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bsolute on the Tennis Court RAW novel - Chapter 86
테니스 코트 위의 절대자 086화
Busan Open (1) – 한국 데뷔
※ 2016 부산 오픈
(1) 대회 일정/규모/등급
: 4월 30일~5월 8일(예선 포함)
: 남자 단식/복식 대회만 개최
: 단식은 32강/복식은 16강부터
: Challenger 110
: 총상금 10만 유로 + 환대 있음
(2) 시드 배정
: ()은 국적/랭킹
1. 리카르다스 베란키스(리투아니아/55위)
2. 존 밀먼(호주/66위)
3. 샘 그로스(호주/80위)
4. 정현(한국/84위)
5. 이토 타츠마(일본/104위)
6. 루카시 라츠코(슬로베니아/113위)
7. 스기타 유이치(일본/114위)
8. 미하엘 베러(독일/115위)
* * *
#. 2016년 5월 2일
#-1. 대한민국, 부산광역시
#-2. 스포원파크 금정체육공원
#-3. 센터 코트
【“게임, 세트, 매치, 젬리아.”】
“아…….”
부산 오픈 본선 첫날.
대한민국 출신의 테니스 유망주들이 연이어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있다.
먼저 세트를 따냈으나 역전패한 홍성찬.
실력에 압도당하며 무너진 오찬영.
지난해 ITF 퓨처스 투어에서 연달아 우승하며 ATP 랭킹을 645위까지 끌어올린 권순우 역시, 매 세트 타이브레이크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으나 명백한 한계를 드러냈다.
침울해하는 대한 테니스 협회.
당황하는 대한 체육회.
문화체육부 장관과 부산 시장, 경상남도 도지사와 같은 이들이 온 상황에서, 연이어 대한민국 선수가 탈락해 나가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던 모습이다.
실제로 곧, 우려하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상남도 도지사로부터다.
“1년에 테니스 예산이 어떻게 됩니까?”
“그건…….”
“테니스는 돈이 많이 들어가는 스포츠라고 알고 있는데, 막대한 예산을 들여서 키운 선수들이 이 정도라는 건 조금…….”
정치인들은 현실엔 관심이 없다.
현실은 이들에게 표를 주지 않는다.
이들의 권력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건, 사람들을 자극하고 분열시킬 무언가다.
그래서 신경을 긁는 발언에 능하다.
“나랏돈이 어디서 줄줄 새고 있나 했더니…….”
“문수환 도지사님.”
“?”
“테니스 협회 예산이 1년에 얼마인지 압니까?”
“그야 뭐…….”
“53억입니다.”
문수환을 침묵하게 만든 발언은 문화체육부 장관 김강덕에게서 나왔다.
딱히 테니스 협회를 두둔하고픈 마음은 없었으나, 당적이 다르고 사적으로도 좋아하지 않는 문수환이 거들먹거리려고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강덕은 문수환이 축구를 좋아하는 걸 알았다.
“그런데 대한축구협회 올해 예산이 839억입니다. 테니스가 돈이 많이 들어가는 스포츠인 건 맞는데, 그 많은 돈이 전부 어디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십니까? 다 선수 부모들 주머니에서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 예산 어쩌고 하지 마세요.”
“크흠, 흠. 제가 뭐 잘 모르고 그런 건데…….”
“모르시면 가만히 계시든가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린 문수환을 보며, 대한 테니스 협회장 주홍진이 속으로 쾌재를 외쳤다.
어째서 김강덕이 자신의 편을 드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미운 정이라고 오랫동안 투덕거려온 그가 기고만장한 문수환보다는 백배 나았다.
하지만 대한 테니스 협회에 그런 예산을 부여한 것 역시 김강덕이라, 마냥 좋아만 할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성적이 나빴기 때문이다.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질 줄 몰랐다.
“이래서 제가 테니스에 투자를 안 하는 겁니다.”
“돈이나 주고 그런 말씀 하시지요.”
“드렸습니다. 몇 년 전에.”
“…….”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 두 사람.
침묵하는 주홍진이 불편한 헛기침을 내뱉는다.
지금은 자신이 불리한 입장이다.
