신우주 : “혹시 오늘 비가 왔었나요?”] [조르디 : “? 오전에 잠깐 소나기가 내렸어.”] [“그렇군요.”] [“?”]비가 왔었냐는 질문.
그건 틀림없이 이것 때문이었다.
“네마냐, 자네.”
신우주가 했던 질문의 의미를 눈으로 목격하는 지금, 조르디는 경악하며 플라브시치를 돌아봤다.
바로 질문을 던지려고 했지만, 상대방이 의미심장하게 웃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자 바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지 오히려 플라브시치가 질문보다 답을 먼저 한다.
“제가 가르쳐 주지 않았어요.”
“뭐?”
“저는 물론이고, 안드레이, 얀코. 그리고 나머지 TTA의 누구도 우주한테 저런 걸 가르쳐 주지 않았어요.”
“지금 농담하는 거지?”
“아뇨, 조르디. 농담이 아니에요.”
“…….”
줄곧 여유로웠던 조르디의 얼굴에서 그것이 사라진 것을 지켜보며, 가벼운 미소를 머금은 채 앞으로 걸어간 플라브시치가 옛 스승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러곤 이렇게 말했다.
“진짜 놀라운 건, 아직도 시작도 안 했어요.”
“!!”
조금 전 신우주가 했던 행동들.
그것은 코트의 컨디션을 파악하고, 볼을 두들김으로써 배수가 제대로 되지 않은 곳을 찾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프로. 그중에서도 감각을 타고난 이들만이 하는 행동이었다.
오디션이 시작되기 전, 아카데미 수강생들을 모두 불러 모음으로써 기선제압을 시도했던 조르디는 카운터 펀치를 제대로 얻어맞은 얼굴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