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123)
※ 2022.08.07
모놀로그 5편 수정되었고, 6편 새로운 내용으로 올립니다.
5편 수정된 내용은 이번 편 초반부에 요약되어 언급됩니다.
상황을 정리해 보자.
도로시가 내 색을 되찾아준 이후, 그녀는 다른 세계선에 개입한 부작용을 더 견디지 못하고 돌아갔다.
이후,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도로시라는 외부 변수가 사암의 시련에 큰 영향을 끼쳤다며, 암철검이 시련을 재조정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지.
그리고 대뜸 세상이 악신의 마법으로 붕괴되기 시작했고, 멀리선 정체불명의 괴물이 튀어나온 상황.
그다음, 시스템 창에는 이런 내용이 떴다. 악신 네피드가 모든 세계에 종말을 불러왔으니, 무언가가 초기화될 때까지 살아 남으라고.
게다가, 이제는 무언가의 초기화를 위한 로딩이 진행되고 있었다.
맥락상 이런 막장인 세계에서 초기화란, 과거로 되돌아간다는 것일까. 그럼 언제로?
으, 머릿속이 복잡했다.
‘왜 이런 게 뜨는데?’
애초에, 이런 게 내 트라우마랑 무슨 상관이 있는데?
모든 시련은 트라우마 극복이 주된 목적이잖아?
…됐다. 지금은 오로지 합리적인 판단만 해야 한다. 지반이 무너지고 있고 악신의 화염 비가 쏟아져 내리고 있으니, 당장에 답을 알아낼 수 없는 의문은 보류해 둬야 했다.
어쨌든, 주어진 목표는 명확했다. 초기화 로딩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는 것.
얼마 안 있으면 이 세계는 완전한 종언을 고하게 될 터.
피할 곳은 없었다. 어디로 가든 죽는다.
문제는… 초기화 로딩이 더럽게 느리다는 점이었다. 이 세상이 사라지기 전까지 로딩이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앗!”
검은 화염 비가 날아와 내 왼팔에 달라붙었다. 온갖 위협을 피해 다니더라도 전부 피하는 건 불가능했기에.
검은 화염이 내 손을 단숨에 소멸시키고, 빠른 속도로 팔을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콰아아아────!!
망설일 틈도, 공포감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내 마법의 영향을 받겠다는 의지를 품고, 검은 화염이 채 올라오기도 전에 내 왼팔에 거센 [빙결 폭발]을 날렸다.
얼음 마력의 폭발은 왼팔을 가볍게 날려 버렸고.
허공에 붕 떠오른 팔 한쪽은 검은 화염에 잡아먹혀 허무하게, 잿더미가 되어 사라졌다.
“끄으으윽…!”
아프다, 더럽게 아프다.
어깨 쪽에서 미친 듯한 통증이 몰려오고 있었다.
어깨의 단면이 얼음으로 꽁꽁 언 덕분에 피가 새어 나오지 못했다. 고통을 참기 위해 아랫입술을 거세게 깨물고 계속 도망쳤다. 입술에선 비릿한 피 맛이 났다.
다행히 이런 상황에서도 [얼어붙은 영혼] 효과 덕분에 이성적인 사고를 유지할 수 있었다. 고통이 더욱 또렷하게 느껴진다는 단점만 제외한다면 정말 다행이었다.
‘빨리 생각해…!’
로딩이 끝날 때까지 이 세계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러나 이 세계가 멸망하는 게 로딩이 끝나는 속도보다 훨씬 빠를 터.
살아남을 방법은?
“…….”
문득 검푸른 파문을 연신 일으키고 있는 거대한 존재가 눈에 담겼다. 노이즈로 뒤덮여 있으나, 언뜻언뜻 노이즈가 전신을 감추지 못해 생겨난 틈새에서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한 이질적인 눈 수십 개가 엿보이고 있었다.
“……!”
이윽고, 하나의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왜 진작 깨닫지 못했지?’
저 정체불명의 괴물 자체가 힌트였다. 저놈이 어디 사는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저놈에게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 내게 답을 알려주고 있었다.
죽을힘을 다해 내달려 내가 도착한 곳은.
콰아아─!
원룸텔이었다.
잠금장치를 열 시간조차 아까워서 가벼운 [빙결 폭발]로 문짝을 날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도시를 메운 건물들은 위쪽부터 잿가루가 되어가고 있었기에, 아직 내가 사는 반지하 원룸은 사라지지 않은 상태였다.