만약 오늘 한국 선수들이 승리를 거뒀다면, 내년 더 많은 예산을 달라고 운을 띄워볼 수도 있었을 거다.
그런데, 본선 첫날 출전한 4명의 한국 선수 중 3명이 32강전에서 바로 탈락해 버렸다.
“후우-”
지루함을 느끼는 것으로 보이는 김강덕이 긴 한숨을 내쉬고 있을 무렵, 귀빈석 오른쪽 아래 플레이어 박스로 다가가는 세 명의 외국인이 보였다.
그와 동시에, 장내가 술렁였다.
“와-우. 엄청난 열기네요.”
“전부 우주를 보려고 온 거야.”
“그런데 어쩐지 저희도 주목받고 있지 않아요?”
“그것도 우주 덕분이지.”
일찌감치 자리를 잡은 두 사람과는 달리, 필리프 라지치는 신기해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사람들은 확실히 자신들을 보고 있었다.
“주목받는 거, 나쁘지 않네요.”
“그거야 처음이니까.”
“네?”
“그 기분이 압박으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야.”
“아…….”
머리를 긁적이는 필리프.
그를 본 안드레이가 피식 웃었다.
그러곤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네마냐 플라브시치가 앉은 방향이다.
“말이 없군.”
“……준비됐어.”
“뭐?”
“우주 말이야. 준비됐다고. 그것도 완전히.”
“…….”
매치를 앞둔 선수가 준비되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게 느껴지는 말이다.
하지만, 표현 그대로의 뜻이 아니다.
안드레이는 플라브시치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고 있었다.
자신 역시, 비슷한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고개를 정면으로 돌렸다.
테니스는 접근은 쉽지만 배우긴 어렵다.
실력의 상승이 느린 스포츠기도 하다.
그래서 프로 테니스 선수를 꿈꾸는 소년·소녀가 받는 훈련은 꽤 가혹한 편이고, 거기에 온전히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하루하루가 포기하고픈 스스로와의 다툼이 된다.
그렇게 어려운 고비를 지나 마주한 첫 매치.
열에 아홉이 첫 매치에서 패배한다.
그리고 그때가, 어린 유소년들이 가장 테니스를 쉽게 관두는 시점이기도 했다.
고된 훈련을 했는데도 패했다는 좌절감.
재능이 없을 수도 있다는 의심과 비하.
하지만 그걸 이겨내는 과정에서 욕심이라는 게 생기고, 패했을 때 겪었던 감정을 다시 느끼지 않기 위해 코트에서 반드시 상대를 꺾겠다는 투쟁심도 생겨난다.
모든 것을 가진 신우주가 유일하게 부족했던 것.
그건 바로, 승리하겠다는 투쟁심이다.
한데, 그걸 조금 전 신우주가 보여줬다.
“이번 투어는 재미있을 거야.”
“그렇고말고.”
약속이나 한 듯 서로를 향해 조용히 손을 드는 두 사람.
곧, 허공에서 주먹 두 개가 맞닿았다.
툭.
* * *
“우와아-!!”
“이야-!”
짝짝짝짝짝.
“휘익-!! 휘이이익!!”
【“러브, 피프틴.”】
.
(송민희) – JTBS 캐스터
“그림 같은 드롭샷이 들어갔습니다! 아- 정말 예쁜 드롭샷이었지 않습니까?”
.
.
▷ SET 1
0 : 첸 티
0 : 신우주
나는 요즘 무척 행복했다.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한국에 와서 체결한 후원 계약들 덕분에 돈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게 되었고, 한국 팬분들의 앞에서 테니스를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좋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건, 새로운 방식으로 테니스를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난 테니스가 좋다.
정말로.
하지만, 테니스만 하면 다 좋은 건 아니다.
새로운 나라.
새로운 도시.
새로운 투어.
새로운 상대.
나는 지금 그런 것들을 마구마구 경험해보고 싶었고, 좋아하는 테니스를 통해서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매일 즐겁게 보내며 행복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내 행복을 빼앗으려는 사람이 생겼다.
그들은 나를 내가 원하지 않는 곳에 두려고 한다.
