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11)
1등. 루체 엘타니아 8350점
2등. 카야 아스트레앙 8200점
3등. 시엘 카르네다스 8020점
4등. 트리스탄 험프레이 7720점
5등. 도지 투 말스 7600점
.
.
.
.
.
.
300등. 아이작 20점
“이안 녀석은 의외네. E급이면서 240등이라니···.”
“뭔가 요행이 있었겠지.”
“풋, 요행 부린 것도 그나마 칭찬해 줄 만하지. 같은 E급인 아이작 좀 봐라. 20점이다, 20점.”
“20점? 사람이냐···?”
마법학부 건물, ‘오르핀관’.
그 건물 1층 홀에 마법학부 1학년 학생들이 몰려 있었다.
홀 중앙 벽면에는 큰 양피지가 걸려 있었고, 거기엔 반 배정 평가의 결과가 새겨져 있었다.
‘꼴등···?’
마법학부 1학년 총 정원 300명 중 300등.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꼴찌였다.
반면에 같은 마력량 E급인 이안은 240등. 내 초라함이 한층 돋보인다.
힐끔힐끔 나를 쳐다보며 비웃는 학생들.
하···. 세상만사 내 뜻대로 되지 않는구나.
반 배정 평가는 말 그대로 각 학생들을 어느 반에 배정시킬지 정하기 위한 시험이다. 지금까지의 임시 반은 이름 그대로 임시였을 뿐.
나는 당연히 최하위인 D 클래스에 배정받을 것이다.
참고로 클래스 배정은 반 배정 평가 결과뿐만 아니라 마력량 측정 결과도 반영된다. 즉, 마력량 E급인 이안 페어리테일도 나와 같은 D 클래스에 배정받을 예정이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를 플레이했을 때도 무조건 반 배정 평가 결과는 D 클래스였다. 결국 이안으로선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D 클래스 자체는 문제없었다. 어느 클래스에 속하든, 나는 최선을 다해서 강해질 셈이니까.
문제는··· 돈이었다.
‘20점이니까 20겔···.’
내게 주어질 겔은 20겔.
10겔짜리 빵 두 개 값이다.
당장에 이것만 먹고 어떻게 살라고···.
“···대출밖에 답이 없나.”
아무래도 채무자 신세를 면치 못할듯하다.
아카데미와 은행은 학생 정보가 공유된다. 이 섬의 은행 자체가 아카데미 휘하에 있기 때문이다.
대출채권이 부실채권이 되면 신용등급이 하락하고, 해당 학생은 수행평가 결과에서 불이익을 입게 된다.
능력이 부족하면 아카데미에서 나가고, 아니면 죽어라 노력하라는 의미다.
메르헨 아카데미의 엘리트주의, 약육강식 교육방침에 걸맞은 무자비한 시스템이었다.
‘내 인생···.’
나는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
반 배정 평가 직후, 루체는 마족이 나타났다고 학사에 보고했다.
교수진은 긴급회의를 열었다. 나는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지 알고 있다. 게임에 나왔었기 때문이다.
일단 마족 출현 건은 학생들의 혼란을 예방하기 위해 비밀리에 부칠 것이고.
외부에서 누군가 침입한 흔적은 없었으니, 마족은 처음부터 델핀 숲 안에 있었다고 결론 났을 것이다.
따라서 학사 측은 아카데미 부지를 샅샅이 조사하며 위험 요소를 찾아내고 배제하는 방향으로 대안을 마련했을 터.
물론 학사 측의 대안은 큰 실효를 거두지 못한다.
시험 직전에 시험장을 구석구석 조사하고 결계를 친다 한들.
마나의 형태로 땅 밑에 잠들어 있던 마족이 시험 도중에 튀어나오는 건데···.
못 막지, 못 막아.
결국 이사장과 교장의 어깨가 무거워질 예정이다. 그래도 아카데미는 계속 돌아갈 테니 걱정은 없다.
그러나, 이번엔 기존의 게임 스토리와 다른 점이 있었다.
‘내가 끼어들었지.’
바로 나, 아이작이라는 존재다.
루체는 마족을 쓰러뜨린 괴물, 즉 나에 대한 보고도 한 모양이었다.
아카데미 광장 게시판에 올라온 공고문을 보고 알 수 있었다.
공고문엔 울퉁불퉁한 근육을 지닌 인간형 괴물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고, ‘이러한 외형의 거수자를 본 학생은 제보 바란다’라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
‘역시 이 모습이구나···.’