내 키보다 높게 쌓여 있는 책 무더기를 날려 버리고, 이 좁디좁은 방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콘솔 게임기를 켰다. 이 게임기 안에는 언제나 >메르헨의 마법 기사>가 들어 있었지.
화면에 치이익, 거리며 노이즈가 일었다. 아랑곳하지 않고 남아 있는 손으로 컨트롤러를 쥐고서 바닥에 나앉았다.
“이상하다 했다.”
노이즈, 그놈의 노이즈. 소리까지 치이익, 거리기만 해서 영락없이 >메르헨의 마법 기사>가 실행되지 않는 거라 믿고 있었다.
시야를 가리고 있는데, 하물며 청각을 속이지 못할까.
PC방에서도, >메르헨의 마법 기사>를 검색했을 때 정보는 가려졌어도 화면은 멀쩡했었지.
지금 대한민국 어딘가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괴물에게서도 노이즈가 일고 있으나, 노이즈와는 별개로 괴물은 분명 자리에 있었다.
즉, >메르헨의 마법 기사>는 멀쩡히 있는 것이며.
‘이게 해답일지도 몰라.’
치이이익….
노이즈가 점차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화면을 가린 노이즈에는 구멍이 뚫렸다 다시 메워지는 현상이 반복되었고, 그때마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 타이틀 화면으로 넘어가기 전 컷씬이 얼핏 내보이기도 했다.
만약 노이즈를 일으킨 장본인이 정체불명의 괴물이라면, 놈은 힘을 잃어가고 있는 듯했다.
시간이 없었다. 나는 수 년간 손에 익어온 감각대로 컨트롤러 버튼을 눌렀다. 그냥 똑같은 버튼 연타일 뿐이었지만 타이밍은 잴 수 있었다. 이쯤이면 타이틀 화면일 터.
“…어?”
노이즈가 점점 힘이 약해져 갔기에, 콘솔 게임기 화면은 마치 깨진 화면처럼 >메르헨의 마법 기사> 타이틀 화면을 내비쳤다.
타이틀 화면에서 [이어가기] 버튼이 활성화 되어 있었다. 그것을 누르자 단 하나의 세이브 파일이 나타났다. 내 기억과는 상반되는 광경. 언어가 깨져서 무슨 세이브 파일인지 구분이 안 되었으나, 시점만큼은 명확히 보였다.
Bad Ending N.49 「종언」.
배드 엔딩이 진행되는 도중에 세이브를 한 것. 그런 세이브 파일만 남겨둔 적은 단언하건대 없었다.
화르르르륵───!
“……!”
검은 화염이 천장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바람과 잿가루가 머리 위에서 쏟아졌다. 이제 도망칠 길은 없었다.
아주 잠깐, 심호흡했다.
이제부터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러나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나는 컨트롤러 버튼을 꾹 눌렀다.
그 순간.
치이이익….
뚝.
내 시야가 전부 노이즈로 뒤덮이다 모든 감각이 뚝 꺼졌다.
◆
학원 어드벤처 잔혹동화 RPG, >메르헨의 마법 기사>.
서로 안 어울리는 수식어를 이리저리 덧붙이고 출시된 그 게임은 의외로 세간에서 큰 호평을 얻었다.
동화를 콘셉트로 한 UI나 컷신, 모험하는 기분을 한껏 만끽하게 하는 장대한 오픈 월드 맵과 오브젝트간 다양한 상호작용, 수많은 즐길 거리.
아카데미라는 주요 무대에서 게임 속 세상에 몰입하게 만드는 연출은 훌륭한 편이었고.
‘BGM기사’라는 별칭으로 불릴 만큼 깊은 인상을 안겨 주는 배경음도 많았다.
내가 그 게임에 빠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완전히 내 취향이었으니까.
“…작…!”
지옥 난이도의 악신 네피드를 이기자고 얼마나 많은 시도를 거듭했는지 모른다. 그렇기에 그 배드 엔딩은 무척 많이 봐 왔다.
배드 엔딩 N.49 「종언」.
발생 조건은 >메르헨의 마법 기사> 종장, 악신 토벌전에서 패배할 것.
내용은 몹시 짧았던 기억이 난다.
이안 페어리테일은 악신에게 패배해 죽음을 맞이하고, 세계는 악신의 마법으로 모조리 쑥대밭이 된다.
