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bsolute on the Tennis Court RAW novel - Chapter 11
테니스 코트 위의 절대자 011화
BTA에서의 날들 (1)
현대 테니스에서 가장 위대하고 중요한 존재는 누구일까? 위대한 선수를 논하는 부분에서는 의견이 갈릴 수도 있겠지만, 위대한 사람을 한 명 꼽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닉 볼레티에리.
역사상 가장 뛰어난 테니스 코치이자, 수많은 세계 랭킹 1위를 양성한 ‘볼레티에리 아카데미’의 창립자이기도 한 그는 수없이 많은 코치들의 코치로 알려져 있다.
한데 이런 볼레티에리에겐 놀라운 부분이 있다.
바로.
“고등학교 때만 테니스를 했죠.”
“바로 맞혔어. 알고 있었구나?”
“유명한 이야기니까요.”
.
.
#. 2015년 4월 22일
#-1. 스페인 바르셀로나
#-2. 바르셀로나 테니스 아카데미
#-3. 피트니스 센터
본격적인 훈련을 앞두고, 신우주는 피트니스 센터에서 BTA의 스페인 출신 피트니스 디렉터 세르지 발다우라(Sergi Balldaura)를 만났다.
총 두 개의 체육 학위를 가지고 있으며, 과거 ATP 단식 랭킹 19위/복식 랭킹 4위를 기록한 마르셀 그라놀러스(Marcell Granollers)를 전담하기도 했다.
외에도 2010년과 2012년 팀 스페인의 데이비스컵 피트니스 코치를 맡는 등. 유능한 피트니스 코치로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현재는 BTA의 피트니스 디렉터로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엘리트 선수의 요청이 있을 경우 단기간 코치로도 활동했다.
닉 볼레티에리에 관해 질문했던 발다우라가 신우주의 답변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그의 이론에 훈련 목적이 있거든.”
“어떤 이론인지 여쭤봐도 되나요?”
“물론이지.”
테니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코치의 말에 따르면, 테니스는 두 개의 단어로 요약 가능했다.
반복.
확률.
수없이 반복되는 랠리 속에서 실수할 확률을 얼마나 줄이느냐. 그리고 그것을 위해 어떠한 플레이 스타일을 선택하고 또 어떤 전략을 세우느냐가 승리를 결정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게 심리다.
“이해가 될 것도 같아요.”
“정말이니?”
“네.”
“……정말로?”
고개를 끄덕이는 신우주를 보며, 발다우라는 약간 당황했다. 지금까지 자신이 만났던 10대 선수들 중에서, 이것만을 듣고 이해했다고 말하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가끔 알아듣지 못해도 자존심 때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이 있었기에, 발다우라는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 한번 말해보겠니?”
“얼마든지요.”
고개를 끄덕이는 신우주.
소년은 바로 답했다.
“안정된 풋워크가 모든 걸 결정한다.”
“?! 놀랍구나. 정답이야.”
“안드레이가 늘 했던 말이에요.”
“안드레이?”
“네. TTA의 코치님이시죠. 저랑 아주 친해요. 우리는 자주 밥을 먹으면서 테니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요. 훈련일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훈련이 아닌 것들이고요.”
신우주의 말이 이어질수록, 발다우라의 놀라움은 커지고 있다. 전날 코트에서 조르당 도블을 꺾은 소년이라 들었을 때만 해도, 재능만으로 똘똘 뭉친 건방진 꼬맹이일 줄 알았다.
보통 그런 10대들은 테니스 이론에 관한 접근을 소홀히 할 때가 많은데, 신우주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정말이야. 너무 놀라워.”
“헤헤.”
정답이었다.
테니스에서 심리적인 요소를 결정하는 수없이 많은 것들이 있지만, 그 모든 것의 가장 밑바탕에는 풋워크라는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요소가 숨어 있다.
절대다수의 ATP/WTA 프로 선수들은 자신들의 발이 무뎌진 것을 보고 패배를 직감한다.
