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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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호-마에.
화봉국에서 폭군처럼 군림하는 미야가 암살 공작에 쉽게 당하지 않은 연유에는 그 마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
한때, 구미호는 다가오는 이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독석(毒石)으로 둔갑한 채였다.
인간들에게 죽임 당할 뻔하고 인간 불신이 심지까지 깊게 뿌리내렸기에, 구미호는 다가오는 생명체를 모조리 독살하는 저주의 바위가 된 것이었다.
독석이 있는 숲은 죽음의 숲으로 불리며 발길이 끊겼고, 출입이 금해졌다.
그리 구미호는 오랜 세월, 홀로 외로이 살아가야만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어린 소녀가 호기심을 품고 죽음의 숲을 찾아왔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는지 행색은 초라했으나, 총명한 눈동자와 곱상한 흑발은 무척이나 어여뻤다.
나중에 알기로 미야라는 이름의 소녀였다.
그 소녀는 신비로운 힘을 지니고 있었다.
독석이 된 여우 마수의 쓸쓸한 감정과 오랜 세월 무뎌진 슬픔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죽음을 무릅쓰고, 미야는 강한 독에 중독되어도 망설임 없이 독석으로 둔갑한 구미호에게 다가갔고.
죽지 않도록 끊임없이 자신을 회복시켜 가며 그 바위를 상냥하게 어루만졌다.
─ ‘괜찮아, 괜찮아….’
그 목소리와 손길은 어두운 숲을 비추는 작은 광명, 마치 나뭇잎에 쪼개지는 햇살과도 같았다.
어린 소녀 미야는 겨우 목숨을 유지해가며, 이미 중독되어 색이 바랜 손으로 연신 바위를 쓰다듬었고.
미야가 쓰러지기 전, 구미호는 둔갑을 풀고 제 모습을 드러냈다.
아홉 개의 꼬리가 달린 새하얀 여우는 미야의 손길로 어루만져지며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미야는 활짝 웃으며 예쁘다, 하고 감탄하더니 구미호를 껴안았고.
구미호는 그 어린 아이에게 적의를 내려놓았다.
미야는 자주 죽음의 숲을 찾아와 구미호를 만나고서 일상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행복이란 결핍의 충족이다. 미야를 만난 뒤로 구미호가 깨달은 사실이었다.
외로움이 사라졌으니까.
토벌대에게 살해당할 뻔했던 트라우마마저 사그라질 만큼, 미야는 구미호에게 진득한 행복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미야가 숲을 찾아오지 않기 시작했다.
구미호는 미야를 기다렸다.
매일 미야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비가 쏟아진다.
눈이 내린다.
그런데도 미야가 오면 곧바로 만날 수 있는 자리에 서서,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그저 가만히 시간을 보냈다.
그리 한참 시간이 흘러, 하얀 눈송이가 숲속에 소복이 쌓인 어느 날.
미야가 다시 찾아왔지만… 그때는 이미 구미호가 알던 상냥한 꼬마 아이의 모습이 아니었다.
─ ‘날 따라와. 내가 지배할 세상을 네 녀석에게 보여 줄 테니까.’
화려한 의복과 값비싸 보이는 장신구로 자신을 한껏 치장한 소녀.
원하는 걸 갖기 위해서라면 서슴없이 잔혹한 짓을 자행할 수 있는, 한 명의 폭군이 그곳에 있었다.
……
“우리 엄마 건드린다고?”
마력이 용솟음쳤다.
신체가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체력은 회복되는 걸 넘어 영영 지치지 않을 것처럼 증대되었다.
마력 회로가 말도 안 되게 탄탄해졌다. 그 속에서 흐르는 마력 밀도와 양이 무서운 기세로 펌핑되어 흘러갔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그림자 무녀, 신밀의 에르메토나는 힘의 원천인 미야를 보호해야 한다고 본능적으로 판단했다.
에르메토나는 미야에게 단단한 흑염 보호막을 겹겹이 덧씌웠다.