부모님께 말했을 때, 아버지는 때론 좋아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행동해야 하기도 한다고 하셨다.
그때가 바로, 남자가 되는 거라고 말이다.
그래서 난, 지금 그렇게 되려고 한다.
나는 이 생활을 지킬 것이다.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는다.
탕!
“와아-!!”
【“게임, 우주.”】
포인트를 하나 내어주긴 했지만, 첫 번째 게임 포인트를 브레이크로 가져오며 벤치로 가 앉았다.
살짝 흐른 땀을 수건으로 닦아낸다.
.
(김정배) – JTBS 해설위원
“더 강력해졌네요. 두 번의 챌린저 우승이 성장의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샷이 이전보다 강하고 또 훨씬 예리하게 들어가고 있습니다.”
(송민희)
“매치가 시작되자마자, 정말 숨 쉴 틈 없이 상대를 강하게 몰아붙였습니다. 타임. 양 선수 코트를 바꿔 게임을 재개하겠습니다.”
.
통, 통, 통.
통, 통, 통.
서브를 보내기 전의 이 고요함도 좋다.
모두가 집중하고 있는 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도 더 집중하게 된다.
왼손의 볼을 높게 띄워 올린다.
방향은 1시에서 12시.
가볍게 점프하며, 오른손으로 라켓을 강하게 휘두른다.
타앙-!!
퉁!
“오오오-!”
센터서비스라인을 통과한 서브가 펜스에 부딪혔다.
코트를 바꾸며, 볼 퍼슨에게 공을 전달받았다.
그중에서 하나를 바로 골라냈다.
지금, 굉장히 느낌이 좋다.
템포를 끊어가고 싶지 않다.
통, 통, 통.
볼을 코트에 튕기며 생각했다.
좀 더 강하게 서브를 넣자고.
아까의 서브는 좋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잘할 수 있다.
느껴진다.
지금의 나라면.
통, 통, 통.
“…….”
할 수 있다.
타앙-!!
.
(송민희)
“다시 서브 에이스! 와, 엄청나게 빠른 서브였습니다. 대만의 첸 티 선수. 전혀 반응하지 못했습니다.”
(김정배)
“뭐가 바뀐 거죠? 아니면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승리를 향한 신우주 선수의 의지가 중계하고 있는 여기까지 느껴질 정도입니다. 속도를 정확히 측정할 수 없는 게 조금 아쉽네요.”
.
마지막 연습 때 샷을 주고받으면서 느꼈다.
오늘 상대는 그리 강하지 않다.
최대한 빨리 경기를 끝낼 생각이다.
탕!
“와…….”
【“포티, 러브. 우주, 게임 포인트.”】
빠르게 세 개의 포인트를 따낸 후에 나는 네 번째 서브를 넣었고, 상대는 이를 백핸드로 어렵게 받아냈다.
테니스공이 하늘 높이 떠오른다.
그것을 보며, 앞으로 움직였다.
네트 근처.
나는 일단 볼이 한 번 코트에 떨어지기를 기다렸다가, 적당한 높이로 다시 튕겨진 공을 강하게 내리쳤다.
타앙!!
.
(송민희)
“이거죠! 신우주 선수가 가볍게 게임을 가져갑니다!”
.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공을 빼내어 뒤로 굴린다.
라켓을 한번 확인한 다음엔 듀스코트에 섰다.
토리노에서 샀던 이 라켓에도 완전히 익숙해졌다.
확실히 나는 바볼랏보다는 윌슨이 맞는 것 같다.
헤드의 무게도 좋고, 중심도 잘 잡힌다.
가볍게 휘둘러 보는 라켓이 무척 마음에 든다.
【“서비스 레디, 첸. 플레이.”】
상대는 첫 두 게임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테니스를 보여줄까?
평소라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것을 기다렸겠지만, 오늘은 별 관심이 없다.
볼이 떠오르고, 라켓이 휘둘러진다.
뭔가 어색해 보이는 서브.
탁.
역시나, 네트에 걸렸다.
“폴트!!”
상대는 심호흡하며 진정하려는 듯했다.
세컨드 서브.
분명 킥(Kick)으로 올 거다.
탕!