“좋아. 그럼 혹시 풋웍에 관여하는 인간의 네 가지 기능에 대해서는 알고 있니?”
“아뇨. 처음 들어요.”
“그래?”
하마터면 발다우라는 다행이라 말할 뻔했다.
기선 제압당했음을 인정하는 셈이다.
하지만 노련한 베테랑답게, 발다우라는 검은색 마커를 집어 들며 화이트보드의 앞에 섰다.
그러곤 네 개의 단어를 써 내려갔다.
전부, 영어로 된 것이었다.
지각(Perception).
판단(Decision).
반응 혹은 반응 속도(Reaction or Reaction Speed).
조정 능력(Adjustment Ability).
“이게 바로, 테니스의 모든 것이야.”
“모든 것이요?”
“뭐, 90%라고 해두자꾸나.”
“파핫! 네. 그렇게 이해하죠.”
“멋지구나. 좋아, 그럼 이 단어 하나하나를 설명하도록 하마. 그 전에 다시 또 질문이 있단다. 테니스는 어떻게 시작되지?”
“음- 동전 던지기죠?”
“그래. 그럼 그다음엔?”
“서비스 권리를 가져간 사람이 베이스라인으로 향하고, 애드코트에서 서브를 넣어요.”
고개를 끄덕인 발다우라가 화이트보드를 뒤집었다.
그러자, 테니스 코트가 그려진 면이 나타났다.
발다우라는 애드코트에 동그라미와 선 몇 개로 사람처럼 보이는 것을 그렸고, 이후 허공에 떠오른 볼과 거기에 다가가는 테니스 채를 보탰다.
“서버가 볼을 토스했을 때부터, 바로 이 지각이라는 영역이 관여하는 거야. 아마 이때 네 머릿속에는 상대의 특징이라든가 습관 등이 그려지겠지. 그것을 통해 서브를 예측하고.”
“볼의 방향과 바운드의 예측. 그게 지각이군요?‘
“그래. 거기에 속도도 더하는 거야.”
“이해했어요.”
“아직 자신하긴 이르단다.”
“?”
코트에서 상대할 이를 아무리 분석하고 또 알고 있더라도, 그것대로 가지 않을 가능성은 존재한다.
그래서 지각은 홀로 쓰일 수 없다.
반드시 판단이 동반된다.
“지각은 어디까지나 인지의 연장선이야. 예를 들어, 서버가 서브를 보내올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지. 하지만 그 방향은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어. 속도나 서비스의 형태까지 고려하면, 네가 고려해야 할 것들은 너무나도 많아지지. 그걸 모두 통제할 수는 없을 거야. 하지만 넌 그 많은 경우의 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 모든 것에 대비가 되어 있어야 해. 여기까지 무슨 의미인지 이해했니? 너무 어렵진 않고?”
“예측은 하되, 절대적이진 않다.”
“비슷해.”
“음, 나중에 좀 더 생각해 볼게요. 다음은요?”
“그래.”
서버(Server)가 토스한 볼이 테니스 채에 닿기 전까지 관여하는 영역이 지각이라면, 임팩트가 이뤄진 즉시 리시버(Receiver)는 판단해야 한다.
초기 방향을 통해 궤적을 머릿속에 그리고, 볼이 어떠한 지점으로 낙하해 어떻게 튀어 나갈지를 그린다.
“그럼 네 몸은 어떻게 될 것 같니?”
“움직일 거예요.”
“그래. 반응이란다. 그리고 이 반응 속도란, 네가 앞으로 훈련을 통해 갈고 닦아야 하는 거야. 이것이 짧아질수록, 판단과 반응 사이의 차이가 줄어들어. 그리고 그 차이가 줄면?”
“더 빨리 볼에 다가갈 수 있겠죠. 리턴을 위해.”
“정답이야.”
모범생과 함께하는 수업은 늘 즐겁다.
발다우라는 어느새 완전히 수업에 집중했다.
이는 신우주 역시 마찬가지다.
“그럼, 조정 능력이란 건요?”
“이게 바로 지금부터, 우리가 함께할 거란다.”