화아아아!!
극악의 차가운 냉기가 아이작에게서 뿜어져 나와 화염의 꽃 바람 [앵화]를 몰아내고, 주위를 싸늘한 얼음장으로 만들어냈다.
압사당할 듯한 묵직한 마력이 내려앉았다. 그것만으로 에르메토나는 휘청거릴 뻔했다.
고유 특성 [멸악자] 발동.
신체와 마력의 비약적 강화.
아이작의 마력은 이 섬은 물론이요, 하늘과 인근 바다까지 짓누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려오는 건 시간문제일 터.
그러나… 저 마족을 해치우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으리라.
아이작은 오른팔을 옆으로 뻗었다.
휘우우우.
그 오른손에 연푸른빛 마력이 뭉쳐 무기의 형상을 이루었다.
쇠사슬 소리. 극저온의 대낫 한 자루가 그의 오른손에 쥐어졌다.
태초의 빙제가 다루었던 전설 무기, 서리낫이었다.
“하나 간과한 게 있는데.”
아이작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뜨자, 피부 채도가 높아지고 청은발이 쭈뼛쭈뼛 곤두섰다.
연이어 원왕을 상징하는 짙은 기운이 아이작에게서 온화하게 흘러나왔다.
9성급 패시브 스킬, [빙제].
신밀의 에르메토나는 그 기운을 확인하고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그것은 한 원소 속성의 정점에 다다랐다는 증거였으니까.
아이작은 서리낫을 들어 올리며 냉소적인 어투로 말했다.
“난 엄마 없어, 새끼야.”
적안에서 연푸른빛 마력이 흘러나왔다. 새로 얻은 마법의 전조였다.
서리낫 끝으로 지면을 내려찍는다.
채앵, 하는 청아한 소리.
그 지점을 기점으로 청명한 냉기가 사방으로 퍼지며 대련장 전체를 에워쌌고.
철컥철컥, 거리며 형형한 얼음의 벽이 주위에 겹겹이 쌓여 나가 넓은 공간을 건조했다.
영역 지배.
지면은 빙붕으로 변모하고 차가운 상화로 승화한다.
아름답게 조각된 얼음 천장에 연푸른빛 마법진이 새겨졌다. 살벌한 냉기를 흘리는 수많은 브리니클이 서서히 아래로 뻗어 나갔다.
그 얼음 궁전 속, 스산한 서리바람이 안에 갇힌 이에게 지옥과도 같은 추위를 선사했다.
[이건…?]신밀의 에르메토나는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몸속 심지에서 강한 위기감이 경보처럼 울렸다.
눈앞에 있는 존재는 대마법사. 아니, 그 이상의 존재.
그 가늠할 수 없는 힘을 느낀 에르메토나는 이내, 세 쌍의 눈을 찌푸렸다. 그의 만면이 혐오감으로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이곳은 폭한이 흐르는 극한의 냉동고. 기미한 얼음의 궁전.
아이작의 영역, [빙화신궐]이었다.
화르르륵!!
어둠 마력으로 강화된 구미호의 화염이 에르메토나의 분노를 따라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산발하는 흑염. 그러나 그 위력과 초고온만으론 얼음 궁전을 녹이기엔 역부족이었다.
단지 지면에 맞닿은 발이 얼어붙는 걸 가까스로 막아 내는 게 고작일 뿐.
에르메토나는 두 주먹을 꽉 쥐고 파들파들 떨었다.
아이작 앞에서 마족 된 자에게 승기 따윈 없었다. 그렇기에 에르메토나의 속에서 불 같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건방진 놈!!]에르메토나는 기괴한 목소리로 목청이 터져라 격노했다.
화염 마법진이 끝도 없이 전개된다. 각각의 마법진이 5, 6성급 화염 원소 마법을 다발로 쏘아냈다.
화르르륵!!콰가가강!!
대규모의 폭발과 흑염이 쉴 새 없이 아이작에게 퍼부어지며 얼음 궁전을 가득 메웠다.
