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bsolute on the Tennis Court RAW novel - Chapter 10
테니스 코트 위의 절대자 010화
괴물
프랑스 보르도에서 태어난 조르당 도블(Jordan Doble)은 ATP 단식 랭킹 386위, ATP 남자 복식 랭킹 302위를 기록했던 평범하다면 평범한 테니스 선수였다.
그는 커리어 내내 헌신적이고 열정적이기로 유명했으며, 주니어 때는 프랑스를 대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프로 데뷔 후 주니어 레벨에선 자신보다 뒤처졌던 선수들이 앞서 나가는 것을 보았고, 그때 조르당 도블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주니어 레벨에서 최고라 해도, 그것이 반드시 프로 레벨에서의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단 사실을 말이다.
이는 조르당 도블이 쉽게 감동하지 않는 남자가 된 이유이자, 어린 선수들을 잘 가르칠 수 있었던 이유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
“으읍! 으아!”
팡!
조르당 도블은 코치가 된 이후 처음으로, 한 10대 선수의 성공을 확신하고 있었다.
땀에 흠뻑 젖은 그가 가쁜 숨을 내쉬고 있다.
“하아- 하아-”
.
.
#. 바르셀로나 테니스 아카데미
조르당 도블이 한 14살 소년의 오디션을 부탁받은 것은 대략 한 달 전쯤이었다.
약 3주간 BTA에 머무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말에, 도블은 곧바로 그에 맞춰 일정을 조절하겠다고 답을 했다. 흔하진 않아도, 종종 있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까지, 전(前) ATP 랭커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펼쳐질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포, 포티 러브!”
당황한 페르난도 구베이아(Fernando Gouveia)의 목소리. 이는 현재 BTA의 한 클레이코트를 지켜보는 대다수 이들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감정을 조금 더 추적하기도 전에, 새로운 당혹감이 거기에 더해지고 있다.
“으읍! 으아!”
팡!
힘겹게 앨리(Alley)라인으로 달려간 조르당 도블이 오른손을 힘껏 휘둘러 네트 너머로 볼을 보낸다.
다운 더 라인과 같은 공격을 위한 스트로크가 아닌, 상대의 페이스에 휘말려 실점하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수비였다. 그리고 볼은 신우주가 선 베이스라인 가운데로 향한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반복된 장면이다.
그리고.
“…….”
툭.
다시 한번 사방에서는 탄식이 터져 나온다.
포핸드를 휘두를 것만 같았던 신우주가 유닛 턴(Unit Turn) 이후, 스윙(Swing)을 가져가는 대신 부드러운 터치(Touch)로 절묘한 드랍샷을 가져간 것이다.
베이스라인을 향해 오지 않고, 대각 방향 네트 바로 앞쪽에 떨어져 내리는 테니스공을 보며 조르당 도블은 절망을 느낀다.
달려가야 했지만, 심리적으로 이미 K.O다.
툭.
투둑.
“게, 게임. 방문객!”
호스트(Host)와 비지터(Visitor)로 구분되었던 연습경기에서, 승리를 가져간 쪽은 놀랍게도 14살의 소년이었다.
처음엔 0:2로 불리하게 시작했지만, 이후 6:1로 게임 스코어를 뒤집으며 조르당 도블에 패배를 안겼다.
그리고 이 모든 장면을 묵묵히 지켜 봐왔던 한 남자가 꽤 호들갑스러웠던 사람을 제치고 나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선 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도대체 저 소년은 누굽니까?”
“…….”
질문을 던진 이는 라파엘 마우어(Raphael Mauer)다.
BTA의 이사 중 하나이자 테니스팀 총괄 감독이며, 주니어 시절엔 로저 페더러와 마르티나 힝기스(Martina Hingis) 같은 역대 최고의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지금은 BTA의 창립 멤버 중 하나로서, 본인의 철학을 어린 선수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그런 라파엘 마우어를 보던 네마냐 플라브시치.
곧, 어깨를 으쓱이며 이렇게 대답한다.