게임에서 마법 위장복을 입으면 스킨을 입힌 것처럼 캐릭터가 변화한다. 그래서 버서커가 얼마나 무섭게 생겼는지 진작 알고 있었다.
키는 2m 이상. 터질 듯한 근육을 지니고 있다. 그 엄청난 덩치를 지닌 녀석이 얼굴은 포악한 괴수처럼 생겼다.
피부는 새까맣고, 입은 커다랗고.
날카로우나 가지런히 나열된 큼직한 이빨은 훤히 드러나 있다. 거기다 송곳니는 검치호랑이처럼 크다.
후드를 눌러 쓴 채라 눈가가 어둡게 보이는데, 그 안에서 내비치는 동그랗고 불길한 붉은 안광은 몹시 위협적이다.
‘내가 마족이라고 오해 받을 판이네.’
마족은 이안이 졸업할 때까지 계속 나올 예정이고, 나는 마족들을 계속 잡아나갈 예정이다.
마족 때문에 골머리를 앓게 될 학사 측이 그런 나를 알게 된다면, 어떤 번잡한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내 존재가 학생회장 앨리스 캐럴의 귀에 들어가는 건 시간 문제가 되겠지.
학생들한테 떠벌려지는 경우도 마찬가지. 상상만 해도 머리 아프다.
최대한 변수를 줄여나가면서 최종 보스인 악신 네피드에게 도달하는 게 베스트일 터다.
그래서 마법 위장복을 샀건만, 하필 버서커 스킨이라니···.
괜히 마족 잡다가 외형 때문에 오해 받고 공격당하면 그만한 낭패가 어디 있겠어.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처음에 그 옷이 무슨 콘셉트인지 알아볼 방법을 몰랐던 데다가. 재고가 그 옷 하나뿐이었고, 상점 주인은 아무 설명 안 해줬으니···.
‘그렇다고 이제 다른 걸 살 수도 없고···.’
비밀 상점의 특징 중 하나는 환불 및 교환이 안 된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다른 마법 위장복을 사기엔 가격대가 심히 부담스럽다.
당장에 나는 빵 2개만 사 먹어도 전재산이 털리는 입장이니까.
애초에 다른 재고가 들어왔을 지도 의문이다.
“배고파···.”
배에서 경적이 울린다. 배고프다···.
그러나 내 손에 들려 있는 건 고작 10겔짜리 빵 하나뿐.
대낮의 햇볕을 받으며, 나는 아무 벤치에 앉아 빵을 우걱우걱 먹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재산은 10겔. 이따가 은행가서 대출이나 받아야지···.
이제 막 반 배정 평가를 봤을 뿐인 신입생이면서 벌써부터 빚쟁이 신세라니.
셀 수 없이 게임을 플레이해 오면서 이런 적이 없었는데···.
애달프다, 정말.
“혼자냐?”
대뜸 뒤에서 굵직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를 플레이하며 주구장창 들어온,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였다.
나는 고개를 뒤로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눈에 담았다.
[ 마테오 조르다나 ]Lv : 75
종족 : 인간
속성 : 바위
위험도 : X
갈색 머리카락은 앞머리를 까서 이마를 훤히 드러낸 채였고, 이목구비는 뚜렷했다. 체격도 건장한 녀석이라, 바위 원소 속성이라는 이미지에 잘 어울리는 녀석.
마테오 조르다나.
곧 있으면 이안 페어리테일과 맞붙을 예정이며, 차후 비중 있는 조연이 될 네임드 캐릭터였다.
멀뚱히 쳐다보고 있자, 마테오가 자신을 소개했다.
“마테오 조르다나다. 아이작, 맞지?”
벤치를 짚고 상체를 살짝 숙여 묻는 마테오.
목소리가 동굴 안에 있는 것처럼 울린다. 내 목소리에도 저렇게 남성미가 넘쳐흘렀으면 좋겠다.
“맞는데, 왜?”
“고작 빵 하나···. 제대로 된 식사는 하지 않는 건가?”
“겔이 없어서.”
“벌써 겔을 다 썼다고? 아니지, 설마··· 강도짓이라도 당한 거냐?”
마테오는 눈살을 확 찌푸렸다.
꼭 내 편을 들어 주려는 반응이었다. 당연했다. 녀석은 평민이어서 같은 평민인 나한테 동질감을 느끼고 있으니까.
나중에 결성되는 마테오 패거리는 전부 평민 출신이다. 마테오는 귀족을 향해 반기를 들 예정이고, 그 첫 번째로 갈등이 일으킬 상대가 이안이었다.