[들으라, 오만한 얼음의 마법사여! 인간 주제에 감히 이치를 거스르려 드는가?! 주제도 모르고 네피드 님의 경지를 탐내느냔 말이다!]절규에 가까운 고성.
[네놈의 존재는, 그 자체로 죄악이다!]차악. 파아아아!
공간을 에워싼 냉기가 저돌적으로 휘몰아치며 폭발 자체를 삽시간에 얼려 버렸다. 이질적인 푸른빛 빙괴가 형성된다.
그 틈에서 아이작이 서리낫을 가볍게 휘두르자, 제 주위를 감싼 얼음덩이들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는 처음 봤던 모습 그대로 멀쩡했다.
에르메토나는 당황했다. 자신의 연격이 이리도 허무하게 무력화될 줄은 몰랐으니. 물리법칙은 이곳에선 상식이 되지 않았다.
왜 저런 남자가 조금 전까지 무녀를 상대로 고전했던 것인가?
왜 기만하였는가?
…그렇군. 알겠다. 에르메토나는 아이작의 의도를 짐작했다.
진작 에르메토나 자신이 무녀의 그림자 속에 숨어 있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모습을 드러내길 유도한 것이 틀림없었다.
처음부터 저 남자가 진정한 힘을 드러냈다면 에르메토나는 좋은 정보만 얻고 다음 기회를 노렸을 테니까.
[빙제]도 그에겐 부차적인 힘에 불과했으니. 제 존재를 들키는 것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저 얼음의 마법사를 보아라.
인간이라는 하등한 종족이면서 무려 악신에 필적하려 하고 있다.
오랜 세월, 사물의 그림자를 오가며 어둠 속에 숨어 살던 에르메토나는 태초의 원왕을 떠올렸다.
그들 또한 오만하기 짝이 없었으나, 악신에 버금가는 수준은 결코 아니었다. 아무리 강해져도 세상의 이치를 지킬 줄 아는 자들이었다.
하지만 저 대마법사는 다르다.
아니, 어쩌면 대마법사라는 호칭도 저 청은발의 남자에게는 망언인지도 모른다.
“미지근하네.”
메르헨 아카데미를 가볍게 휩쓸 법한 고밀도, 초고온의 흑염 연격조차 아이작의 냉기 앞에선 멀리서 모닥불 쐬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는 이미 태초의 원왕조차도 뛰어넘었으니.
아이작.
에르메토나가 이제껏 봐온 그 어떤 인간보다도 강인한 존재의 이름이었다.
에르메토나는 주먹을 거세게 쥐었다.
이곳에 가만히 있어 봤자 얼어 죽을 뿐이다.
화염을 거침없이 뿜어내 가까스로 버텨 내도 점차 내려앉고 있는 각진 고드름, 브리니클에 닿는 순간 최악의 저온 냉기가 전신을 꽁꽁 얼려 버려 죽음으로 인도할 것이었다.
“…이번엔 내 차례다.”
연푸른빛을 머금은 아이작의 적안이 적을 노렸다.
화르르륵!!
경각심을 느낀 에르메토나는 최대 출력으로 흑염을 내뿜었다.
어떻게든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아이작이 마음만 먹으면 죽는 건 순식간일 테니.
하물며 저 사내가 뿜어내는 냉기는 닿기만 해도 필시 죽음에 이르고 말 터.
에르메토나는 화봉국에서 전해지는 7성급 화염 원소 마법, [무황]에 어둠 마력을 덧씌웠다.
그의 뒤로 커다란 흑적빛 마법진이 전개되더니 검은 화염을 토해냈다. 어둠의 화염이 화려하게 춤추며 길을 개척해낸다.
그 길을 타고, 검은 화염으로 이루어진 봉황의 형상이 날아들었다.
무시무시한 마력이 농축된 화염이다.
지상에 닿기만 해도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 힘이 그 봉황에 담겨 있었다.
─────.
…소용없었다.