오후가 되며 하늘에서 쏟아지는 열기는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한낮의 햇볕을 잔뜩 머금은 코트는 생각하는 것보다 볼이 더 높게 튕겨져 오른다.
재빠르게 스텝을 옮겨 잡은 포핸드 포지션.
가볍게 뛰어오르면서 스윙을 가져간다.
탕!
.
.
탕!
오늘 처음으로 네 번 이상의 랠리가 이어진다.
하지만, 곧 끝나리란 것을 알고 있다.
탁.
사실, 지금의 랠리는 내가 끌고 온 거다.
상대에게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평범하게 백핸드로 랠리를 이어갈 수 있는 상황에서조차, 힘에서 밀리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런 정신적인 충격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탁.
“폴트!!”
【“더블 폴트. 러브, 써티.”】
다시 듀스코트로 돌아가기 전, 나는 고개를 잠시 들어 높으신 분들이 앉아있는 곳을 바라봤다.
누구도, 내 테니스를 망치지는 못할 거다.
.
.
▷ GAME SET(32강)
0 0 : 첸 티
6 6 : 신우주
* * *
[역시 소문대로! 신우주, 부산 오픈 32강전에서 압도적인 실력 뽐내…… 오늘 경기를 치른 대한민국 선수 중 유일하게 16강 진출 확정. – 성동 스포츠].
.
[화려한 한국 데뷔! 신우주, 다른 한국인 선수와도 실력의 격차를 드러내…… 오늘 경기를 치른 한국 선수 중 유일한 승리를 거두며, 부산 오픈 16강 진출 확정! – OSEM]* * *
#. 오후 8시 35분
#-1. 부산광역시, 온천동
#-2. 호텔 농심
신우주의 압도적인 실력은 팬들을 흥분케 했으나, 한편으론 한국 테니스의 현실을 알려줬다.
그 어느 때보다도 테니스 열기가 높은 지금, 세 명의 한국인 선수가 내일 떠나게 될 호텔 농심의 분위기가 썩 좋지 못한 이유다.
객실로 돌아온 주홍진이 침대에 걸터앉는다.
“후우-”
다소 피곤한 기색.
조금 전까지, 그는 탈락한 이들을 위로하고 왔다.
탈락도 탈락이었지만, 그들을 더욱 괴롭게 만드는 건 신우주와 자꾸 비교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빛이 클수록, 그늘도 짙은 법.
낯선 관심도 그들에겐 독이었다.
팬들이 없는 코트에서 오히려 더 본인의 실력을 잘 발휘한다는 슬픈 사실 또한, 현재 대한민국 선수들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 같아 주홍진을 괴롭게 했다.
‘이대론 안 돼…….’
현재 대한민국 테니스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그 이유는 물론 신우주란 소년의 등장이다.
한국 테니스가 그토록 바란, 개천에서 태어난 용.
오늘 경기를 직접 보면서 그것을 확신했다.
저 아이는 진짜라고.
테니스를 향한 팬들의 관심을 증대시키는 것은 물론, 나아가 향후 우수한 투어 선수가 계속해서 탄생할 수 있도록 하는 선구자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모든 걸 신우주에게 맡길 순 없다.
그것만으론 일이 잘 풀리진 않을 것이다.
진정으로 한국 테니스가 변하려면, 지금이라도 유망주들이 해외의 우수한 아카데미에서 훈련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중국처럼 시(市)나 도(都) 차원에서 선수를 후원해 주진 못하더라도, 대만/호주가 하듯이 협회에서 유망주를 해외로 보내는 것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언제까지고 협회가 지원할 수도 없으니, 우수한 코치를 육성하려는 노력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주홍진은 그렇게 만들 열의가 있었다.
문제는 돈을 포함한 정치적 요소다.
대한 테니스 협회보다는 대한 체육회와 더 가깝게 지내는 코치·선수·학부모가 훨씬 많다.
그것도 바꾸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정책을 짜더라도 그 효과를 100% 발휘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향후 몇 년이 중요했다.
별다른 문제가 없는 한, 신우주는 2020년 도쿄에서 열릴 하계 올림픽에 테니스 대표로 출전할 것이다.