“우주.”
“네?”
“우주. 그게 저 아이의 이름입니다.”
이름이 궁금했던 게 아니다.
하지만, 마우어는 더 말을 보태지 못했다.
플라브시치가 떠났기 때문이다.
허탈한 그의 어깨가 아래로 떨어진다.
“하…….”
흔히 있는 일이었다.
타(他) 아카데미에 있는 유망주가 본인의 테니스관(觀)을 더욱 확장하기 위해 BTA를 찾는 것 말이다.
그렇게 매년, 열댓 명의 선수를 맞았다.
오늘도 라파엘 마우어는 그런 늘 있었던 일상 중 하나인 날이 될 거로 믿었다. 피트니스와 멘탈에 특화된 BTA의 철학을 배우고자, 괜찮은 유망주가 왔다고 말이다.
그러나, 이는 완전히 틀린 생각이었다.
오늘은 매우 비(非)일상적인 날이다.
“이거야 원, 완전 거물을 받았군.”
“조르디. 알고 계셨어요?”
“아니. 전혀.”
“정말요?”
“그래. 네마냐가 내게 BTA에서 견습을 할 수 있냐고 했지. 나도 늘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했어. 일상이라고 말이지. 그래서 어떤 선수를 데려오는지는 묻지 않았네.”
“…….”
조르당 도블의 마지막 ATP 커리어는 2009년 5월이었다. 은퇴한 지 벌써 6년이 되었고, 현역 때와 비교해 몸이 많이 망가진 것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챌린저 중상위권 레벨이었던 도블을 14살이 이토록 쉽게 잡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BTA 내에서도 조르당 도블에 세트를 가져갈 수 있는 10대 선수는 아무도 없다.
실제로 지금 BTA의 수강생들 역시, 커다란 동요를 일으키고 있다.
“일단, 애들 먼저 보내야겠어요.”
“그렇게 하게.”
고개를 끄덕인 마우어가 혼란을 겪고 있는 수강생들을 기숙사로 돌려보낸다.
그러는 사이, 패배를 인정해야 함을 깨달은 도블이 플라브시치와 함께 있는 신우주에게 다가갔다. 여러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이 어린 선수의 정체를 궁금해하고 있다.
“놀라워. 솔직히, 완패였어.”
“운이 좋았어요.”
“젠장. 그렇게 말하니, 더 할 말이 없는데? 어째서 우리가 너를 모르는 거지? 주니어 랭킹은?”
“없어요.”
“없다고?”
“네. 아직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거든요.”
“뭐? 어째서?”
의아한 듯 자신을 보는 도블에게, 신우주는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였다.
도블은 굳이 더 캐묻지 않았고, 대신 인상 깊었던 장면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첫 두 개의 세트.
신우주는 왼손으로 플레이했다.
이후는 줄곧 오른손이었다.
“왼손으로도 테니스를 잘하고 싶어서요.”
“설마, 양손잡이를 꿈꾸는 거니?”
“네, 맞아요.”
“실례가 아니라면, 어째서인지 물어도 될까?”
“네?”
“지금까지 양손으로 테니스를 하려고 했던 선수들은 있었어. 실제로 우리 아카데미에도 그런 친구들이 몇 있었고. 하지만 권하지 않는 일이야.”
기술적으로도, 테니스는 상당히 어려운 스포츠다.
한 동작을 완성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프로 선수로서 전성기를 누릴 수 있는 시간은 짧고, 신체적으로 가장 훌륭했을 때 기술이 뒤떨어지지 않으려면 잘 쓰는 손을 연마하는 것만 해도 벅차다.
괜히 양손잡이 랭커가 없는 게 아니다.
뭔가를 대답하려던 신우주를 다가온 플라브시치가 한쪽으로 보낸다. 초콜릿 우유를 섭취하게 하고, 마무리 운동을 하게끔 하기 위해서다.
아쉬워하는 도블을 위해, 플라브시치는 한 가지 사실을 살짝 귀띔하기로 한다.