후일, 악신은 군주가 되어 세계를 재건립해 마족이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어 낸다. 이 모든 이야기가 동화풍 그림과 함께 함축되어 나왔었지.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악신이 일구어낸 디스토피아에서 인간이 살아남지는 못했을 테니, 좋은 일은 없었으리라.
“…이작…!!”
마치 머릿속이 안개로 들어찬 기분이었다. 흐릿한 목소리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뭐라 하는지는 정확히 들리지 않았다.
깜깜한 시야. 부유섬을 처치한 직후가 떠오를 정도로 내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실감이 났다.
서서히 감각이 돌아오고,
점차 내 반지하 원룸에 버금가는 습하고 퀴퀴한 냄새가 내 후각을 적셔 나갔다.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동굴 같은 곳일까.
“아이작!”
“……!”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천둥처럼 울렸다.
퍼뜩 눈을 떴다. 의식이 돌아왔다.
을씨년스러운 동굴의 풍경. 등 뒤에 느껴지는 축축하고도 단단한 느낌. 벽에 등을 기대고 숨어 있는 모양새였다.
온몸에 힘이 나지 않았다. 전신 구석구석을 바늘로 찔리는 듯한 통증만 들 뿐. 그나마 돌이 된 신체 부위는 이미 감각을 잃은 지 오래였기에,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나저나, 여긴 어디인가. 이런 동굴은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아이작…. 다행이다.”
옆에서 곱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내 옆에선, 교복 차림의 여학생이 나란히 앉은 채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더기처럼 너덜너덜해진 교복과 더러워진 피부, 끝부분이 탄 머리칼. 그러나 여전히 푸른 대양처럼 빛나는 눈동자.
안도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는, 여기서 볼 것이라고는 조금도 예상치 못했던 인물이었다.
“루체…?”
루체 엘타니아였다.
어두침침한 동굴 속에서도 교복 리본에 달린 보라색 브로치가 유달리 돋보였다. 분명, 3학년의 상징이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냐?
“나 두고 떠난 줄 알았잖아, 바보야.”
“루체, 이게 무슨…?”
“그러게. 무슨 일일까. 기절했었으니까 모르겠지, 넌. …갈리아가 목숨까지 던져서 우릴 지켜줬어. 나머지는, 전부 죽은 것 같아.”
내 어깨에 기대는 루체. 그녀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미약한 울먹임이 담겨 있는 아련한 목소리였다.
나는 기절했고, 뇌신조-갈리아가 목숨을 우릴 지키기 위해 던졌고, 나머지는 전부 죽었다….
그 정보들이 머릿속에 들어오자 가슴속이 북받쳐 오르며.
문짝을 거칠게 두들기듯, 매장되어 있던 부연 기억이 되살아나려고 발버둥을 쳐댔다.
[ 상 태 ]이름 : 아이작
Lv : 178
성별 : 남
학년 : 3
칭호 : 냉철 3학년
마력량 : [※ 마력 고갈 상태입니다]
– 마력 회복 속도(S)
“아….”
상태창을 켜자 심해 속에 감춰져 있던 것이 수면 위로 떠오르듯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세세하게 떠오르지는 않았으나, 이 세계 기준으로 아까 전까지 벌어졌던 일들은 전부 기억났다.
나는 악신 네피드와 싸워서 패배했고.
루체가 어떻게든 나를 구해 내는 데 성공했지만, 악신의 마법이 내려앉아 세계에 종말이 찾아왔다.
루체의 말대로라면 뇌신조-갈리아가 목숨을 바쳐 우리를 한번 지켜 주었던 모양.
이 동굴 밖은 그야말로 마족이 지배하는 세계. 흑염체 군단과 파멸룡-아지 다하카가 돌아다니고 있을 테고, 앙그라 마이뉴가 멸망한 세상을 관조하고 있을 터.
허공에 떠 있는 로딩 창을 보았다. 이제 73%.
그제야 내 눈앞에 떠 있는 로딩 창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초기화란 건, 내가 빙의된 시점으로 옮겨지는 것.
즉 내 기억 속 게임에 빙의된 시점이, 실제로는 처음으로 빙의된 때가 아니었던 것이다.
“…….”
아무 말도 꺼낼 수 없었다. 뒤통수를 거칠게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기에.
나는 이미, 악신과 맞붙은 적이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