“네?”
“조금 더 넓은 의미로 봐야 옳지만, 쉽게 말해 조정이 바로 풋웍이라 할 수 있어. 완벽한 리턴 혹은 스트로크를 위해 어디까지 발을 밀어 넣을 것인가. 그리고 그걸 정했다면 내가 원하는 대로 정확히 행동을 수행할 수 있는가. 이전 단계인 첫 번째 스텝부터 시작해서, 이후 달리기를 하는 것 모두 조정 능력에 속해.”
“와우. 처음이에요. 이런 접근은.”
“하하. 본래라면…….”
“?”
“본래라면 이건 프로 레벨의 선수들이 하는 거란다. 최소 풀타임 챌린저들 말이야.”
몇 단계는 월반한 거란 발다우라의 말에, 신우주의 표정이 환하게 변한다.
테니스를 향한 열정과 배움을 향한 끊임없는 갈구가 만들어낸 그런 얼굴이었다. 그것을 본 발다우라 역시 비슷한 감정을 느꼈고, 고개를 끄덕인 그는 힘차게 손뼉을 두들겼다.
코치로서 우수한 재원을 만나는 건 기쁜 경험이다.
절로 의욕이 샘솟고 있다.
“좋아. 그럼, 지금부터 장소를 옮겨 볼까?”
“네!”
신체적인 역량 향상에 모든 초점이 맞춰진 BTA에서의 3주. 그 시작 지점에서 신우주는 발다우라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순조로운 첫발을 내디뎠다.
* * *
신우주의 실전 훈련은 약 두 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놀라워. 정말 14살이 맞는지 의심될 정도야.”
“네- 그거라면 얘가 제일 잘 알죠.”
“아, 닥쳐.”
“큭큭큭큭.”
식당에서 다른 코치들을 만난 발다우라가 자리에 합류해 먼저 식사 중이던 이들에게 신우주의 훈련 모습을 이야기했다.
“밸런스, 힘, 동체시력, 판단력. 뭐 하나 빠지는 데가 없어. 만약 저 아이를 밖에서 발견했다면, 어떠한 수를 써서라도 이곳으로 데려오고 싶었을 거야.”
“그럼 당신은 여기에서 해고되는 거죠.”
“쯧. 그게 유일한 문제야.”
“하하. 그 정도예요?”
“그래. 군침이 질질 흘러.”
테니스 관계자들 사이에서, BTA는 “고마운 기관.” 혹은 “성공한 테니스 아카데미 중 유일한 비영리 단체.”라는 별명으로도 불리고 있다.
여타 테니스 아카데미가 한 명이라도 더 많은 랭커를 배출하려 혈안이 된 것과는 달리, BTA는 프로 데뷔에 목을 매는 대신 테니스 그 자체에 집중한다.
만약 BTA에서 두각을 드러낸 유망주가 더 좋은 조건과 기회를 얻을 수만 있다면, 이들은 아무 조건도 없이 해당 선수를 다른 아카데미에 내어준다.
전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테니스 아카데미임에도 불구, 대표하는 랭커가 없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오히려 이들은 문을 늘 활짝 열어둔다.
언제든 배움을 위해 오라며 말이다.
물론, 그에 합당한 대가는 받는다.
하나 특정 유망주를 프로 데뷔 목적으로 리쿠르팅(Recruting)하려고 한다면, 해당하는 코치는 BTA에서 일할 수 없다. 아카데미의 철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조금 전 이들이 나눈 대화는 그런 의미다.
그러나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임에도 욕심을 숨기지 못하는 세르지 발다우라를 보며, BTA의 코치들은 또 한 번 크게 놀라고 있었다.
스페인 내에서 손꼽히는 피트니스 코치가 이 정도로 탐을 내는 재능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만 19세에 WTA 우승을 차지한 엘레나 보비나(Ellena Bovina)와 WTA 최고 순위 6위 플라비아 페네타(Flavia Pennetta). 통산 두 번의 그랜드슬램을 차지한 스베틀라나 쿠즈네초바(Svetlana Kuznetzova) 등.