그리고 아이작, 바로 나는 잠시 동안 이 녀석의 부하가 되어야 한다.
배드 엔딩을 막기 위해서다.
“뭐···, 그렇지.”
일부러 구라 좀 쳤다. 연민을 사고 밥 좀 얻어먹고 싶어서였다.
마테오는 동료애가 강한 성격인지라, 나 같이 불쌍한 놈은 쉽게 무시 못 한다. 그리고 현재 그 동료애는 ‘평민’에게 향해 있었다.
게다가 녀석은 절약 정신이 습관화되어 있는 데다가, 마법 실력도 상위권이다. 무조건 겔이 남아 돌 것이다.
“제길, 귀족 놈들의 소행인가···! 당장 따라와라. 영양 밸런스를 맞춰주지.”
내가 강도를 당했다는 게 귀족 소행인지 평민 소행인지도 안 밝혔는데, 마테오는 지레짐작했다.
밥만 얻어먹을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녀석의 성격상, 당분간 밥을 얻어먹을 수 있을 듯했다.
개꿀이다.
물론 밥을 얻어먹은 빚은 나중에 한꺼번에 청산할 예정이다.
나는 마테오와 함께 학생 식당에 가서 50겔짜리 학식을 얻어먹었다. 녀석은 누구한테 강도짓을 당했는지 물었지만, 나는 야밤중에 당한 거라 모르겠다고 얼버무렸다.
······
“마력량 측정 결과와 반 배정 평가 결과를 합산해 반을 결정지었다. 여기는 가장 수준이 떨어지는 D 클래스.”
강의실 안. 20명이 모여 있는 그곳에서 나는 중간 자리에 앉아 있었다.
최상위인 A 클래스엔 5명, 최하위인 D 클래스엔 20명이 배정되었다. 나머지 학생들은 B와 C 클래스에 몰려 있었다.
즉, 내가 있는 이곳은 D 클래스 강의실이었다.
“즉, 여기 있는 너희들은 현재 마법학부 1학년 중 가장 실력이 뒤떨어지는 열등생이란 얘기다.”
강단 앞, D 클래스 담당 교수가 푸른 눈동자로 학생들을 훑으며 무감정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은발을 가진 수려한 외모의 남자, 페르난도 교수였다.
D 클래스 여학생들의 헤롱거리는 모습이 눈에 비쳤다. D 클래스에 와서 다행이라는 우스갯소리마저 들릴 정도였다.
···매도해 줘서 기쁘다는 말은 누가 한 거지?
“이곳은 메르헨 아카데미. 약육강식의 세계.”
페르난도 교수는 뒷짐을 진 채 좌우로 천천히 왕복하며 말을 이어갔다. 그가 신은 구두굽 소리가 또각또각 강의실을 울렸다.
“교육의 기회는 평등할지언정, 결과에서 약자를 향한 배려는 없다. 너희들이 강해지지 않는다면, 상위권 클래스 녀석들에게 잡아먹힐 뿐이다. 살아남아라. 낙제는 퇴학이다.”
수준 미달은 낙제. 낙제 3번은 퇴학.
그러고 보니 게임 초반부 이후 아이작이 등장하지 않았던 건, 설마 퇴학당해서···?
···열심히 해야겠다.
“아무리 D 클래스라고 해도, 너희들은 메르헨 아카데미 학생답게 엘리트 중의 엘리트가 되어야 한다. 철저히 발전해라. 죽어라 노력해라. 그것이 예비 마법사이자 메르헨 아카데미 학생인 너희들의 의무다. 그리고 졸업장 들고 나가는 거다. 알겠나?”
멈춰 선 채 학생들을 향해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묻는 페르난도 교수.
여학생들이 꺄악, 거리며 ‘네에─!’ 하고 활달하게 대답했다.
기대했던 진중한 분위기가 아닌지라 페르난도 교수는 당황한 듯했다.
나는 이 짧은 오리엔테이션을 지겨울 정도로 반복해서 들어왔기에, 이제는 대사를 거의 다 외울 지경이 되었다. 성대모사도 쌉가능이다.
“흠흠. 그럼, 앞으로의 D 클래스 커리큘럼을 설명하겠다.”
게임에선 여기서 컷씬이 끝나고 장면이 전환되면서 「2막 1장, D 클래스」 문구가 뜬다. 스토리 제 2막이 시작되었다는 의미다.