검은 봉황은 그 타오르던 형상 그대로 얼어붙었고.
한가운데에 은빛 실선이 그어지며 순식간에 반 토막 났다.
[무슨…!]제약 없이 빙결하는 7성급 얼음 원소 마법, [황천 빙하].
이어진 건 서리낫의 고유 마도, [절대영도]. 낫날로 그어낸 구간은 공간의 제약 없이 베어지고, 그 틈새를 극한의 냉기가 파고든다.
휘익!
반 토막 난 봉황을 제치고 아이작이 에르메토나에게로 당도했다.
마치 섬광처럼 눈으로 쫓기 힘든 속도였다.
기겁한 에르메토나는 본능적으로 흑염을 쏟아 부으며 저항했지만.
사악!차라락!
아이작이 서리낫을 휘두르자 냉기가 스민 은빛 원이 두 번, 화염을 가로질러 찰나간 허공에 그려졌다.
흑염조차 낫날의 진로를 따라 베어지며 무력하게 사그라졌다. 그러자 에르메토나의 시야는 제 의지와는 무관하게 뒤틀렸다.
서리낫에 베인 육체가 세 토막으로 나뉘어 버린 까닭이었다.
서리낫의 능력으로 낫날에 토막 난 부위는 즉각 얼어붙었고.
살을 찢는 냉기가 에르메토나를 파고들었다.
[아아아악!!]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되새긴다.
자신의 목표는 악신을 유일하게 살해할 수 있는 존재, 이안 페어리테일을 없애는 것.
이는 대의였다.
그를 해치우지 못한다면 다음 동족에게 뜻을 맡길 수밖에 없으리라.
그리고 확신한다.
그 대의를 실현하는 데 있어서, 이 청은발의 남자는 마치 거대한 산맥처럼 크나큰 장애물이라고.
그러니 조금이라도 좋다. 이 남자에게 돌이킬 수 없는 부상을 입혀, 다음 동족이 이안 페어리테일을 수월하게 죽일 수 있도록 이바지해야 할 것이었다.
에르메토나는 기괴한 고성을 내지르며 다섯 개의 흑염 마법진을 전개했다.
퍼엉!
그러나 에르메토나의 염원은 아이작이 엄청난 속도로 내지른 발차기에 가로막혔다.
폭음에 가까운 충격음이 울리며, 흉상으로 변해 버린 에르메토나의 몸이 천장까지 날아가 버렸다.
에르메토나는 [빙화신궐]의 천장에 맞닿았다. 브리니클이 와장창 깨져 나가 백옥빛 가루가 아름다운 빛깔을 흩뿌리며 쏟아졌다.
[으허억…!]그 고드름에 닿는 순간부터 극저온의 냉기가 전신을 깊숙이 파고든다.
천장을 메운 연푸른빛 마법진이 살벌한 빛을 뿜어냈다. 추위가 기세를 더해간다.
어느새 에르메토나의 육체를 에워싼 검은 화염은 뚝 꺼져 버렸고, 그 몸은 삽시간에 꽁꽁 얼어 버렸다.
얼음 조각상처럼 변해 버린 에르메토나의 흉상이 아래로 추락했다.
아이작은 오른손에 얼음 마력을 응집시키고, 떨어지는 흉상을 향해 오른팔을 뻗었다.
차가운 마력이 범람했다.
콰아아아아아!!!
소리보다 빠른 연푸른빛 섬광이 [빙화신궐]을 반짝였다.
잇달아 굉음이 퍼져 나갔다.
차갑게 변해 버린 에르메토나의 수많은 육편이 비산하고.
아이작의 손 위로 거친 형태의 빙괴가 치솟아 천장에 달라붙었다.
아이작은 빙괴를 풀고 팔을 내렸다.
[빙화신궐] 속, 그의 숨결은 새하얀 입김이 되어 한풍을 타고 흘러갔다.영역 지배를 발동한 이후 에르메토나를 쓰러뜨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20초 남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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