개인적인 요청을 받아 세계적인 재능을 수없이 많이 만났을 때도 이런 반응을 보인 적은 없었다.
“이봐, 조르당.”
“어제 이야기로 또 놀릴 거라면, 그냥 닥쳐줘.”
“아- 그러지 말고. 그리고 그게 아냐.”
“그럼?”
“어제 내가 거기에 없었어서 말이야. 정말 그 꼬마가 그렇게 굉장해? 듣기론 동양인이라고 들었어.”
“그게 문제가 돼?”
“왜 이러셔. 지금 나를 인종차별주의자로 몰아가려고? 그게 아냐. 왜 있잖아. 일반적으로 동양인. 그리고 10대라고 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거. 작은 키. 왜소한 체구. 짧은 팔. 부족한 근력. 뭐, 그런 것들 말이야.”
BTA의 스포츠 심리학자인 폴 소토(Pol Soto).
그가 한 이야기는 편견보단 현실에 가까웠다.
과거부터 수많은 테니스 코치들이 테니스계를 지배할 동양인의 탄생을 기다렸다. 만약 중국이나 일본에서 그런 선수가 태어난다면, 테니스의 위상을 크게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아직은 불모지에 더 가까운 아시아 시장의 개척을 의미했고, 유럽보다 더 많은 돈을 주고 유능한 코치들을 모셔갈 수도 있다는 것을 뜻했다.
실제로 미국인이었지만 대만 혈통이었던 마이클 창이 활약한 기간, 유럽에서 평범한 대접을 받던 코치들이 엄청난 연봉을 제안받고 대만에 둥지를 틀었다.
하지만 이런 근사한 현실적인 이유는 언제까지고 막연한 바람으로만 남아 있다.
테니스의 역사와 또 현실은 서양인들에게, “동양인은 테니스로 성공하기 어렵다.”는 편견을 심어 놓았다. 어떠한 이들은 이를 확률이 아닌 단정 지어 말한다.
“동양인은 절대 랭커가 될 수 없다.”
“그래. 바로 그거 말이야.”
“후우- 솔직히, 거기까진 잘 모르겠어.”
“뭐?”
“겨우 연습 세트 하나였어. 오히려 지금은 나보다는 세르지가 녀석에 대해서 더 많이 알 거야. 하지만 한 가지 말하자면, 걔는 네가 말한 그런 것들과는 상관없어. 유럽인들 중에서도 14살에 그 정도 육체를 가지긴 어려워.”
“동감일세.”
“…….”
도블의 말에 발다우라가 조용히 찬성표를 더하고, 제법 진지해진 분위기 속에서 구베이아가 우연히 들은 것을 이야기한다.
“아, 맞다.”
“응?”
“그 왜. 꼬맹이랑 함께 여기에 온 코치 있지? 조르디와 아는 사람인 것 같았는데. 아무튼, 오늘 그랑 같이 아이들을 가르쳤거든. 그러다 얘기가 나와서 들었는데, 걔. 부모님이 전부 운동을 했다던데?”
“그래?”
“응. 종목은 잘 기억 안 나는데, 부모가 둘 다 국가대표였던 모양이야.”
“그래서 그런가?”
“그건 축복이로군.”
신우주가 지금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관해 나름의 추측을 더하기 시작한 이들.
두 시간 조금 넘게 이어지는 BTA의 점심시간 내내, 이들은 단 한 명. 그것도 BTA의 정식 아카데미 수강생이 아닌 수습을 온 한국 소년에 집중했다.
그리고 같은 시각.
“엣-츄! 엥? 훌쩍.”
“우주야. 감기니?”
“아뇨. 그건 아닌데, 엣-츄!”
“잠시 있거라. 따뜻한 물을 가져올게.”
“네. 훌쩍.”
신우주는 난데없는 재채기와 자꾸만 귀가 가려워 살짝 짜증이 난 상태였다.
“누가 내 얘기 하나?”
변함없이, 날카로운 감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