그러나 여기선 그저 페르난도 교수의 오리엔테이션이 이어졌다. 게임 밖의 이야기인 셈이다.
참고로 악의의 트레비옹 잡는 파트가 「1막 1장, 이안 페어리테일」.
마력량 측정 파트가 「1막 2장, E급의 열정가」
반 배정 평가 파트가 「1막 3장, 반 배정 평가」다.
“······1학기 동안 한 가지 원소 속성을 집중적으로 숙달해라. 1학기 커리큘럼도 거기에 맞춰 짜여 있다. 원소 속성 하나만 제대로 숙달해도 마법사로서 1인분은 할 수 있을 테니.”
아카데미 커리큘럼에 맞춰서, 1학기 동안에는 얼음 마법을 집중적으로 숙달하는 편이 효율적일 것이다.
두 번째 원소는 1학년 2학기 때 익힐 수 있겠지.
이후로도 페르난도 교수는 앞으로의 일정을 설명했다. 전부 내가 아는 내용이었다.
커리큘럼과는 상관없는 얘기지만, 곧 있으면 「2막 2장, 소꿉친구 납치 사건」이 시작된다. 이안과 마테오가 엮이는 파트다. 이때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심해 고리’라는 전리품을 얻을 수 있다.
그다음은 「2막 3장, 실습 훈련」 파트.
실습 훈련 도중엔 악명 높은 「2막 4장, 개미 군단」 파트가 이어진다. ‘은둔의 가르지아’, 속칭 ‘개미 새끼’가 나온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 지옥 난이도 통곡의 벽 중 하나. 사람들한테 온갖 욕이란 욕은 다 먹었던 마족이다.
패턴이 무척이나 까다로운 데다가 레벨은 무려 140. 지금의 나로선 [멸악자] 특성을 발휘해도 잡기 어렵다.
거기다 가르지아의 하수인, ‘재해 개미’ 군단은 집단지성이 뛰어나 온갖 인해전술로 플레이어를 압박해 온다.
안 그래도 어려운 난이도가 왜 단번에 급등하는가? 그 이유는 가르지아의 설정 때문이다.
일단 미리 생각해 둔 가르지아 대비책은 있었다. 잘 되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가르지아는 통곡의 벽으로 불리는 만큼, 잡기만 하면 ‘재해의 검집’이라는 아주 유용한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
‘그건 무조건 내 차지다.’
‘재해의 검집’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누구한테도 양보할 수 없다.
다음은 「3막 1장, 대련」 파트.
이때 대인전 수행평가가 예정되어 있다. 즉 대련이다. 1학년생들끼리 1대 1로 싸우는 방식.
이안이 루체와 싸우면서 빛 속성 마법을 발휘해 학생들을 놀라게 하는 장면이 이 파트의 핵심이다.
‘난 누구랑 싸우냐.’
그때쯤이면 나도 조금은 더 강해져 있겠지. 내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파악하기 좋은 척도가 될 것이다.
카야 같은 넘사벽만 피하자. 압도적으로 발릴 게 뻔하니까.
다음은 「3막 2장, 사역마」 파트. 이때 사역마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대망의 1학기를 마무리 짓는 파트, 「3막 3장, 학기말 시험」. 도중에 「3막 4장, 뇌신조 토벌전」으로 이어진다.
3막 4장까지 마쳤으면 1학기는 끝, 방학 시작이다. 강해지기 위해서, 방학 계획은 아주 구체적으로 짜놔야 할 것이다. 그 전에 뇌신조한테서 살아남아야겠지만.
계속 생각하자. 각 에피소드를 최대한 세세하게 떠올려 꿀이란 꿀은 모조리 쪽쪽 빨아 마시는 거다.
그리고.
‘이 게임을 클리어해야지.’
악신 네피드를 쓰러뜨리고, 이 게임을 클리어하는 거다.
* * *
루체는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A 클래스에 배정된 그녀.
한 학생은 이미 인맥 쌓기를 진행하고 있었고.
“루체 엘타니아, 만나서 반가워. 나는 화이트클락 가문의….”
휙.
루체는 강의실에 도착한 후 자신과 친분을 쌓으려는 학생을 무시. 그러고선 차가운 태도를 일관했다.
애초에 그녀는 타인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인맥도, 청춘 라이프도 그녀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녀는 오로지 ‘메르헨 아카데미 마법학부 수석 졸업장’ 하나만 바라보고 이 아카데미에 들어왔으니까.
그러면 인생은 탄탄대로가 될 테고, 그녀의 목적인 마탑주도 될 수 있을 터다.