“2년.”
“네?”
“2년 전만 해도, 우주는 전혀 왼손을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평범한 오른손잡이 테니스 선수였죠. 평범했다는 표현이 어울리진 않지만 말입니다.”
본래 오른손만을 썼던 신우주는 TTA 내에서 스파링 파트너를 찾는 일에 어려움을 느꼈다.
처음엔 코치들이 시간이 나는 대로 신우주의 연습 상대를 해줬지만, 곧 안드레이를 제외한 다른 코치들과의 랠리는 소년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다르코 가지치는 신우주가 더 넓은 무대로 나아가야 할 때임을 깨달았지만, 12살의 소년을 세상에 공개하고 싶진 않았다.
과거라면 모를까, 너무 많은 정보와 그보다 더 많은 나쁜 것들이 인터넷을 통해 넘쳐나는 세계에서, 주니어 데뷔 후 신우주가 겪게 될 일들을 걱정했다.
그래서 그는 지금과 같은 투어(Tour) 형태의 훈련을 고안했고, 이것이 준비되는 동안 신우주 역시 뭔가를 준비했다.
“그게 왼손이라는 겁니까?”
“믿기지 않으시죠?”
“……오늘 보지 못했다면 또 모르지만, 지금 제게 믿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가 있습니까? 믿겠습니다. 왼손으로도, 저 아이는 저를 꽤 곤란하게 했으니까요.”
“아직 충분한 건 아닙니다.”
“그런데 정말, 괜찮으십니까?”
이어지는 도블의 질문 의미를 플라브시치는 완벽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가 바로 답할 수 있었던 이유다.
지구상의 그 어떠한 코치도 톱 랭커가 될 수 있는 재능에 양손잡이가 되라 말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그건 미래를 망치는 길이다.
그럴 땐, 아이의 치기를 달래야 한다.
안드레이와 플라브시치를 포함한 TTA의 코치들도 한때는 그렇게 했다. 장난쯤이라고 여겼던 신우주의 행동이 진심처럼 보이기 시작했을 때부터, 양손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설득당했다.
“무모하다고 왜 생각하지 않았겠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별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어린아이기도 했고, 프로들도 가끔 사용하지 않는 손으로 스트로크를 휘두르니까요.”
“그렇죠.”
“비가 오는 날이었을 겁니다. 그날도 안드레이가 우주의 방에서 왼손으로 연습하는 걸 관두라고 했죠. 다칠 우려도 있고, 무엇보다 시간 낭비니까요. 보통이라면 그런 상황에서 어린아이들은 좌절합니다. 그래서 울어버리거나, 아니면 한껏 더 반항하기 마련이죠. 그런데, 우주는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
자신의 앞에서 한껏 격양된 안드레이를 보며, 신우주는 사람을 무장해제 시키는 특유의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자신이 이젠 왼손으로도 곧잘 친다고 대답했다.
왼손으로 테니스 채를 휘두른 지 대략 보름 정도 지났을 때의 일이었다.
자신의 방 곳곳에 놓아둔 테니스 채 중 하나를 마음대로 집어 든 신우주가 영문을 모르는 안드레이를 재촉해 실내 훈련 코트로 향했다.
그러곤, 자신의 성과를 보여줬다.
“완벽하더군요.”
“그게…… 말이 됩니까?”
“됩니다. 저 아이에게는요.”
“…….”
오싹함을 느낀 도블이 초콜릿 우유 두 개를 빠르게 비워내고 코트에 앉아 스트레칭 충인 신우주를 바라봤다.
그런 그의 귓가에 플라브시치의 목소리가 들린다.
“분명 우리가 아는 우주의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TTA에 있던 동년배의 어떠한 왼손잡이 수강생보다, 우주는 완벽한 스트로크를 보여줬습니다.”
몇 달도 아니고 단 보름이다.
단 보름 만에, 신우주는 왼손으로도 또래 수강생을 모두 꺾을 만큼이 되었다.