현재까지 대한민국에서 테니스 종목으로 올림픽에 출전한 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의 이형택이 유일하다.
그러나 참가 자체에만 의의를 뒀던 이형택과는 달리, 4년 뒤의 신우주는 진지하게 메달을 노려볼 만한 위치에 서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 역시 개인의 성과다.
똑똑똑.
“…….”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고민이 깊어져만 가던 주홍진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회장님, 장관님이 떠나셨습니다.”
“그래. 다른 사람들은?”
“부산 시장과 경남 도지사도 내일부터는 참관하러 오진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 고생했네. 자네도 쉬게.”
“네.”
직원을 돌려보낸 주홍진.
그가 신우주의 데이비스 컵 참가를 원치 않았던 건, 크게 두 개의 이유에서였다.
첫째론 현재 한국 테니스의 수준으론 아시아 지역 예선도 통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작년, 대한민국은 타슈켄트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과의 데이비스 컵 아시아 지역예선 2라운드에서 2-3으로 패배했다.
정현이 첫 경기에서 승리했으나 홍성찬이 힘 한번 써보지 못하며 0-3으로 패했고, 남지성/송민규가 출전한 복식에서도 마찬가지로 0-3으로 졌다.
결국 다시 정현이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서 네 번째 단식 경기에 나섰으나, 처음부터 몸이 좋지 않아 보였고 결국 2세트 도중 기권을 해버렸다.
그 시점에서 대한민국의 데이비스 컵 월드 그룹 플레이오프 진출 꿈은 무너졌고, 홍성찬이 집중력을 발휘해 마지막 경기를 가져왔지만 누구도 그에 웃지 못했다.
주홍진은 신우주가 출전한 데이비스 컵의 미래가 쉽게 그려졌다.
한창 투어에 참가해야 할 시점.
한국으로 불려와 합숙하게 될 것이다.
그런 뒤엔 의미 없는 경기를 뛰어야 한다.
물론 신우주가 온다면 이듬해 본선 플레이오프까진 도달할 수 있겠지만, 결국 거기를 또 뛰어넘지 못한다면 다시 아시아 지역 예선으로 돌아가야 한다.
신우주가 출전할 두 개의 단식 경기에서 승리한다고 가정했을 때, 과연 남은 세 경기중 하나라도 이길 수 있을까?
그리고 대한 체육회가 신우주에게 복식도 뛰라며 3일 연속 경기를 하도록 강요하지 않으리란 확신을 할 수 있을까?
대표팀 유니폼을 입는 순간, 거절할 수 없게 된다.
딸깍.
치-익.
편의점에서 산 맥주와 육포로 하루를 마무리하려는 주홍진은 그래서 신우주의 데이비스 컵 출전을 반려한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데이비스 컵 아시아 지역 예선은 국제전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다른 선수들에게 실력을 키울 좋은 무대다.
미래를 생각하면, 그들이 얻는 기회도 중요했다.
신우주 없이 본선 플레이오프에 진출해야 한다.
그 정도 실력이 되어야, 신우주를 불러올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아까운 재능만 낭비하는 셈이다.
나아가 만약 신우주가 올림픽 메달을 딴 상태로 데이비스 컵까지 출전하게 된다면, 그땐 대한 체육회라고 해도 신우주를 흔드는 것엔 한계가 있을 것이다.
바로 이게, 주홍진이 그리는 미래다.
신우주가 이끌 대한민국 테니스팀.
그 팀이 데이비스 컵 본선에 나서는 것.
정말로 그런 미래가 온다면, 주홍진은 기꺼이 자신이 만든 유산을 다음 사람에게 넘겨줄 용의가 있었다.
가장 제대로 된 이에게 말이다.
그때가 올 때까진, 주홍진은 신우주에게 말했던 좋은 어른이 되는 일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비록 고되고 힘든 길이 되겠지만, 지금까지 걸어온 방향을 돌아보면 이보다 더 힘든 일이 잔뜩 있었다. 오히려 신우주가 나타난 지금이 훨씬 쉽고 행복했다.
드르렁-
퓨우-
드러러엉-
퓨우-
대한민국 테니스는 이제, 내일의 해를 맞이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