“…….”
헌데···.
작은 생선 가시가 목에 걸린 것처럼, 자꾸만 신경쓰이는 게 있었다.
A 클래스 담당인 필립 교수의 수업 내용이 조금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알고 있던 내용을 복습한다는 느낌이라 상관없긴 했지만.
‘마족, 그릉···.’
루체는 반 배정 평가 때 있었던 일을 학사에 보고한 후, ‘외부의 침입은 없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즉, 그릉이나 마족은 처음부터 델핀 숲에 있었다는 얘기.
‘그때 델핀 숲엔 우리 학부 1학년생만 있었어. 마족이나 그릉이 위장 마법 같은 걸 쓴 마법학부 학생이었을 가능성은? ···적어도 마족 쪽은 아니야.’
메르헨 아카데미 신입생은 무슨 원소 속성을 지녔는지 면밀한 검증 절차를 거친다.
아주 만약에, 지능 있는 마족이 아카데미에 들어왔다면 어둠 속성 마나를 들켰을 것이다. 즉, 적어도 마족 쪽이 공식 학생일 가능성은 없었다.
‘근데 그릉은 달라.’
반면에, 그릉은 단순히 ‘얼음 속성 마법’만을 보여줬다. 평범한 원소 속성. 그 괴물 쪽은 충분히 아카데미 학생일 가능성이 있었다.
‘꼭 마족을 처단하러 나타난 것 같았지, 그릉···. 반 배정 평가 때 마족이 나타날 걸 미리 알고 있었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만약 그릉이 마법학부 1학년생이라 반 배정 평가 때 델핀 숲에 있었던 거라면? 마족을 처단하려는 목적으로 메르헨 아카데미에 들어온 거라면? 어떤 이유로 정체를 들키면 안 돼서 위장 마법으로 자기 정체를 숨겼던 거라면···?’
···터무니없는 괴물이 동기 중에 숨어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루체는 곧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바보 같네. 이미 첫날에 마력량 측정 끝냈잖아. 그 정도로 강한 사람이라면 그때 들켰겠지.’
마력량 측정 결과는 거짓말을 안 한다. 최대 마력량을 숨기는 건 불가능하다.
···페르난도 교수가 언급했던 ‘대마법사의 경지’가 아니라면···.
‘설마···, 아니겠지.’
아니겠지. 아닐 것이다. 그럴 리가 없다. 자신 또래의 학생이 대마법사의 경지에 이르렀을 리 없다. 현실적인 애기가 아니다.
루체는 살짝 굽힌 검지로 턱을 쓰다듬으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아니면, 그릉이 델핀 숲을 떠돌아다니던 부랑자였다든가.’
생각해 보자. 단서는 없었나?
‘···옷.’
옷. 루체는 그릉이 입고 있던 의복을 떠올렸다.
그녀의 눈썰미는 밤의 숲에서 마법이 발현되며 빛을 비추던 때, 그릉이 입고 있던 옷의 생김새를 포착해냈다.
사진처럼 또렷하게 기억이 되살아났다. 루체는 그 기억의 편린을 살폈다.
완전히 깔끔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거의 새 것. 부랑자라고 보기에는 어폐가 있는 옷이었다.
그게 만약 ‘마법 위장복’이었다면?
누군가가 자기 정체를 숨겨야 할 상황이 벌어질 걸, 미리 예측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얘기.
그리고··· 마족을 처단하러 나타났다는 얘기.
···말도 안 되지만, 그나마 앞뒤가 맞는 가설 하나가 떠올랐다.
‘내 동기 중에 대마법사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은 몰래 마족을 처단하기 위해 이 아카데미에 들어왔다···. 이 아카데미에 어떤 비밀이 숨어 있어서···.’
루체는 나지막이 실소를 터뜨렸다. 자신이 생각한 거지만, 너무나도 터무니없었다.
‘내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지만 만약 진짜라면?
‘···조사해 봐도 나쁠 건 없겠지.’
뇌신조-갈리아와 계약한 10살 때부터.
루체는 쭉 타인에게서 마음을 닫고 살아왔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아주 오랜만에 타인을 향한 호기심으로 들끓고 있었다.
‘일단 얼음 원소 쓰는 동기들부터 눈여겨 봐야겠네.’
루체는 깃펜으로 책 옆에 놓인 양피지에 결정사항을 적었다.
[그릉의 정체 밝혀내기]그러고는, 그 문장에 밑줄을 매끄럽게 슥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