실제로 경기를 붙여 본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오히려 그랬다간, 다른 수강생들의 멘탈만 박살 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우주가 말하더군요.”
“뭘…… 말이죠?”
도블은 이야기가 쉽게 나오지 않는 것을 느꼈다.
이미 압도당했기 때문이다.
지금 자신이 듣고 있는 내용은 도시 전설에서나 나올 법한 환상 속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플라브시치의 표정은 평온했고, 또 그가 거짓말할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거짓말할 이유 역시 없었고 말이다.
그래서 그는 열린 마음으로 플라브시치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오래전부터 마음이 활짝 열려 있었지만 말이다. 자신 앞의 남자는 신우주가 이런 말을 했다고 했다.
“왼손으로 스트로크를 하다 보니, 잘 안 되던 오른손 백핸드가 수월하게 된다고 하더군요. 우리가 가르치지 않는 어려운 메커니즘을 설명하면서 말입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우린 우주가 톱 랭커에 도전할 수 있는 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Top 3는 모르지만, Top 10에는 확실하게 진입할 수 있다고요. 그런데 그날 이후, 우린 저 아이를 보는 시각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우리가 너무 과소평가한 거죠. 저 아이는…….”
“…….”
“괴물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본 적 없는.”
“오…… 맙소사.”
쿠르릉.
쿠릉.
때맞춰 울린 천둥.
스트레칭을 하다 고개를 든 신우주가 하늘에 낀 먹구름을 확인한다. 금방이라도 소나기가 쏟아질 것 같았는데, 엉덩이를 털며 일어선 소년이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한다.
그러곤 뒤를 돌아보며 플라브시치에게 외쳤다.
“코치님! 비가 곧 올 것 같아요!”
“그래- 곧 가마!”
자신의 선수가 비를 맞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던 플라브시치가 도블의 어깨를 두드리며 앞으로 걸어간다.
그렇게 홀로 남겨진 BTA 최고의 코치.
그가 멍하니 얼굴을 긁적인다.
“괴물…… 이라.”
조르당 도블은 어린 시절에 비슷한 별명으로 불렸던 선수들을 지켜 봐왔다.
굳이 멀리 갈 필요도 없다.
프랑스 내(內) U-18 랭킹 4위에 올랐을 때, 도블은 6살 어린 한 꼬마를 만났다. 이는 그레노블에 있는 클레르퐁텐으로 더욱 잘 알려진 ‘National French Centre’ 에서의 일이었다.
축구 말고도 테니스 선수를 위한 엘리트 교육을 했던 CNE는 프랑스 최고의 젊은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도블 역시 그중 하나였고, 그가 만난 6살 어린 선수가 바로 가엘 몽피스(Gael Monfils)다.
껑충한 모습으로 코트를 휘젓던 가엘 몽피스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형들을 기괴한 방식의 테니스로 꺾고 다녔다. 교과서엔 나오지 않는 그런 테니스였다.
당연히 CNE의 코치들은 이런 몽피스의 플레이 스타일을 부정했고, 그가 꺾었던 이들도 뒤에서 수군거리면서 몽피스가 테니스를 하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다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현재, 옳았던 것은 가엘 몽피스였고 틀린 쪽은 그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다.
이때의 경험으로, 조르당 도블은 어떠한 형태의 테니스를 보더라도 편견을 갖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오늘, 그 결심은 강한 도전을 받았다.
양손잡이.
무엇보다.
“그 실력…….”
조르당 도블은 신우주가 BTA에 머무는 기간이 약 3주가량이라는 것에 안도했다. 이 기간,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신우주란 소년을 파악해 볼 생각이었다.
“한번 지켜보겠어.”
툭.
투둑.
쏴아아-
한두 방울로 인사를 한 빗줄기가 인내심도 없이 빠르게 구름을 빠져나와 지면을 향해 떨어져 내린다.
젖어버린 머리를 쓸어 올린 도블.
그도 마침내 발을 움직인다.
도시에 쏟아지는 시원한 빗줄기.
바르셀로나가 신우주에 인사를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